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7월 초 몽골의 옛 수도 하라호름과 나담축제가 열리는 후이덜렁후닥에 다녀왔다. 음악, 연극, 시각예술, 애니메이션, 사진, 영상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9명의 예술가와 3명의 기획자, 몽골의 역사학자와 지역 음악가 등이 여정을 함께했다. 몽골의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하여 엘싱타사르해 사막을 거쳐 칭키즈칸 시대의 수도였던 하라호름에 도착해서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프로젝트명은 ‘유목창작여행‘. 창작과 여행, 그리고 첨단시대의 유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여행이다. 3년째 유목창작여행에 참여하고 있는 뮤지션 하림은 ‘유목창작여행‘이라는 말에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정착하지 않은 채 창작과 여행을 줄다리기하는 방식이 흥미롭다는 것이다. 올해 처음 참여한 이성강 애니메이션 감독은 재직하고 있는 곳(한국영화아카데미)에 이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 제목이 놀러가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 ‘유목창작 워크숍’으로 이름을 바꿔 얘기했다고 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자유로움’의 가치

▲ 김동원 연주자의 나담축제 축하공연 ▲ 후이덜렁후닥 문화나담 현장 (사진제공_최도인)
▲ 김동원 연주자의 나담축제 축하공연 ▲ 후이덜렁후닥 문화나담 현장
(사진제공_최도인)

7월 6일 하라호름에 도착한 2013 유목창작여행의 멤버들은 약 10일에 걸쳐 장소 퍼포먼스와 영상 작업, 상호 렉쳐와 대화, 스토리 개발과 토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워크숍을 가졌다. 인근에 있는 어기호수에서 뮤지션 하림과 요요마 실크로드 프로젝트 연주자 김동원, 앰비언트 뮤지션 이우준(Kayip)이 장소 퍼포먼스를 펼쳤으며, 하라호름의 폐쇄된 화력발전소를 발견하여 연극연출가 윤시중이 연출을 맡아 음악영상 작업을 했다. 이성강 감독은 ‘증오‘를 주제로 한 페이크 다큐 프로젝트를 함께 여행 중인 예술가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제작했고, 몽골의 옛 이야기인 ‘소년과 늑대‘를 주제로 한 스토리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 시각예술가 김철유는 여정의 과정마다 현지의 자연 재료를 활용한 대지미술 작업을 선보였고, 이우준은 향후 미디어아트와 음악 프로젝트를 위해 360도 카메라 등을 활용해 몽골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영상에 담았다. 이번 창작여행에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된 성동훈 사진작가는 하라호름에서 열린 지역 나담축제와 국가 나담축제 말경주 과정을 밀착 촬영하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졌다.

북방아시아 대륙으로 예술가와 기획자가 떠나는 이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는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재직하고 있는 메타기획컨설팅(METAA)이 2008년에 북방아시아 유목문화축제인 문화나담(Culture Naadam)을 몽골국립예술대학교, 몽골예술위원회와 함께 만들었고,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몽골 현지에 가는 길에 한국, 몽골 등 북방아시아 예술가들과 함께 창작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구상하게 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예술계에서는 ‘레지던시’가 유행인데, 대부분의 레지던시는 개인화되어 있고 특정 장소에 머무르며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 방식이다. 반면 우리가 만드는 창작여행은 ‘자유로움’의 가치에서 시작하려 했다. 일반적으로 기획은 어떤 결과를 의도하거나 기대해야 하지만, ‘의도함이 없는 기획’을 해보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종종 예술가와 기획자들에게 지원 또는 후원을 대가로 많은 걸 요구하고 있다. 그런 것이 없는 기획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예를 보여주고 싶었다.

