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가 서도호가 지난 &lsquo;2013 예술경영 5대 뉴스&rsquo; 설문조사 결과 올해의 인물 &lsquo;예술창작 부문&rsquo;에서 최다 득표를 받았다. 오랫동안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활발한 활동을 선보여온 그가 최근 국내에서의 활약은 눈부시다. 2012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개최한 개인전은 살아있는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였으며, 개관 이래 최다 관객 수를 모을 만큼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소형트럭을 개조해 광주 곳곳을 누비는 이동식 호텔인 <틈새 호텔>은 &lsquo;2012 광주비엔날레&rsquo;에 이어 참여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lsquo;2013 광주 폴리Ⅱ&rsquo;에서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또한 2013년 미술계 최대 이슈인 &lsquo;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rsquo; 개관특별전에 참여한 7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의 작업 중에서 서도호의 대규모 신작은 단연 돋보였다. 그뿐이랴. 그는 최근 월스트리스저널(WSJ) 매거진에서 선정한 &lsquo;올해의 혁신가상&rsquo;, &lsquo;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rsquo; 최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국내외에서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작업은 또 하나의 우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가장 실험적인 전시공간인 서울박스에 선보인 신작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은 그동안 발표한 &lsquo;집&rsquo; 시리즈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작품이다. 사실 설치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전시 공간은 대단히 중요한데, 서울관이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작품을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서도호는 서울관 설계를 맡은 건축가 민현준과 소통하며, 그동안 공간을 많이 다루어 온 그간의 경험과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의 도움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작품구상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작가가 살았던 집들을 비롯해 서울관 터에 존재하는 건물들의 서로 다른 역사와 장소성을 그대로 품으며 놀라운 에너지를 내뿜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된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왼쪽부터)과 삼성미술관 리움《집 속의 집》 전시광경

&ldquo;일단 전시장이 &lsquo;서울&rsquo;에 있다는 점, 서울 안에서도 &lsquo;경복궁 터 종친부&rsquo; 자리에 위치한다는 점, &lsquo;국립현대미술관&rsquo;이라는 건물 안이라는 점을 항상 생각했다. 공간이 가지는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작품구상에 임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작품 자체에서는 이런 맥락들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작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장소 자체를 환기하는 포인트였다. 서울 박스의 창문 뒤로 보이는 종친부의 모습이 제 작품과 겹치는 특정 시점에서, 작품을 통해 보이는 서울관의 공간들을 통해서, 작품과 작품 사이의 공간, 작품과 서울박스 사이의 공간을 발견한다면 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중첩된 공간으로서의 서울박스 &lsquo;터&rsquo;를 환기하려고 시도했다.&rdquo;

서도호의 초기 집 작업은 <서울 집/ L.A. 집/뉴욕 집/볼티모어 집/런던 집/시애틀 집/L.A. 집> 등 한 작품이 여러 도시에서 전시하면서 작품 제목도 덧붙여지고 유목민처럼 부유하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2012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개인전 제목은《집 속의 집》. 건축가 렘 쿨하스(Remment Koolhaas)가 설계한 블랙박스 안에 그가 살던 5개의 집을 선보인 전시였다. 이번 서울관 신작인 &lsquo;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rsquo;에서는 겹의 개념이 더욱 강조되었는데, 서도호는 그의 작업에서 &lsquo;집 속의 집&rsquo;은 갑자기 생긴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ldquo;이번 작업도 크게는 제가 천착해온 &lsquo;개인의 공간&rsquo;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에서 바라볼 수 있다. 공간의 이동성 또한 이 범주 안에 들어가는 소주제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집 작업은 제목에서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 소재하는 도시의 이름을 열거함으로써 이동성을 강조하려는 시도였다. 여기서 &lsquo;집 속의 집&rsquo; 개념 또한 엿볼 수 있다. 맥락을 제거한 공간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명이 앞에 붙은 집 이름들이 나열된 것이다. 이미 &lsquo;집 속의 집&rsquo;이었다. 관객들은 전시된 작품만 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rdquo;

방귀 2010

▲ <방귀> 2010

개인적으로 리움 전시 때 무척 흥미롭게 본 작품 중 하나는 <방귀> 드로잉이었다. 뉴욕에서 밥을 먹고 비행기를 타고 소화한 뒤 서울에 와서 방귀를 뀌면, 뉴욕의 음식, 공기 등을 옮겨올 수 있다는 발상이 재미있었다. 그리고 방귀의 형상을 유심히 살펴보면 집의 형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서도호에게 &lsquo;집&rsquo;은 어떤 의미일까?

