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를 주제로 전방위적으로 예술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역’이라는 화두를 예술경영의 관점에서 점검해보았다. 불과 2년 사이지만 ‘지역’은 더 이상 중앙의 정책 ‘대상’이 아닌 ‘지역문화분권’의 프레임으로 균형감 있게 살펴봐야 할 ‘주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지역과 예술경영’을 주제로, 6대 광역시별로 지역별 문화인프라 및 네트워크 현황을 살펴보고, 지역 예술경영인들의 다양한 의견과 제안을 들어보는 “예술경영, 지역을 사고思考하다 Ⅱ”를 마련한다. 이번호는 부산이다. 연재순서 광주 (‘12년 9월) - 대구 (‘12년 11월) - 대전 (‘13년 1월) - 부산 (‘13년 3월) - 울산(‘13년 5월) - 인천 (‘13년 7월)

 핫&이슈  ① 좌담_부산문화와 지속성  ② 현안과 제언

부산 문화계가 꿈틀대고 있다. 이만큼 역동적으로 움직인 때는 없었지 싶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뒤섞여 한꺼번에 돌출하는 형국이다. 먼저 문화계와 시민 간 간격이 좁아진 건 반가운 일이다. 문화계는 직접 시민을 찾아갔고 시민은 직접 문화를 창조하는 주체로 기꺼이 나섰다. 한동안 침체했던 청년 문화는 다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도 터져 나왔다. 민간 문화공간이 존폐 위기에 빠졌고 지역 연극계의 중심축이었던 가마골 소극장이 문을 닫았다. 부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오페라 하우스와 부산 현대 미술관 건립은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격동하는 부산지역 문화계를 속속들이 들여다본다.

공연을 준비하는 부산시민오케스트라 사진

▲ 공연을 준비하는 부산시민오케스트라

문화주체가 된 시민

3월 9일 부산 음악계는 흥분했다. 부산시민오케스트라가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창단 연주회를 열어서다. 몇 달간 어렵게 준비한 의지가 빛을 발했다. 시민오케스트라는 흥미로운 실험이다. 운영주체가 바로 시민이다. 단순히 연주를 듣는 수동적인 문화 활동에서 벗어나 시민 130여 명이 직접 후원해 만들었다. 시민오케스트라 초대 지휘자는 장진, 악장은 박경희가 기꺼이 맡았다. 단원도 60여 명을 모았다. 부산시민오케스트라는 민주적으로 운영한다. 시민 한 명이 주식 한 주(5만 원)만 살 수 있다. 특정 인물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서다. 음악회는 시민이 추천한 작곡가의 곡으로 꾸민다. 김창욱 시민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시민오케스트라는 부산의 음악 역사를 시민 중심으로 돌려놓은 첫 시도가 될 것입니다.”

시민오케스트라 탄생에는 사하문화사랑방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랑방은 3년 전 부산 사하구에 사는 문화예술 애호가와 주민이 만든 모임이다. ‘문화 예술을 통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에서 시작했다. 실력은 있지만, 인지도가 낮은 예술가를 발굴해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주민을 모아 좋은 공연을 보기도 했다. 지역아동센터 등과 연계해 청소년 500여 명을 대상으로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사랑방 회원 몇몇이 상업적인 요소를 배제한 순수 민간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로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부산시민오케스트라 태동에 큰 힘을 보탰다. 시민이 자주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문화주체로 나서는 일은 지역 문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또따또가의 문화축전에 참여한 국악밴드 아비오 사진

▲ 또따또가의 문화축전에 참여한
국악밴드 아비오

다가가고 소통하다

지난해부터 부산 문화계는 높은 문턱을 낮추고 시민을 직접 찾아가는 경우가 잦았다. 원도심 문화창작공간 또따또가는 2개월 이상 문화축전을 열었다. 재미있는 건 일상적인 공간에서 축전을 펼쳤다는 점이다. 거리에서 시인은 시를 낭송했고 국악밴드는 공연을 했다. 화가는 또따또가 일대 건물에 벽화를 그렸고 카페 밖으로 조그만 갤러리 창을 만들어 그림이나 조각을 전시하기도 했다. 뜻밖의 공간에서 예술을 만난 시민은 크게 호응했다.

미술계도 대중과 소통을 시작했다. 지난해 하반기에 열린 부산비엔날레는 대중과의 소통을 꿈꾸며 기획부터 전시까지 시민을 참여시켜 눈높이를 맞추려고 했다. 갤러리들은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진 전문 갤러리 ‘진·문’은 주택가에 문을 열어 시민과 직접 마주치고자 했다. ‘수호롬 갤러리 부산’은 해운대 대단지 아파트에 둥지를 틀었고, 갤러리 ‘오로’는 병원 건물 옥상에 자리 잡았다. 모두 규모는 작지만, 시민이 그림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시도가 돋보인다. 문을 닫은 지 오래돼 방치됐던 부산진역도 지난해 그림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부산시와 독일 함부르크시의 문화예술교류전이 열렸고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일상에서 예술의 향기를 전하는 일은 신선했다. 취재를 통해 시민이 문화를 만났을 때 얼마나 재미있어하고 즐거워하는지 알았다. 일상에서 공연을 본 시민은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고,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예술가와 관객이 서로 소통하는 것이 누구나 바라는 일임을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2011년 온천천에서 열린 부산독립예술제 공연 모습

