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한
무지개 다리(Rainbow Bridge) 시범사업 선정된
부천문화재단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문화다양성확산을 위한 무지개다리 사업’ 워크숍을 다녀왔다. 부천문화재단, 인천문화재단, 대전문화재단, 전남문화예술재단, 부산문화재단 등 12개 지원기관과 다수의 컨소시엄 기관들이 참여해 문화다양성의 의미와 사업기획의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업 워크숍이 언제나 그렇듯, 소소한 행정 처리부터 사업의 근본방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무지개다리 사업’의 키워드 몇 가지를 중심으로 사업의 방향을 가늠해보자.

다문화

이 말에서 당신이 연상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문화다양성을 상징하는 한 지표가 된다. 다문화라는 말은 무지개다리 사업의 뼈대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강력한 걸림돌이기도 하다. 한국의 이주민 비율은 등록외국인을 기준으로 잡았을 때 2%를 넘어섰다. 다문화국가로 분류되는 10%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일본이나 독일보다 이행속도가 빠르다는 평가다. 그러나 다문화국가, 혹은 다문화사회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는 부족해 보인다. 다문화라는 말 자체는 사실 가치중립적인 어휘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말은 구별 짓고 배제하는 용어로 정착되는 분위기다. 다문화사회라는 말에는 이물감이 없지만, 다문화라는 말은 특정계층을 지칭하는 말로 굳어져버렸다. 다양한 문화를 뜻하는 말이, 이주민 특히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축소 왜곡되어 사용되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다문화사회라면 마땅히 모든 가족이 다문화에 익숙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현하고 있는 다문화가족일 것이고, 아이들도 다문화사회의 구성원인 다문화 아이들이 아닐까. 이제는 죽은 말이 되어버린 ‘코시안(Korean+Asian, Kosian)’이란 말 역시 차별적인 용어로 사장되었다. 두 말 모두 처음 사용할 당시에는 대상을 비하하거나 배제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었음에도, 구별을 위한 가치판단이 들어갈 경우 용어의 변질이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문화다양성

‘문화다양성’이란 말은 여전히 낯설다. 이 용어가 매우 폭넓은 의미를 갖는 까닭이다. 이 말은 유네스코에서 발의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 협약’을 연상케 한다. 2005년 채택된 이 협약에는 한국도 110번째 비준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주 내용은 통상관계에서의 문화상품의 예외적 성격 인정, 각국의 문화정책 수립을 위한 자주권 보장, 문화교류를 위한 보장방안과 문화약소국에 대한 지원 등을 담고 있다. 지금 ‘무지개다리 사업’의 설계는 문화다양성의 한 이슈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문화다양성 개념은 다른 국가와 민족의 문화적 접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표현에 관계하는 거의 모든 개념들을 포괄한다. 애초에 문화다양성 개념이 자유무역 체제 하에서 위축되어가는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고 진작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는 자연스런 일이다. 한국에서는 문화다양성 이슈에서 스크린쿼터 제도가 대표적인 영역으로 논의되어 오기도 했다.

무지개다리

문체부가 ‘무지개다리 사업’을 통해 문화다양성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문화다양성협약 발효 이후 후속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문체부의 2013년도 업무보고 자료에는 ‘문화다양성 존중에 기초한 국민 인식 개선 및 사회통합 도모’라는 타이틀 아래 ‘이주민의 문화예술 표현 및 지역에서의 문화교류 활동을 지원하는 무지개다리 사업의 확대’라는 내용으로 정리되어 있다. 사실 무지개다리는 저 세상과 이 세상을 잇대어주는 통로로 인식되어 왔다. 한국의 전설에서 선녀들이 타고 내려오는 길이 무지개다리이고,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세계와 지상을 연결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유적인 표현으로 반려동물의 죽음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의 스펙트럼을 통한 다양성을 상징한다. 동성애자들의 축제가 무지개를 상징으로 쓰는 것도 성정체성의 다양한 칼라를 보여준다는 의미다. 문체부의 사업명은 일곱 빛깔의 다양성을 서로 잇대어준다는 의미에서 감성적인 면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정부정책에서 일방적인 동화주의를 지양하고 문화다양성에 기초한 이주민 문화 활동을 지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다.

▲ 이주민정책 토론 부천라운드 (2012 부천문화재단 무지개다리 사업) (사진제공_부천문화재단)
▲ 이주민정책 토론 부천라운드 (2012 부천문화재단 무지개다리 사업)
(사진제공_부천문화재단)

이주민

이주라는 말의 어의를 따져보자면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도 있다. 이주의 양상도 다양해 하나로 뭉뚱그리는 것이 어색하거나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문화’라는 ‘오염된 말’을 대신하는 중립적인 용어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 등의 표현에서 보듯 현장에서는 이미 다문화를 대체하는 말로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우리 모두는 이주민이다. 태어난 곳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경우는 점점 더 드물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케일만 다를 뿐 국내에서도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삶들은 국가단위를 이동하는 사람들의 그것과 본질에서는 다르지 않다. 장소와 개인정체성의 형성이라는 면에서 이주민이라는 말은 다양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다른 삶에 대한 기대와 선망이 늘며 ‘제주 이민자’ 등의 말들의 쓰임새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런 추세가 문화적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인권

문화다양성 사업에 인권이라는 말이 난데없어 보일 수도 있으나, 이주민을 이슈로 하는 활동에서 인권은 가장 앞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 사업에 국한해서 이야기하자면, 문화다양성의 최전선을 인권이라 놓아도 좋을 것이다. 무지개다리 사업은 프로그램만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문체부에서 이 사업을 기계적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아 다행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이주민 정책이 보여준 시혜적인 차원의 활동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있다. 단순 프로그램 제공 차원의 사업운영을 넘어서려면 보편적 권리 차원으로서의 인권에 대한 접근이 있어야 한다. 지역별로 조례제정 등 보편적 인권 확장을 위한 활동이 병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기관 종사자들의 인식을 새롭게 정돈하는 한편으로 지역의 현황 파악과 관계자들의 역량강화 사업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사족

흔히 쓰이지만 꼴사나운 어휘들이 적잖다. 정책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꼽아보면 여럿 되겠으나 한 가지만 짚기로 한다. ‘수혜자(受惠者)’라는 말은 가급적 쓰지 않았으면 한다. 사전을 보면 이 말은 ‘혜택을 받는 사람’으로 풀이되어 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세금으로 집행되는 정책 사업을 혜택이라 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다.

안태호 필자소개
[weekly@예술경영] 편집위원. 안태호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정책기획팀 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문화정책과 연을 맺었다. 이후 문화예술전문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쳐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정책연구자를 오가며 활동하다 2010년부터 부천문화재단에서 문화사업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예술가가 못되면 예술가 근처에서라도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만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분주한 일상에 파묻혀 희미해질까 초조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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