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라이프 디자인까지 포함한 것을 우리는 ‘고유화’라고 부른다. 이는 시장원리를 우선하는 세계에서 온 표준화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경쟁사회일수록 승자가 표준을 정할 권리를 갖고 표준점수 이하의 사람을 표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조인데 이것은 복지구조가 아닌 지배의 구조라고 생각한다.
옛 민가를 개조해 아만토 카페를 만들던 공사현장(2001년 6월)
카페 아만토 내부

▲▲카페 아만토 공사현장(2001년 6월)
▲카페 아만토

오사카는 도쿄에 이은 일본 제2의 도시이자 서일본의 중심지다. 견당사, 견수사, 조선통신사 등 대륙과 교류한 사절단들은 모두 항구도시인 오사카에 상륙하여 교토나 나라로 들어갔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오사카의 서민들은 언제나 다른 문화를 가장 먼저, 가장 빈번하게 접해왔고 자기 방식대로 타문화를 해석하여 자신들의 문화에 접목시켜 왔다. 그리고 한편, 인터넷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도시들이 직접 서로의 정보를 주고받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01년 7월 26일, 카페 아망토(Salon de AmanTo 天人)가 만들어지게 된다.

자립을 위한 복합문화 발신처

그 무렵 나는 배우 활동과 거리 퍼포먼스를 병행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세계를 여행하던 중 전통적인 공동체에 들어가 몸을 통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가 오사카 나카자키쵸에서 카페를 기본으로 하는 예술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장보살상들이 둘러싸고 있던 나카자키쵸는, 폭탄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이 모두 이 지장보살상 덕분이라고 하는 도시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당시 120년 된 옛 민가를 빌려 ‘빈집 재생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민가는 10년 간 비어있었지만, 여러 차례 손을 보아가며 무척 소중하게 사용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집을 파괴해버리는 것이 안타까워 나는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고 100퍼센트 재활용하겠다고 선언하고, 뽑은 못도 망치로 펴서 다시 사용하는 방식으로 가게를 만들었고 ‘폐자재 갤러리’를 만들어 그날그날 배출되는 폐자재를 전시하기도 했다. 그런 시도들이 신기했는지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이 작업에 총 1,127명이 참여하게 되었다. 콘셉트는 ‘공원’. 근처에 사는 아이들에서 노인들, 회사원에서 예술가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라는 의미다. 여기에는 오사카의 지역적 특성도 반영된다. 이후 카페, 극장, 갤러리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카페 아만토는 복합문화가 자연 발생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되었다.

나카자키쵸는 경관 유산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옛 마을의 풍경과 현대적인 고층 빌딩들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소로 국내외에 알려져 관광객이나 여행객까지 찾아올 정도로 유명해졌다. 건축학회에서는 아만토 방식의 리노베이션이 지역의 낡은 물건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지역차원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마을 일구기’나 문화인류학, 사회학 방면에서도 카페라는 장소에서 옛 공동체가 부활해 지역이 새롭게 재생되는 사례와 연구로 소개되기도 했다. 현재 아만토 공동체는 52명의 동료들과 함께 여러 예술발신지를 운영하고 있다. 아만토 공동체의 계열 상점은 나카자키쵸 전체 상업시설의 약 10퍼센트를 차지하며 예술발신 장소라는 기능을 견인하는 거점이 되고 있다.

표준화에 대항하는 고유화

아만토 공동체의 운영 조형도(2011년)


▲아만토 공동체의 운영도(2011년)

아만토 구성원들 중 누구도 학문적, 전문적으로 ‘조직론’을 공부한 사람은 없으며 스스로 공부하고 배우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 왔다. 우리는 경험 속에서 태어난 노하우를 바탕으로 협력하여 공동창작을 하고,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현상을 예방하는 방법을 현장에서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단순하다. 매사에 ‘나를 위한 일’ ‘지역을 위한 일’ ‘세계를 위한 일’을 동시에 생각하되, 그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소원 달성’이 아닌 ‘필연 달성’이라는 키워드를 만들어, 각자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해간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행동을 보고 배우게 되어, 연령, 직위 등에 따라 상하관계가 형성되는 피라미드형 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닌 탈구축교육을 실현한다. 우리는 이를 ‘향육’(響育)이라고 부르고 있다. 자신의 욕망이나 기량에서 나눌 수 있는 것을 공동프로젝트 형식으로 실현해간다. 서로가 경쟁하기보다는 공존할 수 있는 관계를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만토 공동체에 속한 각 점포들은 한 개의 점포로서 같은 콘셉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콘셉트를 갖는 공간이 된다.

