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산업은 스타가 필요하다. 스타의 힘에 기대어 널리 알려지며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해나간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블록버스터 전시의 성공은 전시 산업의 스타였다. 스타는 시장을 지배하는 한편, 쏠림 현상 등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산업의 질적인 측면에 대한 고려는 성장 규모가 둔화되는 조짐이 보여야 하기 마련이다. 위기만큼 문제점을 고치려는 강한 자극제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본격적인 참여와 디자인, 영화, 패션, 음악 등 영역 확장으로 산업 규모를 키워가는 지금이야말로, 블록버스터 전시로 인해 야기된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을 고민해볼 아주 적절한 시기이다. 무릇, 사전 예방을 능가하는 사후 대책은 없다. 이를 위해,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열고 있는 가나아트갤러리 이옥경 대표,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전을 성공적으로 기획한 김범상 글린트 대표,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 어 드림 아이 드림드(KUSAMA YAYOI, A Dream I Dreamed)》전을 통해 아시아 미술의 허브로 발돋움 중인 대구미술관 김주원 전시팀장, 다양성을 내세워 현대미술의 여러 층위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갤러리 팩토리 홍보라 대표를 인터뷰했다. 그동안의 전시 산업의 명암을 반추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시 관람객층, 미술 애호가층의 다변화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전시의 내부모습(사진제공_글린트)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전시의 내부모습(사진제공_글린트)

우선, 블록버스터 전시로 인해 실제로 관람객층이 다변화되었는지 궁금했다.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전은 처음 한 달은 평일 관람 인원이 50여 명, 주말은 100여 명이었으나 마지막 주에는 하루 2,000여 명을 넘어설 정도였다. 초반에는 약세였으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좋아요’와 ‘리트윗’의 파도를 지속적으로 타면서 결국 3주를 연장하게 됐다. 미지의 음반 레이블 전시지만, 음악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획력이 돋보인 결과이다. 훌륭한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좋은 전시였고, 폭넓은 관람객들은 열광으로 응답했다. 현재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박수근 탄생 100주년 기념전》전에는 젊은 층과 가족 단위뿐만 아니라 인사동이라는 위치의 특성상 해외 관람객들도 많이 눈에 띈다. 하지만 소규모 갤러리의 현대미술은 아직 그 분야 자체가 각광을 받진 못하는 듯하다. 가격 부담이 적은 소품과 현대미술품들을 구매하는 30~40대들이 예전에 비해 늘었다는 가나아트갤러리와 갤러리 팩토리의 공통된 대답은, 미술 애호가층이 다변화되었음을 드러내는 지표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블록버스터 전시에 대한 의견과 관점을 물었다. 김범상 대표는 그것이 새로운 블루오션을 여는 사업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장점을 주로 꼽았다.

“대림미술관의 ‘디자인 전시’ 등을 비롯한 다양한 테마의 전시들과 현대카드가 주최한 몇몇 해외 순회전의 성공이 이런 유행어를 낳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가와 큐레이터 중심의 난해한 현대미술 전시에서 벗어나 조금 더 대중적이고, 새로운 전시들이 많아지는 것은 좋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그런 예들이 해외에는 아주 많고요. 저는 미술을 넘어서는 다양한 전시들이 많은 사람과 만나 예술이든, 자신의 삶이든, 교양이나 어떤 체험이든 확장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관의 놀이공원화는 지양해야

▶ 《라이언 맥긴리 - 청춘, 그 찬란한
기록》전을 보기위해 줄 서있는 관람객
왼쪽사진부터)
▶▶관람객들은 전시를 보며
‘전시체험 무료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전시의 내부모습(사진제공_글린트)

이에 반해, 여타의 대규모 전시와 블록버스터 전시를 구분 짓는 지점을 “소위 대중이라는 익명의 다수에 어필하고자 하는 목적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파악한 홍보라 대표의 지적은 보다 날카롭다.

