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예술경영인의 권태기 탈출법 ①

농사와 문화를 경영하다

김찬두_전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기획지원부장

[Weekly@예술경영] 281호는 자문자답, ‘예술경영인의 권태기 탈출법’으로 독자여러분들을 찾아갑니다. 지난 266호와 272호 ‘나의 공연계 입문기’에 보내주신 독자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Weekly@예술경영]은 앞으로 매달 한번씩 ‘예술경영인 시리즈’를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앞으로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하우투/예술경영인의 권태기 탈출법 ①_김찬두 전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기획지원부장/예술경영인의 권태기 탈출법 ②_최윤우/예술경영인의 권태기 탈출법 ③_장성은 공연기획사 면면(面面) 대표
 

※ 본 기사는 필자 의도에 따라,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Q. 오래간만이다. 거의 3년 만인 것 같은데, [Weekly@예술경영] 독자들을 위해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

A.
정확하게는 2년 8개월 만이다. 반갑다. 난 공연예술 관련 대학원을 졸업한 후 문화예술 단체, 축제 조직, 문화 재단 등 주로 비영리 문화예술 조직에서 기획, 경영 관련 일을 했으며, 2006년부터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교육, 컨설팅, 경영 관련 업무를 했다. 그러다 2012년 뜻한 바(?)가 있어 경남 함양으로 이사해 지금껏 살고 있는 40대 중반의 남자이다.

Q. 함양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

A.
처음 1년 동안은 주변 여행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도 데려다 주고, 텃밭도 일구며 살았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아내와 함께 동네 사랑방 같은 조그만 카페도 운영하게 되었다. 카페의 규모는 작지만 꽤나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되고 있는 편이다. 어떤 때는 작은 음악회 공간으로, 또 어떤 때는 영화관으로, 가끔씩은 벼룩시장으로 쓰이기도 한다. 싫든 좋든 지금의 카페는 시골 읍내의 문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부터는 주변 분의 소개로 밭을 임대해 농사도 짓고 있다. 감자, 고구마, 콩, 고추, 참깨, 들깨, 마늘, 무, 배추, 땅콩, 당근, 브로콜리 등 제법 다양한 작물을 심어봤다. 어떤 작물은 처음 시도한 것치고는 제법 성공적이었던 반면, 수확량이 0인 것도 있었다. 이사한 지 3년 차인 올해부터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 몇 명과 함께 본격적인(?) 농사를 짓고 있다.

Q. 그럼, 귀농을 한 것인가?

A.
그렇다. 얼마 전까지는 무늬만 농업인이었는데, 최근에 ‘농업경영체’라는 것을 등록했다. 이는 국가가 농업 관련 각종 데이터를 자료화해 관리하는 제도인데, 내 경우에는 일정 기준 이상의 농사를 실제로 짓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된다. 이곳 함양으로 이사한 후로 직업을 묻는 질문에 딱히 마땅한 대답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제 각종 문서의 직업란에 ‘농업인’이라고 기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Weekly@예술경영] 독자들이 예술경영인이라면 난 ‘농업경영인’이다.(웃음) 내년부터는 농사 규모도 꽤 늘어날 예정이다. 주변 분들의 소개로 제법 너른 밭과 과수원을 빌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농업경영인으로서의 앞날을 기대해 달라.
 

까페 행사에서 쿠키를 만드는 아이들(왼쪽)과 들깨를 수확중인 필자 모습(오른쪽)

▲ 까페 행사에서 쿠키를 만드는 아이들(왼쪽)과 들깨를 수확중인 필자 모습(오른쪽)

 

특별하지 않아 더 특별한 귀농 결심

Q. 지금껏 하던 일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데, 그동안 해 왔던 일을 그만두고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말해 달라.

A.
함양으로 이사 온 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나의 경우에는 별로 특별한 게 없다. TV 속 ‘인간시대’의 주인공들처럼 재미있거나 기막힌 사연 같은 것은 더더욱 없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더 늦기 전에 스스로 삶의 변화를 한번 주고 싶었다.’ 좀 건방진가?(웃음).

문화예술 분야에서 꽤 괜찮은 조직(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인 예술경영지원센터를 그만두고 귀농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우려가 있었다. 가까운 선배는 귀농하기엔 나이가 좀 이르지 않느냐고 타일렀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지인은 그동안 쌓아온 경력의 단절을 걱정해 주기도 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한테는 ‘사는 게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았다.

