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성 인력 1천만 시대, 공연계 역시 많은 여성 인력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 인력이 리더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높은 비정규직 비율에 따른 잦은 이직 때문일까? 그럼에도 여기, 현명하게 공연계를 지키는 여성 인력들이 있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발견하려 한다. / 특집 ① [좌담] 공연계 여성 리더십 환경 조성, 무엇이 문제인가? / ② [현장+人] 여성 연출가로 공연계에서 우뚝 서기까지 / ③ [하우투] 공연예술계에서 여성으로 일하는 노하우 / ④ [서평] 『여자, 노동을 말하다』
일  시│ 2013년 10월 14일 오후 4시 / 장  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극은 만남의 예술이다.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끊임없는 만남을 통해 만들어지고, 또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연출가가 있다. 어린이청소년극에서 출발한 연출가 남인우는 판소리와 창극, 그리고 성인극(굳이 나누어 표현하자면)으로까지 자신의 행보를 확장해왔다. 그 길목에는 언제나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그녀는 두려움을 동반하는 그 만남들을 즐기려고 노력해왔다. 필연과 우연을 동반한 그 만남의 이야기 속에는 한 사람의 연출가로서, 또 여성 연출가로서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환희가 있었다. 짧아서 더 애타는 어느 가을날, 그녀의 연출 노트 책갈피를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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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극 연출가로서의 자존감,
잠깐이지만 추풍낙엽일 때도 있었다

2002년, 남인우는 어린이청소년극 전문 집단 &lsquo;북새통&rsquo;을 만들었다. &lsquo;놀이가 연극이 되는 무대, 연극이 놀이가 되는 세상&rsquo;을 꿈꾸면서, 시끌시끌 북적북적 법석일 수 있는 무대와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봉고차 한 대에 세트를 싣고 극단 식구들과 함께 올라타 지역을 누비며 공연을 했다. 그즈음 창작하기 시작하여 내놓은 작품이 제주도 무속신화를 바탕으로 한 어린이극 <가믄장 아기>다. 국내외에서 모두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예술가에게 &lsquo;인정&rsquo;이라는 말의 의미는 때로 참 얄궂다. 관객의 인정, 동시대에 함께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인정, 비평가들의 인정, 창작자 자신의 인정.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면 창작자로서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일 테지만, 그 욕심은 쉬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괴롭다.

남인우와 &lsquo;북새통&rsquo; 사람들은 <가믄장 아기>로 독일, 일본, 러시아 등 수많은 나라의 초청을 받았다. 공연을 통해 열띤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로 돌아오면 자꾸 씁쓸해졌다. 어린이극, 청소년극이 화두가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작품이 평가절하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좀 단순하게 말하면 이런 거다. &ldquo;작품은 좋다, 그런데 어린이극이잖아&hellip;.&rdquo;

작품에 대한 고민, 결혼과 육아 등 삶에 대한 고민으로 쉴 새 없이 수다가 이어지던 &lsquo;북새통&rsquo;이 자꾸 조용해졌다. 정체성의 고민에 빠진 것이다. &lsquo;어린이청소년극 전문 집단&rsquo;이라는 타이틀을 지우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 정도로 힘이 빠졌을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린이청소년극을 공부할 때 가졌던 고민과 그것을 극복해보고자 마음먹었던 시간으로 말이다.

&ldquo;관객의 연령을 제한하는 것이 어린이극이 아니라는 걸 생각하게 된 거죠. 바꿔 말하자면 어린이청소년극은 오히려 관객을 확장하는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당연히 더 다양한 삶의 모습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걸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연극 언어를 찾아야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은 거죠.&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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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북새통 <가믄장 아기> 공연 모습
(사진제공_극단 북새통)
▲▲소리꾼 이자람과 함께한 <억척가>
공연 모습(사진제공_LG아트센터)

여성을 이야기할 때, 내가 생각하는 것

남인우가 &lsquo;어린이청소년극&rsquo;을 고민할 때 가졌던 또 하나의 질문은 아티스트에 대한 규정의 문제였다. 한 아티스트의 활동에 대해 그 반경을 규정하려는 시선 말이다. 하나 잘하기도 힘든데, 혹은 한 우물을 파야지, 라는 생각. 그 때문인지 그녀가 소리꾼 이자람과 함께 <사천가>를 만들었을 때, 다소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따금 연극 연출가들이 클래식 콘서트나 무용 공연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그 작업은 일회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녀는 레퍼토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자세로 주제를 공유하며 이자람의 작창(作唱) 과정을 도왔다. 소리꾼이 본능적으로 만든 소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주며, 나아가 매력적인 연기를 통해 그 소리가 더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과정이 있었기에 그들의 행보가 두 번째 작품 <억척가>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작품 모두 브레히트의 원작에서 굴곡진 여성의 이야기를 주되게 끌어왔다. 누구보다 착한 여자였지만 돈에 눈이 먼 사람들 때문에 악한 자로 변장할 수밖에 없었던 <사천가>의 &lsquo;순덕&rsquo;, 전쟁 통에 억척 상인이 되고 아들의 죽음마저 모른 척하는 비정한 어미가 되어야만 했던 <억척가>의 &lsquo;순종&rsquo;이 그들이다. 그렇다면 여성 연출가로서의 남인우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어떤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ldquo;여성 연출가라는 자의식을 갖고 특별히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아요. 여성의 삶을 소재로 이야기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잖아요. 오히려 작품을 통해 문제의식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하고, 그것이 더 어려운 일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가믄장 아기>를 공연할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왜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일찍부터 규정된 성 역할을 주입하는 걸까라고. 그러면 이런 생각을 품고 있는 아이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 걸까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rdquo;

