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류의 확산으로 문화예술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예술분야의 기반 확충이나 효과적인 지원정책은 아직 미흡한 편인데 반해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번 연재는 공연예술분야에서의 한류가 어떤 의미인지, 현장 종사자들이 어떻게 체감하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지속적인 공연예술한류를 모색하기 위한 향후 과제들을 짚어봤다.
연재순서
① 공연예술한류란 무엇인가
②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산업화
③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경쟁력
④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문화적정체성
⑤ 지속가능한 공연예술한류의 모색-공공의 역할
⑥ 지속가능한 공연예술한류의 모색-문화정책적 과제
아프리카 콩고 민주공화국 리상하 무용단의 공연모습
쇼바나 제야싱 무용단의 공연모습

▲▲ 아프리카 콩고의 리상하(Li-Sangha) 무용단(Photo by Park Sang Yun) 아프리카 콩고 민주공화국 리상하 무용단의 안무가 오르치 은자바는 Institut Fraçais가 후원하는 마키누 반투 축제 예술감독을 겸하며 방한 후 L.K. 무용단(대표: 이경은)을 축제에 초청했다.

▲ 쇼바나 제야싱(Shobana Jeyasingh) 무용단의 <플리커>는 바라타 나티얌에 뿌리를 두었으며 마이클 나이먼의 음악과 멀티미디어 그룹 디짓의 영상 작업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Photo by Chris Nash)

2002년의 일이다. 독일 뒤셀도르프와 네덜란드 안하임 유럽무용개발센터(EDDC, European Dance Development Center)의 설립자 겸 교장을 역임했던 아트 후게(Aat Hougee)가 국내 한 포럼에서 &ldquo;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속성인 컨템퍼러리가 이제 유럽에서는 죽었다&rdquo;고 말하며 홀연 러시아로 떠났다.

그리고 2004년 아크람 칸이 싱가포르에 이어 처음 한국에 와 공연했다. 사르트르가 경멸해 마지않던 알제리 출신 알베르 까뮈가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듯 인도 출신 아크람 칸이 영국을 대표해 아시아에 진출한 것이다. 정부의 전폭적 후원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시아는 보고(寶庫)

2000년대 초부터 아시아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구주(歐州)는 그 이전에는 과거 식민지에 집중 투자하고 있었다. 이는 아시아 공연에 대한 수요가 2000년대 이전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은 중단했지만 프랑스가 외교부에 특수 부서를 편성하면서 불어권 아프리카에 투자해 1995년 시작한 아프리카 인도양 안무대회(Rencontres chor&egrave;graphiques de l&rsquo;Afrique et de l&rsquo;Ocean indien-Danse en Creations) 출신 예술가들이 시장 수요의 일정부분을 채웠다. 또한 세네갈, 부르키나 파소, 말리 등을 비롯해 아프리카에서 치러지는 각종 무용행사에 지금도 재정지원을 하고 있음은 물론 2008년에는 지정학적으로 중남미 권역을 아우를 수 있으며 출중한 무용수 공급처인 쿠바에 투자해 카리브 댄스 비엔날레(Caribbean Dance Biennale)를 시작했다.

한편 영국에서는 쇼바나 제야싱, 아크람 칸과 같이 명성 높은 안무가를 비롯해 카탁과 바라타나티얌 혹은 이를 현대적으로 작품화한 인도출신 안무가들이 일찍부터 활약했는데, 2006년 나흘간 매일 7~8편 이상 공연을 소개한 브리티시 댄스 에디션(British Dance Edition)에 이들의 공연이 적어도 하루 1~2편 이상 소개될 정도로 영국무용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투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년간 인도네시아 공연예술 작품과 인적자원을 유럽에 소개해 준 &lsquo;네덜란드 친구&rsquo;가 어느 대륙에서건 접근성 높은 발리에서 국제행사를 주관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또한 2010년과 2012년 독일의 인터내셔널 탄츠메세(International Tanzmesse NRW)는 대만을 주빈국으로 다뤘다. 대만 안무가들이 이를 통해 큰 실익을 거두었음은 물론이다. 싱가포르 기획자가 프로모션 하는 인도네시아의 제코 시옴포(Jecko Siompo)는 독일에서 열렬히 환영을 받았다.

