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공연예술견본시 트렌드 읽기

제작과 유통, 불필요한 몸섞기는 그만

우 연 _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 부장

창작의 원자재로 과감하게 관점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컨버스아시안스의 변화, 예술시장과 문화산업 시장의 분리 운영을 통한 시장의 효율성 모색이 싱가포르의 미래사회에 대한 예측과 준비의 한 과정이라면 대단히 주목해 볼 만하다. 시작은 미진하였으나, 아시아의 어떤 마켓도 시작하지 않았던 첫 행보이기 때문이다.

단 3주, 지난 5월말부터 6월 중순 사이에 싱가포르에서는 '두 개의 국제공연예술마켓이 연달아 개최되었다. 미국처럼 동부(APAP, Association of Performing Arts Presenters), 서부(WAA, Western Arts Alliance), 중부(MIDWEST)로 나누어 권역별 마켓이 개최되어야 할 만큼 땅덩이가 큰 것도 아니요, 독일처럼 무용마켓(Tanzmesse), 재즈마켓(Jazzahead!) 등으로 장르 분업 형태의 마켓이 개최될 만큼 콘텐츠가 막강한 것도 아니라면 싱가포르는 왜, 거의 동일한 시즌에, 막대한 예산이 투여되는 두 개의 마켓을, 동시 개봉하게 된 것일까.


개방성과 다양성으로 안착했던 '아시안아츠마트'

컨버스아시안스(5.26~29, 에스플러네이드). 발음해 보건데, 싱가포르 특유의 영어 발음, 싱글리쉬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이 마켓은 본디 2001년 싱가포르의 대표 공연장 에스플러네이드 주최로 시작된 아시안아츠마트(Asian Arts Mart, AAM)였다. 자국 공연예술의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 대부분의 국제마켓이 운영되던 이 시절에 '싱가포르'라는 국가명을 과감히 포기하고 '아시아'라는 광의의 타이틀을 선택한 이들은 '취약한 싱가포르 공연예술의 쇼윈도'가 되기보다는 '아시아 공연예술의 유통 창구'가 되겠다는 전략적인 컨셉을 내걸었다.

실제로 비즈니스는 둘째 치고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와 같은 낯선 아시아의 언어에 공포감을 느꼈던 서구의 프리젠터들은 발음은 다소 독특하지만 영어소통이 가능한 싱가포르 마켓에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고, 국가와 민족을 너무도 강조하는 다른 아시아 국가와는 달리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아시아 공연예술 전반을 만날 수 있다니, 그 개방성과 다양함에 이 시장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에스플러네이드의 수장인 벤슨 푸아(Benson Puah)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국제공연예술협의회(ISPA) 회장, 아시아태평양공연장 연합회(AAPPAC)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유럽현대공연예술회의(IETM) 싱가포르 위성회의, 아시아태평양공연장 연합회 총회 등을 아트마켓과 동시기에 연계, 유치해 냈으니 이 '꿩 먹고 알 먹는' 다목적 프로그래밍 방식에 유럽과 북미, 아시아권의 프리젠터들이 대거 몰려들기도 했다. 현재 해외진출에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한국의 들소리, 극단 뛰다, 포스트 에고 댄스 컴퍼니, 노리단 등도 이 마켓을 통해 세계시장으로의 물꼬를 텄다.

(좌)테이블토크, (우)코리안데이리셉션 2007 아시안아츠마트



다시 창작의 원천으로!
예술가 중심, 컨버스아시안스

그런데 제4회 행사가 개최되던 2007년, 아시안아츠마트는 스스로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시아 공연예술은 더 이상 프로덕션을 '사고파는' '쇼핑만을 위한' 전통적 마켓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을 요구한다"는 변화 예고편 발언을 남긴 채, 격년제로 5회 행사가 개최되었어야 할 2009년도에는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신비주의 휴지기까지 가진 후, 2010년 과연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특한 모델의 플랫폼 카드를 꺼내 놓았으니, 바로 컨버스아시안스(Conversasians)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러한 국제행사를 만들겠습니까? 확실한 목표도, 뚜렷한 성과도 없이, 단지 토크(Talk)라니요! 하하하." 이 행사의 컨셉과 차별성을 피력하기 위한 벤슨 푸아(Benson Puah)의 오프닝 발언을 필두로 싱가포르 언론들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쏟아 놓았다. "매우 사적인(very personal) 컨버스아시안스"([AsiaOne]), "우리 이제 예술을 이야기하자!" "창작 아이디어 교환과 새로운 작품 창작을 위한 예술가들의 뉴 플랫폼"([The STRAITS TIMES]).

