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4년 2월 10일 오후 2시 30분 / 장소 : 예술경영지원센터 회의실

‘협동조합’. 우리에게는 아주 익숙한 단어다. 농협, 수협, 축협 같은 것은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그런데 ‘문화예술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아직은 생소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발레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도대체 이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국내 민간 발레단체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유니버설발레단(UBC, 단장 문훈숙)과 서울발레시어터(SBT, 김인희), 이원국발레단(이원국), SEO발레단(서미숙), 와이즈발레단(김길용) 등 5개 단체의 단장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지난해 말 설립인가 과정을 거쳐 이제 갓 출범한 이 조합의 명칭은 발레 STP(Sharing Talent Program, 재능나눔프로그램) 협동조합. 서로 무용수도 교류하고, 작품도 공동개발하며, 공연도 함께 하면서 상부상조(相扶相助)하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다.

원래 협동조합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인 농어민이나 중소 상공인 등이 서로 도우며 물자 등의 구매·생산·판매 등을 공동으로 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협동조합의 설립은 극히 제한적으로 인가가 났었다. 그러던 것이 2012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금융과 보험업을 제외한 업종의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등장하게 됐고,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뜻이 맞는 예술인 5인 이상이 모이면 문화예술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국내 무용계 첫 협동조합 설립 사례

사진_강일중 사진_김인희

국내 무용계에서 협동조합이 설립된 것은 발레 STP가 처음이다. 발레라는 장르는 겉보기가 화려할 뿐 국내에서 발레단 경영 환경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국립발레단과 광주시립발레단을 비롯한 극소수의 국공립발레단과 한국 최초의 민간 직업발레단인 UBC를 제외하고는 발레단을 꾸려나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UBC 외에 민간 발레단으로서 소속 무용수들에게 정기적으로 급여를 주며 4대 보험을 해결해 주는 단체는 SBT밖에 없다.

발레계의 이런 현실 때문에 STP 조합의 설립은 무용계에서 깊은 관심의 대상이다. 이 협동조합이 점진적인 발레의 대중화와 관객개발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작품의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더욱 효율적으로 조성할 수 있게 될 것인가? 무용수 교류를 통해 발레 무용수들의 기량 향상과 이들의 복지 증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

궁극적으로 이 협동조합은 건강한 직업발레단이 육성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STP 협동조합의 초대이사장은 김인희 SBT 단장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창단 멤버이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인 김 단장은 SBT 운영과 관련해서는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예술행정인이다. 그를 통해 무용계 최초의 협동조합 탄생 배경과 향후 조합 운영계획, 그리고 현안이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본다.

올해 강동아트센터에서 3회 합동 공연

사진_김인희 2013년 민간직업발레단연합회 공연 포스터 (출처_강동아트센터)

▲▲ 강동아트센터 이창기 관장과 민간 발레단체장 5인 (사진제공_강동아트센터)

▲ 2013년 민간직업발레단연합회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_강동아트센터)

강일중 협동조합을 구성한 5개 발레단체가 낯익다. 이들은 민간직업발레단연합회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강동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했던 단체들이 아닌가. 민간직업발레단연합회라는 것이 있었는데 굳이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뭔가.

김인희 2012년 가을부터 5개 단체가 모임을 갖고 연합회를 만들어 협력방안을 모색해 왔었다. 또 우리의 취지에 공감한 강동아트센터 이창기 관장의 지원으로 지난해 강동아트센터 소극장을 무료 대관해 5개 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공연을 세 번 가졌었다. 각 발레단의 우수레퍼토리를 한 공간에서 한꺼번에 보여 주니 관람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 후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논의하다가 협동조합을 설립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여러 가지 배경이 있다. 근본적인 것은 고전발레와 모던발레 레퍼토리를 갖고 있는 5개 단체가 하나의 협동조합으로 뭉쳐 힘을 모으면 관객개발과 발레의 대중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연합회는 다소 느슨한 조직인 반면 협동조합은 짜임새가 있는 조직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부부관계로 따지면 혼인신고를 했느냐 안 했느냐의 차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협동조합 설립과정에서 정관도 만들면서 스스로를 정리된 틀 안에 넣고 해 보자는 이야기다. 또 협동조합이 연합회에 비해 국고자금 등 공적기금을 안정적 또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훨씬 더 유리하다는 점도 협동조합 쪽으로 방향을 트는 데 크게 기여했다.



강일중 협동조합 출범과 함께 현재 어떤 사업을 벌일 계획을 갖고 있나.

김인희 우선 올해는 합동공연의 경우 강동아트센터에서 세 번 하게 된다. 지난해 연합회 때는 소극장에서 했던 것과는 달리 올해의 경우 모두 대극장 한강에서 하게 된다. 3월과 5월과 8월에 한다. 역시 5개 단체의 우수 레퍼토리가 선을 보이게 된다. 또 하반기에는 발레 관련 심포지엄을 함께 열 계획이며 내년에는 협력방식을 한 단계 높여 5개 단체가 각자의 작품을 소개하는 수준이 아니라 합작작품을 만들 계획이다. 국고가 지원되는 창작산실 프로그램에도 협동조합 이름으로 신청해 보려 한다.

