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방사능 공포로 인한 내한공연 취소와 대응방안

불가항력에 대처할 수는 없는가

최윤우_ 공연 칼럼니스트

불가항력이라도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한다. 공연 추진과정에 있었던 실비 정산은 명확하게 요구할 수 있다.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라도 선지급된 공연료 등은 상대방의 부당이익이 되기 때문에 계약위반의 책임과는 별도로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추가적인 손해를 상쇄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 강도 9.0의 지진이 발생하고, 곧이어 원자력발전소에 문제가 생겼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체르노빌에 버금가는 심각단계로 격상된 일본 원전사고의 불안과 공포는 사회경제적인 부분을 넘어 공연예술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페스티벌에서 공연 취소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항력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과 그에 따른 결과라고 넋 놓고 있기에는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지속적으로 발생할 잠재적 위기에 직면하게 될 공연예술계, 그 어떤 때보다 세밀한 위기관리의 묘를 고민해야 할 때다.

해외초청, 투어공연 줄줄이 취소

국내 페스티벌 중에서 공연 취소 소식이 가장 먼저 들린 곳은 '페스티벌 봄'이었다. 개막작이었던 독일 복스뷔네(volksbuehne) 극단의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가 원전사고의 잠재적 공포를 넘지 못하고 '공연 취소'를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페스티벌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된 공연 취소 소식은 페스티벌 사무국은 물론, 공연을 기다렸던 관객들에게도 당혹스러움과 아쉬움을 남겼다.


극단 복스뷔네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극단 타간카 <마라와 사드>
극단 복스뷔네 <현혹의 사회적 맥락이여,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극단 타간카 <마라와 사드>

곧이어 통영국제음악제에서도 개막공연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의 방한 취소 소식이 알려졌다. 지난 1월에 티켓판매를 시작한 이후 한 달 만에 매진됐을 정도로 기대가 높았던 공연, 페스티벌 사무국의 자체적인 노력뿐 아니라 주한독일대사관, 독일문화원 등을 통해 안정성에 대한 담보를 피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단원들의 불안감을 저버릴 수 없다'는 단체의 방한 취소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서도 같은 사례가 발생했다. 올해 10주년을 기념해 초청된 러시아 극단 타간카의 <마라와 사드>다. 2002년 제1회 축제 때 소개되었던 작품으로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보고 싶은 공연 1위'로 선정된 공연을 폐막작으로 선보이고자 했던 페스티벌 사무국의 대내외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단체와의 신뢰상실 등으로 최종 취소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5월 5일부터 개최되는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도 일본 방사능 공포로 인해 취소된 공연이 있다. 물론 앞의 사례와는 진행경과가 다르다. 페스티벌 봄, 통영국제음악제,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는 협의가 끝난 상태에서 홍보와 티켓판매까지 이뤄진 뒤였지만, 하이서울페스티벌은 협의 중이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후속조치가 필요 없는 경우다.

하반기에도 여파는 계속될 듯

카라카스 오케스트라

카라카스 오케스트라

페스티벌 이외에도 아시아를 연계한 투어공연 등이 연이어 취소됐다. 대표적인 공연으로는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3월 27~28일 예술의전당, 이화여대 대강당 개최예정)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오케스트라의 공연 취소다. 또한 미국의 R&B 가수 에릭 베네의 공연도 방한 일주일을 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취소됐다. 이것은 한국, 일본, 중국을 연계하고자 했던 기획이 무산되면서 아시아 공연자체를 취소하게 된 경우인데, 이처럼 인근 국가를 연계해 진행하는 투어공연 역시 일본 원전사고로 인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례에서 보듯, 일본 지진과 원전사고는 국내 공연예술계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이어질 하반기 페스티벌에서도 잠재적인 불안요소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설득에서 취소에 이르는 과정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연단체의 일방적인 공연 취소 통보에 결국 몸과 마음이 바빠지는 곳은 페스티벌 사무국이다. 보통 1년 전, 짧아도 수개월 전에 협의가 끝나는 것이 일반적인 해외초청공연의 진행과정이다. 게다가 페스티벌의 주요 프로그램인 개막작과 폐막작은 전체 페스티벌의 색깔을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닥쳐버린 금번 사태를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의 공연 취소통보와 과정에서는 이러한 페스티벌 측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극단 타간카 공연취소 경위

날짜

주요 진행 경과

2010년  11월

러시아 출장 시, 공식적으로 초청 제안

11월 20일~1월 중순

초청 조건 협의

2월 중순~3월 중순

계약서 작성, 러시아어로 번역 후 타간카 극단 변호사 검토

3월 31일

일본방사능으로 인한(단원들의 심각한 두려움으로) 공연취소 통지서를 받음 → 취소 재고요청 서한 발송

4월 1일

주 러시아 한국 대사관에 협조 요청: 티켓 판매, 홍보 활동 중단

4월 4일

주한 러시아 대사관 대사 및 일등서기관(문화담당)에 상황 설명 및 협조 요청을 구하는 서한 송부(일등서기관의 부재로 통화는 못함)

4월 5일

극단 타간카, 주 러시아 대사관, 현지 한국 문화원 간 미팅: ‘한국 방사능 문제가 심각하지 않음’을 설명하고 ‘공연 계획을 취소하지 말고 추진해 줄 것’을 요청

→ 타간카: 한국 문화부장관의 ‘안전 보장’ 공문과 화물 항공 운송 지원을 요청

→ 축제: 화물견적을 위해 화물 패킹 리스트를 바로 요청했으나 제대로 된 리스트는 받지 못함

4월 6일

주한 러시아 대사관 측에서 타간카의 ‘공문과 화물 운송료 지원 요청’의 뜻을 전달함. 러시아 대사관에서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함. 운송을 포기하고, 한국 내 무대제작을 제의함<특별한 응답이 없었음>

