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3년 12월 6일/장소 : 뉴욕 퍼포마 사무실 &lsquo;눈에 띄게 예쁘고, 우아하며, 멋지고, 호기심을 자극하는&rsquo;. 이것이 내가 30여년 전 뉴욕의 키친(Kitchen)에서 공연 큐레이터로 일할 때 처음 봤던 로즈리 골드버그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골드버그는 공연예술의 개척자이자, 모험가이며, 열정에 넘쳐 지칠 줄 모르는 챔피언이다. 1970년대 초반 이후 그녀는 공연예술 관련 리서치와 글쓰기와 발언들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가들의 작업을 큐레이팅하고, 소개와 제작 그리고 위촉하기도 했다. 골드버그는 1979년 처음 출간돼 현재 세 번째 개정판이 나온 그녀의 독창적인 저서 <공연예술-미래파부터 현재까지>로 세계의 이목을 공연예술로 집중시켰다. 이 책은 현재 세계 곳곳의 대학에서 공연예술 교육의 주요저서로 활용되고 있고, 중국어, 크로아티아어, 불어, 일본어, 한국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8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1972년 그녀가 로열아트칼리지갤러리(Royal Art College Gallery)의 디렉터가 되었을 때, 골드버그는 다층위적이고, 분야 통합적인 새 큐레이터적 작업으로 선례를 남겼다. 그녀는 몇 년 뒤 키친(Kitchen)에서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필립 글래스(Phillip Glass), 피터 고든(Peter Gordon),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 그리고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과 같은 획기적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기 위한 퍼포먼스 공간과 시각예술 갤러리, 비디오룸을 만들었고, 그들의 작업을 큐레이팅을 했다. 특히 잭 골드스타인(Jack Goldstein), 셰리 리바인(Sherri Levine),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 그리고 신디 셔먼(Cindy Sherman)과 같은 아티스트들의 첫 단독전시를 기획했다. 그녀의 이 획기적인 기획들은 키친(Kitchen)을 세계적 멀티미디어 기관 중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자리매김시켰다.
▲ 신디셔먼과 로즈리 골드버그

▲ 신디 셔먼과 로즈리 골드버그

골드버그는 2004년 미국에서 처음 설립된 시각예술 아티스트들의 퍼포먼스 비엔날레 퍼포마(PERFORMA)의 수장이다. 퍼포마는 2년마다 11월에 개최 돼 뉴욕시 곳곳의 60여개 이상의 공간에서 미국과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보여주는 100여개의 라이브 퍼포먼스와 영상상영, 전시, 강연, 심포지엄이 진행된다. 20세기 예술의 역사에서 라이브 퍼포먼스 역할의 중요성을 탐구하고, 21세기 전반의 공연예술의 새로운 방향 제시에 특화된 퍼포마는 세계의 미술관과 전시기획에 새로운 트렌드를 일으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지난 몇 년간의 퍼포마의 노력에 대한 화답으로 뉴욕의 모마(MoMA, Museum of Modern Art), 구겐하임(Guggenheim), 휘트니(Whitney), 파리의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그리고 모스크바의 현대미술창고센터(Garage Center for Contemporary Art)와 같은 주요 미술관에서 새로운 형식의 퍼포먼스 전시들과 프리젠테이션들이 증가했다. 뉴욕 매거진의 제리 살츠(Jerry Saltz)는 퍼포마를 일컬어 &ldquo;뉴욕에 주어진 선물&rdquo;이라고 표현했다.

한계 없는 실험을 위한 플랫폼

레나타 페트로니(이하 &lsquo;페트로니&rsquo;) 당신의 모든 삶은 공연예술과 관련돼 있다. 공연에 대해서 가르치고, 강연도 했으며 <공연예술-미래파부터 현재까지>도 썼고, 2004년에는 퍼포마를 시작했다. 어떻게 공연예술에 대한 이런 열정들이 나오나?