&ldquo;내게 집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이동 가능한 것, 가변적인 존재다. 그리고 잡으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공기 속으로 흩어지는 방귀와 같은 존재다. 그렇지만 항상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rdquo;

사실 서도호의 작업은 살던 집을 실측해 그대로 옮겨 내거나, 서양식 건물에 한옥이 충돌하는 등 작업이 대단히 명쾌해서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관람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업이 쉬우면서도 &lsquo;스케일&rsquo;과 &lsquo;디테일&rsquo;이 늘 보는 이를 압도하는데. 그것을 구현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작업할 때 스펙터클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지 궁금했다.

&ldquo;작품이 쉽다는 말은 칭찬이기도 하고 비판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론 다 좋다. &lsquo;스케일(규모)&rsquo;과 &lsquo;크기&rsquo;는 같은 개념인 것 같으나 다른 것으로 생각한다. 작업할 때 &lsquo;크기&rsquo; 보단 항상 &lsquo;스케일&rsquo;을 생각한다. &lsquo;디테일&rsquo;은 &lsquo;스케일&rsquo;의 범주 안에서 고려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크고 작은 스케일이 하나의 작품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우주가 구성된 형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lsquo;크기&rsquo;가 큰 작업을 선호한다는 뜻이 아니다. 스펙터클도 마찬가지다. 크다고 스펙터클한 것이 아니고, 스펙터클하다고 작품이 큰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곳에도 스펙터클은 존재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따라서 작업할 때 스펙터클에 관련된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 결과로 보는 이에 따라서 스펙터클한 작업으로 보이는 것이다.&rdquo;

특수성을 바탕으로 보편성을 추구한다

바닥 바닥2

▲ <바닥> 1997-2000

&lsquo;작가 서도호&rsquo; 하면 천 작업인 <집 시리즈>가 잘 알려졌지만 그의 작업에서 또 다른 축은 익명의 개인이 모여 큰 집합을 이루는 <인간 군상 시리즈>다. 초기 작업은 군화 아래 작은 인물 군상, 군번표를 이어 만든 갑옷, 유치원복부터 민방위복까지 직접 입었던 제복을 이어붙인 작품 등 한국의 시대적 자화상이자 억압과 권력에 대한 저항이 두드러진다. 이에 비해 <카르마>, <인과> 등 최근 선보이는 군상 작업은 더욱 아름답고 서정적인 표현 방식이 두드러진다.

&ldquo;초기의 군상 작업에서 획일적인 제도에 대한 비평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만들어진 시점을 보면 우리 사회가 이미 많이 유연해진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lsquo;저항&rsquo;이라는 단어가 성립하려면 작품이 만들어졌을 때의 정치적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제 작품들이 만들어졌던 시점들은 저항의 의미를 희박하게 만든다. 나의 모든 작품은 &lsquo;일정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rsquo;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종종 &lsquo;뒤돌아보기&rsquo;가 되곤 합니다. 민중미술 등이 지니고 있는 절심함이나 긴박감 같은 것들이 빠졌다고 볼 수도 있는데, 이는 위에서 언급 한대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나의 작업태도와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특수성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어떤 보편성을 확보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다. 그리고 최근 군상 작업들은 시대, 정치, 사회적 특수성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고 정신, 종교, 철학적인 생각에서 시작된 작품이라 현실로부터의 시각적인 레퍼런스가 존재하지 않는다.&rdquo;

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바쁜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다. 1월 25일 끝나는 홍콩 개인전 이후 그는 뉴욕과 오스틴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뉴욕에서 열리는 전시는 넓은 의미의 &lsquo;드로잉&rsquo; 개념을 가지고 전속화랑인 리먼머핀갤러리(Lehmann Maupin Gallery)의 두 장소에서 동시에 열린다. 그때에 맞춰 드로잉을 모은 책이 발간될 예정이다. 한편 2010년 뉴욕에서 런던으로 보금자리를 옮긴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가족들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데에도 집중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또 하나의 집을 만드는 데 한 땀 한 땀 정성을 쏟고 있는 것이다. &ldquo;아직 많이 어린 자녀들이 조심스럽지만 매일 달라지는 아이들을 보며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의 깊이를 느끼곤 한다.&rdquo;

사진제공_SUH ART


서도호/서도호는 1962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회화를, 예일 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뉴욕 리먼 머핀 갤러리, 휘트니미술관 필립모리스분관,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시애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도쿄 메종 에르메스, 베를린 DAAD갤러리, 삼성미술관 리움,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 히로시마 시립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베니스비엔날레, 이스탄불비엔날레 리버풀비엔날레 등의 국제 비엔날레에 초대되었다. 현재 런던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이슬비 필자소개
이슬비는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아트인컬처]가 주관한 미술평론 공모 &lsquo;2008 New Vision&rsquo;에 당선됐으며 현재[월간미술]기자로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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