▲ 2011년 온천천에서 열린
부산독립예술제 공연 모습
사진제공_재미난 복수

피어나는 청년문화

움츠렸던 부산의 청년문화도 활성화되고 있다. 2011년 부산대와 온천천 일대 거리와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회춘 프로젝트가 시발점이었다. 30·40대 젊은 문화기획자들이 힘을 합쳐 무려 3개월 이상 다양한 공연과 퍼포먼스, 전시회를 연 축전이었다. 부산대 앞에서는 100일 동안 쉬지 않고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 공연을 펼쳤다. 미술작가 10여 명은 온천천 변에 작품을 전시했고, 다양한 퍼포먼스로 시민을 만났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1톤 트럭을 타고 가 음악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회춘 프로젝트는 예술가 4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뜨거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열기는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회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문화기획자들이 다시 뭉쳐 부산 광안리 일대에서 부산청년문화수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8월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일렉트로닉, 힙합, 록, 월드 뮤직을 다양한 영상과 퍼포먼스를 결합해 눈길을 끌었다. 국내외 아티스트가 참여한 그래피티 작업도 신선했다. 부산 수영구 민락동 활어직판장 주차 타워에 높이 56m에 달하는 초대형 그래피티를 남겼다. ECB라는 독일작가가 늙은 어부를 그렸는데, 광안리 주민이 “큰 선물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기뻐했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 광남초등학교 담벼락에 그린 대형 그래피티도 인상적이었다. 국내 작가 KAY2가 그렸는데, 아이가 돋보기로 지나가는 어른을 관찰하는 흥미로운 그림이었다. 삭막했던 담벼락이 그림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역 주민이 지켜봤다. 바로 예술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회춘 프로젝트와 부산청년문화수도 프로젝트는 무대가 없어 공연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던 젊은 예술가들에게 힘이 됐다. 시민은 축제의 장으로 뛰어들어 문화를 체험하고 즐겼다. 청년문화 성장의 가능성이 보이자 젊은 기획자들은 비주류 문화를 알리는 웹진을 창간하고 정기적인 모임을 열기로 했다. 부수적인 성과다. 이런 청년문화가 꽃을 활짝 피우려면 뒷받침이 필요하다. 두 프로젝트도 부산의 젊은 문화기획자와 예술가가 부산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기획지원사업에 지원을 신청했고, 지원사업으로 선정됐기에 가능했다. 청년문화를 지원할 예산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문화기획자를 양산해 지역에서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도 절실하다. 예술가에게 합리적인 개런티를 주는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그게 지역 청년문화를 살리는 길이다.

소극장 폐관과 문화공간 폐쇄 위기

그러나 이어지는 문화공간의 폐관 소식이 안타깝다. 지켜주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얼마 전, 가마골 소극장이 문을 닫았다. 국내 대표 연출가 이윤택이 주도하는 연희단 거리패가 가마골 소극장을 이끌었지만, 버티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1986년 부산 중구 광복동에서 문을 연 가마골 소극장은 지역에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여 왔다. 하지만 수익이 나지 않았고 지역의 관심과 지원도 부족해 폐관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소극장은 시민의 관심으로 유지되고 성장한다. 지난 1월 영국 글래스고우를 방문했을 때 경험을 잊지 못한다. 실험극을 하는 문화공간을 찾았는데 평일인데도 객석 200여 석이 관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이 문화를 지키는 시민의 힘이다. 예술에 관심을 둬 줄 때 예술도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선사한다.

1 [이.상.공간] 부산 독립문화공간 아지트
(2012.05.03 기사)

2 [현장+인] 김성연 대안공간 반디 대표
(2011.11.24 기사)

부산지역 예술인의 문화공간 ‘아지트’의 세미나 모습

▲ 부산지역 예술인의 문화공간
‘아지트’의 세미나 모습

부산대 인근에 있는 문화공간 아지트1) 역시 폐쇄 위기에 처했다. 대안문화행동 재미난 복수라는 문화단체가 2008년부터 운영해온 아지트는 갤러리, 녹음실, 합주실, 게스트하우스까지 갖춘 문화공간이다. 아지트는 외국 문화예술인을 대상으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열어 인적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이런 아지트에 위기가 닥쳤다. 3월 계약기간이 끝나면 건물을 팔겠다는 의사를 건물주가 전해왔다. 재미난 복수 측에 건물 매입 우선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1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은 민간 문화공간으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건물주에게 사정해 1년 정도 시간을 벌기는 했는데,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지트의 위기는 2011년 말 대안공간 반디2)의 폐쇄를 떠올리게 한다. 반디는 2002년 부산 수영구 동방사거리에 있던 목욕탕 건물을 재활용해 지역 미술계의 버팀목이 됐었다. 반디는 예술 교육과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은 물론 전시공간이 필요한 작가에서 선뜻 손을 내밀었다. 미술계에서 소외됐던 지역 작가가 반디를 통해 데뷔했고, 무료로 문화 월간지도 발간해 미술 담론 형성에도 애를 썼다. 하지만 비용 문제로 10여 년 만에 문을 닫았다. 반디의 폐쇄는 미술계에 작지 않은 충격을 줬다.

