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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행사황운 소설 《2호선, 서울1》북토크 & 전시

공모ㆍ기금ㆍ행사 내용
기간 2019-07-20~2019-07-20
주관 아름다움 출판사
링크 https://forms.gle/Jh8Vjb2cmx12hjjb7
게시일 2019-07-14 조회수 923 작성자 홍예지




청년 작가의 첫걸음을 응원하는 아름다움 출판사

숨(SOOM) 시리즈 4

황운 소설 《2호선, 서울1》 북토크 & 전시


일시 : 2019. 7. 20. (토) 저녁 7-9시

장소 : 오렌지연필 (서울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895, 낙성대역 5번 출구)

주최, 주관 : 아름다움 출판사

후원 : 재단법인양포

출연진 : 황운 작가

프로그램 : 북토크 및 사인회, 전시(2호선 취재 작가노트와 사진)

참가비 : 무료

신청 방법 : https://forms.gle/Jh8Vjb2cmx12hjjb7 

(위 링크로 사전 신청 / 현장 접수도 가능)

※ 당일 주차장 이용시, 오렌지연필 1층 카페에서 음료 1잔을 구매하시면 2시간 무료 주차 가능합니다.


● 작가 소개


황운

1996년 초여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서 미학과 국문학을 공부한다. 제59회 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우수작에서「KIDA」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록 스타가 되고 싶었으나 음악에는 재능이 없어서 글을 쓰기로 했다. 라디오헤드와 스티비 레이 본을 좋아한다.


● 책 소개


아름다움 출판사의 '숨(SOOM)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서울 지하철 2호선의 역들을 하나하나 취재하여, 역마다 하나씩 단편 소설을 써 내려가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내선 순환선을 따라 43개 역의 사연을 소설로 담아내며, 총 6권의 시리즈물로 소개될 예정이다. 이번에 출간된 《2호선, 서울①》은 그중 첫 번째 책으로, 서울대입구역에서부터 신도림역까지 집필한 소설들을 엮었다. 


하루 평균 244만 명(2017년 기준)의 승객을 실어 나르는 2호선 열차에서, 사람들은 익명의 얼굴로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작가는 이 익숙한 풍경 아래 감춰져 있는 개개인의 고독한 일상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무엇보다도 《2호선, 서울》은, 어디에나 존재할 것 같고 또 특별히 기억되지도 못해서 어느 순간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와 허름한 뒷골목, 붐비는 대중교통과 네온사인의 요란한 불빛을 배경으로, 소외된 이들의 뿌리 깊은 상실감과 좌절된 욕망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 출판사 서평


청년 작가의 첫걸음을 응원하는 ‘숨(SOOM) 시리즈’ 네 번째 책!

황운 소설, 『2호선, 서울』 제1권


황운 소설 『2호선, 서울』은 청년 작가를 지원하는 ‘숨 시리즈’ 네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2호선, 서울』은 지하철 2호선의 내선 순환선을 따라 집필한 43개의 단편 소설들로 구성되며, 총 6권으로 나누어 차례차례 출간될 예정이다. 그중 제1권은 서울대입구역, 봉천역, 신림역, 신대방역, 구로디지털단지역, 대림역, 신도림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독, 욕망, 죄의식 

일곱 개 역을 관통하는 세 가지 테마 


매일 출퇴근 시간이면 ‘생지옥’이 되어 버리는 서울의 지하철 안. 짐짝처럼 욱여넣어지는 사람들 틈에서, 우리는 문자 그대로 나와 ‘살을 맞대고’ 있는 타인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 알기는커녕, 내가 누구인지조차 지워 버려야만 무사히 하루를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얼굴들 중 하나를 골라서 무표정 뒤에 숨어 있는 삶을 생생하게 불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2호선, 서울』의 기획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호출되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이며 ‘누구’의 삶인가? 서울대입구역에서부터 신도림역에 이르기까지, 성별과 나이와 직업이 제각기 다른 인물들을 한데 모아 놓고 본다면, 우리는 아마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고독하고,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 싶어 하며, 그런 욕망을 품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느낀다.” 라고. 이 ‘고독, 욕망, 죄의식’이라는 세 가지 테마는 『2호선, 서울』이 선택한 인물들의 상황과 인물 간 ‘대화’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특히 1권의 첫 번째 역인 서울대입구역에서는 나머지 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테마들이 예고된다.


(1) 고독 : “( )(은/는) 외로워요.” 


