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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절실한 변화”
[리뷰] 2010 국제공연장기술&건축컨퍼런스
국제공연장기술&건축컨퍼런스(ITEAC, International Theatre Engineering & Architecture Conference)는 영국극장기술인협회(ABTT, The Association of British Theatre Technicians)의 주관으로 2002년부터 4년마다 개최되고 있는 공연장 건립·디자인·운영 분야의 다양한 관련자들, 공연장 컨설턴트, 공연장 운영자, 건축가, 엔지니어, 관련 학자 등이 모이는 가장 큰 규모의 국제행사다. 올해도 런던에서 개최된 이번 컨퍼런스는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31개의 주제발표가 이루어지고 약 90여 명의 발표자와 패널들이 참석자들과 함께 진지하고 유쾌한 토론을 이어갔다. 컨퍼런스와 연계하여 영국과 북유럽 지역의 공연장 투어, 최신 공연장 기술 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씨어터 쇼(Theatre Show) 등 약 일주일간 컨퍼런스 관련 행사가 진행되었다.
“우리에게 더 이상 공연장이 필요한가”
다소 도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질문이 이번 2010 ITEAC 개회 세션의 주제였다. 이 질문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는 ‘지금 우리 공연장의 역할과 기능, 그에 따른 공간은 적절한가?’ ‘변화되는 사회 환경 속에서 공연장은 어떻게 변화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변화되는 공연장’과 맥락을 같이 하는 주제들이 단연 눈에 띄었다.
‘공연장(무대) 형태의 개발’ ‘가변형 무대와 객석’ ';FOHFront of House영역의 변화된 역할’ ‘새로운 공연장들의 성공사례’ ‘백스테이지 영역의 변화’ ‘블랙박스와 스튜디오 타입의 공연장’과 같은 주제의 세션에서 변화되고 있는 공연장의 모습과 그 기능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개회 세션에서는 버밍엄 오페라단(Birmingham Opera Company)의 활동을 통해 프로시니엄 타입의 오페라 극장과 같은 정형화된 공연 공간을 벗어나 얼핏 보기에 대형 창고 같은 빈 공간, 일상적인 거리, 공원과 같은 다양한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프로그램 사례를 살펴보았다. 또 ‘공연장(무대) 형태의 개발’ ‘블랙박스와 스튜디오 공간’ 세션에서는 트러스트/코트야드(Thrust/Courtyard) 타입의 공연장 사례들과 블랙박스 형태의 공연장 사례들을 통해 프로시니엄 형태로 대표되던 공연장의 형태가 점차 새로운 유형들을 찾아 그 공간구성이 달라지고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ITEAC는 동시에 세 가지 주제의 세션이 진행되고 참가자들은 세 가지 중 자신의 관심 분야를 선택하여 참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특히 ';블랙박스와 스튜디오 공간'; 세션에는 참가자들의 수가 많아 이런 유형에 대한 관심이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세션에서는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국립예술학교, 미국 달라스의 와일리 공연장(Wyly Theatre)과 같은 사례를 살펴보며 블랙박스 형태의 공연장이 가진 가능성과 그런 가능성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추가적인 요소들이 무엇인지 논의하였다. 예컨대 다양한 가변성을 고려한 전체 공간과 설비에 대한 세밀한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논의들이 이루어졌다. 이 세션을 통해 스튜디오 타입의 공연장들이 블랙박스에서 연상되는 딱딱한 공간을 넘어서서 대표적인 가변적 유형으로 발전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공연장 건립과 운영의 가장 큰 화두가 ‘변화’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화두일 수 있으나 개회 세션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변화’에는 ‘반드시 이루어야 할 절실함’이 담겨있다. 아이폰으로 대표될 수 있는 새로운 개인 미디어·통신 장비의 등장, 이미 오래전부터 공연장의 자리를 채워가고 있는 영화, 게임 산업과 같은 경쟁 분야들 속에서 공연장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절실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로비-오디토리움-백스테이지의 연속적 구성을 깨뜨리다
컨퍼런스가 끝난 뒤 방문한 영국 레스터시의 커브 공연장에서는 그 변화의 절실함이 어떻게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공연장은 이미 개관 전부터 라파엘 비뇰리(Rafael Vinoly)의 설계와 인사이드-아웃(Inside-out)이라는 컨셉 때문에 주목 받았던 공연장으로 개방성을 극대화한 형태를 추구하였다. 전체 외벽이 유리로 마감되어 내부가 노출되고, 특히 장비 반출입구가 열릴 경우 거리에서 무대 내부가 바로 보일 만큼 백스테이지 공간까지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 두 개의 공연장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 복도에 박스오피스와 카페가 구성되어 있고 복도의 바깥쪽으로 장치제작소, 공연장 사무실 영역이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로비-오디토리움-백스테이지의 연속적 구성을 통한 관객영역과 출연자영역의 구분이 성립되지 않는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새로운 공간구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신선한 느낌과 프로그램, 그 속이 훤히 보이는 공연장의 모습은 방문객들에게 새로운 호기심과 접근성을 유도할 만한 충분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공연장의 고유한 특성상 외부와의 차단, 출입의 통제가 필요한 순간이 있을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취약함이 예상되었다. “조용한 미팅을 할 만한 사무공간을 찾기 어려울 만큼 모든 공간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다”는 커브공연장 관계자의 말은 이런 문제가 실제로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 박스오피스의 위치가 방문객의 주동선과 일치하지 않는 점도 관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요소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런 문제들은 변화의 과정일 뿐 변화의 실패나 불가능은 아니라는 것이다. 커브 공연장의 경험들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공연장들에게 극복해야할 과제들을 안겨주게 되고 이런 과정들은 변화의 한계와 불가능들을 사라지게 해줄 것이다. 이렇게 현장에서는 변화가 실천되고 있었으며 그 실천들은 더욱 새로운 변화와 ‘변화의 성공’을 위한 중요한 이슈들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우리의 공연장은 어디로
2006년의 ITEAC 컨퍼런스 참석자들로부터 당시에는 ‘프로시니엄 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결국 프로시니엄을 이어갈 구체적인 공연장 형태에 대한 논의들이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실제 현장에서는 사회 속에서 보다 강한 역할 수행과 존재감을 발휘할 프로시니엄 형태 이후의 공연장 형태를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그 형태가 무엇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고, 어쩌면 다양한 형태와 기능 자체가 프로시니엄을 이어가는 공연장의 특징이 될 것이라 예상된다.
세계 공연장의 흐름을 지켜보게 되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공연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되묻게 된다. 지금 시점에서 이 질문에 대해 한 번쯤 되짚어 보는 자리가 꼭 필요할 것이라 생각된다.
관련사이트
International Theatre Engineering & Architecture Con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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