▲ 뮤지션 하림의 유목창작여행 노래일기 (사진제공_김동원)

▲ 뮤지션 하림의 유목창작여행 노래일기
(사진제공_김동원)

교류 속에 만들어진 영감의 결과물

2011년 흡수골, 2012년 남고비, 2013년 하라호름 등 세 번의 유목창작여행에 참여한 아티스트와 기획자들이 이제 20여 명 정도가 된다. 연주가, 작곡가, 안무가, 연극연출가, 시각예술가, 영상감독, 애니메이션 감독, 사진작가 등 다양한 분야와 경험의 층위를 가진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만나고 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한다. “그곳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어떤 절차로 정해지나요?” 대답은, 절차라는 것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매 회 참여하는 예술가들이 결정되는 방식 또한 각기 다르다. 작년에 참여한 정영두 안무가는 8개월 전부터 여러 채널을 통해 만나서 얘기를 나누며 결정되었고, 작년과 올해 참여한 이우준 작곡가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음악작업과 환경에 어울릴 것 같다는 이적(뮤지션, 2011년 참가자)의 아이디어로 하림과 함께 수소문하여 찾은 경우다. 유목창작여행 멤버들은 북방아시아 현지로 떠나기 전에 몇 차례 만남을 갖고 사전 워크숍을 하지만, 여행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로 발전한다.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예술가들이 서로 만나 고민을 나누고 함께 창작하며 여행하는 것이 인생에서 흔치 않은 경험이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말에 2년간 유목창작여행을 통해 진행해왔던 예술 창작협력의 작업을 공개하는 서울워크숍이 있었고, 이보다 먼저 9월에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첫 번째 유목창작여행 이야기 ‘푸른 바람의 노래‘(연출 송규학, 촬영 김태곤/김상진)가 소개되었다. 하지만 더 소중한 것들이 기획자와 예술가들의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면화되고 표출되고 있다. 하림은 유목창작여행의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폐허가 된 도시공간에 예술 생태계를 만드는 ‘도하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그 과정에서 창작한 노래 세 곡을 새 앨범에 담을 예정이다. 이우준은 몽골 마두금연주자 뭉크진, 장가가수 다쉬 등과 함께 인터랙티브 사운드 메이킹을 위한 녹음 작업을 마쳤으며, 김철유 작가와 함께 음악과 시각예술이 결합된 새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올해 유목창작여행의 유쾌한 버디가 되었던 윤시중 연출가와 이성강 감독을 비롯하여, 안무가 이나현, 정영두, 연주자 김동원, 판소리 이소연, 해금 마혜령, 마두금 연주자 뭉크진, 다큐멘터리 감독 송규학, 사진작가 성동훈 등 참여한 많은 예술가들이 여러 영역에서 공동 작업을 추진하고 있고, 진행할 예정이다(일례로 이성강 감독의 새 단편 애니메이션에 윤시중 연출의 극단 하땅세 배우들이 성우로 참여하는 아이디어가 현실화를 준비 중이다).

▲ 몽골 게르캠프의 밤하늘 (사진제공_김동원)

▲ 몽골 게르캠프의 밤하늘 (사진제공_김동원)

유목민, 꿈꾸다

“어떤 결과가 만들어지길 기대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유목창작여행이 어떻게 성장해갈지는 프로젝트 디렉터인 나도 아직 모른다. 다만 유목창작여행이 구체적인 창작물 제작을 목표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전제가 중요한 것은 더 자유로운 플랫폼, 더 열린 플랫폼, 더 지속적인 플랫폼이 되길 바라는 우리의 의지이다. 물론 새롭고 다양한 창작협력의 결과물이 예술가들의 공동작업, 예술가와 기획자들의 협업에 의해 생성되길 바라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이 되길 희망한다. ‘자유로운 예술경영’이 더 큰 가치와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첫 믿음이 변하지 않길 바란다. 예술가들은 종종 유목창작여행이라는 ‘조용한 기획’이 더 부담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 프로젝트가 창작이건 여행이건, 이 시대의 마지막 ‘유목민’인 예술가와 기획자가 함께 꿈꾸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어 큰 보람이다.

최도인 최도인
[weekly@예술경영] 편집위원. 최도인은 (주)메타기획컨설팅(METAA Co., Ltd)에서 예술경영, 문화공간, 도시 문화전략 등의 컨설팅을 총괄해왔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서울시립교향악단, 통영국제음악당 등이 있으며, 특히 서울시립교향악단 컨설팅 사례는 미국 컬럼비아 비즈니스 스쿨의 케이스 스터디에 사용되고 있다. 창조도시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찰스랜드리의 저서 「크리에이티브 시티 메이킹」 한국어판을 기획·감수했다. 2011년부터 북방아시아 예술가와 기획자들의 창작협력 프로젝트인 유목창작여행(Nomadic Artists‘ Journey)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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