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자이야기> 공연장면 중 ▲ <숙자이야기> 공연장면 중

▲ <숙자이야기> 공연장면 중

제15회 서울변방연극제의 개막작인 관객참여 연극 <숙자이야기>가 어제(7월 3일) 무대에 올랐다. 평택 안정리 기지촌 할머니들이 직접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숙자이야기>는 2명의 실제 숙자와 3명의 할머니의 삶의 이야기가 조합된 12명의 안정리 할머니들이 함께 만든 연극이다. 2012년 3월부터 6월까지 (사)햇살복지회(대표 우심덕) 연극워크숍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lsquo;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공간-해&rsquo;(대표 노지향)와 (사)행복공장(이사장 권용석)과 함께 &lsquo;밝고 당당하게&rsquo;라는 연극 워크숍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lsquo;섬&rsquo;처럼 고립된 이모들

노지향 연출가는 처음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관객참여 연극 <숙자이야기>의 첫 장면에서 그러하듯 할머니들은 마치 &lsquo;섬&rsquo;처럼 고립된 듯했다고 토론&middot;연극 관객들에게 알려주었다. 할머니들(노지향 연출가는 &lsquo;이모&rsquo;라고 부르는)은 국가적 캠페인으로 주도된 이 기지촌 정화위원회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묵인과 관리를 받았던 그 과거의 시절로부터 현재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무대에 올려놓는다. 이것은 단순히 연극을 준비하는 타인에 의해 주입되거나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lsquo;연극&rsquo;이라는 &lsquo;행위&rsquo;를 통해 자신들의 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하나씩 드러내면서 개인적 아픔을 공통의 아픔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며 자신들의 삶의 무대를 &lsquo;공동체&rsquo;적 삶으로 전환시킨 그들의 용기였다.

이른바 &lsquo;연극학과&rsquo; 출신의 나는 &lsquo;연극&rsquo; 혹은 &lsquo;연극학&rsquo;을 전공하면서, 연극에 대한 강박 아닌 &rsquo;강박&rsquo;이나 &lsquo;연극&rsquo;에 대한 과도한 &lsquo;믿음&rsquo; 또는 &lsquo;애정&rsquo;을 가지고 있는데, 그 &lsquo;무대&rsquo; 위 현장에서의 미묘한 미학적 전환들과 삶과의 교감 사이에서 새로운 미학적 방향성 혹은 삶과 무대의 경계가 무너지는 그 어떤 이상을 시도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공연을 올리면서, &lsquo;연극&rsquo;에 대해서도 또 &lsquo;본다&rsquo;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될 계기가 되었다. 내가 &lsquo;연극&rsquo;을 통해 보는 것은 무대 위의 실제의 삶을 내 삶의 총체적인 경험과 마음을 다해 본다고 해도, 이미 대상화된 혹은 타인인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lsquo;타자&rsquo;를 &lsquo;바라보는&rsquo; 나로서의 관객 이상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극도로 체험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무대 위의 그 누군가 혹은 타인이 더 이상 타인이 아닌 순간이 되면, 모든 시선은 달라진다.

리허설이 끝나고 짬을 내서 진행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할머니들은 자신들은 세상 밖으로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음을 말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접한 &lsquo;연극&rsquo;이 자신들을 바꾸어 놓았다고 당당히 말한다. 인터뷰 내내 할머니들께서 언급하신 &lsquo;연극&rsquo;이라는 단어에 대해 또 생각해 본다. 할머니들께 연극은 &lsquo;쇼&rsquo;가 아니라 그분들을 이어주는 &lsquo;끈&rsquo;처럼 보였다. &lsquo;공연이 신파로 흘러가면 어떡하지&rsquo; 혹은 &lsquo;감정에 호소하면 어떡하지&rsquo;라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질펀한 욕이 쏟아져 나올 때, 조곤조곤한 영어가 새어나올 때, 또 엇엇박의 노래를 부를 때, 할머니들은 그들의 개인사를 공동의 역사로 바꾸어 놓는다.

▲ <숙자이야기> 공연에 참여한 할머니들 ▲ <숙자이야기> 공연에 참여한 할머니들

▲ <숙자이야기> 공연에 참여한 할머니들

무대 언어와 삶의 언어의 교차점

이번 연극제 부제는 &lsquo;사건일지 : 과거의 내일&rsquo;인데, 오늘 관객참여 연극 속 관객석에서는 &lsquo;내일&rsquo;에 대한 주문이 있었다. 나는 &lsquo;내일&rsquo;이라는 단어의 함정을 말하고 싶었다. 안정리 할머니들과 같은 나이 또래의 관객석의 할머니들 말 속에 감지된 &lsquo;내일&rsquo;은 그리고 &lsquo;현재&rsquo;는 &lsquo;과거&rsquo;를 망각하기를 요청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금 여기는 중요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무대 안팎에서 들여다보게 된다.