「러브 (서울대입구)」에서 혜진은 애인이 따로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술 취한 발음으로 한마디 툭 내뱉는다. “외로워요.” 라고. 이 말은 딱히 ‘나’의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평서문이라서, “푸념이나 유혹이 아니라 선언”일 따름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주어가 없어서 꼭 예언처럼 들리기까지”(p.21) 하는데, 이 “외로워요.”라는 말을 예언의 형태로 재구성한다면, “(서울에 사는) 그 누구도 외로움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리라.” 정도가 될 것이다. 마치 예언이 이루어지기라도 하듯, ‘나’는 혜진과의 통화 이후로 길거리에서 혜진을 마주칠 때마다 알 수 없는 적적함에 휩싸인다. 그런 ‘나’에게 친구들은 ‘사람 마음이 다 그런 법’이라는 식의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주는데, ‘나’는 그런 ‘법’이라는 말을 몹시 불쾌하게 느낀다(p.22). 그런 말로는 혜진과 ‘나’ 사이에 맴돌던 이상한 기류도, 혜진 옆의 남자(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감정도, 표면적으로 무탈하게 이어지는 현 애인과의 관계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나’는 자신이 느끼는 고독이 ‘법’이라는 틀 안에 포섭되면서 고유성을 잃게 되자 허탈해한다. 우리는 여기서, “외로워요.” 라는 문장의 주어 자리에 ‘누구나’ 올 수 있다는 사실이 서울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에게 더 큰 비극이 된다는 점을 알아챌 수 있다. 얼핏 보면 너도 외롭고 나도 외롭기 때문에 쉽게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지만, ‘너만 외로운 것은 아니므로 유별나게 굴 필요 없다’는 식의 논리로 흘러가면서, 각자의 자세한 사정은 너무 쉽게 탈락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은 고독을 느끼는 무리 안에서 또 한 번 고립되는 아이러니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 비극이 연결되는 지점은 「그래피티 (봉천)」에서 보이는데, 봉천동을 새로운 관광 명소로 개발하려는 상민이 ‘사람 냄새’, ‘위로’ 운운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외로움을 상품화하는 대목(pp.57~60)이 특히 그렇다. 


(2) 욕망 : “나는 ( )(을/를) 원해요.” 


한편, 몇 년 후 혜진과 ‘나’는 우연히 재회하는데,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두 사람의 시선은 “서로의 인중을 보고 있는 것처럼” 마주치지 않는다(p.23). ‘나’는 왠지 모르게 혜진이 ‘뿌연’ 사람이라고 느껴왔는데, 이 느낌도 여전하다. 그런데 둘이 함께 관악산을 오르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등산 후에 이어진 술자리에서 혜진은, “사랑도 은어일 뿐”이어서 “뭔가를 감추려고 쓰는 말”이지만, “은어는 때때로 더욱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한다(pp.30~31). 이에 ‘나’는 사랑이란 말로써 감추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대로 빈칸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이 ‘빈칸’을 들여다보는 것이 이 소설의 두 번째 테마가 된다. 어쩌면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말로 ‘감추려고 했던 것’과 그 말로써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는 것’은 결국 하나일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바로 ‘결여’ 그 자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뻥 뚫려 버린 ‘구멍’이다. 즉 ‘사랑한다’고 말하는 주체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주체이고, 이 상실한 무엇을 열렬히 되찾고 싶어 하는 주체이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말은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발화의 주체가 정작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가 되찾아야 하는 것,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애타게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사랑해요.” 라는 문장을 “나는 ( )(을/를) 원해요.” 라는 문장으로 바꿔 쓸 수 있는데, 이 새로운 문장에는 목적어가 빠져 있어서, 과녁 없이 화살을 쏘는 상황과도 같다. 만약 비어 있는 목적어 자리에 무언가 들어선다고 할지라도, 그런 충족은 일시적이고 불안정해서 주체는 언제나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주체는 ‘이’ 대상에서 ‘저’ 대상으로 끝없이 옮겨갈 뿐이다. 


「러브 (서울대입구)」에서 혜진은 ‘나’와 은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나’의 동공을 깊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이때, 두 사람은 처음으로 서로의 눈을 마주 본다(p.32). ‘서로의 인중을 보는 것처럼’ 내내 마주치지 않던 시선이 만나는 이 장면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시선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서로 상대방을 나의 욕망이 향하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내 시선에 응답할 수 있는 동등한 ‘주체’로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혜진은 “마치 그 안에서 무엇을 찾으려는 것처럼”(p.32) ‘나’의 눈을 들여다보는데, 여기서 ‘무엇’은 바로 ‘나’의 내면에 뚫려 있는 구멍일 것이다. 넓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그 구멍, 즉 메워지지 않는 타인의 심연을 직시하려 할 때, 어쩌면 ‘유일무이한’ 관계 맺음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암시가 여기에 숨어 있다. 하지만 이내 동공이 ‘탁 풀리고’ 다시 인중으로 떨어지는 혜진의 시선처럼, 이 실낱같은 가능성은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만다. “사랑한다고요, 주현 씨.”(p.33) 라는 말에 ‘나’는 ‘알 수 없게 벅차오르고’ 혜진의 ‘얼굴 윤곽을 명확하게 짚어 낼’ 수 있게 되지만, 그녀와 자고 난 다음 날 밀려오는 ‘구토’는 혜진과의 관계 역시 완전하고 영원한 충족을 가져오지 못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3) 죄의식 : “나는 벌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 ) 때문이다.”


