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2013년 11월 19일 / 장    소│ 그랜드 하얏트 서울 기업 혁신에서 예술가들이 할 만한 역할이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 2013 국제포럼 ‘기업혁신, 예술에서 길을 찾다: 예술@창조경제’에 초청받은 피아 아레블라드(Pia Areblad) 틸트(TILLT) 전략제휴 담당 이사는 “예술가들의 역할은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단언했다. 아레블라드와 가진 인터뷰를 소개한다.

예술이 이끌어 내는 새로운 소통 방식

김채현 틸트라는 기관부터 소개해 달라.

피아 아레블라드(이하 아레블라드) 틸트는 기울어진 형태의 춤 움직임을 뜻한다. 예술과 기업을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민간 기구로서, 2001년에 창립했다. 틸트가 의미하는 약간 기울어진 상태는 고정된 사고가 기울어짐으로써 변화가 진행되는 것을 은유한다. 이처럼 틸트는 예술가를 다양한 공사(公私) 조직들에 개입시켜 예술의 힘으로 그 조직의 마음가짐이나 사고방식을 변동시키는 데 목적을 두는 기관이다

김채현 틸트가 13년간 수행한 사업 가운데 성공 사례부터 소개해달라.

아레블라드 스웨덴 예테보리(Göteborg)에 소재한 친환경 가솔린 생산업체인 아스펜(Aspen) 의 사례다. 60명 정도 직원의 회사인데 기업이 소요 자금과 시간을 모두 투자했다. 무용가 한 명이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4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1년간 사업을 진행해 공연을 발표했다. 사업을 수행한 무용가는 첫날 민속의상을 입고 머리에 설거지 세척 솔을 꽂고선 컨템퍼러리 댄스로 자신을 소개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고선 춤이, 예술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서로 토론 시간을 가졌다. 꽤 수준 높은 토론이었다. 대화식 토론에 수직적 위계가 있지도 않았고, 사전에 답이 정해지지도 않았다. 매주 1회 이상 만남을 가지면서 여러 작업과 토론, 워크숍을 진행했다. 조직원들은 서서히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감각을 살려가며 소통하는 방법을 익혀나갔고, 그전에 생산 부서와 마케팅 부서 간에 소통이 단절돼 있었으나 무용가의 방식에 따라 새로운 방식의 소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채현 춤이 공장 현장과는 좀 이질적일 듯한데, 무용가가 진행한 것이 흥미롭다.

아레블라드 무용가는 당연히 무용가다운 방법으로 진행할 것이다. 그 무용가는 심지어 지게차의 움직임 자체를 춤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다. 무용가가 ‘함께 춤추실래요?’ 제안하자 지게차 운전사도 받아들였다. 지게차와 함께 발레를 한 데서도 관점의 변화가 있었고, 회사의 참가자를 모두 창조자로 동참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 예술가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마인드 변화를 유도하는 역할에 치중했다. 발레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공장 안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무용가의 선도로 발레 같은 춤을 경험했다. 2년 후 도시의 다른 도로에서 그런 행사를 재연했다. 그 결과 회사는 혁신 역량을 키울 수 있었고 미디어에도 노출되었다. 물론 무용가의 예술적 역량도 강화됐다. 이 무용가는 2010년 상하이 엑스포(Shanghai World Expo)에서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는 행사를 열었다.
▲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조직개편을 했던 임상연구부서에 시각예술가를 파견하여 워크숍 시리즈를 기획한 결과, 직원들의 실루엣 사진을 신축 사옥에 전시했다(사진제공_아르콤).

▲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조직개편을 했던 임상연구부서에 시각예술가를 파견하여 워크숍 시리즈를 기획한 결과, 직원들의 실루엣 사진을 신축 사옥에 전시했다
(사진제공_아르콤).

예술은 도발, 사람은 혁신

아스펜의 경우, 무용가가 회사에 상주하며 생산직, 관리직 업무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생산성이 좋지 않았던 공장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무용수들이 현장에 투입된 장면 ©Rolf Hallin  무용수와 공장직원이 함께 만든 무대 ©Jon Liinason

▲아스펜의 경우, 무용가가 회사에 상주하며 생산직, 관리직 업무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생산성이 좋지 않았던 공장에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무용수들이 현장에 투입된 장면 ©Rolf Hallin
▲▲무용수와 공장직원이 함께 만든 무대
(관련 영상) ©Jon Liinason

김채현 틸트의 그런 역할에 동감한다. 그래도 다시 묻자면 틸트 같은 기관은 왜 필요한가?

