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전시 도록 잘 만들기

커뮤니티 아트를 하듯

김노암 _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

도록이란 한갓 기록이나 작품이나 전시의 재현물이 아니라 분명한 커뮤니티 아트와 같아진다. 하나의 전시나 프로젝트를 함께 만드는 협업자들 간의 섬세하면서도 상호존중과 배려를 전제로 한 대화와 인식, 그리고 공감의 결과물이다. 몇몇 작가들의 경우 도록은 곧 작품이고 개념미술과 동의어가 된다.
 

좋은 예술가나 작품을 모은 전시가 반드시 좋은 전시가 아니듯, 좋은 작품과 좋은 재료로 만든 도록이 반드시 좋은 도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획의 의도나 내용, 전시된 예술작품을 잘 반영했다고 반드시 좋은 도록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도록에는 어떤 기묘한 미학이 있다. 특히 현대미술의 현장을 담는 도록은 그렇다. 이 글의 주제인 '쓸모 있는 도록'에 대해 생각하기에 앞서, 지난시기 디자인과 전시문화의 관계의 변화를 간단히 요약해 보는 것이 좋겠다.

도시갤러리프로젝트 도록

도시갤러리프로젝트 도록

전시 파트너들의 업무 분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디자인 산업과 문화가 급성장하고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이 배출되면서 몇몇 선구적인 디자이너들과 전시기획자, 예술가들이 협업한 전시와 도록이 제작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각종 비엔날레와 국제 규모의 대형전시가 급증하면서 다양한 전시 관련 도록들이 제작되고 유통되기 시작했다. 또한 그 시기는 국·공립미술관은 물론 민간기업이나 재단의 미술관들이 설립되면서 전시예산의 증가와 함께 자연스럽게 전문적인 기획자들과 또 그에 따른 디자이너를 비롯한 다양한 전시 파트너들의 업무 분화가 일어났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미술시장이 급격하게 확대 심화되면서 점차 성공적인 도록 디자이너는 명성과 함께 전시업계에서 독립적인 예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는 90년대 중반 이후 미술계의 가장 중요한 이슈였던 '소통'과 '담론'이라는 화두와 함께 앞서 이야기한 공공미술프로젝트와 관련한 커뮤니티아트 또는 프로세스아트의 성장과도 관계가 있다. 몇 년 전 서울시에서 진행했던 도시갤러리프로젝트관련기사 본지 64호 현장+人 '민병직 전 도시갤러리 책임큐레이터' 보기는 근래 대표적인 공공미술프로젝트이다. 이 도록을 보면 내용이 다양한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텍스트들은 대부분 리서치, 토론, 아카이브, 비평 등으로 구성되어 최근 도록의 변화를 보여준다.

도시갤러리프로젝트와 유사한 최근의 기획격향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베를린비엔날레의 도록을 들 수 있다. 기존의 도록구성이 기획의 글, 작품사진, 작가소개, 약간의 작가론이나 작품론과 같은 비평 글이 포함된 경우가 일반적이나 베를린비엔날레의 도록은 마치 60년대 플럭서스그룹의 인쇄물들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텍스트와 편집디자인을 담고 있다.  

도시갤러리프로젝트 도록 목차 구성


직업적으로 전시기획을 하다보면 다양한 성격의 프로젝트와 또 그에 따른 작가들과 협업하게 되는데, 매순간 어떤 정답을 갖고 기획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체로 매번 최초의 기획이자 최후의 기획이 된다. 작가들 또한 사교적 의미에서 친한 작가들이 있다하더라도 요즘처럼 전시문화가 산업적 성격을 띠다보면 직업적 이해관계로서의 작가와 기획자의 협업을 하지 않는 한,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예가 드물다.

도록은 작품과는 별개다
도록은 작품과는 별개다

도록은 작품과는 별개다

도록을 제작할 때, 그 도록의 구체적인 목적, 대상 등을 고려해야 한다. 구체적인 대상이라면 전시를 구성하는 예술작품의 형식과 의미 등이 잘 드러나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감성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현대예술 전시와는 달리 유물이나 민속, 생활사 등 박물관형 전시의 경우는 전시물의 내용이 거의 오랜 시간 연구와 토론을 거쳐 그 사회의 일반적 동의를 끌어낸 것들이므로 그 의미성에 대한 이견이나 갈등은 상대적으로 적기 마련이다.

