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밤이었다. 강남역 지오다노 매장 앞에서 자동차가 신호대기에 걸렸다. 거리는 젊은이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목적지를 향하는 각자들의 이유는 물론 모두 다르겠지만,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토요일 밤의 열기 속으로 그들 모두는 다른 차림, 다른 걸음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녹색 신호등이 켜졌고 잠시 후 나는 ‘예술 해커톤’이 열리고 있는 디캠프(D-Camp)에 도착했다.
요즘 해커톤(Hackathon)이 유행이다. 파고든다는 의미인 ‘핵(Hack)’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인 해커톤은 하나의 주제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 주제의 문제점을 함께 해결해보는 행위이다. 공통의 협의가 이뤄진 해답을 찾아내야 하므로 이 모임은 하룻밤을 지새우며 마라톤처럼 이어지기 일쑤다. 내가 멘토로 참여한 예술 해커톤도 마찬가지였다.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문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방한하는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할 만한 문화 올림픽에 관한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것이었다.
무박으로 진행된 해커톤, 틈틈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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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을 메운 형형색색의 젊은이들처럼 7월 16일(토)부터 17일(일)까지 무박 이틀 동안 개최된 ‘예술 해커톤_평창문화올림픽’에 참여한 15개 팀의 아이디어는 다양했다. 참가자도 대학생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분야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토요일 오전 대학교수들에게 이론 중심의 1차 멘토링을 받았다. 광고마케팅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VR 콘텐츠 전문가들과 함께 실제 수행 및 진행 가능 여부에 집중한 2차 멘토링에 참여했다.
나는 6개 팀의 아이디어와 실행 방안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진행되었을 때, 대중들이 그 아이디어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상상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스토리를 미리 발굴하여 웹툰으로 제작, 올림픽 붐을 일으켜보겠다는 아이디어를 준비했던 아이디어 펀치(Idea Punch) 팀과 올림픽을 위해 평창을 찾아온 선수와 관광객들에게 디지털 접점 기술을 활용한 타임캡슐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언박스(Unbox) 팀의 크리에이티브가 흥미로웠다. 언박스 팀과의 멘토링을 통해 타임캡슐 서비스 대상을 1인으로 한정하지 말고, 친구나 동료 혹은 평창에서 만난 누군가와 ‘함께’ 추억의 물건을 저장하고, 일정 시간 후에 ‘함께’ 열어볼 수 있는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면 어떻겠냐고 나는 제안했고, 언박스 팀은 밤사이 이 아이디어를 확장하는데 성공하여 최종 심사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언박스 팀을 멘토링 중인 필자 (조현진 펜타브리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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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피칭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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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참여했던 모든 팀의 아이디어가 훌륭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최우수상과 우수상을 수상한 단체들의 아이디어 역시 더욱 두께를 붙여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발상을 시작으로 구체적인 실행방안과 그 행위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까지를 심도 깊게 고민하면서 무박 2일 동안 경쟁과 토론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자 하는 참가자들의 노력을 지켜보는 일은, 광고 크리에이티브 전쟁의 한복판을 살고 있는 나에게도 큰 도전이 되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집체적인 아이디어 창조 작업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상상도 즐거운 것이었다. 앞으로도 많은 예술 해커톤이 열릴 것이고, 더 많은 참가자들이 형형색색의 과제에 도전하게 될 것이다.
각 팀의 아이디어를 듣고 심사 중인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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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해커톤_평창문화올림픽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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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해커톤에 도전할 분들을 위해 힌트 하나를 드리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제한된 시간 동안 경쟁자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팀이 예술 해커톤에서 강하다는 것이다. 예술 해커톤은 아이디어의 발상작업이 아닌 아이디어의 첫 문장부터 마침표까지 달려가 보는 스토리텔링의 마라톤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함께 ‘스토리’를 만들고, 끝까지 함께 ‘텔링’하라. 신은 이야기로 세상을 창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