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에 별 관심 없는 자가 한류에 관해 쓴다는 게 뭔가 어불성설이다 싶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해보았다. 한류라 하면 한나라 ‘한(韓)’자를 쓰고 있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로 흐르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 내가 이 나라에서 시작되어 외국으로 나가고 있는 이 흐름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 나라 전체에 관심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이 나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수한 사건들, 예컨대 대통령 선거부터 CCTV를 확대 설치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각종 이슈에 대해 필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국가가 민간인을 사찰하므로, 민간인이 국가를 사찰하지는 못할망정 관심이라도 가져야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물리적으로 발을 붙이고 사는 공간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국가라는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기 때문에 국가공동체적 경사를 의도적으로 외면 하)는 무정부주의자인가. 아니다. 나는 그 정도로 깊은 고민을 하여 한 개인의 일신을 국가체제에 종속 시킬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결정하는 위인은 못 된다. 그럼 무엇 때문인가? 간단하다. 그건 내가 아이돌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여기서 필자의 지대한 성원을 받고 있는 ‘걸스데이’는 논외로 하자. 그들은 ‘한류’라는 범주에 묶여 해외에서 활동한 바가 없다). ‘아니, 아이돌에 관심이 없다면 한류에 관심이 없는 건가?’ 라고 반문할까 고민해봤다. 맞다. 내가 한류에 관심이 없는 이유를 하나 더 찾았다. 그것은 내가 드라마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럼 아이돌과 드라마에 관심이 없다면 한류에 관심이 없다는 건가?’, 라고 항의할 독자가 있을까봐 고민해보니, 그랬다. 아이돌 음악과 드라마에 관심 없는 자가 웬만해선 한류라 불리는 것들 중에 흥미를 느낄 게 없는 게 바로 현재의 상황이다.

싸이 강남스타일

‘개천에서 용 난’

물론 예외는 있다. ‘유튜브’를 통해 올해 뮤직비디오가 폭발적인 주목을 받아 인기를 끈 가수 싸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국제가수가 된 싸이의 성공에 대해 미디어는 연일 고양된 톤으로 마치 올림픽이나 국가대항 주요 경기의 승전보를 알리듯 보도했다. 문화산업종사자들 역시 싸이의 성공에 고무되어 그가 마치 한류의 선두주자가 되는 양 성원했다. 물론 필자 역시 싸이의 음악을 좋아하고, 그의 성공을 마음 속 깊이 흐뭇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성공과 한류는 구분지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필자가 이 단락에서 싸이를 소개하며 서술한 문장에서 사용한 단어, ‘유튜브’에 주목해주기 바란다. 유튜브란 무엇인가. 그것은 영상의 공급에 관해서라면 일대 혁명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 ‘누구나, 손쉽게, 전 세계에’ 영상을 뿌릴 수 있는 미디어가 아닌가. 이 말은 무슨 말인가. 한 평생 수용자로 살아온 필자의 동네 친구 권봉석 같은 녀석들이 기껏 생일이랍시고 고깔모자를 뒤집어쓰고 케이크에 얼굴을 박고 있는 영상마저 올려대는 사이트가 아닌가. 아니 그게 무슨 대수냐고 반문한다면, 이 녀석은 버전별로 빨간 고깔모자, 파란 고깔모자, 별 박힌 고깔모자 쓴 영상, 얼굴에 케이크를 박은 영상, 얼굴에 묻은 케이크를 닦은 영상, 그리고 그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영상까지 골고루 집요하게 올리는 녀석이 아닌가. 게다가 녀석처럼 수용자에서 생산자로 신분이 바뀐 사람들이 감격에 겨워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은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는 미디어 아닌가. 공감되지 않는다면, 세계 각국에서 색깔 별로 고깔모자를 쓰고 케이크에 얼굴을 박고 있는 백인, 흑인, 황인, 인디오, 메스티소 영상이 매일 업로드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물론 하나의 비유이자, 예시에 불과하지만 유튜브는 이러한 곳이다. 즉, 이러한 곳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주목을 받아 성공을 했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도 그저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류의 쾌거니, 한류의 새로운 창구니, 새 접근법의 발견이니 하는 표현은 구차하지 않은가.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해보더라도 싸이의 성공은 의도치 않은 결과가 아닌가.

