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3년 8월30일(금) 오후 4시 / 장소│ 마포구 상수동 팜팜피아노
▲ 서울시극단이 제작하고 김경주 극작가가 대본을 맡은 시극 <나비잠> (9월 19~2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 서울시극단이 제작하고 김경주 극작가가 대본을 맡은 시극 <나비잠>
(9월 19~2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이 인터뷰를 하기 전에 가장 먼저 자문 했던 것은, &lsquo;시인&rsquo;으로서의 김경주의 정체성을 먼저 접했던 필자는 &ldquo;김경주가 극단 활동을 해?&rdquo;였다. 시를 먼저 접했기에 당연히 &lsquo;시인 김경주&rsquo;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극단 <나비잠>, 국립현대무용단의 신작 <11분>의 드라마투르그로서 활동의 저변을 본격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필자는 &lsquo;시인 김경주&rsquo;의 극단으로의 외도, 라고 자연스레 생각을 했다. 여기까지가 많은 사람들의 김경주에 대한 자연스러운 오해의 일반적인 과정이다. 그리고 시인으로서 외도하는 극작가를 조명해야 할지, 극작가로서 시로의 외도를 시도하는 김경주를 조명해야 할지 고민이 앞섰다. 물론 극단생활에 대한 얘기는 들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극단 일에 더 천착해 왔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같이 살던 남편의 2중 생활을 알게 된 기분이랄까. 이지적이고, 차갑고, 고독해보이던 이미지와 달리 상수동 카페 촌에서 만난 김경주는 오히려 동네 이 일, 저 일 다 해결하고 다니는 &lsquo;상수동 김반장&rsquo; 같은 이미지에 가까웠다.

시와 극은 다르지 않다

황보유미 최근 서울시극단 <나비잠>과 국립현대무용단 <11분> 등 시 외의 장르에서 김경주라는 이름을 자주 듣는다.

김경주 시집으로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내가 꾸준히 활동해왔던 것은 연극 쪽이다. 제대하고 전주에서 극단 생활을 했다. 연극학회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연극을 먼저 접한 것이다. 지금은 다 연극계 대선배들이신데 당시의 그 형님들, 선배님들이 연극을 하는데 주머니에 항상 시집이 있었다. 선배님들이 연극을 하려면 시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뭐랄까. 그래서 내게 시와 연극은 너무 자연스러운 행위, 환경이었다. 어떤 기사의 표현에 따르면 &lsquo;시하고 연극의 쌍생아&rsquo; 같은 작업이 그 때 시작된 것이다. 연극이 안 풀릴 때 시를 읽기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연출가나 극작가로서의 꿈을 꾸면서 내가 접했던 다양한 형태의 희곡들이 시를 공부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창작희곡 부활운동도 하게 된 것이다.

황보유미 장정일 등과의 작가들과 낸 희곡집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2009)』가 그 연장선상인가?

김경주 지금은 대학로에서 공연화되기 어려운 부조리극 작가인 페르난도 아라발(Fernando Arrabal),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등의 작품들이 내게는 너무나 문학적, 극적, 메타포적, 시적이었다. 때문에 극공부를 하면서 극적인 속도 위주 혹은 플롯이나 스토리텔링 위주의 연극도 중요하지만 그런 사이와 침묵의 질을 풀어갈 수 있는 형태의 작업들이 나한테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동경이자 열망이 되었다. 당연히 그런 짓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시공부를 안할 수 없었다. 당연히 시는 상징으로 되어 있고, 침묵 즉 소위 말하는 행간을 읽어내지 못하면 그 맛을 알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시와 연극 같이 공부하다가 극작가로서 데뷔를 먼저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덜컥 2년 만에 시가 먼저 데뷔가 됐다. 그런데 시가 먼저 데뷔가 됐지만 한 6년에 걸친 시간동안 극작가로서의 길을 시작했다. 그래서 장정일, 정영문, 서준환, 하일지 선배들과 창작희곡 부나로드 운동 혹은 이름도 없는 동인 활동을 했었다. 우리 모두다 샛길로 샌 것 같지만 원래 희곡에 대한 순정을 간직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온 희곡집이 『숭어 마스크 레플리카(2009)』다. 우리의 고민은 희곡이 전면으로 나온 지면이 없고, 극작가는 소외를 당한다는 것이었다. 유럽문화역사는 희곡을 빼고 정리할 수 없을 만큼 심도가 깊고 중요한 문학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시스템, 여러 형태의 구조가 그렇게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공연을 전제로 한 대본정도로만 취급을 하지 본질적인 측면에서 외면을 받는다. 그래서 대학로에서 소모되고, 휘발되기 쉬운 희곡이 아니라 텍스트로서도 매력을 가지고 공연으로서도 다시 보고 싶은 그런 희곡들을 만들어야겠다는 지점에서 일종의 &lsquo;희곡부활운동&rsquo;을 시작한 것이다.