서로의 결여를 받아들인 채 상호 존중하는 관계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를 찾는다면, 「깍두기 (신림)」에서 다뤄지는 성매매일 것이다. 성 노동 여성의 자식으로 태어난 ‘나’는, 신림역에 가서 ‘재미 보자’는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할 때 말은 하냐고” 물었다가 놀림거리가 된다. ‘나’의 물음에서 ‘말’은 다름 아닌 ‘인간과 인간이 주고받는’ 말을 의미했겠지만, 친구들은 참았던 욕구를 쏟아내기도 바쁜데 “뽀르노마냥 징그럽게” 말은 뭐하러 하냐고 비웃는다(p.72). 여기서 우리는 성관계 중에 ‘말’하는 행위가 이미 포르노로 변질된 현실, 그리고 말 한마디 없이 나의 욕구를 일방적으로 분출하는 행위가 오히려 포르노가 아닌 것처럼 전도된 광경을 목도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상황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겪는 ‘좌절’과 무관하지 않다. 각자 벌어먹고 살기 팍팍한 삶에서 개개인은 단지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는 기계의 부속품일 뿐이며, 나의 유일무이한 ‘존재 가치’나 ‘자존심’ 같은 것은 가질 수도, 지킬 수도 없다. 또한 내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 소중한 사람이 되고자하는 마음조차 ‘욕심’이자 ‘부담’이라서, 당장 눈앞의 밥벌이를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한마디로 너와 나는 모두 ‘시시한’ 사람일 뿐이다. 이 ‘시시함’을 견딜 수 없어 눈물을 흘리는 아영과 가현(「오로라는 얼마 (구로디지털단지)」), ‘포기해야 할 것들의 목록’에 이제 무엇을 더 추가해야 할지 몰라서 삶마저 포기하려는 혜리(「다스트슛트 (신대방)」)의 얼굴은, 신림역 홍등가를 배회하는 공허한 얼굴들과 이웃이다. 또한 “어제 먹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깍두기 같은 존재라는 것, 그것이 나의 죄목”(p.85)이라며 “죄 짓지 않은 구속”(p.86)을 기다리는 ‘나’, 자신을 구하러 출동하겠다는 119의 말을 ‘잡으러 오겠다’는 말로 듣고 기절하는 가현, 모든 불행을 ‘욕심 많은’ 자기 탓으로 돌리는 혜리에게서 발견할 수 있듯, 단지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었을 뿐인 사람들이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서울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이들에게 ‘죄’란 무엇인지, 내가 ‘죄를 지었는지’의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미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려는 바람까지도 그 즉시 자기 검열의 대상이 되는 ‘내면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벌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 ) 때문이다.” 라는, 이유가 빠져 있는 문장이 이런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차 별 볼일 없는 사람들끼리 ‘깍두기’ 만들기 게임을 하며 서로에게 손찌검을 하는 바람에, 서울은 더 어둡고 숨 막히는 곳이 되어 버린다. 평소 ‘선량한 시민’들의 욕망이 억눌리면 억눌릴수록 그 억압의 정도에 비례해서 폭력이 터져 나오는데, 그 공격은 지하철 역무원들에게 향하는 분풀이로(「고도高度를 기다리며 (신도림)」), 때로는 중국 동포들에게 날아가는 혐오의 화살로(「재즈의 잔향 (대림)」)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이처럼 역마다 고통스러운 삶의 면면들을 마주하다 보면, 도대체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시, 『2호선, 서울』이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가 본다면, 우리 눈앞에 두둥실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밀폐된 기차 안, 수많은 사람이 내뿜는 ‘나쁜 공기’, 최소한의 안전거리조차 확보되지 않은 채 밀착되는 낯선 몸들, 일그러지다 못해 굳어 버린 누런 얼굴들. 심심치 않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손가락과 고함, 비명 소리. 자주 고장 나는 스크린 도어와 자동문, 그리고 에스컬레이터. 이런 ‘과밀’의 현장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왜, 서울을 터질 듯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것일까. 이 질문은 결국, ‘잉여’ 그 자체로 굴러가는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겨냥하게 되지 않을까? 과잉 생산을 견디기 위한 과잉 소비, 이 연결 고리를 유지하기 위해 24시간 동원 상태에 있는 사람들. 빠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위해 몸과 마음을 정비하는 우리, 그런 우리를 끝없이 실어 나르는 지하철, 2호선. 멈춰서는 안 되고 멈출 수도 없는 순환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어쩌면 황운 소설 『2호선, 서울』은 각자 이 물음을 던져 보기를, 솟구치는 의심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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