1-니틴 소니 마스터클래스 2-린화민과의 공개 토크쇼 3-암리타 퍼포밍 아츠와 피쳇 클런천이 참여한 프리젠테이션&디스커션 2010 컨버스아시안스
실제로 컨버스아시안스는 공연작품(프로덕션)을 전면에 배치하는 기존 아트마켓들과는 달리, 예술가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의 린화민, 인도계 영국 뮤지션인 니틴 소니, 한국의 한태숙 연출, 홍콩의 대니 융, 태국 무용가 피쳇 클런천 등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13명의 공연예술 아티스트들과 6명의 아시아 시각예술가들을 아티스트 라인업으로 내세우고 이들을 중심으로 공연, 공연 전후 토크쇼 형식의 대화, 창작 메소드를 배우는 마스터클래스와 워크숍, 창작 진행 중인 작품에 대한 시연과 토론만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었다. 그곳에는 전통적 의미의 마켓 필수 요건인 부스전시도, 쇼케이스도, 정보형 컨퍼런스도 없었다. 심지어 작품의 러닝타임, 무대조건, 투어 일정, 연락처가 상세히 명기되어야 할 프로그램북에도 "개인적으로 말하자면(Personally Speaking)"이라는 타이틀 아래, 예술가들의 사적인 배경, 예술철학, 창작 과정에 대한 문답 형식의 인터뷰만이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왜 이러한 방향선회가 이루어진 것일까? 에스플러네이드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나단(JP Nathan)은 이것은 방향 선회가 아니라 지난 4회까지의 아시안아츠마트의 결과일 뿐이며, 도리어 확장판일 뿐이라 말한다. "아시아 예술가들은 이미 국제화된 서구의 예술가들과 다릅니다. 새롭고, 지금 막 떠오르며, 발전하고 있는 중이지요. 이런 아시아의 예술가들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상호 토론하고, 새로운 창작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 즉 다시 창작의 원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지난 우리 활동의 결론입니다." 즉, 아시아 공연예술의 경쟁력을 완성된 작품에 두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원재료, 독특한 문화와 역사와 사유체계를 지닌 아시아 예술가들의 창조성, 원천, 원자재 그 자체에 두겠다는 이야기이다.

결론적으로 '아시아 공연예술의 유통 창구'를 구축해 오던 이들은 자신들의 미션에 대한 과감한 전면수정을 감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 스스로 싱가포르의 미래를 이제는 '아시아 예술 창작의 파워하우스'(Powerhouse of Asian arts Creation)라고 지칭하고 있듯이.


이제 유통의 전면으로!
비즈니스 중심, 라이브! 싱가포르

이렇게 컨버스아시안스에서 아시아 예술가들과의 대화가 이루어진 뒤, 불과 열흘 후 에스플러네이드에서 다소 떨어진 관광 휴양지 산토스 섬에는 새로운 공연예술마켓이 불쑥 출현했다. 마치 싱가포르 역사책에도 없었던 머라이언싱가포르의 상징물로서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한 가공의 동물 형상이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시내 중심가에서 버젓이 물을 뿜어대고 있듯이. 이 신상마켓의 이름은 바로 '라이브! 싱가포르'라이브! 싱가포르'(Live! Singapore, 이하 라이브!)다.(6.8~11, 리조트 월드센터).

라이브!는 여러 면에서 컨버스아시안스와는 대조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 둘의 대차대조표를 놓고 비교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먼저 주최단체다. 컨버스아시안스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공연장 에스플러네이드가 주최하고, 라이브 싱가포르는 국제적 규모의 박람회 전문 독일 기업인 쾰른메세(Koelnmesse GmbH)와 뉴욕, LA, 런던, 파리, 이탈리아, 독일, 싱가포르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공연예술 매니지먼트 탑 에이전시 아이엠지아티스트(IMZ ARTISTS)다. 에스플러네이드가 독립법인이긴 하지만 싱가포르 예술위원회(National Arts Council, NAC)의 기금으로 재원의 대부분이 운영되고, 싱가포르 문화정책의 중추적인 수행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는 공공 성격이 강하다면, 쾰른메세와 아이엠지아티스트는 민간 외국 자본 영역이다. 두 번째는 다루고 있는 콘텐츠의 상이성이다. 컨버스 아시안스는 연극, 무용, 음악, 비주얼 아트 등 기초예술분야에 비중을 두고 있다면, 라이브!는 2010년에는 음악장르를 포커스로 하여 클래식음악, 뮤지컬을 비롯한 음악극, 재즈 및 월드뮤직, 라이브 뮤직 등을 소개했다. 즉 음반 산업과 함께 이미 문화산업 영역으로 접어든 공연예술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 마켓의 창설 이유에 대한 쾰른메세 아시아-태평양 부사장의 발언은 마켓의 미션 또한 정확하게 컨버스아시안스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아시아, 유럽, 미국의 공연예술마켓들이 자국 또는 지역(권역)의 아티스트를 프로모션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즉 비즈니스 측면보다는 예술적 교류나 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즈니스를 원합니다. 많은 공연예술단체와 예술가들이 아시아 투어를 원하고 있고, 아시아 관객들의 해외공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 아시아와 세계 각국의 투어 기회와 공연 비즈니스 활성화를 위해 라이브! 싱가포르를 창설합니다."