아레블라드 틸트 같은 기관은 스웨덴에서 유일하다. 지금 우리는 유럽 13개국에서 약 30개의 기관과 제휴하며, 이 가운데 스페인, 독일, 영국의 대표기관들과는 ‘창조적 충돌(Creative Clash)’이라는 공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날 사회와 경제는 첫째, 지속가능성을 실현해야 하고, 둘째, 기존의 현존하는 모델에 도전해야 하며, 셋째, 사람들을 참여시키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사회 경제가 그런 과제들을 해결해나가려면 사람의 혁신이 필요할 것이고, 여기서 ‘충돌’은 예술가의 남다른 역할을 주목하고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기업과 예술(가)을 연결시켜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면, 먼저 예술을 움직이는 동력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특정 예술가와 특정 기업(또는 기관) 간의 연결 고리들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그 연결고리들은 예술가 후원-지원 활동과 참가자 훈련 프로그램, (생산, 서비스, 경영 측면의) 조직 혁신 프로그램, 조직 내 소통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 등으로 구분된다. 이 고리들을 수행하면서 예술가들과 기업 또는 기관을 엮어주는 것이 ‘충돌’의 주요 활동이다.

김채현 기업 혁신에서 왜 예술이 중시되는가?

아레블라드 혁신은 사람이 한다. 예술과 문화는 혁신의 주체인 사람들을 분발시키고 감성을 길러주며 참여시킨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성이 부각되는 중이다. 예술가의 역량이 전제되겠지만 예술가는 수평적으로 질문하고 감성으로 접촉하면서 문제를 도발할 것을 자극하는 특성이 크다.

김채현 틸트가 수행한 사업으로 실패한 적은 없었나?

아레블라드 예테보리에 소재한 볼보 자동차(Volvo Car)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드라마투르그가 10개월 간의 사전 준비 기간을 거쳐 사업을 진행했다. 이 회사는 유럽 10여 나라 출신으로 구성된 다인종 현장이었는데, 도중에 분위기가 안 좋았고 마찰을 겪다가 마침내 몸싸움까지 발생했다. 사업 석달 째 되던 시점에 드라마투르그가 더 이상 못하겠다며 두 손 들었다. 회사에서도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점이 있었는데, 대기업에서 프로젝트의 복잡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진행된 부작용이 컸다.

김채현 그것으로 막을 내렸는가?

아레블라드 아니다. 문제를 따져 예술가를 매달 한 번 씩 지도하고 회사 내에도 작업 추진 팀을 별도로 만드는 등 갈등 조정기를 거쳐 결국 공연으로 성사시켰다. 이 위기 과정을 겪으면서 예술가와 기업, 기관 사이를 조정, 지원하는 프로듀서 그룹을 신설, 보강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은 작지 않은 소득이었다. 프로듀서에 참여하는 회사 그룹은 회사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개 3~7명으로 구성되고, 틸트에서도 지원 팀이 있다. 우리의 경험상 예술이 개입하는 데 있어 프로듀서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 역할은 첫째, 기업 또는 기관 각각의 수요와 기회를 제공하고, 둘째, 사회 내의 변화 양상을 만들어내며, 셋째, 예술가를 움직이는 동인을 이해하고 그에 적절한 방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우리는 볼보 노동자들이 회사에서나 가정에서 직면할 모든 문제, 심지어는 권력과 젠더 이슈, 산업 사회로부터 지식 사회로 이동하는 데 따르는 문제까지 인터뷰, 글쓰기, 이메일 답신 등으로 낱낱이 파헤쳐 그들의 실상을 노출시켰고 책으로도 출판했다. 그후 회사 직원 3인이 지역 축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실패든 성공이든 사업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틸트의 운영과 유럽 제휴 기관

프랑스 컨설팅 회사의 아티스트 레지던스<br>프로그램(사진출처_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 김채현 틸트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아레블라드 처음 두 명으로 출발해 2009년에는 17명의 스태프가 구성됐고, 지금은 8명의 스태프로 운영되고 있다. 틸트는 그간 600여 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그중 100개 정도가 1년 정도 장기 프로젝트였다. 올해에는 장기 프로젝트가 다섯 개이고, 나머지는 단기 프로젝트들이다. 단기 프로젝트 사례로 인터뷰하는 오늘 스웨덴 내셔널 이노베이션 센터와 공동으로 사회 혁신을 주제로 안무가, 드라마투르그, 연구자들이 노인복지관 직원, 기업 매니저들과 함께 이틀간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을 거다. 연간 예산은 80만 유로(12억원 정도)이며, 공공 기금 20%, 유럽연합 기금 30%, 기업 지원금 50% 정도로 구성된다. 우리는 무용가, 극작가, 작곡가, 배우 등 모든 예술 장르의 예술가를 활용하는데, 내가 춤 경력을 가져선지 춤을 많이 고려하는 편이다. 그런데 무용가들이 매우 중요한 성공 사례들을 산출하곤 하는데, 무용가들은 항상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일을 충실히 추진하는 편이다.