로즈리 골드버그(이하 &lsquo;골드버그&rsquo;) 나는 어린 나이에 무용수로 시작했지만 시각예술에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 때 순수예술을 전공했고, 런던 코톨드인스티튜트(Courtauld Institute)에서 예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내게 시각예술과 무용은 둘 다 중요하고, 이들의 건축이나 영화, 음악, 사진에 대한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졸업 논문 주제를 바우하우스의 화가이자 무용수인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를 선택했던 시절보다 지금은 학생들이 학문의 일부분으로 몇몇의 분야에 들어오고 나갈 수 있을 만큼 분야간의 연계는 좀 더 많아졌다. 1972년에 졸업하고나서, 율리오 파올리니(Giulio Paolini), 더키퍼키즈(the Kipper Kids), 브라이언 에노(Brian Eno),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크리스찬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앤서니 맥콜(Anthony McCall)의 전시와 가에타노 페체(Gaetano Pesce)와 같은 시각예술 아티스트와 음악가들 그리고 건축 디자이너들과 함께 이벤트를 기획했던 런던의 로열칼리지아트갤러리(Royal College of Art Gallery)의 대표로 임명되었다. 1972년에 뉴욕에 처음으로 왔고, 그 이후 몇 년간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 트리샤 브라운(Trisha Brown), 루신다 차일즈((Lucinda Childs), 줄리아 헤이워드(Julia Heyward), 신디 셔먼(Cindy Sherman), 로버트 롱고(Robert Longo)와 같은 많은 예술과들과 친구가 되었다. 1975년에 뉴욕에 정착을 했고, 이후 1979년에 쓴 <공연예술-미래파부터 현재까지>는 35년이 지난 지금도 판매가 되고 있고, 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

페트로니 역사적으로 20세기 공연예술의 역할은 코드화된 예술과 기관 그리고 예술시장의 정책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좀 더 예술을 사회적, 정치적인 위치에서 강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요즘의 많은 예술가들은 내용보다 성공을 이루고, 이름을 남기고, 선정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어떻게 공연예술은 변화를 겪었을까? 오늘날 공연예술의 메시지는?

골드버그 당신이 언급한 60,70년대는 예술계에서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정치적 이슈화 되어 있었다. 그것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시기였고, 시민권 운동과 페미니즘 관련 이슈들의 격변기였다. 예술가들은 시대에 답했고, 분명히 시대를 표현했다. 공연예술계에서는 저드슨 교회(Judson Church)에서의 이본느 라이너(Yvonne Rainer)와 스티브 팩스톤(Steve Paxton)과 같은 안무가들의 작업이나 이탈리아 아르떼 포베라(Arte Povera, 1960년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운동) 예술가들의 작업, 수퍼스튜디오(Super Studio, 이탈리아의 현대 건축가 그룹) 건축가들의 작업 모두 정치적으로 날카로웠고, 예술의 상업화에 맞서 공격적으로 민주화 작업들을 했다. 우리 시대는 완전히 달랐고, 다른 관심사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연은 여전히 길들이기 어렵다. 그것은 여전히 놀랍고, 도발적이다. 그것은 여전히 예술시장 외부에 존재하고, 예술가들은 여전히 사고의 복잡한 지층을 표현하기 위해 공연예술 형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퍼포마13 기간 동안 우리가 소개했던 대중목욕탕에서의 퍼포먼스 <독일인(Dutchman)>(라쉬드 존슨 Rashid Johnson)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질문들을 던졌지만 60년대에 일어났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미학을 보여주었다. 공연예술은 언제나 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한계 없는 실험을 위한 플랫폼으로 남아 있다.
▲<부활 (Reanimation)>, 조안 조나스&제이슨 모란(Joan Jonas&Jason Moran) , ©PERFORMA13 ▲ 신디셔먼과 로즈리 골드버그

▲▲ <부활 (Reanimation)>,

조안 조나스&제이슨 모란

(Joan Jonas&Jason Moran) &copy;PERFORMA13
▲<야영지(Bivouac)>,

필립 켄(Philippe Quesne) &copy;PERFORMA13

페트로니 공연을 모아놓는 개념은 &lsquo;행위의 순간&rsquo;과 &lsquo;직접성&rsquo;을 속성으로 가지는 공연예술의 본질과 모순되는 것 같다.