황보유미 <나비잠>의 음악극 장르는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

김경주 혜화동일번지, 밀양국제연극제, 통영국제음악제 등에서 소개된 음악극이 서너 번째 된다. 이번 음악극 <나비잠>의 작곡가인 신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유학 갈 때 음악극으로 유학을 가서 세계적 거장 하이네 괴벨스 밑에서 공부했고, 2008년도 아시아 최초로 &lsquo;베를린 음악극 축제&rsquo;의 수상자이다. 2010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음악극 &lsquo;에코&rsquo;를 올렸다. 신나라와 처음 만났을 때, 하이너 뮐러 가지고 9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시극이란, 음악극, 무언극, 낭독극, 모노극이 결합된 형태라고 생각한다고 했던 내 인터뷰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하게 됐었다. 그래서 2년 동안 같이 작업을 해서 음악극에 대한 공부를 했다.

심지어 음대에도 들어갔다. 내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학과 2기생이다. 당시 동덕여대 교수였었는데 교수 때려치우고 대학원 들어간다고 하니 당연히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렸다. 무슨 짓이냐고. 연극원에서는 강의하면서, 대학원(전문사과정, MFA)에서는 수업을 들었다. 학위에 대한 욕심보다 음악극을 작업하다 보니 음악극이 한국사에서 본박하게 표현 돼 있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공부를 하면서 음악극을 좀 더 커리큘럼적으로 접하게 됐다. 궁극적으로 시극을 하기 위해서는 음악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극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레 신나라와 통영공연도 지금작업 <나비잠>까지 이어졌다.

서울시극단이 제작한 시극<나비잠>(9월 19~29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포스터 앞에서 선 김경주

지원금제도에 의존하지 않는 문화 항생제 운동

황보유미 그런데 시보다 이런 공연 작업에 대해 대중에게 안 알려진 편이다.

김경주 내가 작년에 농담 삼아 얘기한 게 있다. 한국에서 퀼리티와 자본 지원금 다 떠나서 나만큼 많이 올리고, 실험극을 한 사람 있냐고, 한 해에 열 번 가까이 올렸으니까. 10년 동안 순정으로 한 작업은 떠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공연에 대해서 구걸해 본적이 없다. 왜냐하면 책 같은 경우는 출판사가 내 책을 내주기 때문에 내가 책에 대한 홍보를 해야 한다. 내 책 한 권 만드는데 2천만 원 이상 종잇값이 드니까. 그러나 공연은 지원금에 의존하는 구조라 어느 순간 자신의 상상력과 싸워야 할 시간에 지원이라는 링거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생력이 없기 때문에 비닐하우스 온실문화가 대학로에 만연해 있다.

심사를 많이 하러 다니며 끊임없이 쓴 소리도 하지만 홍대 15년 가까이 상수동에서 문화생태계 구축을 하고 있는 이유는 대학로의 지원금제도에 의존하지 않고 항생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자본이 부족하고 하다 보니 홍보가 적어 안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꾸준히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해서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홍대를 바탕으로 실험극들 낭독극을 해왔다. 대학로에서는 혜화동 일번지를 제외하고 낭독문화 부흥을 외면 받았다. 그래서 홍대에서 홍대클럽, 카페, 살롱문화 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하림씨도 함께 하게 되었고, 이후 문화운동의 한 갈래로 &lsquo;도하 프로젝트&rsquo;도 하게 된 것이다. 홍대클럽이 춤만 추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학로 소극장이 연극만 하라고 있을 필요가 없다. 서로 허브를 해야 된다. 그래서 허브전략 메커니즘을 계속 만들어왔다.