재미있었던 것은 관객참여 연극 속에 예고 없이 33세의 젊은 평택 국회의원(?)이 관객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연극의 미학으로서는 이점에 대해서는 많은 담론들이 필요하다. 연극 집회와 정치적 연극은 또 우리들의 도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제14회 서울변방연극제의 부제로 &lsquo;정치 없는 정치, 연극 없는 연극&rsquo;을 하면서, 광주 5&middot;18을 다룬 놀이패 신명의 &lsquo;일어서는 사람들&rsquo;을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할 때, 청와대 경호실의 전화, 경찰서의 전화는 몇 건 받고 공연정보도 보내고 싸워야 하는 일련의 일이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는 사복 경찰들만 왔다 갔다 했던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올해는 정말 정치인이 출연하여, 안정리 할머니들을 위한 &lsquo;회관&rsquo; 건립을 약속했다. 안되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노라면서. 이 순간 연극과 정치 사이의 경계가 무너져버렸는데-어떻게 연극적 방식을 말할 것인가의 숙제가 남지만-관계자와 할머니들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좋으면서도, 예술감독으로서는 경계 사이의 연극적 시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변방연극제가 그렇게 삶과 연극의 경계에 어떻게 설 수 있을까. 이 때, 연극의 언어는 무엇일까 하는 다시 시작되는 고민.

나에게는 어쩌면 놀이터이자 유희의 장일지도 모르는 무대 위의 그곳이 할머니들에게는 삶의 중요한 이벤트의 장소이자, 혹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장이 되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의 언어와 삶의 언어가 교차하는 그 화학적 작용이 우리가 기대하는 새로운 무대미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치인의 무대 출연은 &lsquo;말&rsquo;만 있었기에 아쉬웠고, &lsquo;무대 위의 언어&rsquo;였을 때가 그의 &lsquo;말&rsquo;이었을 때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때문에 우리는 &lsquo;예술의 힘&rsquo;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글을 쓰는 사이, 페이스북에서 김석만 선생이 <숙자이야기>는 미국 공연을 가야한다고 할머니들께 귀띔해주셨다고 하니, 할머니들 얼굴이 또 밝아지셨다고 한다. 오늘 당당하게 관객들에게 말씀해주셨던, 항상 싸매고만 있었던 그 이야기들을 한국의 정부 당국자뿐만 아니라, 미국에 가서도 해야 한다. 할머니들께서 그 때까지 정정하게 오래 살아계시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할머니들을 위해 쉼터가 되어주시는 (사)햇살사회복지회 우순덕 대표(오늘 출연도 했다), (사)행복공장, 그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공간 &rsquo;해&rsquo;의 대표이자 할머니들과 함께 공연 때문이 아니라 삶을 위해 연극으로 풀어내신 연출자 노지향 선생의 삶에도 존경을 표한다.

무대 위로 올라온 하나의 &lsquo;삶&rsquo;

무대 위에 어떤 &lsquo;삶&rsquo;이 올라온다는 것은 &lsquo;유희&rsquo;를 뛰어 넘는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기에 &lsquo;연극학도&rsquo;는 이제 &lsquo;삶에서 연극하기&rsquo;에 대해, &lsquo;연극으로 삶 살기&rsquo;에 대해 좀 더 실천으로서의 영역과 그것의 또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제 오늘부터 제15회 서울변방연극제에서는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lsquo;유리바다&rsquo;를 떠돌았다>(에피소드 스튜디오, 장지연 작연출, 한종선 드라마트루그)라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인다(7월 4~7일, 명동 삼일로 창고극장). 이 작품을 통해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 훈령 제410조에 의해 &lsquo;사회정화프로그램&rsquo;의 일환으로 실시된 복지사업, 그 중에서도 &lsquo;부산형제복지원&rsquo;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이곳에서 행해진 비인륜적, 비인권적인 각종 행위들, 구타와 살인의 모든 떠들썩한 사건 속에 숨은 &lsquo;대감금의 역사&rsquo;를 무대 위에서, 그 과정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하고자 한다. 거기에는 &lsquo;한종선&rsquo;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살아있으며, 그 과거의 개인의 기억이자 형제복지원의 공통의 기억을 세상과 교감하기 위해 &lsquo;연극 출연&rsquo;까지 감행한다. 때문에 한종선의 출연과 안정리 할머니들의 무대출연은 &lsquo;실존의 행위&rsquo; 가 된다.

무대가 실존이 되는 현장에서 관객은 무기력해질 필요는 없다. 그 무대는 관객을, 당신을 그리고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한 &lsquo;어떠한&rsquo; 무대이기 때문이다. 경계할 것은 무기력이 아니라 무감각임을.


사진촬영_최성욱

임인자 필자소개
임인자는 대학에서 연극이론 및 연출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였다. 오아시스 프로젝트 예술포장마차 프로그래머, 강화정 연출,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 정금형 영국투어, 변방 거리극 프로젝트, 돌출춤판 및 토요춤판, 크리에이티브 바키 등의 프로듀서 역할과 동시에 서울변방연극제 사무차장 및 사무국장을 거쳐, 현재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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