골드버그 그것은 모순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연예술에 주어진 관심을 생각하면 놀랍지 않다. 미술관들은 몇 년간 다른 이름하에 &lsquo;공연예술 컬렉션&rsquo;을 했다. 이브 클라인(Yves Klein)의 작업들은 퍼포먼스 동안 만들어진 페인팅들과 필름들이다. 그리고 매튜 바니(Matthew Barney)의 물건들, 신디 셔먼(Cindy Sherman)의 사진들이 그렇다. 내게 콜렉터들에 대한 더 큰 흥미로운 가능성이란 그들에게 새 퍼포먼스를 제안 하면서 우리와 그리고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는 것, 또한 작업 자체를 만드는 과정에 그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제품의 생산이 끝나도록 기다리는 것보다 더 흥미롭고 풍부한 접근이다.


퍼포마는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믿는다

페트로니 당신은 퍼포마를 통해 정치적 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나라들에서 일하고 있는 대다수의 예술가들에게 작업을 의뢰하고 소개했다. 그들의 작업이 서양 작가들의 작품과는 어떻게 다른가?

골드버그 마켓과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lsquo;서양&rsquo; 밖에서 만들어진 퍼포먼스는 인간, 시민권, 의례, 사회, 지역 관습과 정치에 대하여 더 많이 말하는 반면 예술계 내(서양)에서는 예술계에 대한 제도비판, 관계미학 예술에 대해 얘기했다. 남아프리카, 인도, 혹은 중국의 작품들은 이 나라들의 삶과 현실에 대한 것이다. 서양에 살지 않는 예술가들에게 퍼포먼스는 페인팅이나 조각이라기보다는 서양시장으로 들어가기 위한 패스포트가 되곤 한다. 쿠바의 예술가인 타니아 브루구에라(Tania Bruguera) 혹은 중국의 장 후안(Zhang Huan)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알려졌고, 예술은 그들의 행위를 기록했다.

페트로니 이전에 한 번도 퍼포먼스를 해보지 않은 시각예술가들에게 퍼포먼스를 의뢰하는 이유가 서양아트마켓 패스포트를 주기 위함인가?

골드버그 아니다. 퍼포먼스에 시각예술 아티스트를 초대하는 이유는 퍼포먼스의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함이었다. 모든 것은 2001년에 쉬린 네샤트(Shirin Neshat)에게 의뢰했던 <새들의 논리(Logic of the Birds)>로부터 시작됐다. 90년대 후반에 나는 흥미로운 퍼포먼스 설치들과 영상들을 봤고, 그 때는 뉴욕에서 공연됐던 모놀로그 퍼포먼스의 반복에 지쳤을 시기였다. 나는 스스로 &ldquo;만약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를 가지고 퍼포먼스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rdquo;라고 의문을 던졌다. 쉬린의 작품은 영상에서 라이브 퍼포먼스로 옮길 수 있을 만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작품은 연극적이고, 감정적이며, 우아하고, 환기를 시키는 힘이 있었다. 즉, 아름다움과 의미를 둘 다 내재하고 있었다. 그녀는 도전을 했고 완전히 놀라운 퍼포먼스로 <새들의 논리>가 만들어졌다. 이후에 이삭 줄리언(Isaac Julien), 그리고 제스퍼 저스트(Jesper Just), 캔디스 브라이츠(Candice Breitz), 오마르 패스트(Omar Fast), 나탈리 져버그(Nathalie Djurberg), 정연두(Yeondoo Jung)그리고 많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작업 의뢰를 했다. 이들은 시각적 유혹을 관객들의 가슴에 가닿게 하는 사람들이었고, 퍼포마의 의뢰로 새로운 퍼포먼스적 방향을 갖게 된 아티스트들이다. 이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하지만 퍼포마는 위험을 감수하고, 아티스트의 상상력을 믿는다.

페트로니 작품을 의뢰할 때 창작과정에 개입을 하는지 아니면 손을 놓는가?

골드버그 우리는 매 순간 아티스트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는 작업 초기부터 예술가들의 아이디어와 진행 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작업이 조금씩 진전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예산을 만들고, 리허설 내에 시간을 맞추고, 레지던시와 조명이나 음향 디자인 그리고 전반에 걸쳐 그들을 돕는다. &ldquo;내가 공간을 걸어갈 때 어떤 일이 일어나길 바래?&rdquo; 혹은 &ldquo;마지막에 내가 무엇을 느끼길 바래?&rdquo;와 같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아티스트들의 작품 구조화를 돕는다.
▲<엄마 여왕(Queen Mother)> 파웰 알타머(Pawel Althamer)  ©PERFORMA13.