먼저 인식해야 할 것은 도록을 비롯한 각종 전시 관련 인쇄물들은 일반적인 예술작품과는 별개의 생산물이라는 사실이다. 예술작품이 관객이나 미술계라는 커뮤니티에서 보다 독립적이라면 전시란 바로 그 커뮤니티의 관계를 향해 또는 그 위에서 가능하다. 관계성이나 소통이나 공감 등이 전제되지 않는 전시는 무의미해진다. 그러므로 모든 작가나 기획자들은 이러한 관계의 맥락을 고려하여 어떤 방향, 어떤 목표, 어떤 미적 이념이나 활동을 향할 것인가 숙고하게 된다.

도록은 즉흥적인 경우도 왕왕 있긴 하지만 하나의 전시가 기획되고 실행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러 차례의 진지한 협의과정을 거친 후 그 전시나 기획의 철학과 미적성격을 잘 담아낸 인쇄물로 제작된다. 엽서, 브로슈어, 리플릿, 팸플릿, 아카이브 자료집 등이 제작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전시도 작품처럼 완결되었다는 의미이다. 극단적인 경우 에디션이 있는 수제품으로서 도록을 제작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작품이나 전시란 불가능하다. 예술작품들의 모음, 전시들 또한 특정계층이나 특정 집단 또는 특정 개인에게 공감을 주는 것이다. 방법적으로는 보편적 취향보다는 차라리 선입견에 기초한 편벽한 취향의 전시가 성공적일 수 있다. 대체로 전시기획의 주체가 만족하며 진행하는 전시가 무리가 없다. 그러나 하나의 전시에 있어 미적 이념의 문제나 미적 정치의 문제가 전면에 솟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복잡한 논의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어느 라디오 진행자의 말을 빌리면 모든 청취자를 대상으로 방송하기 보다는 한 사람의 청취자와 대화한다는 생각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 공감을 끌어낸다고 한다. 전시 현장에서는 나름 설득력이 있는 견해이다. 누군가에게 유용한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은 아니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용할 수 있다.

『아트나무』
『비타민』

▲▲『아트나우』
▲『비타민』

인식변화의 시각적 반영

최근 전시분야 인쇄물의 트렌드를 살펴보면, 한글을 이용한 타이포그래피의 적극적 활용을 들 수 있다. 또한 화려한 컬러의 화집 형태보다는 작가노트나 기획노트 등 회색의 텍스트가 가득 들어있는 형식의 도록들도 대세다. 그것은 화려한 대중문화의 확대와 함께 시각적 또는 조형적인 효과보다는 보다 개념적인 또는 언어적인 접근과 태도가 중요해진 것과도 관련된다. 또 국제화는 물론 온라인 문화의 확대로 영문을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대형전시의 경우 한국화나 전통미술 관련 전시가 아닌 이상 대부분 영문을 도록의 표지나 중요한 지면에 배치하는 추세다. 젊은 미술가들의 작가이름을 예명 또는 외국어이름을 쓰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일반 관객들로 전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양아치, 데비 한, 잭슨 홍, 플라잉시티, 낸시 랭, 마리 킴, 지니 서, 서니 킴, 뮌, 쉰스터, 믹스라이스, 데칼, 레고, 반달, 산타, 스피브, 알타임 죠, 에라원, 제이 플로우, 진스BH, 찰스장, 밥장, 코마, 홍삼, 후디니 등과 현재 활동하는 많은 작가들의 이름을 보면 무언가 우리 사회가 변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각종 전시인쇄물이 그러한 당대 사회와 인식의 변화를 하나의 시각적 정보로 제공하는 것이다.

미술전시의 각종 인쇄물로 반복될 때 우리는 우리 일상의 시각이미지와 언어의 변화를 읽게 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 가운데 현대미술 또는 전시문화가 더 이상 지역성에 머물지 않는 국경 없음의 세계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우선 영문이 국문과 함께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고 시각이미지와 디자인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것들과 상호영향을 받으며 나란히 전개된다.

베니스비엔날레, 카셀토큐멘타, 바젤아트페어, 상하이비엔날레 등에서 제조된 인쇄물의 디자인은 우리의 광주비엔날레, 부산비엔날레, 서울미디어비엔날레 등과 비교되고 크고 작은 현대미술전시의 디자인에 영향을 준다. 그 밖에 타쉔(Taschen)에서 찍은 『아트나우』(ARTNOW)나 페이돈(Phaidon)의 『비타민』(VITAMIN)과 같은 도록들도 편집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국제적인 스타 작가의 탄생만큼이나 국제적인 디자인의 스타일이나 디자이너들이 전시분야에서 회자되고 응용된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형식을 제시하려는 젊은 예술가들의 경우에는 새로운 디자인기획이 돋보인다.

