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자들의 목록을 보면 절대적으로 우리를 지원하는 기부자들이 있지만, 그들이 기부하는 목적은 각각 다르고 나름의 이유와 스토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기금 모금을 쉽고 빠르게 이루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공식은 없다. 다만 개인 기부자들이 기부를 하는 이유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같이 느끼며, 그들의 가치관과 꿈을 기부를 통해 함께 이루어가는 과정을 교감하며 천천히 이루어간다. 그것이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일   시 ㅣ  2013년 6월 25일 오후 4시 / 장   소 ㅣ  경희대학교 본관 소회의실 ▲ 싱가포르 예술축제 로고

한국 초청강연을 위해 내한한 미국 고등교육연구소의 마이클 게렛(Michael Gehret) 부소장을 만나 클래식음악 산업과 오케스트라의 발전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마이클 게렛은 기금모금전략가로서 40여 년 동안 다양한 비영리 기관 중 특히 오케스트라단을 경영해왔다. 또한 컨설팅 회사인 찰스 R.펠트스타인&컴퍼니(Charles R. Feldstein&Company)의 부사장으로 역임되어 전략적 관리, 발전, 기획, 마케팅을 담당해왔다. 6월 25일 경희대학교 <미래 대학을 말하다> 초청 강연 후 약 한 시간 정도 진행된 그와의 인터뷰는 예술경영자로서의 미덕인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관심, 예술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열정이 예술단체의 발전에 얼마나 주요한 발전과 동력이 되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이 제공하는 비전의 공유

김인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오케스트라에서 기금모금전략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마이클 게렛(이하 게렛) 4~5세 때부터 항상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커왔다. 할머니는 집에서 항상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음반이나 토요일 오후 저녁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를 라디오로 들으셨는데, 그 과정에서 음악이 나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기금모금전략가로서의 첫 직업은 예일대학교에서 시작되었지만 1977년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교향악단 개발처장 제의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오케스트라 경영자로서 일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파격적인 직업이었다. 이전에는 비영리 예술단체 분야에서 전문 관리자라는 개념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제의를 받자마자 나는 이 직업이 굉장히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전문성과 어렸을 때부터 키워온 클래식음악에 대한 열정을 조합하여 변화를 일궈낸다는 것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트럼본을 연주했고 밴드에서 활동해왔다. 타 예술 분야를 제외한 오케스트라에서만 예술경영자로서 약 25년 동안 활동해왔는데, 그 기간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약 2천여 개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았다. 정말 환상적인 직업이지 않은가. 음악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진정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김인설 오케스트라 운영과 기금 모금에 있어 당신만의 철학은?

게렛 오케스트라에서 나의 주된 역할은 운영을 위한 기금모금(fundraising)이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오케스트라 운영에 있어 &lsquo;자금&rsquo;이라는 것은 예술적 비전에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임을 알고 있다.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와 일하며 지켜왔던 나의 철학은 예술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즉, 감동을 주는 훌륭한 콘서트를 만들어 관객에게 제공하는 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만큼의 기금을 모으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형성된 기금이 오케스트라의 발전과 음악을 위해 어떻게 쓰이고, 그 음악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가 항상 우선시되었다.

김인설 오케스트라에서의 기금모금 전략가로서 당신만의 성공 비결은?

게렛 오케스트라의 경우, 기금모금 전략은 오케스트라의 관객 목록이 그 시작점이다. 오케스트라 공연 티켓을 예매하고 구입해, 꾸준히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 목록은 훌륭한 컨택 포인트다. 이것은 대부분의 예술단체 경영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를 기반으로 예술단체 경영자들은 기부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형성해 가는데 주력한다. 예를 들어 기부가들의 사교 모임이나 파티를 지원하고, 여러 봉사활동에 끌어들임으로써 오케스트라단의 개인 공헌자들이 보람을 느끼도록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특별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 과정에서 많은 예술단체들과 내가 접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많은 예술단체들은 소액기부자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 많은 고민과 시간을 투자한다. 물론 텔레마케팅이나 개별 메일링 등으로 소액기부자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다수의 예술단체들이 하는 실수는 소액기부자와 거액기부자에 대한 차별성을 두지 않는 데에 있다고 본다. 극소수이지만 거액의 금액을 내는 기부자들에게 타 예술단체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거액의 기부금을 낼 수 있는 극소수의 주요관객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시켜나가는 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이러한 전략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포함한 다른 오케스트라에서도 마찬가지였으며, 현재 프린스턴 대학의 기금모금운동에서도 다르지 않다.

김인설 선택적 전략, 즉 &lsquo;기부자 세분화와 타겟팅이 중요하다&rsquo;라는 뜻으로 이해하겠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게렛 기금모금전략가로서의 역할 중 하나는 소액과 기부자를 포함해서 오케스트라와 연관된 사람들 즉, 지휘자, 연주자, 관객, 자원봉사자 등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특히, 소액기부자든 거액기부자든 기부자들이 불만을 갖기 시작하면 해당 예술단체의 기금 모금활동은 그 시점부터 무척 힘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기금모금전략가에게 있어 굉장히 불리하다. 왜냐하면 불만은 아주 빠르게 퍼져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금모금전략가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오케스트라와 연관된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입장을 조율하고 그 이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인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새 공연장 건립을 위한 미화 1억 2천2백만 달러 기금액 달성은 전 비영리단체의 기금 모금 역사상 매우 드문 사례이다. 성공의 비밀은?