황보유미 공연계의 모든 유행 코드를 이미 주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김경주 뭐 정부에 들어가서 일을 한 적도 있고, 여러 형태의 일을 해왔지만 기본적 내 아이덴티티는 &lsquo;항생제 문화&rsquo; 즉 &lsquo;다양성&rsquo;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데 연극원에서도 강의를 하지만 서사와 스토리텔링을 구별을 해야 하는데 요즘엔 플롯 내러티브랑 구분을 못한다. 스토리리텔링만이 아니라 다양한 서사가 있는데 말이다. 연극 쪽도 그렇다 알레고리극도 있어야 하고, 이미지극, 시극 등 다양해야 한다. 이런 다양성 회복을 위한 &lsquo;문화항생제 운동&rsquo;을 해왔다. 그러한 모든 작업들이 결국은 시공부를 통해 자양분을 받았다. 너무 시를 읽지 않는 시대이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시집이 가장 많은 국가인데 시집을 가장 안 읽는 국가이고, 시집을 가장 많이 출판하는데 가장 안 팔리는 국가이기도 하다. 굉장한 기형성이다.

나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시단의 진폭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르네상스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일본, 프랑스, 미국 등 외국작가들도 다 인정하는 부분이다. 이유에 대해서는 심층적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현상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시들이 대중한테 외면 받고 있다. 맨날 난해함, 소통부재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전 그게 굉장히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근본적으로 상징의 질서이기 때문에 좀 더 능동적인 독서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따라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개연성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무용 회화 볼 때 이야기를 찾아가지 않듯이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스토리텔링이라는 형태의 자본의 메커니즘에 익숙해졌다. 목적지에 데려다 줘야만이 자기의 소비적인 욕구가 해결됐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어느 시인이 독자를 괴롭히려고 시를 쓰겠는가. 시대정신으로서 시가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나비잠>포스터 앞에선 김경주

▲ <나비잠>포스터 앞에선 김경주

<나비잠>을 통해 10년 만에 처음 받은 대본료

황보유미 서울시극단과 <나비잠> 공연은 어떻게 기획되었는가?

김경주 <나비잠>을 통해 10년 만에 대본료를 처음 받았다. 여태 단 십 원도 받은 적이 없다. 그동안 연극계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작품을 잘 만들어달라고만 했었고, 내 순정에 해당하는 부분을 가지고 자본과 저울질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작년에 김동수 플레이하우스에서 희곡 <블랙박스>를 한 달간 올렸다. 아시다시피 12월 한 달 너무 추웠고, 선거기간이라 흥행 참패를 했다. 한 달 동안 관객이 200명밖에 안 들었다. 하루 대관료 40만 원쯤 하는 것을 지원금이 아니라 우리 돈 1천만 원 정도 모아서 한 공연을 후딱 날렸다. 그 <블랙박스> 희곡을 4년 넘게 작업을 했고, 외국이나 국내에서 문학적으로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될 만큼 작가들은 굉장히 좋아하는 작품인데 연극인들이 아무도 올려주지 않았다. 이 작품이 상업적이지 않아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러다가 영국 유학을 갔다 온 친구가 제 텍스트를 보고 좋아해 우리끼리 올렸다.