“블록버스터 전시를 접할 때, 전시 콘텐츠가 지닌 고유한 성격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전시 내용이 홍보와 마케팅 시점에서 탈맥락화되는 점이 가장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라이언 맥긴리 - 청춘, 그 찬란한 기록(Ryan McGinley - Magic Magnifier)》전을 보면, 전시가 미디어에 유통되고 홍보되는 방식, 작가의 사진 이미지가 블록버스터 형식의 전시로 소비되면서 ‘바이랄(viral, 온라인에서 SNS나 게시판 글 등을 통해 많이 퍼져나가는 것)’해지는 방식 등이 작가의 사진 속 청춘이 지닌 사회적, 문화적 맥락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전시 제목인 ‘청춘, 그 찬란한 기록’이 제시하듯 실제 그의 사진이 찬란한 청춘을 기록하는 작업인지조차 헛갈리기도 하고요.”

1) 이를 위해 대림미술관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워크숍과 외부 일정의 이유로 성사되지 못해서 정확한 의도와 의견을 듣지 못했다.

사실 라이언 맥긴리가 사진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작가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블로그 시대 스마트폰 세대들이 소비할 만한 딱 그 정도, 나도 저렇게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친구들만 있다면 찍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사진들이다(막상 찍어보면, 쉽지 않다). 이런 심리적인 친밀감으로 인해 많은 한국 청춘들이 몰려드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전시체험사진(맥긴리의 사진 위에 관람객을 촬영해서 합성해주는 것)’은 ‘인증샷’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포토샵 배경으로 추락한 맥긴리의 사진을 과연 예술 작품으로 보아야 할지, 예술 작품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으로 보아야 할지는 한번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예술은 상업성과 꽤 가깝고 꼭 필요하지만, 오랫동안 곁에 두지 않으려 했는데, 전시 기획자라면 그 이유에 대해 확고한 의견을 가져야 할 것 같다.1)

이 지점에서 “예술이란 것은 철학하는 것이지, 데이트 코스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며, 극단적인 대중주의를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김주원 팀장의 견해는 전시 기획자라면 반드시 새겨둘 만하다.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잃지 않아야 좋은 전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미술을 좋아하고, 미술 감상을 즐기기 때문이다. 예술이 더 많은 사람과 호흡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미술관이 놀이공원화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대기업의 전시 사업으로 인한 콘텐츠 다양화는 환영

그렇다면, 거대 자본과 다른 분야에서 축적된 고급 노하우를 갖춘 대기업의 전시 사업 참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기업의 진출로 전시 콘텐츠가 풍부해지고 다양해진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현대카드로 인해 기존 전시에서 흔히 접하기 어려웠던 셀러브리티의 전시, 가구, 애니메이션 전시 등 전시의 주제나 내용, 형식 등이 좀 더 촘촘해진 듯해요. 동시에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대부분의 경우 해외에서 전시디자인까지도 패키지로 수입하는) 밀도 높은 블록버스터 전시에 익숙해진 관람객들이 좀 덜 매끄럽고 덜 친절한 순수예술의 전시에 대한 인내력이 떨어질 것도 쉬이 예상됩니다.”는 홍보라 대표의 말처럼, 보다 많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으며 전시 내용의 다양화를 들어 환영하는 입장이다. 삼성은 삼성미술관 리움을 통해 미술과 인연이 깊은 데 반해, 현대그룹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문화 산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미 음악, 공연 분야에서는 가장 큰손이 된 현대카드가 순수미술보다는 실용성이 강화된 디자인과 영화 전시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자극을 받아 조만간 CJ그룹을 비롯한 다른 대기업들도 문화 산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듯하다. 여기에 문화융성을 내세운 현 정부의 정책 기조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이제는 미술관도 스타가 되어야 한다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의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관람객의 행렬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의 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관람객의 행렬

