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제작 노하우③ 작품개발

사람, 시간, 돈과의 협업

김종헌 _ 쇼틱커뮤니케이션즈 전 대표

공연제작자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제 공연제작은 단순히 공연창작의 물적 조건(예를 들어 제작비)을 마련하는 데에 머물지 않는다. 소재발굴부터 작가. 연출, 배우를 비롯 창작그룹을 구성하는 등 창작단계에서부터 완성까지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우투'에서는 공연 제작자의 다양한 역할을 점검하고 실행방법을 살피기 위해 김종헌 쇼틱커뮤니케이션즈 전 대표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제작 노하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연재순서 ③ 작품개발

프로듀서는 '쇼핑'을 하거나 아님 직접 '쿠킹cooking'을 해서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다. '쇼핑'은 대본과 악보가 완성되어 있다거나 또는 트라이아웃tryout, 관객 반응을 살피거나 공연 완성도를 위한 시범공연을 마친, 이미 개발된 상태의 작품을 선택해 제작하는 것을 말하고, 쿠킹은 본인이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작품을 기획해서 함께 만들어 갈 크리에이티브를 캐스팅하는 경우다. 전자는, 가능성 있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긴 하나 작품의 저작권 권리의 측면에서 프로듀서가 큰 권한을 갖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반면 후자는 프로듀서가 주요 크리에이티브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작품의 방향과 저작권의 주도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한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단점 또한 있다.

쿠킹을 통해 만든 작품의 경우, 대개의 프로듀서는 자기 작품에 대한 끔찍한 애정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남이 만든 작품에 대해서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평가와 격려를 잘 해주는 사람들도 자기 작품에 한해선 독선적인 사랑에 빠져 귀를 닫게 되는 일을 종종 본다. 이런 바보 같은 경험을 필자 역시도 여러 번 겪었었다. 공연의 특성상 수정 보완의 변화가 거의 없는 안정적 상태의 공연이 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런 지나친 애정은 작품 개발에 독이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뮤지컬 <퀴즈쇼>
손님(관객)의 기호에 따라 수많은 변이요소가 발생되는 것이 흥행이다. 직업프로듀서로 살아가기 위해선 직접 제작(쿠킹)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쿠킹은 대단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므로 작품이 흥행에 실패할 경우 다시 재기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의 주요 뮤지컬제작사들이 외국의 흥행성 높은 작품을 통해 자사의 재정 상태를 건강하게 해두고, 이제 본격적인 쿠킹(창작 또는 오리지널 작품)을 하고 있는 모습은 또 하나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맘마미아>의 신시컴퍼니는 창작뮤지컬 <퀴즈쇼>를, <지킬앤하이드>의 오디뮤지컬컴퍼니는 창작뮤지컬 <달콤한 나의 도시>를 시작으로 창작뮤지컬의 제작에 박차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본고에서는 창작초연 작품을 제작(쿠킹)하는 과정의 소재개발과 제작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무궁무진한 소재, 음악 춤 드라마의 결합 고려해야

소재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뮤지컬 <명성왕후>나 <영웅>은 역사적 사건의 주요 인물을 소재로 했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는 타악이 주요 소재이고, <점프>는 무술이 주요 소재이다. 이야기나 인물만이 아니라 서커스, 드로잉, 마술 등 형식 자체가 소재가 될 수 있다.

소재는 무궁무진하게 열려있지만, 뮤지컬적인 요소를 고려함이 현명하다. 뮤지컬적인 요소란 음악과 춤, 그리고 드라마가 완벽하게 한 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생명이다. 세 가지 요소의 결합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혹은 세 요소의 결합으로 정서를 증폭시킬 수 있는 소재인지를 사전 검토해봐야 한다. 물론 위의 세 요소는 작품의 특징에 따라 다소 비중이 달라 질 수는 있다. 예를 들면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음악과 드라마의 비중이 높고, 뮤지컬 <캣츠>는 음악과 춤에 중점을 두었다면 뮤지컬 <컨택트>는 춤 자체에 올인에 가까운 선택을 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또 오페라, 영화, 대중가요 등과 같이 다른 장르의 작품을 소스로 하여 뮤지컬의 소재를 개발할 수도 있다. 타 장르의 매우 유명한 작품, 기왕이면 아주 인기절정의 상태의 작품을 무대작품으로 만들 경우 유리한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마케팅, 투자유치, 대관 그리고 캐스팅 등등의 영역에서 그 유명세(?)가 힘을 발휘할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종연된 드라마 <아이리스>를 뮤지컬로 제작한다고 가정해보면 대중(투자사 포함)의 호의적 반응이 예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인지도와 인기도가 높다는 것은 원작에 대한 이해도와 충성도가 높다는 것이기 때문에, 무대화된 작품에 대한 높은 기대감은 제작사에게 큰 부담으로 남게 된다. 뮤지컬 <반지의 제왕>은 전 세계 수많은 투자사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잡는 데에는 결국 실패해 큰 손해를 남긴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관객의 높은 기대감 외에도, 무대언어의 특성을 살리는 (원작과) 차별화된 새로운 뮤지컬을 창조해야 하는 큰 숙제가 또 하나 있다. 이런 숙제는 제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제법 오랜 시간의 준비와 시행착오를 통해 풀어낼 수 있다. 부족한 시간은 부실한 스토리 라인과 엉성한 송스트럭처음악적 플롯 그리고 빈곤한 무대 아이디어로 초연 개막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안타까운 제작일정은 바로 그 놈의 인지도와 인기를 바탕으로 하는 기획공연이기 때문에 자행되는 것이다. 뮤지컬 <대장금> 초연은 드라마 <대장금>과는 다른 독특한 무대적 매력을 만들어 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뮤지컬 <라이온킹>은 애니메이션에서 결코 느낄 수 없는 무대미학, 무대테크닉 그리고 입체적 스펙터클의 진수를 보여준다. 뮤지컬 <라이온킹>은 타 장르의 소스를 뮤지컬화하는 작업에 대한 모범 해답중의 하나다.
 