지역 문화계는 “일단 아지트를 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시나 부산문화재단이 건물을 사들여 민간기획자에게 자율적으로 운영을 맡기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재 공간을 살 수 없다면 아지트를 이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 문화공간을 지키는 일은 지역 문화를 지키는 일이다. 민관이 협력해 지역 문화공간을 살리는 아름다운 사례를 보고 싶다.

대형 공연장과 전시장 건립의 추진, 그러나..

부산에서는 대형 공연장과 전시장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데, 바로 오페라 하우스와 부산 현대 미술관이다. 한데 둘 다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오페라 하우스 건립은 문화계와 시민의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다. 부산시는 오페라 하우스를 어떻게 운영할지, 공연은 무엇으로 채울지를 지역 문화계와 의논하지 않았다. 이런 여론이 일자 부산시는 최근 오페라 하우스 건립 운영에 관한 민/관/학 협의체를 구성했다. 하지만 협의체에 시민을 대표하는 인물은 소수에 불과해 형식적인 의견 수렴에 그칠 공산이 크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공모전 당선작

▲ 부산 오페라하우스 공모전 당선작

시민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문제다. 2018년 완공이 목표인 오페라 하우스는 건립에 2천400억 원 정도가 든다. 롯데그룹이 지역 공헌 차원에서 1천억 기부를 약속했지만, 1천400억 원은 부산시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하는 운영비도 어떻게 감당할지 사실상 대책이 없다.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대다수 시민이 충분히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다면 오페라 하우스를 짓는 건 문제가 아니다. 한데 부산에는 아직 오페라를 즐길 저변이 없다. 수천억 원을 들여 지은 오페라 하우스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일부 계층만 혜택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현재로선 오페라 하우스를 세울 땅이 없다. 부산시는 북항재개발 부지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립할 계획이다. 부지는 무상 취득을 전제로 했다. 한데 북항재개발 소유권을 쥐고 있는 부산항만공사는 무료로 땅을 제공하는데 난색을 보였다. 오페라 하우스가 들어설 용지 2만 8천여㎡는 땅값만 600억 원에서 최대 1천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부산시는 이 부지를 공원부지로 지정해 기부채납을 받을 계획이지만, 부산항만공사가 수락할지는 미지수다.

2015년 4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부산 현대 미술관도 용지에 문제가 생겼다. 부산시는 을숙도 일대에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현대 미술관을 짓기 위해 국가 소유부지 2만 9천㎡를 사들였다. 지난해 3월에는 한진중공업을 시공사로 선정해 공사를 추진했다. 한데 일이 터졌다. 현대 미술관 용지 중 상당 부분이 하천구역이어서 구조물이 들어서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놀란 부산시는 부산지방국토관리청에 미술관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하천구역 해제를 요청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난감한 상황이다. 하천구역 해제는 중앙하천관리위윈회 심의 등 복잡한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선례를 남기는 점도 부담이다. 공공사업을 이유로 하천구역 해제 요청이 잇따르면 거절할 명분이 없어진다. 이 일은 사하구청이 해당 용지를 하천구역으로 등재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지만, 부산시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조급하고 허술한 행정으로 문화 예술의 발목을 잡아서는 곤란하다.

최근 부산 문화는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를 지역 문화 성장의 계기로 삼으려면 관심과 지원, 그리고 협력이 필요하다. 문화는 계속해서 스스로 높은 벽을 허물고 시민에게 더 다가가길 바란다. 반짝 퍼포먼스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문화가 진정성을 보인다면 관객은 반드시 보답할 것이다. 그동안 홀대받았지만, 자생력을 길러 싹을 틔운 청년문화는 대견하다. 이제는 부산시가 청년문화의 손을 잡아야 할 때다. 청년문화와 같이 그동안 지원에서 소외됐던 장르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폐쇄 위기에 처한 민간 문화공간은 사실상 다른 대책이 없다. 부산시가 나서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민간 문화공간은 풀뿌리 지역 문화를 지탱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하우스 건립은 시민 의견 수렴이 먼저다. 행정 주도의 일방통행은 위험하다. 건물만 짓는 게 능사가 아니다. 오페라 저변을 확대하고 아카데미를 만들어 전문가를 육성하는 일을 병행해야 한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시민과 학계, 부산시가 힘을 합친다면 헤쳐 나갈 수 있다. 이제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서로 마음을 열고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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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균 필자소개
김종균은 1993년 부산대 경영학과, 1995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 졸업하고 부산일보 입사했다. 편집부 사회부 경제부 교육팀을 거쳐 현재 문화부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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