▲<엄마 여왕(Queen Mother)>

파웰 알타머(Pawel Althamer) &copy;PERFORMA13

페트로니 전세계적 시각을 보여주는 당신의 관심사는 퍼포마13에서 파트너 국가들과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닌 지속적 예술교류를 위해 시작한 <벽이 없는 파빌리온(Pavilions Without Walls)>으로 새로운 전환을 맞이했다. 이 작업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골드버그 <벽이 없는 파빌리온(Pavilions Without Walls)>의 제작 의도는 다른 나라들과 좀 더 깊이 있는 리서치를 통해 협력하기 위함이자 문화와 큐레이터적 비전에 대한 생각들을 더 확장하고, 교환 하기 위한 것이지 예를 들어 베니스비엔날레 파빌리언에서 국제적 아티스트들의 일회성 프로젝트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소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퍼포마의 큐레이터와 프로듀서들은 폴란드, 노르웨이에서 각각 다른 방문을 했다. 우리는 각 국의 아티스트, 큐레이터, 미술관 감독 그리고 문화기관들을 이끄는 정부기관들을 만났고, 그 나라들의 현대예술가와 문화에 대한 간략한 이해, 역사와 정치에 대한 의미 있는 접근을 했다. 이 여행들의 결과로 뉴욕에서 비엔날레 개최까지 6개월 동안 일할 큐레이터들을 위해 매우 흥미로운 교류의 장이 된 퍼포마에 각 방문 나라들의 큐레이터들을 초대했다. 첫 번째 <벽이 없는 파빌리온(Pavilions Without Walls)> 은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깊이 있게 조명됐고, 모든 관계자들에게도 아주 성공적인 프로그램이었다.

페트로니 마지막으로 향후 10년의 시각예술 퍼포먼스 방향에 대한 생각을 들려달라.

골드버그 퍼포먼스는 21세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술가들에게 오늘날 우리 주변의 아주 많고 다양한 매체들을 사용하게 하고, 세계의 복합적인 연관성을 예술에 반영하고, 예술계의 확장과 관련된 복합적 사고 층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lsquo;라이브&rsquo;성은 매체와 인터넷으로 둘러 쌓인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흥미로운 해독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화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흡수하기 위한 에너지관이 될 것이다. 퍼포먼스는 접근가능하지만, 복잡하고 관람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동시대 문화에 맞서기 위한 가장 흥미로운 방법이다.

로즈리 골드버그(RoseLee Goldberg)/로즈리 골드버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출생으로 요하네스버그의 위츠대학(Wits University)에서 정치과학과 순수예술을 전공하고, 런던 코톨드인스티튜트(Courtauld Institute)에서 예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2년 런던 로열칼리지아트갤러리(Royal College of Art Gallery)의 예술감독을 맡았고, 1975년부터 뉴욕에 정착했다. 1979년에 <공연예술-미래파부터 현재까지>를 썼고,  2004년 시각예술 아티스트들이 만드는 공연예술 비엔날레 퍼포마(PERFORMA)의 수장이 되었다. 퍼포마는 뉴욕시 곳곳의 60여개 이상의 공간과 협력해 매 2년마다 11월에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100여개의 라이브 퍼포먼스와 스크리닝, 전시, 렉쳐, 심포지엄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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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아프로] 퍼포마 로즈리 골드버그 영어 기사 원문 보기

필자소개
레나타 페트로니는 1980년부터 문화 교류 프로그램과 국제 파트너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전미공연예술네트워크(National Performance Network)의 감독과 수트케이스 펀드(The Suitcase Fund), 뉴욕의 댄스씨어터워크샵(Dance Theater Workshop), 아트인터내셔널(Arts International)의 프로젝트&파트너쉽 디렉터로 활동했다. 또한 스페인 세빌리아의 유니버설 엑스포 92(Universal EXPO 92), 컨템퍼러리 U.S.(contemporary U.S.), 국제 프로덕션 컴퍼니 &lsquo;투 문(Two Moon)&rsquo;에서 일했다. 현재 NPN의 국제교류 프로그램 디렉터로 미국,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 사이의 예술교류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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