(아마도) 이제는 나의 마지막 직장이 되어 버린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의 5년여 기간은 사실 나에게 매우 특별한 시기였다. 조직의 위상, 업무 적합성, 성취도, 내외부의 평가, 동료들과의 관계 등을 스스로 평가해 볼 때, 당시 나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한마디로 ‘호시절’이었다.

그런데 몇 년 더 이렇게 있다가는 현장엔 관심도 없고 예술엔 문외한인 탁상 행정가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 관료화된 공공 기관의 노회한 간부가 되어 있을 것 같았다. 또 그렇게 몇 년 지나다 보면 정년을 맞이할 것 같았다. 끔직한 생각이 들었다. 비정규직 600만 시대에 참 배부른 투정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에겐 자그마한 변화와 도전이 필요했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 경험하지 못했던 길을 가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더 컸던 것 같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권태를 권태라 여기면 진짜 권태가 된다

Q. 이번 호 주제가 ‘예술경영인의 권태기 탈출법’인데, 귀농을 선택한 것도 일종의 권태 탈출이라고 볼 수 있나?

A.
음... 권태라... 권태가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난 일에 싫증을 내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성격은 아니다. 늘 바쁜 척(?), 긴장하면서 사는 편이다.(잘난 척 하는 게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성격도 예민한 편에 속해 가끔 소화불량과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작업하던 엑셀 표의 계산식이 잘못된 것 같아 집에 돌아와서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다. 쓸데없이 책임감도 강한 편에 속한다. 그리고 그동안 담당하던 업무의 특성 때문인지 몰라도 매우 조직 중심적인 인간 유형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경우에는 권태 탈출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이 주는 긴장감과 조직 중심적인 문화에서 탈출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다들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웃음)

귀농을 결심하기 전 인상 깊게 읽은 책이 한 권 있다. 톰 호지킨슨의 『게으름을 떳떳하게 즐기는 법』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게으름이 죄악이 아니라 일상에 꼭 필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역사, 시, 철학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며 게으름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 나 또한 그렇게 떳떳하게 게으름을 즐기고 싶다는, 아니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도시에서는 힘들 것 같았다. 또 지금의 직장을 다니면서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우선 탈도시, 탈직장부터 하기로 한 것이다.

Q. 들어 보니 함께 귀농한 동료들이 있는 것 같던데, 그들과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A.
지난해까지는 나와 아내, 둘이서 농사도 짓고 카페도 운영했다. 그런데 지금은 5명으로 늘어났다. 우리는 ‘협동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임대한 논과 밭을 함께 경작하고, 때로는 버려진 땅을 일구어 밭을 만들기도 한다. 농사에 필요한 자금은 나누어 내고, 수입이 생기면 똑같이 분배한다.(다만 아직까지는 분배할 수입이 없다는 게 문제다.)

지금 한창 수확 철이라 몸도 마음도 매우 바쁘다. 요 며칠 전에는 들깨와 팥을 타작했고, 엊그제는 콩 타작, 며칠 후에는 벼도 베어야 한다. 남들 들으면 코웃음 칠 만한 농사지만 우리에겐 벅찬 편이다. 우리는 일뿐만 아니라, 밥도 함께 먹고, 놀고 술 마시는 것도 함께한다. 여느 직장 동료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다.

올해 초부터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L과 C는 10여 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어쩌다 보니 시차를 두고 함양에 정착하게 되었다. L과 C는 우리나라의 각종 축제, 영화제를 기획하고 운영하던 인재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채 10명이 안되는 관객을 대상으로 매주 카페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가끔씩은 동네 사람들이 참여하는 오픈 마켓을 운영하기도 한다. 다들 기획자 출신이라 그런지 뭔가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궁리하고,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간혹 그게 심해서 탈일 때도 있다.

이번 달부터 합류한 P는 해외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로, 사정이 생겨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이곳 함양에 와서 우리의 농사를 거들고 있다. 주변에서는 ‘농사짓기에는 너무 고학력 아니냐’며 놀린다. 우리는 P를 인턴이라 부른다.

아침에 모여 오늘의 할 일을 공유하고 하루하루 농사일을 하고는 있지만, 농사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내가 텃밭 경력이라도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좌충우돌 시행착오가 많다.
 