그래서 그녀는 바란다. 관객들이 <가믄장 아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척해가는 여주인공을 뜨겁게 느끼고, <사천가>를 통해 주인공의 고통을 공유하면서도 한편 모순으로 똘똘 뭉친 이 사회를 차갑게 느낄 수 있기를.

열정과 냉정 사이, 수다와 &lsquo;버럭&rsquo;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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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우는 2011년 &lsquo;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rsquo;가 제작한 <소년이그랬다>의 연출을 맡았다. 연구소 설립 후의 첫 작품이었고, 그녀 스스로 초심으로 돌아가 잘 만들고 싶었다. 연습 내내 배우들을 쉴 새 없이 채찍질했고, 조연출을 들들 볶았다. 작품 특성상 쉴 새 없이 뛰어야만 했던 두 남자 배우는 내내 땀에 절어 있었고, 공연이 다가오면서 연습실 분위기는 자주 살벌해지기도 했다.

&ldquo;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을 때, 내 안의 마초성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더했어요. 무명의 여성 연출가에 대한 편견에 대처하는 방식이었던 거죠.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데 그걸 안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목소리가 커지더라고요.&rdquo;

작품을 거듭할수록 가장 깊어지는 고민은 소통의 문제다. 모든 창작자가 그러하듯, 연출가 또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대의 각 요소들을 통제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 좋은지를, 그녀 스스로도 계속 배워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술 문화를 즐기지는 않는다. 취기를 빌려 서로의 열정을 확인하는 것은 착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수다를 즐긴다.

그녀 곁에는 오래도록 함께 일해온 여성 스태프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그녀들의 연애와 결혼, 육아의 과정을 다 지켜보게 되었다. <북새통>의 단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단원 대부분이 엄마이다 보니, 연습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다 같이 적극적으로 모색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으로 연습 시간을 바꾸고, 아이들이 연습실에 오면 엄마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도록 일종의 연습실 투어 시간도 가졌다. 함께 즐겁게 일하면서도 창작에 대한 몰두를 놓치지 않으려는 서로의 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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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주도하는 예술교육의 꿈

최근 그녀는 안숙선 명창이 주도한 유소년을 위한 &lsquo;창극 아카데미&rsquo;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또 서울문화재단 사업의 일환으로 유럽의 문화예술교육기관을 탐방하기도 했다. 예술교육에 대한 그간의 생각들이 확장되는 기회였다. 청소년들이 각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예술 경험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았다. 교육 시설과 기자재는 웬만한 대학 수준 이상이었다. 마냥 부러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역시 뜻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정부를 설득하고 후원자들을 만남으로써 이루어낸 성과였다. 이제 그녀도 꿈을 꾼다. 우리나라의 현실과 예술의 특성에 맞는 통합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체를 꾸려갈 수 있기를.

&ldquo;좋은 예술가가 좋은 교육자는 아닐 수 있어요. 그럼에도 예술교육은 예술가가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술이 교육의 수단에 그치는 게 아니라, 예술가와 아이들이 함께 예술을 즐길 수 있어야 하니까요.&rdquo;

사진촬영_조석환


남인우 / 남인우는 한양대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어린이청소년극을 전공했다. 얼떨결에 제주도 신화로 만든 <가믄장 아기>로 전국을 봉고차로 누비며 공연하다가 세계 방방곡곡에서 순회공연을 했다. 이후 <사천가>, <억척가> 등으로 한국의 음악적 미학과 연극적 형식을 어린이청소년 관객부터 성인 관객에 이르기까지 확장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지금도 연극을 만드는 일, 연극으로 함께하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더불어 문학, 관현악, 현대무용, 시각미술 등에 간섭하면서 이것저것 섞이려고 애쓰고 있다. 극단 북새통과 판소리 만들기 ‘자’에서 현재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13;&#10;&#9;&#9;&#9;&#9;&#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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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주 필자소개
한현주는 희곡 작가로 <878미터의 봄>, <우릴 봤을까?>,<그 샘에 고인 말> 등을 썼다. 제1회 벽산희곡상을 수상했다. <소년이그랬다>의 극본을 쓰면서 남인우 연출가를 만났고, 그 후 자꾸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지면을 통해 그녀의 말을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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