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레지던시, 이렇게 활용하라②

일시적 거주, 공간의 거리감과 균형감

차지량_작가

최근 공·사립 기관을 막론하고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의 레지던스들이 많이 탄생하고 있지만, ‘예술가들에게 안정적 작업환경 제공’이라는 레지던스 본래 취지는 점점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Weekly@예술경영] 285호는 현 문제 상황 원인 중 하나인 ‘작가-레지던스 매개자 역할의 부재’ 현실을 진단하고, 국내 대표 시각예술 작가들의 레지던스 활용기와, 기업-레지던스 연계의 성공적 사례를 조명한다./[특집]레지던스와 아티스트 간 매개자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하우투]국내 레지던시 경험기 - 레지던스, 이렇게 활용하라①/국내 레지던시 경험기 - 레지던스, 이렇게 활용하라②/[이슈]지역레지던스와 기업의 협업 성공사례 - 사슴사냥 레지던시 프로젝트
아티스트 레지던스 현황 | 강원, 경남, 경북, 충청, 제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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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로서 따로 거주하는 집 없이 레지던시 생활을 한 지 3년이 지났다. 2012년 3월부터 인천아트플랫폼(제물량로218번길 3)에서 2년, 2014년 3월부터 현재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고골길 59-35)에서 살았다. 30년을 서울 생활만 하다가 처음으로 벗어나 살 수 있었다.

인천아트플랫폼

처음으로 머물렀던 레지던시인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의 서쪽 끝, 구 도심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묘한 향취가 느껴지는 월미도와 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가까운 위치였으며 인천 특유의 복잡한 이류 도시라는 열등감과 과열된 욕망이 기대감에 못 미쳐 식어가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속도감에 익숙해지면 커다란 착각을 하게 되는데 ‘내가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감정이 그러하다. 내가 그랬다. 서울에서 벗어나 여러 생활을 정리하고 온 탓에 패턴이 완전히 바뀔 수 있었다. 한적한 동네에서 천천히, 그러면서 적잖이 끓어오르는 열망이 이 도시의 성향에 그대로 영향을 받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도시계획이나 주거 문화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던 세대,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세대인 나는 늘 공간에 대한 열패감에 시달렸다. 서울에서 지낼 때부터 나는 나의 삶과 무관한, 경제 논리로 증축 및 신축되는 집들의 공사현장을 관찰하고 그 집이 완성을 앞두고 있을 때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과 일시적 주거를 해오는 프로젝트를 이어나갔다. 실제 가혹한 경험을 통해 개인의 삶에서 주거 공간을 상실하고 나니 더욱 흥미로운 상상과 제안을 새로운 집들에 투영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극단적으로 서울이라는 과밀화된 도시에서 모두가 벗어날 수 있는 구조를 상상하는 것,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렌트세대’가 비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해서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는 것과 같은 상상들이었다. 이러한 상상은 실제로 더 멀리까지 벗어나는 실험을 해볼 수 있는 단초가 되었는데. 백령도와 연평도, 멀리는 국내에서 사라지는 상황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필자가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하면서 작업한 <new home_참여형 주거프로젝트_2014> 모습

▲ 필자가 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하면서 작업한 <new home_참여형 주거프로젝트_2014>

 

예술이 쌓아온 역사는 특정 현장에서 일시적 점유가 이뤄지는 현상의 목격담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으로, 극장이건 화이트큐브건, 해프닝이 되건, 관객의 감상과 비평이 존재하는 현장, 그 현장을 책임지는 것이 작가만은 아닐 것이다. 현장 관련 내부자를 포함한 관객이 일시적으로 자리한 현장.

만일, 작가만이 자리한 (고립된) 현장에서는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과 고양시내 파주 사이의 한적한 동네에 자리한 레지던시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지는 이곳에서 지낸지 벌써 1년이 되어간다. 고양레지던시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편의 시설 등이 동떨어져 있는 환경이라서 차량을 갖추지 못한 작가에겐 특별히 더 고립감을 불러일으킨다. 국내 레지던시의 내부 시설은 대부분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그것이 꼭 집과 같은 안정감을 주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레지던시의 목적이 집이 아니기에 당연하다. 나는 어떤 반복적인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는 레지던시들의 현상을 가까이 목격하며 그렇다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들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곳에 지원하는 작가들의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기관들의 목적은 활성화, 지원, 네트워크 정도로 생각할 수 있고, 작가의 목적은 참여 경험과 이력, 예산 획득, 공간의 필요성 등으로 보인다. 1년 단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꽤나 강박적인데 이것은 기관과 작가 모두에게 해당된다.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은 예민한 적정 거리와 균형이 필요한데 그러한 거리와 균형감이 한 해의 입주작가 프로그램, 한 기수의 입주작가들의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고양레지던시에서 지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기관이 마련한 작가들의 발표 자리에서 어느 평론가가 고양레지던시 입주작가들에게 “작가들이 안전하게 작업하려 한다”라는 평을 했을 때였다. 작가들은 작가로서 감정에 손실을 입는 눈치였고 평론가는 작가들에게 어떤 행동을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 현장이 흥미로웠다. 어쩌면 작가 스스로가 자문자답할 수 있는 문장이었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익숙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나타내는, 그리고 당시 세월호 참사 직후의 시대적 무력감을 연상하게 하는 문장이었다. 나는 그 현장의 경험 이후에 어떤 질문이 들었다.