김채현 &lsquo;창조적 충돌&rsquo;의 유럽연합 제휴 기관들을 소개해 달라.

아레블라드 &lsquo;창조적 충돌&rsquo;은 예술과 산업 및 사회를 연결하는 범유럽 네트워크다. 5년 동안 20개국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한국도 업저버로 참여하기 바란다. 그중 스페인의 기관인 C2+i(빌바오 소재)가 매우 활발하다. C2+i는 매우 유능하며 2005년부터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 100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줄로 안다. &lsquo;창조적 충돌&rsquo; 외에도 예술가 개인 조직들이 단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우도 흔하다.

김채현 정치학과 무용학을 전공하는 등 본인의 이력이 좀 특이해 보인다.

아레블라드 예테보리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한 후, 스톡홀름무용대학에서 무용교육학 석사, 예테보리대학 경제대학원에서 리더십 및 전략 개발을 전공했다. 6살 때부터 발레를 배우고 계속 발레를 했다. 정치학을 하다보니 머리보다 몸이 먼저 늙는다는 생각에 무용교육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요가도 가르친다. 1995~1996년 릴라아카데미의 무용교육 책임자, 1997~1999년 바스트무용센터에서 춤교육자 겸 교과 개발자로 일했다. 1994년 세워진 릴라아카데미는 6~19세 청소년 대상 예술계 초중고등학교로서 재학생은 8백 명 규모다. 스웨덴에서 유일하다. 2001년부터 스웨덴 교육부 소속의 정규학교로서 완전히 무료로 운영된다. 춤, 솔페지오, 그림 교육, 예술 교육을 시키는데, 10대 초반에 자신이 치중할 분야를 정하도록 한다. 지금은 음악 교육에 치중하는 학생들이 더 많지만 춤, 그림 분야 교육도 병행해서 받도록 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피아 아레블라드 이사는 &lsquo;창조적 충돌&rsquo;에서의 작업은 예술가에게 또 하나의 잡(부업)이 아니라 사회의 마음가짐을 변화시키고 바로 잡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춤과 예술에 대해 전해들은 바가 적지 않고 수준도 주목된다면서 스웨덴과 한국 간의 교류가 적극 이뤄지기를 기대했다.

피아 아레블라드(Pia Areblad) / 피아 아레블라드는 고텐버그대학 정치학 석사와 스톡홀름 무용대학에서 무용 교육학 석사를 마쳤으며, 고텐버그 대학 경제대학원, 리더쉽 및 전략 개발 전공했다. 스웨덴 릴라 아카데미(Lilla Akademin)무용 부문 교육 책임자와 스웨덴 웨스트 무용센터(Danscentrum Vast) 교육가 등의 커리어를 거쳐 1997년부터 기업과 사회에 예술과 문화를 전파시키는 역할을 시작하였으며, SABA (Swedish Arts and Business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2001년 스웨덴에 틸트(TILLT)를 창설한 이래 예술과 조직 간의 가교 역할을 해 온 대표적인 인물로 2010년까지 디렉터로 활동했으며, 2011년 이후 전략적 제휴 담당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조직 내 예술적 개입’을 위한 범유럽 네트워크인 ‘창조적 충돌(Creative Clash)’를 출범시켰으며, 스웨덴 서부 지역에서 스웨덴 서부 상공회의소, 산업전시회, 고텐버그 대학 예술 학부, 고텐버그 비즈니스 지역, 틸트를 아우르는혁신을 위한 파트너쉽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참고기사
[현장+人] 베를린사회과학연구소 아리안 베르토인 안탈(Ariane Berthoin Antal)



필자소개
김채현은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한 후, 춤과 예술분야의 비평과 「춤과 삶의 문화」를 비롯한 다수의 논문을 써왔다. 저서에는 『우리 무용 100년』(공저, 2001),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2008)이 있으며, 『춤』, 『미적 체험의 현상학』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20여년간 한국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현장을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이 7천 편에 이른다.한국춤비평가협회에서 발행하는 [춤웹진]의 편집인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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