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3년 11월 20일 / 장    소│ 삼성동 올림푸스홀 기업과 예술이 한 문장 속에서 어떤 연관성을 갖고 표현될지 실로 그 변주는 다양하다. ‘예술에 대한 기업의 기부’는 예술단체가 환호할 만한 표현이다. 한편 ‘예술이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켜’는 기업가가 흐뭇해 할 표현이다. 이런 표현 속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예술에 대한 무한한 긍정성에 대한 환상이다. 예술과 기업의 관계에 대한 무한한 긍정성은 예술이 상품 생산과 관련해 가져오는 기능주의적, 도구주의적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 예술에 내재한 가치적 측면의 결합보다 예술의 심미적 측면과 상품 생산 결합에 의해 발생한 성과의 목격, 혹은 예술활동이 가져오는 조직 내 활력 증가와 같은 성과에 힘입은 바 클 듯하다. 최근에는 예술 창의성이 기업에서의 혁신이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 개발을 위한 원동력으로 인식되며 예술의 새로운 위상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술과 기업의 만남이 이런 아름다운 결과만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문화체육관광부 2013 국제포럼 “기업혁신, 예술에서 길을 찾다: 예술@창조경제”는 이런 질문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게 해 주는 자리였다. 예술과 기업을 접목시킬 때 많은 환상이 존재하는 ‘조직원 순화의 기능’이나 ‘카타르시스를 통한 갈등해소’가 가능한 것인지 “유럽의 조직 내 예술적 개입 배경과 현황, 그리고 의미”를 발제한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WZB)아리안 베르토인 안탈을 인터뷰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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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반니 쉬우마 교수는 런던 예술대학(UAL) 혁신 인사이트 허브 센터(Innovation Insights Hub)의 총괄 디렉터이자 이탈리아 바칠리카타 대학(Università degli Studi della Basilicata) 이노베이션 경영학과 교수로 2013 국제포럼에서 ‘변화된 비즈니스 환경에서 예술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발제했다.

조직의 존재 목적과 예술의 개입


홍기원 이번 포럼의 주제인 ‘기업혁신’이라는 표현과 조금 다른 ‘조직에 대한 예술 개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리안 베르토인 안탈(이하 안탈) 내가 연구하는 예술의 개입은 영리기업뿐만 아니라 공공조직이나 사회조직 모두가 대상이 된다. 나는 모든 조직은 그 법적 지위나 운영 형태에 관계없이 존재 목적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리기업의 경우, 이익의 단기적 추구가 목적인지 장기적 차원에서 성과 달성이 목적인지를 결정해야 할 부분들이 있지만, 조직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예술이 그러한 고민에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기원 조반니 쉬우마(Giovanni Schiuma)1) 교수의 예술 개입과 본인의 예술 개입 정의는 유사한 바탕을 가지고 있는가,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안탈 예술 개입은 전면적이고 전방위적일 수 있다. 예술이 예술가의 자격으로, 예술품의 형태로, 예술실행의 과정으로 개입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런 점에서는 쉬우마 교수의 다차원적인 개입과 유사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주장은 예술 개입을 통한 조직의 변화에 더 초점을 둔다고 할 수 있는데, ‘문화적 불화의 논리(cultural dissonance logic)’와 ‘예술적 논리(artistic logic)’두 가지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문화적 불화의 논리는 기존의 관습적 행태나 시각에 자극을 가하거나 도전을 유발하는 것, 안전하지는 않지만 새롭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쏟아내게 하는 것, 잠재되어 있거나 묻힌 이슈들을 표출시키고 공론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적 논리는 새로운 관점을 도입하는 것, 다양한 형태의 지식에 개방적 태도를 갖는 것, 행위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것, 인간성의 폭을 확장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홍기원 예술이 기업활동이나 조직활동에 활용될 때 뭔가 만병통치약 처방처럼 이야기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방금 말한 두 개의 논리는 그런 환상을 거부하는 것 같다.

