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예술경영인 여름나기' 에세이 공모 선정작

여름휴가, 뭐했니?!

정리_[weekly@예술경영] 편집팀

지난 7월 18일부터 8월 7일까지  ‘예술경영인 여름나기’ 에세이 공모가 있었다. 다채로운 방식으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예술경영인의 에세이들 중 총 4개 작품이 선정되었으며,  225호에서는 참신한 소재가 돋보인 두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 대금산조를 연주하는 이생강 명인과 김청만 명고

▲ 대금산조를 연주하는 이생강 명인과 김청만 명고

▲ 아쟁산조를 연주하는 이태백 명인

▲ 아쟁산조를 연주하는 이태백 명인

산조, 한여름의 보양

김선욱_한국문화재보호재단 공연전시팀

우스갯소리지만 근처 은행으로 피서 가고 싶을 정도로 무더위가 턱 끝까지 차오르는 날이면 나는 으레 산조를 떠올리게 된다. 몇 해 전 여름, 우연히 '한여름 산조의 밤'이라는 공연을 강남의 한 공연장에서 관람한 적이 있다.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아쟁의 젊은 연주자들이 각자의 흥을 풀어놓았던 그 밤, 내 마음은 '산조'라는 옷을 입고 말 그대로 작란(作亂)을 했다. 생각하기 전에 느꼈다. 악기와 상응한 연주자 즉흥의 농현과 몸짓, 표정에서 풀내음이 났다. 연주자와 악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율이 베푸는 향응에 나는 그저 흠씬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공연장을 나오며 "아, 이것이 보양이다"라며 혼잣소리를 했다.

우리의 전통음악에 속하는 기악 독주곡의 하나인 산조는, '허튼가락'이라고도 하고 '말없는 판소리'라고도 불린다. 장단과 선율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자연의 은유 산조. 그중 대금산조와 아쟁산조는 대표적 여름음식 냉면과 삼계탕처럼 극명하게 다른 듯하나 끝단에는 무더위에 몸과 마음을 보양해준다는 점에서 대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대금의 청아한 소리는 한겨울 추위보다 매섭게 체온의 평형을 무너뜨린다. 또 아쟁의 현에 미끄러지는 장음의 구슬픈 소리는 뜨겁게 몸속으로 파고든다. 이런 점에서 나는 관악의 대금산조가 이냉치냉(以冷治冷) 냉면이라면, 현악의 아쟁산조는 이열치열의 삼계탕이라고 비유하여 표현한다.

울창한 대나무 숲에 바람이 분다. 초록의 이파리들이 파르르 나부끼며 바람에 제 몸을 맡긴다. 대나무 그늘숲, 나는 가만히 앉아 눈을 감는다. 대금 산조를 관람하는 나의 심성이다.
만파식적(萬波息笛). 대금을 두고 전해져 내려오는 『삼국유사』의 설화다. 대금소리가 나라의 흥망(興亡)을 막아준다는 내용이다. 명인의 대금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안다. 나라의 근심과 걱정은 몰라도 적어도 관객의 마음 하나는 무연하게 흔들어댄다. 공연이 시작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풀내음 가득한 음림(陰林)에 앉아있게 된다. 특히 대금 연주자 즉흥의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청공에 떠오르게 된다. 심신은 곧 유곡에 당도하고 더위는 먼 속세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옛 풍류를 즐기던 한량이 되는 순간이다. 선율의 감정이 극단으로 올랐을 때, 관객은 그 끝에 매달려 부드러운 추위를 이겨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냉치냉. 한여름의 포근한 추위, 이것이 대금산조다.

아쟁은 우리나라 악기 중 가장 구슬픈 소리를 낸다. 활시위를 타고 미끄러지는 저음역의 농현의 소리는 가슴속에 뜨겁게 스며든다. 산조는 인간의 감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에 찰나의 순간 연주자의 선율에 감정을 빼앗기고 만다. 마치 최면치유를 하듯 활시위 끝에 매달려 감정의 극단을 경험하게 된다. 시나브로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진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은 추임새라 불러도 좋다. 연주가 무르익을 즈음 선율이 심장을 더듬는 명징한 소리가 들린다. 곧 사위가 고요해지고 아쟁의 현이 내뿜는 그 들숨과 날숨의 너울에 실려 어릴 적 추억처럼 해사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첫사랑의 고백처럼 아련하게 뜨거워지는 이열치열. 한여름의 농밀한 열, 이것이 아쟁산조다.

나는 산조가 좋다. 정답이 없어 더 좋다. 같은 연주자도 절대로 같은 연주를 해낼 수 없어서 좋다. 그 흐트러짐이 좋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좋다. 덕분에 나도 자유가 된다. 장마와 무더위의 극성에 각다분해지는 올해 여름, 잠시 고개를 들고 산조가 흐드러져 있는 곳으로 가자. 갈품처럼 남아있는 나의 열정을, 청춘의 그 무엇처럼 꽃피워줄 공연장으로 가자. 그곳에서 잊고 지내던 나를 꺼내어보자. 나에게 산조를 선물하자. 자유를 선물하자.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풍류가 있다. 우리의 멋이 있다. 그 중심에 산조가 있다.

필자가 산조에 대해 이토록 관념적인 표현을 다소 격양된 음성으로 적어 내려간 이유에 대해 현재 전통공연예술에 몸담고 있는 자의 의무감으로 국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얻고자 함이라기보다는, 산조를 받아들이는 한 주체의 추상적 추천사로 보아주길 바란다.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바뀌고 입맛이 시들해지는 한여름의 중턱, 필자가 추천하는 우리의 음악, 산조로 심신을 보양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냉면 한 그릇도 안 되는 금액에 우리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다. 바라건대 올여름 나의 일상에 최대한 가벼운 마음으로 산조 한 그릇 선물하고 가능한 넉넉한 마음으로 오래도록 여행하기를. 아울러 선율이 베푸는 한여름의 보양, 산조. 그 순간에 온몸을 맡겨보길 바란다.

