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최도인_[Weekly@예술경영] 편집위원/일    시: 2013년 10월 1일 오전 1l시 30분/장    소: 과천 서울대공원 원장실

어릴 적 어머니가 소박하게 싸주신 김밥 한 줄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바로 공원이었다.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공원에서 먹는 그 맛은 늘 달달했다. 어느 순간 푸르른 자연의 풍성함을 일상에서 매번 느낄 수 있는 이들의 삶을 동경하게 되었고, 그들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과정 속에서 공연장과 문화계를 떠나 서울대공원으로 향한 문화기획자 ‘안이영노’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서울대공원장 ‘안영노’가 된, 그를 만나러 [Weekly@예술경영] 편집위원인 최도인 메타기획컨설팅 전략사업본부장과 함께 과천 서울대공원을 찾았다. 오랜만에 나선 서울대공원으로의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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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에 ‘문화’를 녹여내다

최도인 (문화계에서) 올 상반기 재밌는 이슈는, 안영노 원장의 ‘외출’이었다. 홍대 앞에서 허벅지밴드의 보컬로 활동한 후, 문화평론가 및 문화기획사 대표 ‘안이영노’로 일했다. 그러다 서울대공원장 ‘안영노’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안영노 팔자가 박복한 것 같다(웃음). ‘외출’일 수 있고, ‘가출’일 수 있다. 아주 경쾌한 ‘여행’은 아닌 것 같다. ‘외출인지 가출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은 ‘올인’, 즉 ‘투신’해야 할 일들을 맡았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집중력이 생기고, 늘 열정적인 편이지만 투지가 불타기도 한다. 20대부터 변화가 많았고, 문화평론을 하다 음악(허벅지밴드의 보컬)을 시작했다. 이질적인 변화를 밥 먹듯이 해서 그런지 이곳에서 일할 때 다행히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민간 기업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싶었다. 내 인생에 뜻하지 않은 관직을 맡게 되어서 개인적으론 고민이 많았다. 지금은 공무원이라는 공직이 민간인과 대화하는 위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역지사지’라 여긴다. 내가 문화예술계로 돌아간다면,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데 기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공원에서 일한다고 했을 때, 유명한 문화계 인사들은 동물원을 떠올리며 “동물원에 문화를 넣어”라는 말을 언급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한 경험자로 알려졌지만 동물원에 가서 문화를 만드는 일 역시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서 바라봐준 것이다. 혹자는 내가 서울대공원으로 간 것이 뜻밖으로 생각하겠지만, 문화기획자가 동물원에 가서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겨주는 이들이 많았다. 운영에 대한 여러 고민을 하다 ‘서울대공원의 테마파크에 창의적인 분위기를 넣어보자’는 문화기획자들의 아이디어들로 스트레스를 받기보단, 서울대공원 사업을 습득하여 문화계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했다. 전통시장, 관광분야, 오락산업, 도시계획, 건축 등의 다양한 분야를 건드릴 수 있는 것이 ‘문화기획’이니 말이다.


최도인 열정적인 가출인가?

안영노 열심히 가출했다. 퇴로(退路)를 차단하고 뛰어든 ‘투신’이었다. 문화계가 나를 잊을 수도 있다. 이곳의 임기가 2년이기에 여기가 끝이라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 관심이 가지만, 일부러 관심을 끊고 서울대공원과 테마파크, 동물원에만 집중했던 5개월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청년기, 장년기, 중년기까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계획대로 살아왔던 사람이 아니기에 오는 기회를 ‘서핑’하듯 즐기는 면이 있다. 젊었을 때는 겁이 없어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갑자기 뜻밖의 상황들을 많이 만났다. 문화계에서 내가 동물 이름을 외우고, ‘동물똥’을 치우고 있다고 소문이 나서 놀랐겠지만, (신은 내게) ‘계속 도전하고 공부하고 긴장을 늦추지 말고 잘난 척하지 말고 처음부터 배우라’고 조언한다. 문화계를 떠나 출가외인처럼 지내면서,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무엇을 해도 열정적이고 금세 적응하는 순발력과 유연성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최도인 문화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잘 발견하지 못하는 점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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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노 예술인복지가 언급되고 있지만, 문화기획자들은 주민들의 문화복지를 도와주면서 정작 본인들은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공공지원사업에서 인건비를 벌며, 생존하기 어려운 여건임에도 어떤 자부심과 좋은 전망을 바라보기에 내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 문화계 밖에 있다 보니 위안이 되기도 한다. 중소기업들이나 시민단체들처럼 서울대공원의 사육사들은 정년이 보장되지만, 계약직으로 일하는 분들은 마음고생을 하며 어떻게든 재계약을 하기 위해 노력하며 일하고 있다. 친정인 문화예술계를 바라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힘내라’라는 메시지였다. 문화계에서 배운 노하우와 지식들을 처음부터 이곳에 적용시킬 수는 없었다. ‘문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몇 개월간 이곳의 현황을 파악하고 공부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으로 문화예술계에서 배울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문화기획자로서 안정적인 회사를 운영하며 계획된 일들을 하며 살아가다 보니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동지를 보면, ‘같은 식구니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 아니면 못 만나겠구나. 인생이 가버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예전보다 문화예술계가 더 소중해졌다. ‘20년간 문화계에서 활동한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역설적으로 들었다. 이것이 ‘변화’의 핵심이었다. ‘변화’란 배울 것이 많다는 얘기다. 변화에 응하는 핵심적인 방법은 ‘겸손’이다.

