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성태, 「기업 휴가이용 실태조사 및 휴가문화 개선 방안」,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2

2) The Wall Street Journal, "South Korea Works Overtime to tackle vacation Shortage", 2010.02.28

우리나라 휴가문화의 현주소

우리나라 국민들의 여름철 휴가 시기는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와 같은 현상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휴가철의 어쩔 수 없는 일’로 당연한 듯 치부해버리기도 하지만, 사실 국민의 휴가여행이 편중된 데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은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도로정체 및 관광지 혼잡은 물론 관광시설 및 서비스 공급을 크게 초과하는 수요로 인한 바가지요금 등이 휴가의 품질을 하락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서 쉬어야 할 휴가가 오히려 스트레스만 안겨주는 연례행사로 변모한 것이다. 여름 휴가철이 끝난 비수기가 되면 관광객이 없기 때문에 관광업체 입장에서는 성수기에 최대한 수입을 올려야 하므로 바가지요금은 개선되기 어려우며, 관광 분야에 대한 투자 부족으로 관광시설 및 설비가 낙후되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휴가란 신체 및 정신적 피로회복을 도모하여 건강을 확보함과 동시에 여가 활용을 보장하여 인간으로서의 사회 및 문화적 생활 향유를 보장할 목적으로 부여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휴가가 일정 시기에 집중되고 산과 바다 등에서 2박 3일 정도 체류하다가 돌아오는 천편일률적인 행태로 나타나고 있는 주된 원인은 휴가 사용에 대한 경직적 가치관과 법·제도적 한계, 그리고 자녀의 학사일정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유럽연합은 일-생활 양립(Work & Life Balance)을 위해 6개월 혹은 1년 이상 근속한 근로자에 대해 3주~4주 이상의 연차휴가를 부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주 및 유럽 국가에서는 통상 1주 정도의 연차휴가를 추가적으로 부여하기도 하므로 실제 연차휴가는 4주~5주 수준이다. 기업의 CEO는 근로자의 연차휴가는 절대로 침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권리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도 근로자의 휴가를 억제하는 일은 없으며, 따라서 휴가 사용률이 평균 80%를 상회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 근로자들의 연간 연차휴가 사용률은 46.6% 수준으로 조사되었다.1) 국가공무원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낮은 31.6%이며 고위 공무원일수록 휴가사용일수가 더 낮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예컨대 3급 이상 공무원의 경우 연간 연차휴가 사용일수는 3.4일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국민의 낮은 휴가 사용률은 전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까닭에 〔월스트리스 저널〕에서 특집 기사로 보도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국민들만 유독 휴가사용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그 해답은 60년부터 본격화된 경제 집중 성장시대의 근로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과 매장자원이 부족해서 오로지 근로자들의 노동력에 의해서만 산업화를 추진하던 장시간 근로문화가 고착되면서 ‘휴식’을 죄악시하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2012년에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연차휴가를 원활히 사용할 수 없는 원인 중 ‘휴가사용에 대한 조직 내 경직적 분위기’가 42.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다음으로 업무과중(18.4%), 미사용 휴가보상비 수령(11.8%) 순으로 나타났다. 비자발적 요인에 의한 휴가사용 위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연차유급휴가 미사용 원인]
연차유급휴가 미사용 원인

또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학사일정에 맞추어 휴가계획을 수립하는 경향이 있어 대부분의 국민들이 자녀들의 방학기간에 휴가를 사용하다 보니 휴가여행의 편중 현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월스트리스 저널〕은 “한국은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세계 챔피언급 일벌레이며, 다양한 휴가사용 촉진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상급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한국 특유의 계급사회에서는 실효성이 낮다”고 보도하였다.2) 익스피디아 여행사 CEO도 “한국인들은 근로의 대가로 부여받는 휴가를 사용하면서도 죄의식을 가진다”라고 논평한 바 있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와의 전쟁 중에도 텍사스 크로퍼드 별장으로 한 달간의 휴가를 떠난 바 있으며, 독일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유럽 지역 정상들도 한 달 일정의 휴가를 사용하고 있으니, 경영전략 구상을 위해 기업 CEO들이 휴가를 포기한다는 우리나라 정서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원래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휴식에 대해 엄격히 통제하는 민족이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대왕 시절에는 지금도 활성화되지 못한 ‘남편의 출산휴가’가 시행되었으며, 태종 및 세조 때에는 한 여름철 무더위나 장마가 기승을 부릴 때면 비교적 가벼운 죄를 지은 죄수들에게 휴가를 주어 일시적으로 석방하도록 했다는 기록도 있다.

휴가문화의 진화

다행인 것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휴가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리프레시 휴가, 교육휴가, 봉사활동 휴가 등 다양한 종류의 휴가를 부여하고 있으며, 휴가와 관련한 각종 복지제도도 동반하여 시행하고 있다. 물론 일부 대기업 및 중견기업 중심이기는 하지만, 기업조직 문화가 과거 집단주의 및 실적위주의 결과지향에서 프로세스 지향, 책임의식 강화, 모험형 기업 문화 확산, 경영진의 소통실천 등으로 변화하면서 휴가문화가 점진적으로 개선된 것이다.

[국내기업 휴가문화 개선의 특징]
국내기업 휴가문화 개선의 특징
자료 : 구본희(2011), “이제는 휴가도 경쟁력이다!”,「월간 인사관리」7월호

휴가제도 개선 방향

국민의 휴가문화 개선과 자발적 휴가 사용의 원활화를 위해서는 휴가에 대한 인식 전환, 관련 법제도 개선, 휴가제도 운영방식의 다양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휴가를 생산 활동의 반대급부로만 간주할 것이 아니라 생산성 제고와 기업경쟁력 강화를 촉진하는 요소로 이해해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임금과 같이 휴가 역시 근로를 제공함에 따라 부여받는 당연한 권리임을 노사가 함께 인식해야 한다.

또 사용자가 경영상의 이유로 근로자의 휴가시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기준법의 예외조항을 개선해야 한다. 사용자가 근로자의 휴가시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체가 휴가 사용을 부당하게 침해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휴가 사용 시기는 근로자 자신이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미국 등과 같이 잔여 연차휴가를 다음 해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차휴가 이월제도나 직장 동료에게 연차휴가를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기부휴가제도의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한때 우리나라에서 검토된 바 있는 미사용 연차휴가에 대한 보상비 폐지 문제는 많은 논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연차휴가 사용률 제고를 목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이라고는 하지만 근로자와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며, 또 연차휴가 보상비 폐지가 초래할 사회, 경제적 영향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의 경우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을 위축시킬 유인이 있다는 이유로 연차휴가 보상비 지급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사용자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어서 근로자의 휴가사용을 억제하지 못하도록 연차휴가 보상비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이성태 필자소개
이성태는 대학에서 경제정책을 전공하였으며,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데이비스(UC Davis)와 네덜란드 틸버그 대학교(Tilburg University), 버지니아 테크(Virginia Tech) 연구원을 거쳐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정책정보통계센터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정작 본인은 주7일 근무에 연평균 휴가사용일수 0일~2일 수준이지만, 지난 4년 동안의 노력으로 대체공휴일제도 도입을 성사시켰으며 계속해서 범국민 휴가문화 개선을 위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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