해외에서 예술가가 방문하면 아만토 게스트하우스를, 공연자는 극장을, 영상작가는 영화관을, 조형, 회화 등을 다루는 미술가들은 아만토 갤러리를 찾는다. 레스토랑이나 바, 교류의 장소로 사용하는 홀,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이나 팟캐스트용 라디오방송국 등 거의 모든 작업을 공동체 내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욕망과 대상의 중간지점을 추구하는 것이 아름다운 디자인이라고 하는 사고방식에는 ‘목적 디자인’이 아닌 ‘중간 디자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디자인에 개인의 라이프 디자인까지 포함한 것을 우리는 ‘고유화’라고 부른다. 이는 시장원리를 우선하는 세계에서 온 표준화에 대항하는 개념이다. 경쟁사회일수록 승자가 표준을 정할 권리를 갖고 표준점수 이하의 사람을 표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조인데 이것은 복지구조가 아닌 지배의 구조라고 생각한다. 고유화는 모두를 고유한 존재로 만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각자 자기 위치를 전체 공동체 속에서 생각하고 서로 도와가며 삶의 터전을 만들어간다. 때문에 아만토 공동체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력서를 받아본 일이 없고, 인종이나 성별은 물론 장애 유무, 범죄력, 병력, 사상, 종교를 묻는 일 없이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의 규칙은 간단하다. ‘자기 의견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뿐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만토의 모든 프로그램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그것을 하고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지역에 대한 봉사활동으로 나누는 일이 무척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한 편의 영화를 촬영할 경우에도, 해외에서 영화감독을 초청해 나카마치쵸를 촬영장소로 제공하고, 아만토 사람들도 출연이나 제작을 도움으로써 각자의 꿈과 마을 일구기, 세계진출이라는 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가장 최근의 프로젝트였던 말레이시아인 감독 림 카와이의 영화 (신세계의 새벽)은 도쿄국제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정식 상영되기도 했다.

카페 아만토
카페 아만토

카페 아만토

자신의 천직을 찾는 학교

아만토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정치나 경제적 요인에 좌우되지 않기 위해 정부 조성금이나 보조금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조성금이 떨어지면 단체들의 프로젝트도 끝나버리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단발적인 프로젝트에서는 ‘아만토 천연예술연구소’(NGO)가 조성금을 받는 경우가 있다. 해외공연 등 카페 매출만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사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운영은 ‘공동경영자’ ‘공동운영자’ ‘스태프’ ‘자원봉사 스태프’라는 네 개의 역할 중에서 각자가 선택하게 되어 있으며, 모든 일을 다수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 책임의 범주에 따라서 선거를 할 수 있는 범위에도 제한이 있어,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 현안에는 ‘옵저버’로서 의견은 말할 수 있지만, 결정은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한 구성원들만으로 다수결 결정을 하는 것이다. 이념의 붕괴를 막기 위해 경영책임과 형사책임을 지는 ‘공동경영자’만이 거부권을 가지며, 공동경영자의 인원수는 홀수로 정해져 있다. 현실사회에서의 경영에서는 세계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할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 무엇이 정의냐가 아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이런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급여는 현금과 두 종류의 지역통화로 지급하며 그 외의 스태프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아만토는 자신의 천직을 찾는 학교로, 장래 자립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일반 자영업자와 마찬가지로 매출에 따라 급여가 발생한다. 열심히 일할수록 수입이 많아지게 된다. 지역통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아만토의 각 시설을 현금보다 더 나은 조건으로 대여할 수 있는 만토(Manto) 머니가 있으며, 1만토만 ‘아만토’라고 부른다. 거점을 갖게 될 때까지는 부족한 멤버는 이것으로 영어를 배우거나, 기술을 익히거나, 각 시설을 빌려 가게를 내는 등,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이 사회에 통용되는지 시험해보는 데 사용할 수 있다. 또 보답을 바라지 않고 공동체를 위해 봉사한 날짜를 세는 어트(EART) 머니가 있다. 이 두 종류의 만토와 어트를 X축과 Y축의 그래프로 표시함으로써 그 사람의 신용 지표가 표시되어, 이 함수의 균형에 따라 각자가 자기 일과 사회를 위한 일 사이의 균형을 알아보기 쉽게 디자인되어 있다.

일본에서는 공동체가 유행중?