이제 유렵 무용계의 관심은 아시아를 향하고 있다. 1980년대 국제적으로 붐이 일어 유행처럼 부토를 배워가는 등 비교적 일찍부터 활발히 교류하고 있던 일본이나 거대자본이 요동치는 중국, 그리고 어부지리 정도로만 여겼겠지만 한국 또한 매력적인 시장임을 분명이 인식하고 있다. 아트마켓의 라운드테이블에 일본과 한국 프로듀서가 나란히 앉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광적으로 흥분하며 달려오던 영국 무용가들의 반응은 이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한편 &lsquo;이색적&rsquo;인 컨템퍼러리가 유럽 무용계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동안 아시아 역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수십 년간 명성을 쌓은 국제행사나 극장에서 활동하던 아시아 프로듀서들이 아시아 간의 협력 혹은 아시아 문화의 국제화에 본격적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대만, 싱가포르, 일본, 한국, 호주, 홍콩 기획자들이 뜻을 모아 2001년 시작해 6년 동안 지속했으나 재정과 시장의 한계 때문에 종료된 리틀 아시아 댄스 익스체인지 네트워크(이하 LADEN, Little Asia Dance Exchange Network)는 다국 간의 협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4년 출범한 아시아 공연예술축제연맹(AAPAF, Association of Asian Performing Arts Festival)은 공동제작 진행 및 아시아 축제행정가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 밖에도 아시아 각지에서는 수요발생에 따른 충분한 콘텐츠 및 국제적 공신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일었다. 아쉽게도 LADEN은 시장보다 너무 앞섰기 때문에 중단되었지만 2005년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시작한 서울아트마켓(PAMS, 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과 홍콩아트페스티벌이 2008년에 시작한 아시아-태평양 무용플랫폼(Asia-Pacific Dance Platform)은 실질적 수요를 겨냥한 아시아 공연예술의 매우 능동적인 국제마케팅 사례라 할 수 있다.

브레시트 무용단의 ‘조화와 불균형’ 공연모습

▲ 브레시트 무용단(Bereishit Dance Company)의 <조화와 불균형>(Balance and Imbalance)
브레시트 무용단은 전 박순호 댄스 프로젝트로 다국적 레지던스를 통해 만든 작품과 한국전통소리와 현대무용을 조합한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주목 받으며 아시아는 물론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과 남미로 활동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김윤진과 딘 모스의 <Kisaeng Becomes You> 공연 EDx2 무용단의 <Modern Feeling> 공연모습
(좌) 뉴욕 DTW와 서울세계무용축제가 공동제작협력자로 나섰던 <Kisaeng Becomes You>는 홍콩과 뉴욕공연을 통해 한국공연에 대한 그간의 인식을 바꿔 놓았으며 2009년 타임아웃 뉴욕 Best 11에 선정되었다. (Photo by Park Sang Yun)

(우) EDx2 무용단의 <Modern Feeling> 이인수가 창단한 EDx2 무용단은 힙합과 현대무용을 화려한 볼거리와 함께 조화시킨 작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 Jacop';s Pillow, Lincoln Center를 비롯해 유럽, 남미, 아시아 각국에서 초청받아 공연하고 있다. (Photo by Park Sang Yun)

하지만 아시아라고 해서 무조건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국제적인 전략가들로부터 주목받은 소수 예술가가 고유의 정체성을 자산으로 유럽에 형성된 아시아공연예술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나라별 편차도 매우 심하다.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화교권 출신 안무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며 이들과 비교적 활발히 교류하는 동남아시아 안무가들이 그 뒤를 따른다. 하지만 그들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일본과 한국이다.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이 유일하게 정부와 기업 그리고 학자들까지 나서 대규모 물량을 투입해 국제예술계를 풍미한 이슈(부토)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오로지 개인의 역량으로 틈새를 뚫고 들어가 자리 잡은 것이 한국 무용수들이다. 90년대 후반까지 유명 유럽무용단에는 일본인 무용수가 포진하고 있었지만 이제 한국인 무용수가 상당수 그 자리를 대치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대중문화처럼 확산속도가 빠르지 않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새 무용에서의 한류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예술감독으로서 재능 있는 젊은 춤꾼들을 볼 수 있었는데 박순호는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두드러지는 안무가다”&#13;&#10;_ 꽝 와이 랍, 광동현대무용제 전 예술감독&#13;&#10;&#13;&#10;“직접 본 30여 편 작품 중 내가 고른 브레시트 무용단, EDx2무용단, 안지형이 최고다. 이번 우리축제에서도 단연코 한국이 최고다”&#13;&#10;_ 뎁 애슈비, 어반 무브스 국제무용제 예술감독&#13;&#10;&#13;&#10;“김윤진과 딘 모스가 함께한 <Kisaeng Becomes You>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성을 지닌 세련된 작품으로 며칠 동안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13;&#10;_ 줄리 포더링햄, iDNAZ