 
 
김선욱 필자소개
김선욱은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이후 월간 [미술세계]에서 전시기획을 맡았고 2011년부터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전통예술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예술에 관한한 전방위적인 잡식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현재 예술철학 박사과정에 있다.
 
▲ 점심시간에 먹을 디저트를 만드는 인턴들

▲ 점심시간에 먹을 디저트를 만드는 인턴들

▲ 구로문화재단과 구로시민센터가 주최한 ‘시민캠프’에 참여한 인턴들.

▲ 구로문화재단과 구로시민센터가 주최한 '1박 2일 가족힐링캠프'에 참여한 인턴들

새내기 인턴들과 여름나기

안주용_구로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유례 없는 폭염의 여름. 여느 직장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무실은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말이지 일에 있어서는 계절의 구분이 없다. 일주일 정도 멀리 여행을 떠나는 바람직하고 쿨한 광경도 상상해보지만, 산적한 업무에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휴가를 다녀오는 것,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법한 일이다. 여름, 겨울마다 방학을 만끽했던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이 순간만큼은 내 처지가 서럽기만 하다. 방학이 뭐였더라, 먹는 거였던가? 이처럼 일과 더위에 치이던 요즘, 다행히도 내게 즐거운 일이 하나 생겼다. 바로 새내기 인턴들의 입사! 모두 대학생이거나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들이다. 이들은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재단 사무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덕분에 우리 회사의 평균 연령은 크게(?) 낮아졌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 친구들과 같이 지낸 시간은 아직 얼마 안 됐지만, 벌써 추억할 만한 일이 많이 생겼다. 그만큼 많은 일을 함께했다는 방증이다. 올해 들어 우리 재단은 99초 힐링 영화제, 시민 캠프, 무지개다리 사업, 청소년 극장 축제, 지역 문화예술동아리 활성화 등의 새로운 기획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인턴 친구들은 이러한 사업 운영에 있어 이미 없어서는 안 될 역군이 돼버렸다. 출근하면 서로 머리를 맞댄 채, 아이디어 내기에 몰두한다. 그러고는 홍보를 위해 사우나 같은 거리를 땀이 식을 새라 활보한다. 행사가 시작하면 재빠르게 움직이느라 숨 돌릴 틈도 없다. 슈퍼맨 저리가라다. 이쯤 되면 힘이 들고 슬슬 짜증날 만도 하다. 그런데 오히려 신이 나 보인다. 몸이 바삐 움직이는 동안, 입은 입대로 서로 농담하고 깔깔거리느라 바쁘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그 모습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기특하다. 이에 나는 도움이 될 만한 얘기나 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다. 내가 얘기를 시작하면 경청하며 듣고, 빙수나 밥이라도 곁들이면 리액션이 폭발한다. 센스 만점에 심성 또한 훌륭하다. 좋은 것 맛있는 것 있으면 아낌없이 나눌 줄도 안다. 이 친구들의 밝고 선한 기운은 더위에 찌든 나를 일으킨다. 그야말로 자양강장이요, 피로회복제다. 무슨 일을 부탁해도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임한다. "좋아요!", "재밌어요!"라는 말도 입버릇처럼 한다. 좋고 재미있다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고 재미있다.

이들과 지내다 보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이 길을 처음 선택할 때의 꿈과 모습을 난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가, 초심을 잃지는 않았나,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고마웠던 마음을 잊고 산 건 아니었나.' 한편으로는 '선배로서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는가, 내 깜냥이 모자라 아이들의 앞길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염려한다. 더 좋은 것들을 많이 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안타까움이다. 자격지심이다. 이렇듯 인턴 친구들과의 생활은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일을 배우려고 들어온 친구들인데, 도리어 내가 배운다. 그들에게서 열정과 동기를 얻는다. 가르침에 따로 사례할 필요 없고, 배움의 과정은 자연스러우니 일석이조다. 이들에게서 얻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선배로서 책임감을 지니게 한다. 말과 행동은 물론, 업무를 하는 데 있어 부끄럽지 않은 어른의 모습을 갖추도록 유도한다. 단지 나이가 많아 어른이 아닌, 당신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어른이 되도록.

나는 요즘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휴가만큼이나 좋다.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 그들이 있는 자체만으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사무실 분위기가 나를 설레게 한다. 여름이 가기 전에 우리 고마운 인턴들 모시고 모꼬지라도 다녀와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회사는 어떡하고? 몰라, 이사님이 하루 빼주시겠지 뭐. 이런저런 설렘과 기대로 올해 여름은 신 나게, 의미 있게 지나가고 있다.

 
 
안주용 필자소개
안주용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구로문화재단에서 문화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문화복지, 지역문화, 문화예술진흥, 기반확충 등 문화일반에 두루 관심이 있다. 문화예술분야의 모든 창작자, 매개자, 향유자들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다.
 

 

weekly 예술경영 NO.225_2013.08.22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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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nsoon Yoo
  • 2013-08-27 오전 11:14:12
김선욱님의 맛깔나는 산조 예찬 잘 보았습니다^^ 안주용님의 에세이는 제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 분위기와 맞아떨어져 격하게 공감했네요^^ 인턴들은 사무실 직원들에게 큰 활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좋은 에세이 잘 보았습니다^^[Del]
  • 위클리 예술경영
  • 2013-09-02 오후 4:17:26
예술경영인들의 목소리에 늘 귀기울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관심있게 지켜봐주시고 피드백 주세요~^^[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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