게렛 잠재적 기부자들에게 기부를 통해 앞으로 실현될 미래와 비전을 현실감 있게 제공하고, 그 계획이 얼마나 가치 있고 흥분되는 일인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가장 많이 고민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거액의 기부자들을 우선 접촉했다. 그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식사나 차를 마시며 지냈는데, 그 곳에는 새로운 공연장 청사진과 미니어처 모형, 하다못해 공연장에 배치할 좌석까지 진열해 놓았다. 그리고 공연만을 위한 것이 아닌 공연장에서 주민들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계획, 음악에 대한 중요성과 그들이 인식하고 있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미팅은 일대일로 진행되었으며 기부를 통해 일궈낼 성과와 그 중요성에 기부자의 가치관을 연결시키고 그들과 교감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기부에 대한 건의나 청탁은 그러한 교감이 이루어진 이후에 진행하였다.


김인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경우 그 명성과 사회적 인식 때문에 기금모금 활동에 상대적인 이점도 있었다고 본다. 만약 이러한 명성과 지위가 없는 예술단체의 기금모금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그리고 잠재적인 기부자가 기부를 결심하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에 있다고 보는가?

게렛 시카고에는 무수한 예술단체가 있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그 중 하나일 뿐이었고, 우리는 다른 예술단체들과 항상 경쟁해야 했다. 기부자들의 목록을 보면 절대적으로 우리를 지원하는 기부자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기부자가 기부하는 목적은 각각 다르고 다 나름의 이유와 스토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기금 모금을 쉽고 빠르게 이루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공식은 없다. 다만 개인 기부자들이 기부를 하는 각각의 동기와 이유를 이해하고 마음으로 같이 느끼며, 그들의 가치관과 꿈이 기부를 통해 함께 이루어가는 과정을 함께 천천히 공유하며 교감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요인이다.

▲ 마이클 게렛 부소장은 지난 6월 25일 경희대학교 오비스홀에서 ‘고등연구소 운영 현황과 기금 모금’을 주제로 강연했다. ▲ 마이클 게렛 부소장은 지난 6월 25일 경희대학교 오비스홀에서 ‘고등연구소 운영 현황과 기금 모금’을 주제로 강연했다.

▲ 마이클 게렛 부소장의 지난 6월 25일 경희대학교 오비스홀 강연 모습

고정관념을 버리고 움직여라

김인설 현재 한국에서 오케스트라의 재정난은 전반적인 상황이며, 관객수는 점차 줄고 있다. 소위 말하는 관객층의 노령화도 큰 문제점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게렛 세계적으로 공통된 문제점인 것 같다. 미국의 오케스트라 중 그러한 문제점을 타개하고 있는 성공적인 사례들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다양한 레퍼토리 개발이다. 즉, 과거 레퍼토리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현대적이며 대중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레퍼토리를 꾸준히 개발하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클래식음악에 대해 대중들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그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은 내가 속한 오케스트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즌 중 매주 금요일 공연은 무료였는데, 이 때는 항상 만석이었다. 무료로 음악회 티켓을 배부한 것이 만석의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을 시도했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금요일 음악회의 관객은 놀랍게도 젊은 층의 관객이 주를 이루었고, 이것은 잠재 관객개발로 이어졌다.

다른 하나는 오케스트라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이를 가장 잘 수행하고 있는 미국의 오케스트라로 로스앤젤레스의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꼽을 수 있다. LA 필하모닉은 히스패닉계의 젊은 지휘자를 영입함으로써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확실히 젊은 층의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강점이 있다.


김인설 스타 지휘자의 영향은 티켓 판매와 오케스트라의 명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LA필하모닉에 구스타보 두다멜이 있다면, 한국의 경우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자인 정명훈이 있다. 문제는 정명훈 지휘자 이후이다. 정명훈 지휘자 이후의 지속적인 성공은 어떻게 가능할까?

게렛 이것은 하나의 깨지지 않는 법칙이다. 오케스트라 경영자는 새로운 지휘자를 영입하는 바로 그 즉시, 후임자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왜냐하면 새로 영입된 지휘자가 떠나는 날은 반드시 언젠가 올 것이고, 그 날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타격은 상상외로 커진다. 후임자를 선정할 때는 각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한 대상을 지목해야 하겠지만, 새로운 유망주와 함께 성장하는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관객과 기부자에게 선보이는 일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김인설 당신이 보는 클래식음악 산업의 미래는 어떠한가?

게렛 매우 슬픈 현실이지만 예전의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젊은 관객층은 클래식음악과의 간극이 매우 크다. 내 딸은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 공연을 다녔고,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열세 살이 되던 해에 딸에게 피아노 레슨을 계속 받을 것인지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하였는데 딸아이는 더 이상 레슨을 받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지금 딸아이는 31세인데, 200달러를 가지고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공연에 갈 바에는 차라리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겠다고 대답해 나를 매우 슬프게 하였다(웃음). 핵심은 클래식음악을 즐기던 기성세대를 대체할 젊은 층의 관심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클래식음악을 전공하고 있는 젊은 학생들의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전문음악가로 활동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수는 계속해서 감소한다는 점이다. 많은 오케스트라가 파산위기에 있고 실제로 문을 닫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어느 시점에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는 그 교차점이 생길 것이다. 그 시점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콘서트를 직접 관람함으로써 느낄 수 있는 본질적인 기쁨과 경험, 그리고 교육을 통해 그 가치를 계속해서 전파하고 공유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제공_경희대학교 문화홍보처

김인설 필자소개
김인설은 숙명여자대학교 기악과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한 후 미국 애크런 주립대학(The University of Akron)에서 예술경영 석사학위를, 오하이오 주립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에서 문화정책과 예술경영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의 문화예술경영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며, 숙명여자대학교, 중앙대학교, 경희대학교, 한림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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