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대한 호기심에서 대학원 진학, 인턴, 코디네이터, 독립 큐레이터 그리고 신생 공간 공동 대표까지 시각예술 기획 매개 직업 경력의 기본(?) 코스를 밟아 온 최정윤. 작지만 단단한 기획과 운영의 포부 가득한 신생 공간 ‘위켄드’에서 어떤 시도와 가능성을 준비하는지 살펴본다.

동시대 미술에 매료된 영문학도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원래는 미술을 좋아했다. 그래서 대학생 때 취미로 유화 모작 동아리 활동을 했다.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여러 전시를 찾아보고 미술 관련 수업도 들었다. 그 당시 현대미술 수업 선생님이 수강생들에게 매주 봐야 할 전시 리스트를 줬는데, 그때 처음으로 동시대의 미술, 역사가 아닌 현장에서의 미술을 접하게 되었다.

미술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미술사 대학원에 진학했다. 선배들의 추천으로 여러 전시 공간의 통·번역 아르바이트나 인턴을 하며 현장을 전전하다 비엔날레 코디네이터까지 경험했다. ‘유능사’라는 팀으로 평론 공모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아트인컬처> 기자로 1년 5개월 동안 미술 현장을 돌아다녔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공공미술 관련 일도 했는데, 여러 기관에서 미술계의 여러 면을 경험하면서 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고 그는 회상한다.

잡지사 기자로 일했던 경험이 전시 기획을 시작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잡지사에서 1년 5개월 정도 일했어요. <월간미술>이나 <아트인컬처> 등 우리나라의 미술 잡지들이 쌓아 온 오랜 세월의 축적이 있잖아요. 그때마다 기자들이 바뀌고 편집장도 바뀌면서 분위기도 달라졌죠. 기사를 쓸 때나 기획을 할 때 이전의 것들을 많이 리뷰하게 돼요. 기존에 해온 것 중에 좋은 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 속에서 나만이 잘할 수 있는 걸 찾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또래 젊은 작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와 비슷한 세대의 이야기는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젊은 작가 전시, 관련 주제, 프로그램에 대해 더 취재하며 관심을 가졌고, 젊은 기획자가 젊은 작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어요. 이러한 갈증이 <청춘과 잉여>라는 전시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죠.

첫 기획이었던 <청춘과 잉여> 전시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청춘과 잉여>는 젊은 작가들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 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한 기획전이었어요. 하나의 주제 안에서 지금의 젊은 작가가 역사 속 선배 작가와 어떻게 다르고 어디가 비슷한지를 보여 주고자 했죠. 젊은 작가와 선배 작가가 협업하고 그걸 비교해 보는 작업을 통해서 자기 색깔을 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거나 자극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요. 서로가 배울 수 있는 관계를 생각했어요. 서로 다른 섹터에서 다른 색깔로 작업하고 있지만 동등하게 작가 대 작가로 만나고, 동시대의 다른 지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형태를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잡지사를 그만두면서까지 열의를 가지고 시작했고, 사전 조사부터 주제 선정과 작가 섭외에 많은 공력을 기울였어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섯 명의 선배 작가, 다섯 명의 후배 작가 그리고 다섯 명의 기획자가 협력하면서 많은 경험과 고민을 했던 전시였어요. 사실 너무 큰 주제였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과했을지도 몰라요. 꽤 오랜 시간 준비하고 싸우면서 다듬었지만, 결과물 자체로 평가한다면 완성도나 짜임새 면에서 부족한 게 많았죠. 그래도 저한테는 큰 공부가 되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전시는 무엇이었나요?

<청춘과 잉여> 전시를 하면서 전시에서 다루었던 여러 주제와 담론 중에서도, 회화 안에서 새로운 주제들에 관심이 생겨 <룰즈>란 전시를 준비했어요. 추상적 미술이 젊은 작가들의 작업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회화 자체에 대한 관심과 세대적 관점을 교차해 보았어요. 공공 기금을 받긴 했지만, 거의 11개월간 준비해 만들었어요. 동시대 미술과 추상 미술의 관계는 제 주요한 관심이거든요. 저 혼자서 기획한 첫 번째 전시라서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주말에만 문을 여는 특별한 공간