그런데 참패를 해서 공연을 관객이 하나도 없어 못 올리는 날이 5일이 넘었다. 주연배우 했던 형님이 김아라 연출가 밑에서 20년 전에 <아그네스> 공연 이후 관객이 하나도 없었던 때가 20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씀하시며 꺼이꺼이 우시는 거다. 처음이었다. 배우들이 우는 모습을 본 것이. 그 때 처음으로 책임감을 느꼈다. &lsquo;아, 연극이 아무리 나의 순정이라 떠든들 이렇게 사람들한테 상처를 주면서까지 내 작품을 지속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인가&rsquo;. 그래서 한 달간 태국 빠이로 두문불출 떠나 마음이 지쳐 영국 이민계획도 세웠다. 라다(RADA)라고 로열아카데미 쪽에 지원을 한 상태라 거기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돌아와 준비를 하고 있는 찰나에 김혜련 선생님이 서울시극단 단장으로 부임을 하시면서 <블랙박스> 희곡을 우연히 보신 것이다. 너무 많은 격려를 해주시면서 이렇게 훌륭한 부조리극을 꼭 올리고 싶다고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시점이 아니니 일단 &lsquo;서울의 혼&rsquo; 프로젝트를 먼저 하자고 하셔서 &lsquo;서울의 혼&rsquo;으로 <나비잠>을 먼저 준비했고, 기회가 된다면 단장님 임기 안에 잃어버린 우리나라 부조리극을 보여주기 위해 <블랙박스> 꼭 올리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황보유미 훌륭한 극작가를 떠나보내기 직전 전화위복이 된 것인가?

김경주 그렇다. 90일 동안 48일을 날을 샜다. 이 시나리오가 24고가 나왔다. 배우들이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했어요. 하룻밤에 대본을 다 바꾸니까. 아직 10원짜리 한 품 못 받았다. 공연이 끝난고 돈을 받으니까. 그러나 4월부터 지금까지 이 작업을 위해서 시키지도 않는데 수많은 홍보를 해왔다. 내가 연민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부터 시작해서 구걸을 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처음으로 주변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한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종문화회관에서 유일무이하게 시극이 올라가는데 이 포에트리 씨어터(Poetry Theater)이 내가 망하면 다시는 못 올라간다. 그러면 대중은 시극이라는 장르로부터 완전히 멀어질 것이다. 이 시극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멸종해 버린 장르이다. 그래서 시극, 이번 <나비잠> 공연이 굉장히 중요하다.

황보유미 시극을 하자고 장르를 특화시키고 시작되었나?

김경주 주제를 가지고 소화했다. 사대문 주제에 서울의 혼을 담는 주제를 써라. 자료를 채집하다 보니 자연스레 장르에 대한 소통을 김혜련 단장님과 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사대문 안에서 들려오는 자장가에 대한 뮤지컬을 든다고 했다. 나는 자장가에 대한 열망이 굉장히 커서 전 세계 517개 도시를 다니시면서 수집을 해왔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노스탤지어 때문이었다. 겨울에 자주 여행을 가다보니 낯선 곳에서의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는 게 참혹했다. 불면에 시달리니 자장가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 자장가가 우리 자장가와는 다르게 몽환적이고 동화적이고 그 나라의 민속성이 잘 담겨져 잇다. 그러다 내 아이를 갖게 되고, 뱃속의 아이에게 10개월 동안 자장가를 글로 쓴 태교책이 『자고 있어, 곁이니까』이다. <나비잠> 대본의 책 버전 같은 책이다. 자장가가 알고 봤더니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거나, 아이를 잠재우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 만인에게 필요한 노래다. 이 시대는 불면의 시대이다. 그래서 자장가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하거나, 영화를 보고 댓글 달아서 타인을 괴롭히는 불면의 시대에 인간을 가장 편안한 무의식으로 데려갈 수 있는 노래이다. 불면의 시대에 조선후기 사대문의 도성축조 과정에서 모두가 노예로 시달리고 있는 때에 잠들지 못한 자들을 위한 노래를 시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의 뮤지컬로 올리자고 한 것이 김혜련 단장님과의 소통 속에서 나온 것이다.

▲ 극작가가 드라마투르그로 국립현대무용단 <11분>에 참여한다(9월 5~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 극작가가 드라마투르그로 국립현대무용단 <11분>에 참여한다
(9월 5~8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컬쳐 스나이퍼, 문화 저격수가 될 것이다

황보유미 국립현대무용단 <11분>과의 작업으로 무용계에도 이름을 걸치고 있다.