최도인 문화기획자에서 서울대공원장으로서의 변화가 ‘서핑’, 즉 ‘파도타기’라고 언급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분야를 도전하는 ‘호기심’이 중요하다. 호기심도 변화의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안영노 정확하게 짚어줬다. 에너지 넘칠 때, 밑바닥에는 늘 호기심과 ‘돈키호테’처럼 깨지더라도 남의 눈치 볼 것 없다는, 인생은 어차피 부끄럽고 실패도 하는 것이라는 바탕이 있었다. 내가 실패해서 허물을 보이더라도 인간적으로 나를 지지해주는 세상이 있다. 부모님께 감사하다. 그러나 잔머리에 약하고 이미지 마케팅을 안 한 스타일이라 오해를 가져오기도 해서 문화계에선 인맥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문화계는 당장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빛이 나는 일이 아니다. 다른 곳에 꽃을 만들어주는 일이며, 그 바탕은 풍요로운 정서에 있다. 내가 못해도 인생의 허물이 될 것은 아니며, 내가 하는 어떤 행동에 결함이 있더라도 툭툭 털고 사과할 수 있는 것. 그 점이 장수하는 비결이고, 그래야 겁 없이 일을 벌일 수 있다. 그런 행동이 가능하다면, 청년이나 어린이처럼 살아갈 수 있다. 덜 계산해도 되니까. 지금 내 경우는 물론 경영을 맡은 자리이기에 내 호기심대로 할 수만은 없다. 직원들이 기분 좋게, 호기심이 생기게 일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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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리더십은 ‘경청하는 리더’

최도인 문화기획자로서 전통시장, 실버문화 등 사회와 문화가 접목된 이질적인 일들을 기획했다. 서울대공원에서 동물사육사, 공원관리사, 홍보마케터 등 스페셜리스트들과 함께 일하면서 생겨난 철학은 무엇인가?

안영노 첫 번째는 ‘경청’이다. 경청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존과 전략이 필수적이라, 경험자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알지 못하면 내가, 서울대공원이 도태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알아야 한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듣는다는 의미도 되지만, 또 다른 의미로 ‘겸허’하게 듣지 못하면 본질을 찾지 못한다는 의미도 있다. 두 번째는 정서적으로 들어주는 것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애로사항과 고민을 들어주며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일하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이들과 하루에 2~3개의 모임을 가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대공원장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경청하는 자리를 만들 것이다.

최도인 예술경영분야에서 ‘문화경영’이나 ‘문화적 리더십’들이 현재 논의되는 시작점에 있 있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리더’가 있었으나, 리더십이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경청하는 리더’가 생겨나고 있다.

안영노 문화적 리더십은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지도자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정의가 있어야 한다. 내가 몸담았던 기분 좋은 큐엑스(QX)’에서는 2005년부터 ‘문화적 리더십’을 정의하려고 애쓴 적이 있다. ‘문화적 리더십’의 ‘문화적(Cultural)’을 소통을 통해 공감을 창출하는 것으로 정의했는데, 조작적 정의였다. 리더십 훈련을 시킬 때 소통의 기술인 소통시점과 소통효과를 관리하는 것을 가르쳐야 리더를 양성할 수 있다. 공감을 창출하는 일은 ‘아침에 직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라는 팩트가 아니라, ‘간담회 이후에 조직원들이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에 대한 매니지먼트다. ‘공감이 창출한다는 것’은 변화가 생기거나 성장이 생겨서 기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적 리더십은 매니지먼트의 문제이다. 문화예술계에서 논의를 펼쳐줄 곳이 없어 동료들과 ‘한국문화기획학교’를 만들어 문화적 리더십을 펼치려고 했었다. 이곳에서도 그러한 리더십을 펼쳐내는 것이 숙제다.

최도인 지난 6개월간 ‘문화적 리더십’을 펼친 사례가 있었나.

안영노 총무과에서 과별로, 팀별로, 직급별로, 직렬별로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간담회를 마련했다. 줄넘기대회나 축구대회, 회사 밖에서 나눔 활동을 하는 직원들의 자원봉사동아리 회원들을 만나 격려하기도 했고, 호랑이 숲을 개보수하는 협력 사업의 프로젝트 담당자들도 만났다. 그런데 구내식당을 책임지는 영양사들을 만났을 때 문제가 있었다. 매일 오후 4시 반에 그분들과 모임을 가졌는데, 그 시간은 영양사들이 음식 준비를 하고 쉬는 시간이었다. 그런 분들께 기관장들이 말 한마디 할 수 있나. 그런 자리를 형식적으로 만들기보다 사적으로 친밀감 있게 지나가는 자리에서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말을 꺼내야 한다. 관리자의 일상으로 비춰질지 몰라도 내게는 가장 큰 프로젝트였다. 그들의 쉬는 시간을 존중해줌으로써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기획팀과 ';비전TF';의 일환으로, 대공원사업계획을 간부들과 앞으로 어느 비전으로 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내부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지난 8월 말까지 4개월 동안 하루에 한 건씩, 90~100회를 진행했다. 일례로 ‘야간개장을 없애자’라는 직원들의 노조간담회를 열어, 절충안으로 ‘야간개장 끝나는 시간을 현실화시키자’라는 방안을 세우기도 했다. 집이 먼 직원들이 청소하고 일하는 시간까지 계산하여 판단한 것으로, 전체 직원과 7~8번 협의하여 결정했다.