4월 15일

최종 <마라와 사드> 공연포기 결정, 티켓 환불처리, 공연취소 공표 무대도면 수취 여부 및 제작 가능성이 불투명

4월 16일

타간카에서 도면 일부를 보냈으나 비용 및 소요, 일정상의 어려움과 타간카에 대한 신뢰상실로 최종적으로 공연취소 통지



타간카 극단의 공연취소 통지서: 현재 일본 지진사태로 인한 생명과 건강의 위협상황으로 인해 일본과 인근 국가 여행 삼가 요청서를 수취했습니다. 이번 초청 공연을 위해 항공티켓, 화물비용 등 타간카 극단 자체적으로 많은 노력과 재원을 이미 소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불가항력적 상황으로, 우리 극단은 우리 극단원들의 생명과 건강, 그들의 가족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아무런 권한이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이에 타간카 극단은 깊은 양해와 협조를 부탁드리며, 일본 국경 너머로 방사능 오염이 퍼지고 있으나 귀국에 아무런 위험이 없기를 희망합니다.(후략)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사무국 제공, 주요 부분 발췌

러시아 극단 타간카의 공연 취소 통지서의 내용을 보면 두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즉, 자국에서 일본과 인근 국가 여행 삼가 요청서를 수취했다는 것과 이번 사태가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취소 통지를 받은 이후부터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진행한 대응방법은 대부분 해당국가의 대사관이나 문화원을 통한 협조 요청이다. 결국 정서적인 부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드러나는데, 이는 비단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계약상 '천재지변' 조항의 해석

다른 페스티벌 역시 일방적인 취소통보를 받고 유관기관에 다각적인 협조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지는 않다. 그 이유가 뭘까.

우선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의 유럽권 국가들이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기억과 공포를 넘어서지 못하는 정서적 이유도 있다. 독일의 경우 일본 원전사고로 촉발된 자국민의 불안감이 정치 지형도를 바꿀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서로 다른 문화적 정서의 차이를 인지하는 것도 고려해볼 일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항변이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사태가 '불가항력의 천재지변계약서상 Act of God 혹은 Force Majeure 조항'이라는 데 방점이 찍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일어난 것인데도 계약서의 '천재지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도 이제 지워야 할 것 같다. 해당 단체가 자국에서 수취한 '여행 삼가 요청서'가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근거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교통상부에서는 "천재지변·전쟁·내란·폭동·테러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해외 위난 상황으로 인하여 국민의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특정 해외국가 또는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기간을 정하여 해당 국가 또는 지역에서의 여권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 및 체류를 금지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 여권법 제26조 3항, 여권법 제17조 제1항 본문 및 제2항에 따라 방문 및 체류가 금지된 국가나 지역으로 고시된 사정을 알면서도 그에 따른 허가를 받지 아니하고 해당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사람의 경우 처벌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정서는 유럽권에서 더 강하게 적용되고 있다.

책임과 손해는 구별, 위기관리 대처능력 마련해야

일본 원전사고 현장

일본 원전사고 현장

천재지변, 즉 불가항력은 말 그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천재지변이 일어난 경우는 그 사건이 일어난 시점으로부터 모든 상황이 종료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위와 같은 공연 취소 사례의 경우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여름과 가을에 집중되어 있는 국내 공연예술축제에서도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잠재적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지라도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유사 상황에서 자문을 했던 홍승기 변호사는 "불가항력의 의미는 일방에게 계약위반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이지, 일방에게 부당이득을 안기자는 취지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즉, 불가항력이라도 손해는 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 추진과정에 있었던 실비 정산은 명확하게 요구할 수 있다.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라도 선지급된 공연료 등은 상대방의 부당이익이 되기 때문에 계약위반의 책임과는 별도로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추가적인 손해를 상쇄할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공연 취소로 인해 관객과의 신뢰가 깨진 것은 물론 티켓환불의 과정, 대체공연을 급조해야 하는 수고로움이나 비용의 문제까지 페스티벌이 고스란히 안고 가야만 한다. 무엇보다 페스티벌 자체의 공신력에 타격을 입은 정신적 피해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페스티벌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국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국내 페스티벌은 부지기수로 많기 때문이다.

물론 천재지변을 예측할 수는 없다. 또한 계약서 작성 시 인접 국가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불확실한 상황을 명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현 상황은 2003년 발생한 사스(SARS)나 2009년 발생한 신종플루와는 다른 경우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재해와는 달리, 인접국가의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사례라는 새로운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연취소가 일방적인 통보였다는 불필요한 판단은 걷어내고,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그에 상응하는 대처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최윤우 필자소개
최윤우는 2003년부터 2011년 3월까지 월간 [한국연극] 취재기자와 편집팀장으로 근무했다. 현재 공연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아트뷰] [아트홀릭] [한팩뷰] 등의 공연예술 관련매체에서 필자로 활동하고 있다. parodia@naver.com
 
weekly 예술경영 NO.125_2011.05.04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덧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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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지호
  • 2011-05-05 오전 5:24:55
알찬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려요. 본문과 관련, 일본국난으로 촉발된 여러가지 상황들을 몇가지 지켜보면서 2009년에 국내에 있었던 신종플루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검색이 쉽지 않은데, 2009년 관련내용도 혹시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다뤄진 것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Del]
  • 무적
  • 2011-05-15 오전 4:03:48
불가항력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실제 법적용과 대처방안들을 매뉴얼사례집으로 묶어서 공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연속 시리즈로 조금더 깊게 다뤄주신다면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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