같은 미술관에서 올해 흥행한 전시가 내년 전시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안정적인 성공을 이어가자면, 역시 미술관이 스타가 되어야 한다. 관람객들은 지나간 전시를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만족한 전시회가 열린 공간은 잊지 않는다. 전시장의 브랜드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LG아트센터가 공연장의 브랜드화에 성공했고, 멀티플렉스 시대가 되면서 영화관도 메가박스, 씨지브이(CGV) 등은 저마다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영화라도 각자 선호하는 영화관에서 보게 되었다. 미술관은 공연장의 경우에 가깝다.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대림미술관은 아주 핫한 이름이다. 명칭은 미술관이지만, 미술의 개념을 확장시켜 라이프스타일과 접목시켰다. 그러면서 새로운 관객층이 서서히 만들어졌고 저렴한 입장료, 다양한 문화행사, 멤버십을 강화해 회원 수를 대폭 늘렸다. 미술은 어렵지만, 사진은 쉽다. 북유럽은 멀지만, 북유럽 가구는 가깝다. 샤넬(CHANEL)은 없지만, 샤넬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사진을 통해 샤넬을 즐기고 싶다.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의 이름은 낯설지만, 그의 사진들은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와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 광고에서 본 적 있다. 그 브랜드들은 비싸서 못 사더라도 전시를 보면서 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해소할 수 있다. 이렇듯 대림미술관의 전시들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어도 스타일이 나고 주변에 자랑하고 싶게 만든다. 이것은 철저하게 20~30대 (미술 애호가보다는) 대중문화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미술관을 바라봤기에 가능했다. 당대의 청춘들이 보고 싶은 주제와 내용의 전시를 기획하였고, 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홍보매체를 적극 이용했다. 대림미술관이 라이프스타일형 전시 공간으로 포지셔닝 되었다면, 쿠사마 야오이(Kusama Yayoi) 전시에 이어 올해 중국의 4대 현대미술가 쟝 사오강(Zhang Xiaogang) 개인전을 여는 대구미술관은 ‘아시아 허브 미술관’으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다. 특히, 다양성이 사라지는 현대사회에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층위의 다이내믹함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갤러리 팩토리는 작지만 강한 프로젝트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데, 이런 개성 강한 갤러리들이 그나마 블록버스터 전시의 아쉬운 부분을 상쇄시키고 있다.

예술은 소비의 대상이 아닌 생각의 질료

한편, 한국 근현대 작가들에 집중하며 한국 미술 시장의 발전과 다각화를 위해 힘써온 이옥경 대표의 “오늘의 가나아트갤러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은 30여 년간 함께해온 작가들 덕분이며, 그들 하나하나가 ‘가나아트’라는 브랜드를 받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은, 기획자와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 깊은 울림을 준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당대의 관객과 만나지 못하는 불운을 겪을 수 있고, 작품은 별로지만 운 좋게 많은 관객과 만날 수도 있다. 이처럼 예술 작품의 가치는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럴수록 관련자들은 예술가의 가치를 볼 줄 알고, 지속적으로 동시대 관람객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시는, 단순히 작품들을 모아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행위가 아니다. 예술가가 아틀리에에서 작품을 창작한다면, 기획자는 전시장에서 그 작품들의 의도와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당대인들과 호흡할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야 한다. “깊이 있는 학예 연구를 기반으로, 전시는 오늘의 문제, 우리의 문제를 담아내는 시대의 담론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김주원 팀장의 말은, 미술과 미술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예리한 통찰이다. 결국 블록버스터 전시를 통해 전시장을 찾는 즐거움을 발견한 관람객들을 열혈 관람객으로 안착시키는 일은, 얼마나 좋은 전시를 제대로 기획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전시는 미술관과 기획자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예술을 소비의 대상이 아닌 생각의 질료로 삼아야 한다는 김주원 팀장의 지적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이처럼 블록버스터 전시를 바라보는 네 명의 입장과 견해는 닮은 듯 달랐다. 그들이 속한 미술관의 성격과 특징도 달랐고, 미술과 전시에 대한 정의도 달랐다. 그래도 그들과 인터뷰를 해보니, 현재 블록버스터 전시의 성공으로 인해 다소 변화된 전시 산업 생태계의 굵직한 흐름은 어느 정도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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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사진_이동섭 필자소개
이동섭은 한양대 광고홍보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8대학(Université Paris VIII)에서 예술과 공연학으로 석사와 박사(수료)를 마쳤다. 2013년 베를린 영화제 단편경쟁 초청작 〈연애놀이〉의 아트디렉터, 뮤지컬 〈그날들〉의 드라마투르기로 활동한 바 있으며 영화진흥위원회와 CJ제작지원 선정작인 〈레이디〉,〈뱅커〉등의 시나리오를 썼다.『뮤지컬의 이해』,『당신에게 러브레터』,『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등 문화 다방면에 걸쳐 책을 썼으며, 현재 성신여대, 청강대, 한예종 등에서 ‘뮤지컬과 대중문화’, ‘스토리텔링과 콘텐츠기획’ 등을 가르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SBS 컬처클럽 ‘수다의 품격’의 진행을 맡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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