강일중 국고지원뿐 아니라 기업의 후원이나 협찬을 받는데도 협동조합이 더 유리하다고 보나.

김인희 그렇다. 메세나 기업들에 가서 공연을 할 기회가 있는데 각 발레단이 개별적으로 후원 요청을 하는 것보다는 협동조합 이름으로 발레의 대중화 취지를 설명하면 설득력이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강일중 협동조합 구성에 참여한 5개 단체가 역사, 규모가 다 틀리지 않나. 또 합작을 한다고 할 때 참여하게 되는 무용수나 스태프의 숫자 등이 다 다를 수 있는데 비용의 분담이나 수익의 배분 등에서 예기치 못한 이해관계가 대립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인희 세세한 부분에서 아직 확정 짓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다. 비용이나 수익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논의해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워낙 다섯 명의 단장들이 협력이 잘 되고 있다. 또 일단은 비용과 수익을 모두 똑같이 나누자는 원칙은 정해놓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수익을 나누기보다는 차기 작품을 위해 쌓아놓자고 해서 모두 기꺼이 그렇게 하기로 했다.

사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파이를 키우는 일이다. 지금 5개 단체 중 급여와 4대 보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데는 UBC와 SBT밖에 없다. 그러나 나머지 3개 단체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서라도 해소해 함께 발전해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5개 단체의 협력사업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우리의 협동과 나눔을 통해서 발레의 관객 수를 늘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금과 기업후원금 등으로 각 단체 소속 무용수들의 복지 수준을 높여주는 일이다.

발레계 균형성장, 시너지 효과 기대

사진_김인희

강일중 5개 단체가 협동조합을 만들어 힘을 뭉치는 것과 국립발레단을 포함, 발레계 전체가 동반 성장하는 것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김인희 국립발레단이나 우리나 모두 발레 파이를 키우는 것에 1차 목적을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다섯 단장은 발레로 평생을 살았다. 가슴이 아픈 것은 국내에 발레 관객, 발레 애호가, 후원가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5개 단체가 힘을 합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국공립발레단과 민간발레단이 균형성장을 해야 하며 서울·경기 지역에 편중된 발레 공연도 전국적으로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민간 발레단들이 전국 각 지역에서 지역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와이즈발레단의 경우 경로당 등 별별 군데에서 다 공연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노력들이 많이 쌓여서 한국 사람들이 발레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강일중 협동조합이 각 단체 소속 발레 무용수들에게는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으로 기대하는가.

김인희 각 발레단에 소속된 무용수들이 자기 발레단의 개별 공연에 늘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의 공연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출연기회는 더욱 많아지게 된다. 또, 다른 단체의 무용수들과 함께 같은 무대에 서면서 서로에게 모자란 점을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만약 합작공연이 이뤄지면 자기 단체뿐 아니라 다른 단체의 춤 스타일을 익히면서 기량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출연에 따른 공연 수당도 받게 될 것이고…… 외국에서는 서로 다른 단체에 소속된 무용수들이 교류하는 일들이 흔하다. 중장기적으로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거둬 발레관객의 저변확대가 이뤄지면서 급여와 4대 보험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직업발레단이 지금의 네 개(국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 UBC, SBT)에서 10개 정도로 확대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협동조합에 참여한 발레단이 나중에 시립발레단이 될 수도 있고. 직업발레단은 발레무용수들에게는 직장이다. 그 직장을 키워야 한다.

김인희 / 문훈숙 UBC 단장, 독일에서 활동 중인 한국 안무가 허용순 등과 함께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다녔다. 강수진 국립발레단 신임 예술감독도 이 학교 출신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창단 멤버이자 수석무용수, 지도위원이었다.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도 활동했다. 1995년 SBT를 창단해 단장으로서 지금까지 이끌어 오고 있다. 남편은 SBT의 상임안무가인 제임스 전이다. 국내의 척박한 발레단 경영환경 속에서 SBT를 훌륭한 직업발레단으로 키워내기 위해 부부가 자녀를 갖지 않기로 했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1996년 3월 대학로 두레극장에서 30일 간 40회를 올렸던 SBT의 <손수건을 준비하세요> 공연은 국내 무용사상 최장기 연속 공연으로 기록돼 있다.

관련기사 보기
[핫&이슈] 문화예술분야 협동조합, 어떻게 만드는가? (2013.04.25)
[핫&이슈] 협동조합, 이렇게 한다 (2013.04.25)

필자사진_강일중 필자소개
강일중은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언론인으로 연합뉴스에서 뉴욕특파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 『뉴욕 문화가 산책』(2005)과 『공연예술축제를 만드는 사람들』(2009)이 있다.
블로그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 URL 복사하기
정보공유라이센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