안탈 사례발표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예술로 가지고 조직에 개입하는 것은 모험적 요소도 있다. 독일의 경우 포장재 회사가 지속적인 파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 중 하나로 예술을 개입시킨 사례가 있다. 무빙 월(Moving Wall)이라고 하는 이 프로젝트는 조직 구성원들에게 의사소통 방식의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예술을 매개로 설명한 과정 중심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래피티라는 그 강렬한 표현 방식 때문에 막연하게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들이 60여명의 경영진을 시내 곳곳에 있는 그래피티 현장으로 안내하고 그 예술적 의미를 설명하면서 의사소통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는 점을 이해시켰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베를린 장벽 크기의 가설 벽체를 설치하여 그들의 감정과 의견을 그래피티로 표현하게 했다. 생각보다 격렬한 표현들이 나왔는데, 특히 이것은 언어로 표현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그 정도가 매우 강했다. 결국 조직 내 의사결정 방법의 경직성과 억압성에 대한 문제 그리고 이에 대한 조직원들의 분노와 감정이 표출된 것이며, 이 문제는 이후 대화를 통한 제도개선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홍기원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가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인가? 예술가에게도 특별히 훈련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굉장히 전문적인 능력인 것 같은데.

안탈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에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입장(multi-stakeholder)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건 오히려 어떤 관점이라 할 수 있고, 중요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예술가로서의 행동양식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의 여부다. 즉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을 존중해야 한다. 사고방식에 제약이 있으면 목적이 달성되기 어렵듯, 조직 문제도 그 구성원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요인에 의해 구속받고 제약을 받는 상황이 존재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 예술적 활동 과정의 측면을 대입해봄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포장재회사 파업문제를 해결시키기<br>위해 예술을 매개로 ‘무빙 윌’ 사례<br>(자료출처_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

▲독일의 포장재회사 파업문제를 해결시키기 위해 예술을 매개로 &lsquo;무빙 윌&rsquo; 사례
(사진출처_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

조직 변화의 성공적 에이전트? or 저임금 외부 전문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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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컨설팅 회사의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사진출처_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

홍기원 그렇다면 예술가들이 조직개입 활동을 통해 변화 혁신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안탈 그렇지는 않다. 내가 상대하는 수많은 조직에서는 예술가 정신에 충실한 사람을 선호한다. 예술가의 정신을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예술 개입이라는 활동에서 조직이 원하는 사람이 새로운 조직 컨설팅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 개입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원하진 않는다. 다만 존중과 호기심의 기본 태도를 지니고 있는 예술가를 선호한다. 나는 이것이 모래와 기름 같은 관계라 말하고 싶다. 때로는 껄끄럽게 때로는 유연하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예술가여야 한다.

홍기원 조직에 대한 예술 개입의 미래와 가능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안탈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하는 예술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의 문제를 인지하고 일부 해결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 처방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즉 예술이 조직을 변화시키는 성공적인 에이전트가 될 수 있는지는 좀 더 숙고해봐야 한다. 과거에도 조직의 여러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면서 여성 인력을 대거 유입해 여성적인 특성과 자질을 강조한 시대가 있었다. 예술가와 함께 조직의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한다 내세우지만, 결국 저임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외부의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를 양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인터뷰 말미, 안탈 박사가 던진 &ldquo;저임금 외부 전문인력(underpaid professional outsourcing)&rdquo;이라는 단어가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아마도 문화예술의 도구적 이용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과 사업들이 초래하는 고민이 범세계적인 추세라 그랬을까. 물론 예술가들이 진정한 존중의 마음과 호기심을 가지고 사회에 관여하는가에 대한 커다란 문제도 같이 생각해봐야 할 화두다.

아리안 베르토인 안탈(Ariane Berthoin Antal)/ 아리안 베르토인 안탈은 2009년부터 EU 정부 프로젝트 연구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럽 전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예술적 개입을 가장 포괄적이고 실증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WZB)의 리서치 유닛의 액팅 디렉터, 이스라엘 국제 경영학교인 텔아비브대학교(Tel Aviv University)에서 조직 행동 및 국제 경영 겸임교수, 프랑스 에쉬리지 국제 조직변화 연구소(Ashridg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Organizational Change)의 디렉터, 유럽여성경영개발네트워크(European Women's Management Development Network) 회장직을 역임했다. 현재 독일 베를린기술대학(Technical University of Berlin)에서 다문화 경영학과 명예교수로 있으며, 프랑스 오덴샤 낭트 경영대학원(Audencia Nantes School of Management)의 국제협력학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필자소개
[Weekly@예술경영] 편집위원. 홍기원은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정책ㆍ산업대학원에서 문화행정 주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된 연구 분야는 국제문화교류, 다문화정책, 정책평가이다. 현재 유럽연합, ERICArts, IFACCA가 운영하는 WorldCP(Compendium on Cultural Policy)의 한국 프로파일 파트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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