최도인 안영노 원장을 밖에서 바라보면서, 아이디어가 많으며 아이디어를 실현시키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하면서 느꼈던 점은 오히려 ‘듣는 리더십’을 생각하고 있고, 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안영노 나를 뛰어넘는 탁월한 문화기획자들이 많다는 것을 10년 전부터 받아들였다. 20대부터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다 보니 오만방자했다. 축제기획자가 되면서 (사회에서) 깨져보고, 10년간 회사를 운영하며 깨져도 보았다. 20대를 넘은 순간, 내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라고 아이디어가 없겠나? 없다(웃음). 스승 한 분이 “영노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고 하셨다. 기분 좋은 큐엑스(QX)라는 회사에서 10년 전 트렌드에 대해 연구했는데, 비슷한 시기에는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한다. 벨(Bell)이 전화기 특허 등록을 할 때, 바로 똑같은 아이디어를 2시간 뒤에 등록한 사람이 있었다. 벨이라는 사람이 천재가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했고, 그것을 먼저 실천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좋은 문화기획도 그러하고 좋은 경영도 그러하기에, 흐르고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조정자, 간사, 코디네이터, 매니저 등으로 일하면서 다른 사람의 창의적인 아이템을 획득하고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왔다.

▲서울대공원의 전경(사진제공_서울대공원) ▲▲야간 개장하는 서울동물원의 모습(사진제공_서울대공원 페이스북)

▲서울대공원의 전경(사진제공_서울대공원)
▲▲야간 개장하는 서울동물원의 모습
(사진제공_서울대공원 페이스북)

동물원을 발전시키는 ‘문화 사랑방’을 만들고 싶어

최도인 문화기획자로서 서울대공원에 문화예술가들이나 문화기획자들과의 작업을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임기 중에 구상하고 있지 않은가.

안영노 문화계 인사들을 9월부터 만나면서 자문을 받고 있으며, 동물원을 발전시키는 문화인의 모임을 하고 싶다. 사실 서울대공원의 공간이 30년 된 시설이라 리모델링을 하기가 어렵다. 1차적으로 현 상황을 알리며, 같이 일하고 싶은 이들의 욕구들을 파악하고 재원의 확보를 공동으로 모색하면서 좋은 살롱을 구상하는 것이다. 대공원에 없는 예산을 위해 모색하는 방법이 기부모금 파티로 해야만 하는 작업이다. 동물원을 고치는 데 있어 문화계 인사들이 기업과 예술계를 매칭할 수 있을 것이며, ‘파티’를 다변화할 수 있는 작업을 함께할 수 있다. 아주 거창한 파티가 아니라, 살롱에서 발전한 파티다.

문화계 용어로 살롱은 ‘사랑방’이다. ‘문화 사랑방’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이질적인 것에서의 영향이 좋으니, 굉장한 힘이 생긴다. 작은 향연이 될 것이며, 테드(Ted)처럼 시연과 사업설명 등의 프로그램으로 꾸며질 것이다. 서울대공원 직원들은 대공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협조해줘야 할 기금모금을 브리핑할 수 있겠지만, 문화계 인사들은 여러 가이드를 조언해줄 수 있을 것이다.


최도인 동물원 안에 ‘문화 사랑방’을 만드는 것인가.

안영노 목표의식이 분명한 사랑방을 원한다. 앞서 ‘슬픈 동물원’을 말했지만, 주로 동물복지를 위해서 동물사(動物舍)를 개선하는 데 예술가와 건축가, 기업의 자금, 사람들의 재능기부, 자원봉사들의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을 모아서 추상적으로 사랑방을 만드는 것이 아닌, 목표와 여건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좋은 안을 낼 것이며 구체화시킬 것이다.

안영노/안영노는 연세대 사회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과정 수료 및 홍익대 예술학 석사학위를 마쳤다. 1990년대 후반에는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며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대변하는 잡지[펜진 공]을 만들었고, 허벅지밴드를 결성하여 실험적 음악 활동을 펼쳤다. 이어 유스 페스티벌(Youth Festival, 1999~2000)의 총기획과 사업지원국장을 맡았으며, 한겨레문화기획학교 설립을 주관했고, 2003년 젊은 문화기획자들과 힘을 모아 기분좋은 큐엑스(QX)를 설립했다. 저서로는『놀자 깨자 비틀자』(공저, 2001)『나에게 반하다』(공저, 2008) 등이 있다.기분좋은 큐엑스(QX)

손혜정 필자소개
손혜정_ [Weekly@예술경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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