[표1] 타장르 작품을 뮤지컬화한 대표적 사례


성공적인 프로세스가 성공적인 프로젝트의 황금열쇠

소재는 프로듀서나 크리에이티브의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된다. 문제는 소재의 개발(development) 과정이다. 성공적인 프로세스가 바로 프로젝트 성공의 황금열쇠인 셈이다. 작품개발 과정은 크게 크리에이티브 워크숍, 배우들과 함께하는 워크숍, 그리고 리허설로 구분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워크숍먼저 크리에이티브 워크숍에는 대본, 가사, 음악을 담당하는 세 사람과 프로듀서가 필수이다. 어떤 예술가는 혼자서 글 쓰고, 가사 쓰고 그리고 곡까지 쓰는 드문 경우도 있다. 최근의 경향은 가사 쓰던 사람이 대본까지 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본/가사를 담당하는 이와 음악을 담당하는 이, 이 둘이 파트너를 이루어 작업하는 모습이 뮤지컬 작품개발의 일반적인 풍경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만남을 두고 대본/가사와 음악이 결혼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일을 생명을 출산하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너무나 당연한 비유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과 프로듀서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회의, 수정, 회의, 수정을 반복하게 된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신바람이 나기도 하고 아이디어 빈곤으로 술, 담배 그리고 커피만 죽이기도 한다. 그리고 의견이 충돌해서 그 '부부'가 이혼 직전까지 가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크리에이티브 워크숍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협업이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도 협업이다.

두 번째로는 배우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이다. 크리에이티브 워크숍의 결과물인 대본과 악보를 가지고 배우들과 함께 2~3주의 리허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수정보완 과정을 갖게 된다 (기간은 작품에 따라 다르다). 텍스트나 악보와 다르게, 실제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게 되면 예상과 다른 결과를 보게 된다. 통상 이 과정에선 배우들의 의견에 매우 집중하게 된다. 예를 들면, 특정 역할을 맡은 배우가 어떤 노래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불편함을 표하게 되면, 불편함의 원인이 혹시 대본이나 음악에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리뷰과정을 거쳐 조정하게 된다. 또는 새로운 시각으로 감정표현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현장에 있던 크리에이티브는 바로 그 즉시 배우들에게 받은 영감을 다른 스타일의 멜로디나 리듬으로 실험해 보기도 한다.


우리의 최선 위해 나의 차선 선택할 수 있어야
 

 

마지막 세 번째인 리허설은, 그야말로 주어진 시간과 돈과의 협업이다. 연출가, 안무가, 음악감독, 디자이너, 런닝스태프 그리고 배우들과 통상 7~8주 정도의 연습과정을 갖는다. 본 리허설에서의 수정 보완은 주어진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리허설 과정에서 연출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연출가를 신뢰하고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연출가는 첫 번째 관객으로서 무대에서 보여줄 것, 들려줄 것이라는 통합언어의 선택권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권위는 지켜져야 된다. 간혹 음악파트, 안무파트 또는 기타 디자이너들과 연출의 의견이 달라 곤혹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이런 잡음에는 상호 전문영역에 대한 이해가 낮아 생기는 일도 있지만, 각자의 전문성을 앞세운 이기적인 주장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이기적'이란 의미는 위에서도 언급한 주어진 시간과 돈이라는 조건 하에서의 얘기다. 우리(통합파트)의 최선을 위해 나(전문파트)의 차선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선택들이 적기에 이루어질 수 있는 파트너십을 이룬 컴퍼니가 뮤지컬을 잘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래에 개략적인 작품개발 과정을 도표로 만들어 보았다.
 

[표2] 뮤지컬 작품개발 및 제작 일정


한국에서 '천재'를 바라는 것이 욕심인 이유

공연 리허설 현장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좋은 뮤지컬이 아닌가? 좋은 뮤지컬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미학적인 가치, 뮤지컬사적 의미를 부여받는 예외의 작품들이 있고 또 고집스럽게 본인만의 색깔을 완성시킨 미국 뮤지컬의 살아있는 전설 스티브 손드하임 같은 비대중적인 천재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천재들이 끊임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비영리 공연장 및 공연단체의 막강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한국은 공공극장이나 공영방송에서조차 흥행을 위한 뮤지컬 작품의 기획개발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 그런 천재를 본다는 것은 욕심이다.

대중성과 예술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한 마리 제대로 잡기도 만만치 않다. 우선 한 마리라도 잡다보면 두 마리 잡는 요령도 터득하지 않을까 싶다.




김종헌  

필자소개
김종헌은 뮤지컬 프로듀서이자 목원대 성악뮤지컬학부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연극연출과 배우를 거쳐 (주)PMC의 뉴욕지사장과 상무이사를 역임했으며, 2006년 (주)쇼틱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 2009년까지 대표로 재직했으며, 창작뮤지컬 <컨페션> <첫사랑> <소리도둑><내 마음의 풍금><달고나> 등을 제작했다. 현재 한국뮤지컬협회,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의 이사이기도 하다.


 

 

 

 

 

 

 

 

 

weekly 예술경영 .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덧글 0개

덧글입력

quick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