해외 에이전시 입장에서 아시아 공연예술 시장은 이제 단순히 투어나 현지 법인설립의 대상이 아니라 비즈니스 마켓을 창설 할 만큼 시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발언이다. 이 비즈니스 시장의 거점은 90년대부터 아시아 시장 개척의 거점으로, 공연예술 국제 에이전시들이 둥지를 트고 있는 싱가포르다. 또한 얼핏 보면 객지 상인들의 행각으로 보이지만, 이들의 뒤에는 싱가포르 경제발전위원회(Singapore Economic Development Board), 싱가포르 관광위원회(Singapore Tourism Board) 등의 정부 조력자들이 버티고 있으니, 라이브! 싱가포르의 창설과 함께 싱가포르는 이제 문화산업 유통의 전면으로 나서고자 하는 또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좌) 공명의 쇼케이스 (우) 부스전시 2010 라이브! 싱가포르



싱가포르 미래 예측과 준비, 창작과 문화산업 시장의 분리 주목해야

하나의 마켓은 다시 창작의 원천으로 회귀하고, 또 하나의 마켓은 아예 유통의 전면으로 나선다. 예술과 산업이 홍해처럼 양 갈래로 나뉘어 흘러가는 듯하지만, 제작과 유통구조가 각기 다른 아시아의 콘텐츠들이 불필요한 몸 섞기를 그만 두고 서로의 필요충분조건을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상 마켓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분명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이 두 개의 첫 행사에 참가한 이들의 반응은 "다소 실망이다". 컨버스아시안스에 대해서는 "마켓과 축제의 프로그래밍은 달라야 하는데, 공연예술축제와 무엇이 다른가?" "단지, 토크(Talk)만을 위해서 내야하는 마켓 참가비가 이렇게 비싸서야, 정작 가난한 예술가들이 참가조차 하겠는가?" 라는 현지 예술인들의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왔다. 라이브! 싱가포르에 대해서는 아시아 공연예술 시장의 확대 가능성에 대한 사전의 기대감과는 달리, 생생(Live!)해야 할 비즈니스의 현장이 정작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가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사실은 지난 20여 년 사이 드러난 싱가포르 예술시장의 급성장이다. 공연예술 매거진 [GIG] 최근호에 따르면, 문화예술분야에서 싱가포르를 고도의 혁신과 다재다능한 세계적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추진해 온 르네상스 계획 이후에, 1년에 한번 이상 문화행사에 관객으로 참여하는 싱가포르인은 전체인구의 40%가 될 정도의 변화가 있었고, 2009년 싱가포르아츠페스티벌은 2008년도 대비 20만 명이 증가한 80만 명의 관객을 유치했다고 한다. 취약한 문화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장을 일구어 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정책 실무자들이 지닌 '미래 사회에 대한 전략적인 예측과 꾸준한 준비'라고 이야기한다.

장황했던 두 개의 마켓이야기를 종합해 볼 때, 창작의 원자재로 과감하게 관점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컨버스아시안스의 변화, 예술시장과 문화산업시장의 분리 운영을 통한 시장의 효율성 모색이 싱가포르의 미래사회에 대한 예측과 준비의 한 과정이라면, 대단히 주목해 볼 만 하다. 시작은 미진하였으나, 아시아의 어떤 마켓도 시작하지 않았던 첫 행보이기 때문이다.





우연  

필자소개
우연은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장으로, 서울예술단 PD,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기획실장,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기획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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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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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 2010-06-29 오후 8:01:00
재미있고, 알기쉽고, 흥미진진한 글입니다. 안정된 마켓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변신과 혁신을 만들어가는 싱가포르의 정책이 부럽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Del]
  • 하하
  • 2010-06-30 오전 8:59:11
해외동향 글들이 지나치게 전문적이고 어려웠는데 저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했습니다 일만 너무하지 마시고 이렇게 글로도 사업소개 많이 해주세요[Del]
  • 그니까요
  • 2010-06-30 오전 10:12:55
그니까요[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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