물론 (그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싸이가 몹시 겸손하고, 자신의 공로를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그가 주도면밀하게 이 모든 과정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획하여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하고, 전 지구적 패러디 현상이 모두 그가 기획한 대로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적을 우연으로 돌리고 있다고 쳐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통제 변수가 거의 없는 이 과정 역시 (우주의 별처럼 많은 권봉석류의 영상들 사이에서 단독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결국)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가 아닌가. 우리는 싸이의 성공에서 과정을 거세한 채 단지 결과만을 주목하여 한류의 범주에 넣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그의 경우는 무수한 우연의 단계들이 중첩되어 빚어진, 즉 확률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 실현된 극소수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 외의 거의 모든 한류 상품들이 철저한 생산자들의 기획과 마케팅, 유통 과정에 의해 빚어진 결과라는 것에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옹색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시 한류의 효자 종목으로 돌아와 보자. 아이돌 음악과 드라마다. 그리고 한류를 받아들이고 있는 외국의 수용자들이 과연 아이돌의 음악의 어떠한 면에 주목하고 있는 지 보자. 문화부가 2012년 10~11월 중국·일본·대만·태국·미국·브라질·프랑스·영국·러시아 등 9개국 3,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2차 한류 및 한국이미지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류의 인기요인으로 ‘매력적인 외모’가 52.1%를 차지했다. 이런 말을 굳이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필자는 아이돌들의 얼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것은 대부분 비슷비슷하게 생겼단 말이다. 처음에 데뷔할 때는 구분이 가능한데, 잠깐 활동을 쉬고 나오면 얼굴이 똑같아 져서 돌아온다. 무슨 말인가. 한류의 주요 인기요소 중 하나인 ‘매력적인 외모’가 획일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외모로 인기를 끈 한류가 장기적으로는 성공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 보는 이유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아시아에서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에 아시아적 현상이라 볼 수도 있다.

표

그럼 미주와 유럽에서 꼽은 첫 번째 매력요소를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새롭고 독특함’(56.1%)을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1차적으로는 미주인과 유럽인들에게는 한국의 대중음악이 새롭고 독특해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차적으로는 아시아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들의 음악이 덜 새롭고 독특해보였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미주와 유럽에서도 항상 ‘새롭고 독특하지 않는 한’ 한류의 지속성은 담보하기 어렵다는 경고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한류의 효과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한다고 우려할 수도 있지만, 단지 한류의 결과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아가 어떤 사람이나 대상에 대해 느끼는 ‘새롭고 독특함’이란 감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매번 보아온 사람이나 대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 칭찬할 면모이지만, 이것은 이제 익숙해지면 ‘곧 사라지고 말 매력’이라는 것이다. ‘새롭고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갔다면, 그로 인해 얻은 호감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매력’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넓게 보자면 ‘매력적인 외모’라는 요소 역시 ‘새롭고 독특함’이란 요소와 겹치는 교집합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시아인들에겐 한국적 미(美)가, 미주・유럽인들에겐 동양적 미(美)가 새롭고 독특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들이 보아왔던 일상적 배경에 불과했던 인물들과 아이돌 가수나 배우의 외모는 분명 달랐을 테니, 새롭게 여겨졌을 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익숙해지고 나면 (나아가 헷갈려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익숙해져버리면) 좀 더 본질적인 차원의 매력을 갈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한류의 성공에 들떠 축배를 들기엔 일렀다. 자칫하면 세계 각지를 뜨겁게 데운 ‘한류현상’이 곧 차갑게 식어버릴 ‘한류(寒流)현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필자가 첫대목에 언급한 가장 주요한 요소, 즉 한류라는 것은 아직 아이돌 음악과 드라마에 편중된 현상이 아닌가.

문학과 학문, 미술과 건축, 연극과 영화 등 다양하고 폭 넓은 차원의 식지 않을 ‘흐름’이 일어날 때 비로소 한 나라의 이름을 붙인 ‘한류’라는 단어가 옹색하지 않을 것이다.
최민석 필자소개
최민석은 1977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났다.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3회 창비 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2012년 장편소설 『능력자』(민음사, 근간)로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쓴 책으로는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조화로운 삶, 2010)가 있고, 현재 6·70년대 지방 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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