독립 큐레이터로 일할 때 힘든 점 중의 하나는 공간 섭외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 기획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기도 한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로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공간을 내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전시를 준비할 때 공간 섭외에만 서너 달이 걸린 것 같아요. 이런 것에 시간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차라리 내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거죠.” 그래서 최정윤 대표는 자신의 공간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청춘과 잉여> 전시가 있었던 커먼센터가 문을 닫은 자리에 무언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을 터. 하지만 그는 좋은 작품이 있고, 그것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기획자와 작가 동료가 있다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견고한 기성 시스템 속 작은 틈 안에 우리만의 정직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문래동 월세가 크게 비싸지 않고, 주변에 작업실이나 신생 공간들이 많아 흥미로운 지역이기도 했던 것이 그의 결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위켄드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지만, ‘주말처럼 충분한 휴식을 위한 시간’이자, ‘일상에서 벗어난 시도를 할 가능성의 시간’이라는 의미도 있어요. 공동 설립자와 함께 올해 여덟 번의 개인 프로젝트를 나눠 하는데 ‘따로 또 같이’라는 느슨한 연대를 지향해요. 작가들에게는 담당 기획자가 제시할 수 있는 예산 안에서 가능한 한 작가 스스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 수 있는 전시를 협의해 만들어요. 일단은 저희 자체 예산 안에서 무리하지 않고 운영 가능한 조건 안에서 활동하려고 해요. 자립을 위한 재원 조성이 필요하긴 한데, 아직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미술 기획자로 산다는 건

독립 큐레이터의 경우, 프리랜서나 마찬가지라서 일정한 수입이 없다. 전시나 프로젝트 지원금도 기획자 인건비를 책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원고료도 현실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고, 번역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행사에 패널로 참여해서 수입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아 기획을 위한 과정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런데도 기획자라는 직업에는 놓칠 수 없는 매력이 분명히 있다.

기획자라는 직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가깝게 지켜볼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전시나 프로젝트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잘 맞지 않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긴 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직업이 생각보다 많지 않잖아요.

올해 계획은 무엇인가요?

2016년에 박사과정에 입학해서 학업을 이어 가고 있는데, 학업과 현장 능력을 연결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위켄드가 올해 진행할 전시도 준비하겠지만, 공간을 주말에만 여니까 주중에는 몇 가지 스터디를 하고, 작년에 시작해 올해 마무리한 <룰즈>와 <사물들 : 조각적 시도들>을 하면서 파생된 일들이 생길 거 같아요.

최정윤 대표는 미술 혹은 예술에 대한 글쓰기가 항상 어렵다고 한다. 정답은 없지만, 자신의 글이 작품과 너무 멀어지거나 과도한 해석이 되지 않기 위해, 솔직한 글쓰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그가 생각했던 건, 소수 의견만 부각되면 미술계가 균형감이 없고 흥미가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늘 고민하고 있다. 이런 의식 있는 기획자들이 있어서 우리 미술계에 그려질 더 큰 그림에 기대를 걸어 봐도 좋을 것 같다.

인생UP데이트

미술 전공자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일자리는 제한되어 있기도 하고, 안정적이지도 않아 쉬운 길을 아니라고 봐요. 부산비엔날레 코디네이터를 할 때 어느 작가가 “Enjoy and Survive”라는 스티커를 주었는데, 내가 즐겁지 않고서 이 일을 오래 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개인적으로 재작년에 큰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일을 오래하기 위해서라도 건강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꼭 해야 해요. 정말 중요해요.

최정윤 프로필
학력
- 이화여대 영어영문, 미술사 학사 졸업
-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석사 졸업
-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재학 중

주요 경력
- 前 부산비엔날레 전시팀 코디네이터
- 前 아트인컬처 편집부 기자
- 前 아시아문화개발원 공간기획팀 공공미술 담당 연구보조원
- 現 독립 큐레이터
- 現 위켄드 공동 설립 및 운영

주요 전시
- 테이크아웃드로잉 <관계-수집: 윤정미 개인전(Artist Who Collects)> (2014)
- 2014 아트캠페인 바람난 미술 – 찾아가는 전시, 협력 기획 (2014)
- 원앤제이갤러리 <룰즈(Rules)> (2016)
- 두산갤러리 <사물들: 조각적 시도(Things: Sculptural Practice)> (2017)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