한국무용의 약진

한때 유행했던 트렌디 드라마를 계기로 한국드라마는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뛰어난 한류상품으로 발전했다. 90년대 서태지 열풍이 가요계의 신구교체를 이뤄내며 한국대중음악의 다양성 확보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동 기간 매체의 진보와 채널확대는 대중문화의 소비패턴을 바꿔놓았다. 2010년을 전후해 아이돌 중심 한국대중문화의 한류는 국제적인 붐을 이뤄냈다. 바로 이와 같은 시기 영상매체의 영향을 지배적으로 받으며 성장한 젊은 안무가들이 무대 전면에 등장해 조심스럽게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축제나 극장, 각종 기획 프로젝트 등 양적으로 팽창한 국내 인프라가 수많은 기회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더 많은 무용수들이 국제무대를 경험하게 되었고, 해외무대에서 활동했던 선배들로부터 동기부여를 받게 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양적 팽창은 동시에 국제교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워낙 멀어서 물류비용에 대한 부담으로 크게 관심에 두지 않던 외국 프로듀서들이 한국에 올 기회가 많아졌고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ldquo;한국 무용수의 기량이 출중하다&rdquo;는 것은 알았지만 그 외 정보가 많지 않던 사람들이 &ldquo;한국 작품을 사기 시작&rdquo;했다. 자주 방한하던 일본 기획자는 2010년 국내 작품 여러 편을 둘러보고 &ldquo;최근 2~3년간 한국무용의 약진에는 혀를 내두를 지경&rdquo;이라고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2010년 한국 7개 무용단이 스페인의 4개 도시 축제 및 극장을 순회했다. 이 중 두 명의 안무가의 작품은 다음해 쿠바, 스페인, 폴란드, 멕시코에, 2012년에는 영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미국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했으며 2013년 인도,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브라질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2012년 이스라엘 초청공연 후 시나르(2012 Cinars, Commerce International des Arts de la scene)에서 한국무용단으로는 처음 공식프로그램에 선정된 작품은 2013년 인도, 중국, 루마니아, 미국 공연을 앞두고 있다. 또한 2014년 벨기에 극장과 축제는 한국 무용을 특집으로 소개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진행 중이다.

최상철 현대무용단(Choe Contemporary Dance Compamy)의 <논쟁>(Arguement)

▲ 최상철 현대무용단(Choe Contemporary Dance Compamy)의 <논쟁>(Arguement)
최상철 현대무용단의 안무가 최상철은 일찍이 멀티미디어 댄스를 리드한 안무가로 피아니스트 임동창, 영화감독 박철수 등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초연 후 3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온 레퍼토리로 인도, 미국, 루마니아, 중국 공연을 협의 중에 있다.

이제 작품으로 승부할 때

무용분야의 국제교류에 있어 과거 선배들이 거쳐 왔던 주류무대로의 화려한 진출과 지금의 교류 양상에는 차이가 있다. 아시아, 유럽, 북미, 남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문화권과의 공동작업 및 레지던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메이저급 행사뿐만 아니라 중소규모 축제 및 극장과의 교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대상 권역도 아랍, 아프리카, 남미 등으로까지 확대되었음은 물론이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 이미지를 조사했다. 한류 최고로는 케이팝을, 이어 드라마를 꼽았으며 아시아 응답자는 &lsquo;매력적인 외모&rsquo;(52.1%)를 그리고 미주와 유럽은 &lsquo;새롭고 독특함&rsquo;(56.1%)을 이유로 들었다. 이것이 한국제품 구매, 한식체험, 한국방문 순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연구결과로 내놓았는데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스태프들한테도 기념사진촬영과 사인을 요구하던 에쿠아도르 과야낄, 콜롬비아 깔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났던 젊은이들은 분명 한국 비보이에 열광했고 SNS를 통해 꾸준히 현대무용단을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다.

로잔, 잭슨, 바르나를 비롯한 국제콩쿠르에서 한국발레는 이미 실력을 입증했다. 이제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한국무용수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무용한류는 지속되어 왔으며 이제 우수한 인적자원 외에도 그것이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건, 현대를 사는 개인에 관한 것이건 정체성 혹은 철학을 담은 &lsquo;작품&rsquo;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물론 대관과 기획공연 합해 한해 총 473건 3,999회 공연(「2012년 공연예술 실태조사」참조)되는 작품 대부분은 일회성 행사로 끝나고 그 중 소수만 주목받는다. 또한 &ldquo;한국무용&ldquo; 이라는 새로운 국제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작품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국내외 환경변화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인프라는 지금도 진화 및 발전하고 있으며 적어도 당분간 매력적인 &ldquo;이색적 아시아 컨템포러리&rdquo;는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향후 국제교류 방법은 더욱 정교하게 다양해 질것이며 시장은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작품의 질적 성장과 좋은 콘텐츠 확보를 위한 보다 진지한 고민과 관심 그리고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김신아 필자소개
김신아는 서울세계무용축제, 다수의 국제교류 프로젝트 및 공동제작, 디지털 댄스 페스티벌, 공연저널리즘 서울포럼을 비롯해 아프리카&middot;아랍문화축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2011년까지 서울세계무용축제 사무국장으로 재직했으며 현재 프리랜서 아트 프로듀서로 무용 및 음악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하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등 심사위원, 매체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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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왜 공연예술한류에 주목 하는가-문화적정체성
⑤ 지속가능한 공연예술한류의 모색-공공의 역할
⑥ 지속가능한 공연예술한류의 모색-문화정책적 과제
⑦ [칼럼] 우리가 한류에 대해 착각할 수 있는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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