김경주 무용은 작업을 많이 해 왔다. 시댄스에서는 무용비평, 페스티벌 봄에서는 두 번 작품도 내기도 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11분>은 안애순 감독님이 부임하신 이후에 파올료 코엘료의 <11분> 소설을 다섯 명의 안무가들한테 드라마투르그로서 각색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었다. 그래서 쇼케이스를 보면서 참여를 하게 됐다. 그동안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을 좀 해오면서 이 역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드라마투르그라는 포지션이 처음 생긴 것이 브레히트 때인데 드라마투르그의 사전적 정의를 하면 문헌감독이다. 브레히트가 극을 쓰고 직접 연출할 때는 상관없는데 연출을 할 때에는 작가와 연출할 때 브리지 역할을 하면서 코디네이팅 할 수 있는 포지션이 하나 필요하다. 그것이 드라마투르그이다.

우리나라는 드라마투르그가 학자 분들이 외국작품 번역해서 올 때 해석하고, 주제 설명해주고, 그런 것이다. 외국은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이 굉장히 정확하다. 그러니 같이 작업하고 있는 무용수들에게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이 익숙하지 않다. 마치 연출적 장악을 하는 공격 포인트로 생각을 하니까. 드라마투르그는 뮤즈를 끌어내는 역할이다. 처음에 아젠다를 꺼내 무용미학적, 공연미학적 주제를 컨셉아트적 성격으로 테이블 플레이를 한다. 이후에 무엇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를 한다. 즉 핸드플레이, 상징적인 것들을 어떻게 작품 안에 배치할지를 돕는 것이다. 그리고 안무 주제를 텍스트로서 중요한 진실이 들어갈 수 있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무용수가 언어로 표현한 것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다. 좀 더 능동적일 경우, 무용대본을 짜주는 역할도 한다. 우리나라의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이 많이 변해야 한다. 피나 바우쉬는 항상 드라마투르그와 작업했다.


황보유미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종국에 무엇으로 불리고 싶은가?

김경주 예술가로 불리고 싶다. 예술가는 직업이라기보다 상태에 가까운 현상에 가깝다. 시를 쓰면 시적상태에 머물러 있으니까 시인이고, 희곡작업 할 때 극적상태에 있으니 극작가가 된다. 어떤 상태에 있는가가 중요하다. 공항에서 쓰는 입출국 카드에 직업란에 시인이 없어서 어느 순간부터 강사나 저널리스트로 직업을 쓴다. 직업으로 얘기를 하자면 내가 하는 일 한 40가지 되니 그게 다 내 직업이다. 나는 내가 설레는 작업을 할 것이고, 이 시대정신에서 시가 왜 필요한가를 묻는 작업을 할 것이다. 순정을 바치는 작업이라면 어떤 직업으로 불려도 상관없다. 그런데 먼 훗날 정말 예술가 김경주라고 불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렇게 불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초기 &lsquo;추리닝 프로젝트&rsquo; 할 때 우리 전략은 컬쳐 스나이퍼 즉, 문화저격수들이었다. 저격수 콘셉트는 학연, 지연, 혈연에 의존하지 않고 맡은 바 임무를 철저하게 옮긴다. 자기 결과물로 평가받고 그 평가대로 어떻게든 그 사람한테 일이 의뢰가 온다. 그리고 자기 존재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어쩌면 문화예술이란건 크레디트도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고, 학연, 혈연도 안중요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가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는 순간이다.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호흡을 9초로 나눈다. 호흡을 9번으로 나누는 그런 집중을 하는 형태의 작업을 할 것이다.

김경주/200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시인, 극작가, 연출가, 문화기획자로도 활동하면서 시극 운동을 하고 있다. 혼불문학상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 문학상 등 수상했고, 시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가 있으며, 산문집 『패스포트』, 『밀어』, 『자고 있어, 곁이니까』, 희곡으로는 『블랙박스』,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등이 있다.

황보유미 필자소개
황보유미_[Weekly@예술경영] 책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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