밤과 팥을 고르고 있는 필자 모습

▲ 밤과 팥을 고르고 있는 필자 모습

 

그래도 나는 문화기획자

Q. 농사 외에 함께 하고 있는 다른 일도 있나?
 

▲10월에 기획했었던 용유담 가을소풍 포스터

A. 올해부터는 평소 알고 지내던 각자의 지인들을 묶어 ‘함양農땡이밴드’라는 매우 느슨한 형태의 모임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농땡이’는 농사와 놀이(문화)를 결합한 용어이다.

이 모임의 시작은 외롭고 심심한 시골살이를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정말 그랬다. 한 3년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자주 보지도 못하고, 맘껏 수다도 떨지 못하다 보니, 심심하고, 때로는 우울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이들과 연결될 수 있는 어떤 모임을 기획하게 되었다. 우리는 시골에 있고 지인들 대부분은 도시에 살고 있으니 농산물을 매개로 서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의 시골살이 이야기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편지에 담아 멤버를 모집했다. 이렇게 해서 총 50여 명이 멤버가 모이게 되었다. 우리는 멤버들에게 함양 인근 지역에서 재배된 농산물, 예를 들면, 고사리, 버섯, 감자, 사과 등을 구입해 생산자들의 사연과 함께 보내 주고 있다. 또 계절마다 한 번씩 지리산 주변을 여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도 한다. 우리가 찾아갈 수 없으니 우리를 찾아오도록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반응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또한 재미를 느낀다.(아직까지는) 그리고 작은 보람도 느낀다.

문화기획자가 문화예술 생산자와 소비자를 매개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농산물과 농촌의 문화를 발굴해 도시의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웃음)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해 달라.

A.
앞서 잠깐 얘기했는데, 농사와 문화가 결합된 협동농장 모델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농사일을 해 보니 혼자 하기에는 너무 힘들다. 그리고 외롭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농사일은 특히 힘을 모아 함께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 심심하지도 않고... 먼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협동농장이 활성화되면 나처럼 도시에서 귀농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귀농 전에 일정 기간 이곳에 체류하면서 시골 생활을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Q. 마지막으로 [Weekly@예술경영] 독자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A.
난 TV에 나오는 성공한 귀농인이 아니다. 성공 사례? 그런 거 없다. 내세울 만한 성과? 당연히 없다. 여전히 진행형일 뿐이다. 오히려 몇 년 뒤 귀농 실패 사례로 여기저기 회자될지도 모른다.(웃음)

다만 귀농을 하고 나서 내가 느낀 몇 가지가 있다. 도시와 농촌의 차이점일 수도 있겠다. 대부분 뻔한 이야기이지만 예술경영인, 혹은 문화기획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우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데 부담이 적다. 아마, 여기서 시도하는 일들의 대부분은 시골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서울처럼 큰 도시에서 벗어나니 그동안 나에게 없었던 배짱이 생겼나 보다.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온 아이의 기분 상태라고 할까? 왠지 여기서는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괜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설사 못한다 하더라도 뭐라 할 사람도 없다는 안도감도 생겼다. 그게 좋았다.

둘째, 하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이 말은 시골에는 없거나 하고 있지 않는 게 많다는 말과 같다. 문화적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공원을 걷거나, 문화 행사를 볼 때, 계속 무언가를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된다. ‘저건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혹은 ‘여기서 이런 것 하면 재미있겠다.’라는 식의 대화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셋째, 작은 것이 좋아졌다. 예전에 지역문화재단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하던 제작비가 수억 원 하는 공연보다, 여기서 2~30명이 모이는 조그만 음악회가 더 재미있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그동안은 크고, 화려한 것들을 좇으며 살았던 것 같다.

흔히, 우리나라는 서울 중심의 문화 집중도가 너무 심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서울이 아닌 곳에는 문화가 빈약하다는 말과 같다. 문화를 다루는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대목이다.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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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두 필자소개
김찬두는 문화다움,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전주소리축제, 헤이리예술마을, 고양문화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서 일했다. 2012년부터는 경남 함양으로 이사해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작은 문화 활동을 모색하기도 하고 실천하고 있다. 블로그
 
weekly 예술경영 NO.281_2014.11.6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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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일
  • 2014-11-06 오후 7:57:54
함양이 고향은 아니겠지. 낯선 곳으로 가서 뿌리 나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래간 만이지. 그냥 <문화사업>하고 있는 줄 알았지. 덧없이 나보다 젊은 강준혁씨도 가고 나는 죽지 않고 세상 돌아가는 꼴 지켜보며 입을 닫으며 나의 권태를 씹고 산다.[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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