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② '여름철 극한 직업' 무대제작자의 여름 나기

변화무쌍한 자연과의 사투

임건수_무대디자이너

▲ 2014년 눈빛극장에서 공연된 극단 길라잡이의 〈상처꽃〉무대 설치 모습.

 

 

 

[Weekly@예술경영]이 마련한 바캉스 특집 2탄은 ‘여름 토크박스’입니다. 공연계 각 현장에서 여름마다 벌어지는 치열하고 오싹한 이야기들은 물론, 없던 아이디어도 콸콸 쏟아지게 만들어 줄 서울 내 창작 아지트들까지! 공감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토크박스 주사위를 한번 던져 볼까요?/하우투 여름철 극한 직업①_조명 감독의 여름 나기, 여름철 극한 직업②_무대 제작자의 여름 나기/칼럼 예술경영인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순간들/이상공간 에어컨이 고장 났을 때 찾아가면 좋은 예술 공간
 

나는 무대 제작자는 아니다. 하지만 무대 디자이너로서 무대 디자인을 공연장에 실현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무대 제작을 해왔다. 지난 십 수 년간 다양한 환경에서 무대 제작 작업을 경험 해왔기에, 특히 여름에 겪게 되는 고충을 적어 보고자 한다. 모든 무대 제작자들이 여름에 겪는 고충을 완벽히 대변한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대략적인 무대 제작과정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무대 디자인이다. 무대 디자인 작업은 특별히 계절에 상관없이 대부분 실내에서 진행된다. 공연 텍스트와 시각 자료를 토대로, 컴퓨터를 통해 형상화할 무대 공간을 재현한다. 주로 이 작업은 주변 환경 보다는 개인적인 역량 및 주어진 자료들과 씨름하는 시간이다. 전반적인 무대 디자인이 완성되면 공연이 올라갈 공간을 찾아가 현장 환경을 면밀히 점검한다. 이 과정에서 느낀 현장 상황을 디자인 마무리 단계에서 다시 정리한다.

 

연극 〈그 샘에 고인 말〉의 무대 디자인과 무대 모습, 2009,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 연극 〈그 샘에 고인 말〉 무대 디자인과 무대 모습, 2009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자연의 변덕에 대처하기란  

 

문제는 디자인한 것을 구현하는 이 제작 단계다. 특히 여름은 날씨와 작업 환경의 상관관계가 아주 높아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먼저, 제작소의 주변 환경이 곤혹스럽다. 대부분 장치 제작소 위치는 주변에 숲이나 야산이 인근한 곳이다. 따라서 모기나 해충들이 낮과 밤을 막론하고 달려든다. 열악한 작업환경의 시작이다.

다음은 급작스러운 소나기에 많은 제작자들이 적지 않은 피해를 보는 경우다. 태양 빛이 강해서 야외에 배경막이나 페인팅된 구조물을 건조시킬 목적으로 설치하였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며칠을 고생해서 완성한 작화 막에 얼룩이 지거나 곰팡이가 피어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공연 장소 또한 마찬가지다. 실내에 형성된 극장 공간이라면 오히려 쾌적한 에어컨 바람에 기대어 나름대로 짧은 피서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활동적인 계절답게 여름은 탁 트인 야외 공연장에서 많은 공연들이 이루어진다. 야외 공연장의 특성상 변화무쌍한 자연의 변덕에 대처하기란 쉽지 않다. 낮은 물론이고 해가 지고 저녁이면 달려드는 모기와 날벌레들, 찜통더위와 흐르는 땀, 귓가에 거슬리는 모기들… 지옥이 따로 없다. 모기나 날벌레들은 벌레 퇴치제와 긴팔 옷으로 그나마 무장이 가능하다지만, 그것도 열대야의 찝찝한 더위 때문에 참기 힘들다.

 

필자가 참여했던 극단 미추, 야외극 〈한여름밤의꿈〉 공연 모습.

▲ 필자가 참여했던 극단 미추의 〈한여름밤의 꿈〉 야외 공연 모습. 

 

오늘이 당장 첫 공연이라면, 어쩌겠는가!  

 

그러나 무엇보다 대처하기 힘든 것은 역시 난데없이 쏟아지는 강풍을 동반한 집중호우다. 야외 무대의 경우, 무대 제작자들이 땡볕과 사투를 벌이며 힘겹게 세워 놓은 무대장치들이 급작스러운 호우로 일순간에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강이나 호수 주변에 설치된 무대에 밤새도록 준비해 놓은 무대장치들이 흔적도 없이 폭우에 떠내려가 망연자실한 경험도 있다. 어쩌겠는가! 오늘이 당장 첫 공연이라면 하늘을 원망하고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주변에서 대체 가능한 나무, 천, 구조물 등을 공수해 와 피가 마르고 입이 타는 심정으로 끼니를 거르며 어렵게 공연 준비를 마무리했던 끔찍한 경험도 있다. 이런 극한의 작업들을 겪노라면, 새삼 경이롭고 거대한 자연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필자는 물론이고 몇몇 디자이너는 여름 날씨와 관련해서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 다름 아닌 무대 제작 기간이나 무대 조립, 해체 작업 중 여지없이 비가 온다는 점이다. 매번 겪는 일이지만, 이 때문에 작업 일정이 더뎌지고 정해진 작업 일정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서두르게 되며 그러다보면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대 관련 작업이 여름 극한 직업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주변에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다른 구성원들 또한 여름에 나름대로 감수해야 하는 노고는 무수히 많다.

본인 나름대로 이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있다. 미리 공연장 상황을 꼼꼼히 점검해서 일어날 수 있는 만일의 사태를 예측하고 대비한다는 것이다. 즉,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다. 여름이 만들어 낸 척박한 환경에서도 나는 왜 이리 열심히 제작에 열중하는 걸까? 그건 공연이 끝나고 객석 쪽에서 들려오는 관객의 박수와 환호성에 그간의 모든 피로와 긴장이 일순간 사라지는 경험을 즐기기 때문이다.

 

사진제공_필자

 
 
필자사진_임건수 필자소개
임건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하고 1997년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시작으로 2002 남양주 세계야외공연축제 무대감독을 거쳐 현재까지 80여 작품의 다양한 무대디자인을 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기술감독으로 연극원 공연에 필요한 기술지원을 하고 있다.
 

 

weekly 예술경영 NO.270_2014.08.07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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