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활동(art practice)을 위한 공익적 성격의 지원기금(fund)은 다양하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부터의 모금된 기금, 문화예술재단의 기금, 기업의 자금, 그리고 정부기금 등이 있다. 자금을 운용하는 주체는 주어진 목적과 성격에 따라 예술 활동을 지원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다양한 지원방법을 취한다. 특히 기업이나 비영리기관들이 공모전과 시상이라는 콘테스트를 통해 기금을 분배해왔고, 이는 현재 다양한 분야로 대중화·확산되었다. 정부도 여러 종류의 기금을 두어 지원하고 있고, 분배를 위해서 공개모집/공개입찰이라는 지원방식이 선호되어왔다. 이 방식은 공모/공개를 통해 기회를 활짝 열어놓고 최대한 널리 일반에게 알리는 개방성을 최선으로 하면서, 지원금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점, 평등한 기회를 공유한다는 공정성, 그리고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공공성이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고 전략화 되었다. 이러한 점들로 인해 역으로는 기금을 운용하는 지원의 주체가 공익적 이미지로 홍보되기도 한다.

공모의 긍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에 대해 항상 불만과 함께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든 원인은, 100% 공개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점과 함께 무한경쟁 속 선정 방식이었다. 게다가 공모가 갖는 공정한 기회 제공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선정에 있어 우수성을 따지는 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인들이 지원금을 타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또한 선정심사가 갖는 한계에 의해 담합이나 부적합 또는 수준 저하와 같은 부정적 결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이점을 보완하며 등장한 것이 공개지명경쟁 방법이다. 전문가 추천 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수행이 가능한 일부를 지명 추천받고, 사회적 합의를 대리하는 선정단이 노미네이트(nominated)된 자들 가운데 최후 적임자를 선정하는 방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즘에 반대하고 자율적 출품을 행했던 ‘앙데팡당(Independent)’을 떠올리며, 문화예술 지원에 있어 단순경쟁의 방법과 심사에 대한 보완과 재고(再考)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보다 진화한 기술과 미학이 필요

근대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반만년 역사동안 구현해보지 못했던 공모-공개와 선정-입찰이라는 사회계약절차들을 발전시켜왔다. 이 절차는 공개라는 과정과 함께 다수가 경쟁에 참여할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민주적 형식을 취한다. 여기서 ‘대중성’ 또는 ‘공공성’과 같은 모호한 대상을 가진 목표는 일반대중이 느끼는 정치 권력적 박탈감을 보상하면서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부상했고, 이러한 절차는 민주적이고 공정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동시에 이러한 ‘공공’의 목적을 위한 방식은 지원기금 분배에 대한 공평함을 담보하면서 특혜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책임해방의 지대를 보장한다. 절차에 참여하는 모든 개별자가 무한 경쟁과 특정 목표지향으로부터 보호받고, 사회적 자기반성이 가능한 주권자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보장해주는 보완이 필요해 보이는 지점이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독특한 가치와 함께 똘레랑스(tolerance)와 같은 공동의 동의, 합의를 이루어 가는 보다 진화한 계약방법들이 필요해 보인다.

모든 시민의 기본 권리와 의무가 지켜지고, 이것을 책임지고 받아들이게 하기위해서는 조직사회의 가치와 목적을 논증해 낼 수 있는 계약상태가 필요하다. 이는 국가와 사회의 목적을 위해 개인의 이해관계 간 충돌 및 분쟁을 해결하고 계약을 통해 개인의 권리를 조금씩 양도해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합의되어 왔다. 합리적 이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개인적 사리추구를 제한하고 사회적 동의에 입각한 한에서 공공의 이익을 보장받고자 한다. 우리도 이러한 서구의 사회계약설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지만, 단기 경제학 논리로 전통의 단절과 고속성장의 맛을 본 한국 사회에는 공동의 명분과 의미화 과정이 누락되었다. 무한 자유 시장경쟁과 가치 상실로 인해 개별적 주체들은 타인을 통한 자기성찰의 기회 또한 박탈당했다.

문화예술을 경제적 가치기준으로 전환시켜 자유경쟁체제로 몰아가는 요즘, 공모가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지원금 분배 방식은 제도 및 시장의 앞날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에서 기인함이다. 서로 다른 사람의 입장과 권리를 용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 일을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가 중요하다. 나와 다른, 이해관계도 다르고, 심지어 나의 이익을 침해하는 상황과 대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자기반성을 통해 주체를 회복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 공적인 배분을 위한 관용의 기술과 미학이 적용되길 기대해본다.



오세원 필자소개
오세원은 2011년 구서울역사 복합문화공간인 문화역서울 284의 개관 및 운영을 담당하였다. 2009~2011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하면서 이상탄생100주년전시 <이씨의출발>전을 포함 다수의 전시를 기획하였으며, 신진작가 및 독립큐레이터 성장프로그램을 기획&middot;운영하였다. 그 외 청록파 대표로서 문화기획 및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현재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예디자인진흥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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