국공립기관(프로그램들을 포함)은 안전한가? 작가가 작업을 몰입하는 행위는 안전함을 위한 행동인가? 이것이 안전하다면 왜 안전함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 안전함의 방향은 무엇일까?’

필자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작업한 <창밖을 보지 않기 위해 커튼을 치세요>필자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작업한 <작업실에 벌레를 키워요>

▲ 필자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작업한 <창밖을 보지 않기 위해 커튼을 치세요>(왼쪽)와 <작업실에 벌레를 키워요>(오른쪽)

 

그 이후 나는 <국립적이지 못한 작가>라는 작업을 통해 레지던시에서 목격했던 작가들의 어떤 현상을 소설과 영상 설치, 온라인 공지를 통해 작업했는데 비디오 채널 1번의 문장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작가생활 10년. 상업계와 예술계 양쪽의 관계 맺기에 균형을 맞춰 해왔으며 어딜 가면 작가라고 할 정도의 깜냥이 생겼다. 몇 년간 국공립 창작스튜디오를 사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창작스튜디오는 서울을 벗어나 있다. 이 시골 동네의 새벽. 이 건물만이 환히 불을 밝히고 있으면 산에서 내려온 벌레들이 창문에 달라붙는다. 개강을 앞두고 갑자기 은사님이 강의를 던져주셨다. 급히 강의계획서를 쓰고 있다. 나는 판화를 할 줄 모르지만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서 방법을 연구한다. 국립대 시간강사는 급여가 세다. 출강. 조교가 학생들에게 장비사용 시범을 보여주었다. 나는 컴퓨터 화면으로 작품을 보여준다. 훌륭한 작품들. 프로젝터로 비춰진 작품들에 벌레들이 붙어있다. 퇴근. 어김없이 새벽이면 작업실의 높다란 천장을 보게 된다./형광등 옆에 벌레가 붙어있다. 벌레가 나를 계속 보고 있었던 걸까? 텅 빈 작업실에 책상과 포장된 작품들이 쌓여있고 신작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 쌓인 작업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1년 동안. 천장을 본다. 아직 붙어있는 벌레. 다른 스튜디오의 작가가 전시 초대장을 건넨다. 오프닝에 참석해야 한다. 전시들이 많은 시즌. 대형 전시엔 사람들은 벌레들처럼 몰려다녔다. 사람들로 꽉 찬 오프닝에서 작품은 볼 수 없었다. 계속되는 눈인사와 현기증. 스튜디오에 들어와 있으면 창문을 열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황량했던 풍경이 지금은 풀로 무성해져 있었다. 덕분에 벌레가 끔찍하다. 숲은 깜깜하다. 꽉 닫힌 창문. 무엇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하지만 불을 끄고 이곳을 나설 때면 어둠 속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문 닫힌 안전한 방. 나는 작업실에서 벌레를 키워보기로 했다. 이곳의 악취가 창밖으로 나가지 않기를. 지금도 이 어둠 어디에 벌레들이 날아다닌다. 빙글빙글.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싱글 채널 비디오)

▲ 필자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작업한 <국립적이지 못한 작가_다채널 영상설치>

 

나는 고립감을 느끼게 하는 국공립기관과 흔들리고 영향받고 생존의 강박을 받는 작가들을 떠올리며 양측의 주인 의식 및 대화의 부재를 느낄 수 있었다. 예술가는 레지던시에서 주인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얼마만큼을 입주작가 기간 동안 요청하고 해낼 수 있을까? 이것은 작업실을 제공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를 임대하는 것인가? 일시적 소유의 균형은 어느 쪽에 기울어져 있는가?

국립연대미술관

국립연대미술관 로고

내부에 있는 동안 그것을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들어봤다. 국립연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속 기간 동안 여러 계층과 함께 어떤 내부 비평적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길 희망하며.

간단하게 국립연대미술관의 계획에는 이러한 것이 있다.

* 국립연대미술관 관장(인턴) 모집공고/* 국립연대미술관 입주작가 선정/ 1달 동안 작업실 밖에 나갈 수 없는 오픈스튜디오 개최/* 국립연대미술은행 소장품 공모./* 국립연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개최

어느새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을 레지던시에서 보냈고 이번 겨울이 끝날 때 또다시 새로운 공간을 찾아나서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레지던시라는 현장에서 각 역할들의 거리감과 균형감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현장이 존재하길 바라며 나는 오늘 국립연대미술관의 입주작가 모집을 위한 온라인 공지를 띄울 예정이다.
 

덧붙이며...
가장 오래 머물렀던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주변 작가들의 영상을 찍을 기회가 있었다. 소일거리로 시작된 일이었지만 함께하는 작가들이라는 생각에 꽤 열심히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페이지를 빌려 다시 소개해 본다.

2013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인터뷰
2012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인터뷰

 

 

사진 제공_필자

 

 
 
프로필사진_차지량 필자소개
차지량은 ‘동시대 시스템의 고립을 겨냥하는 개인’에 초점을 맞춘 참여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현재 ‘시스템에 상상력을 제안하는 개인이 가능한 사회’로 확장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뉴홈(2012), 일시적 기업(2011), 세대독립클럽(2010) 정전 100주년 기념 사랑과 평화 페스티벌(2013) Korean-Sales.org(2014)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전시, 미디어, 실험예술, 영화제 등에서 수상 및 참여하였다.
 
weekly 예술경영 NO.285_2014.12.04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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