아만토에 온 태양광 패널

아만토에 온 태양광 패널

아만토가 만들어졌을 때 카페가 교류의 장이 되면서 지역이 활성화되는 방법이 주목을 받았다. 아만토가 카페인가, 아니면 공동체인가, 네트워크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도 있었다. 현재 아만토는 ‘공동체 카페’라고 하는 이름으로 정착했다. 어느 대학교수가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옛 민가 재생 예술발신 시설군’이라고 할 수 있는 아만토 전체를 유럽에서는 ‘친환경 마을’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이 있지만, 우리는 그저 아만토일 뿐이다. 이렇듯 우리의 활동이 주목받는 것은 ‘공간 상실’때문이라고 본다. 일본은 140년 전, 서양적인 가치관이 급속히 전파되어 효율주의와 합리주의가 마을을 점령해버렸다. 그러나 아시아 문화를 단절하고 발전해온 우리의 마음 속 어딘가에 옛 마을 단위의 자치집합체에서 상호협력하며 생존해온 가치관이 진하게 남아 있는 것 같다. 특히 섬들로 이루어진 일본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며 상호협력하여 균형을 이루는 것이 필요했던 민족이다. 거기에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고 하는 서민들의 작은 바람이 있었다. 세계라는 무대에서 주목 받기 위해 자국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경제성장을 우선해온 결과, 자기 자리를 상실해버린 일본인은 거품경제 붕괴 후,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이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지난 3월 지진과 쓰나미를 경험한 일본은 평소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내온 사람들이 생존한다고 하는 단순한 사실을 경험하고, 더욱 더 지역을 중심으로 개인과 세계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진 것 같다.

한편, 나는 오늘 카페 아만토 옥상의 태양광 패널 설치를 끝냈다. 나카자키쵸의 재해방지 서버를 만들기 위한 전력 자급을 시작한 것이다. ‘방재 서버를 천연예술(EART)화 하는 것’이다. 자연 에너지로 자급하는 서버를 마을에 공개할 것이다. 그러면 재해 발생시 휴대전화 전원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긴급정보, 재해시 작동하는 지역 FM라디오, 피난장소 등에서의 전력 확보 등 이용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이로써 카페 아만토는 하나의 식물처럼 에너지를 자급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아시아를 잇는 예술작품으로 상품개발도 하고 있다. 지금 일본 동북지역 일부는 복구에서 부흥으로 이행하고 있어, 재해지역의 고용창출이 큰 과제이다. 아만토 공동체는 지진피해지역인 미나미산리쿠쵸에서 ‘인연 롤케이크’라는 상품을 만들었다. 우리가 지원하는 필리핀 산악민족과 혼농임업 방식으로 재배하고 있는 커피원두를 사용해 롤케이크를 제작하는 기획이다. 즉, 지진피해를 입은 동북지역이 필리핀 산악민족을 지원하고, 필리핀 산악민족이 동북지역을 지원하는 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그 케이크를 먹는 것이 피해지역 복구와 삼림재생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방식이 일본에서 확산하게 된 것은 경제활동을 하며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그것을 목표로 연구하고 노력하며, 또 실수와 실패 속에서 배워가는 중이다.



필리핀 식림활동 필리핀에서의 워크숍 활동
필리핀 식림활동 필리핀에서의 워크숍 활동

본능으로 느낄 수밖에

아만토 공동체는 소비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예술을 실천하는 옛 공동체 생활을 배우기 위해 시작한 작은 실천에서 시작되었다. 예술이 학문이 되고 경제 수단이 되어 소비되고, 디자인이 환경파괴의 원인이 되고 있는 현대의 예술은 전문가가 독점하는 좁은 영역에 갇혀있다. 그러나 예로부터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 ‘천연예술’(EART)이라고 하는 DNA가 존재하고, 사람은 예술을 통해 재생되며, 예술로 다음 세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문화를 창출해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나카자키쵸의 실험이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해외에서 주목을 받는 것도 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인류는 ‘천연예술’이라는 장치를 생명 속에 갖고 있어서, 그것이 맛있는 식사와 마찬가지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생명의 양분임을 모두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고로 ‘천연예술’(EART)이란 지구(EARTH)에서 ‘H’를 떼어낸 말로 ‘H’를 맨 앞으로 보내면 ‘마음’(HEART)이 된다.





준 아만토 필자소개
준 아만토는 어린 시절부터 무술을 익혀 스턴트맨, 거리 공연생활을 거쳐 무용가로 활동하고 있다. 환태평양 지역에 전해오는 옛 부족들의 동작을 기본으로 하는 가부쿠마이(傾舞)를 창시했고, 자신의 ‘몸철학’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국제 자원활동가로도 폭넓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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