이런 생각을 계속 끌고 나가면 마침내 도록이란 한갓 기록이나 작품이나 전시의 재현물이 아니라 분명한 커뮤니티 아트와 같아진다. 하나의 전시나 프로젝트를 함께 만드는 협업자들 간의 섬세하면서도 상호존중과 배려를 전제로 한 대화와 인식, 그리고 공감의 결과물이다. 몇몇 작가들의 경우 도록은 곧 작품이고 개념미술과 동의어가 된다.

광주비엔날레 도록
베를린비엔날레 도록

▲▲광주비엔날레 도록
▲베를린비엔날레 도록

도록기획의 전략과 정치성

도록을 예술작품처럼 제시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논리를 갖추고 있다면, 자신들의 도록을 하나의 예술적 디자인이나 예술작품으로 독립적인 전시를 꾸리는 것이 좋다. 도록을 작품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작가들의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작가에게 도록 기획과 디자인의 전권을 주는 것이 일의 진행에 있어 용이하다.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작가와의 협의와 토론을 통해 진행하다보면 예산과 일정 등의 다른 요소들과 충돌하는 경우는 물론,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보는 도록의 목표나 의미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분야의 원주민들이 어디 보통사람들인가! 자신이 의견을 내거나 결정하고도 돌아서면 딴소리하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작가이자 기획자이자 디자이너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성공적이며 안정성이 높은 전시를 기획하고 조직하려면 다수의 전문적인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본 콘셉트나 큰 틀에 대해 동의했다 하더라도 도록을 진행하다 보면 작가, 기획자, 디자이너의 철학과 취향이 충돌하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누가 이 상황을 중재하고 복잡하게 꼬인 목표와 취향의 매듭을 풀 것인가?

앞서 말했듯 일반적으로는 도록은 예술작품들의 기록, 설명, 표현하기 위한 2차 재현물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매우 자주 혼동하는 것은 자신이 참여한 전시의 도록이 자기 작품의 연장선에 있어서 자신이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는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갈등이 시작되고, 기획자와 도록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의 기획영역과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정답은 당연히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대형전시의 경우 그 주체가 공공기관이기에 벌어지는 문제들도 많다. 정부나 정부산하 공공기관들이 많은 예산을 투여하다보니 그만큼 공공주체의 조직문화가 전시기획에서 연출, 홍보, 인쇄, 디자인 모든 부분에 깊은 영향을 준다. 대형 국제비엔날레들이 그런 경우인데, 아무래도 창조적이고 유연한 기획이나 디자인이 공공주체의 조직과 제도와 충돌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 정치력이나 인지도가 큰 기획자나 디자이너의 경우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일정한 선에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가장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도록은 대형 국제 전시들보다는 소규모의 전시들에서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어째든 미술관제도와 전시문화가 전시기획의 철학은 물론 구체적인 도록 디자인에도 상호 연관되니, 좋은 또는 창의적인 도록에는 섬세한 정치성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예산 규모에 맞는 재질과 수량 또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드시 예술적인 도록이 좋은 도록이 아니란 소리다.
 

전시내용의 결정체

전시가 예술작품의 동어반복이 아닌 만큼 도록은 전시의 동어반복이 아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 대부분은 협업과정의 소통과 공감에서 성공보다는 아주 많이 실패한 이들이다. 심한 경우 도록 문제로 인해 전시가 엎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의 실패과정을 통해 타자들의 취향과 인식이 한 순간 고양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종합해보면 현대미술과 관련한 인쇄물들 중 도록은 그 전시의 정치적, 미학적 입장을 표현하는 결정체다. 도록은 그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섬세한 시각적 기호와 정보로 가공하여 그 자체로 미적 결과물로 제시하고 전시를 함께 만든 예술가, 기획자, 디자이너 등의 문화적 태도와 인식을 한 단계 끌어 올릴 수도 있다. 함께 성장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그러니 도록은 단순히 홍보나 기록을 위한 장치를 넘어서는 미적 대상이 된다. 이제 우리 주위에서 기획자나 예술가들과 협업하는 디자이너들이 단순히 디자인의 기능이나 제조의 차원에서 미적 조력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점차 입소문을 타고 있다.

 

 

 
김노암

김노암
김노암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 회화繪畵와 미학美學을 전공하였다. 미술현장에서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그림과 글로 시절을 보내고 있다. 현재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를 운영하며 미술웹진 [이스트 브릿지], KT&G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의 운영과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사)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 대표이다.

 

 

weekly 예술경영 NO.169_2012.03.29 정보라이선스 정보공유라이선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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