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동아연극상 연출상 수상작 <가모메> (사진제공_두산아트센터)

지난 1월 27일 제50회 동아연극상 시상식에서 일본 연출가 타다 준노스케(多田淳之介)가 <가모메(カルメギ)>로 연출상을 받았다. 2013년 두산아트센터가 제작한 <가모메>는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성기웅 대표가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타다 준노스케와 지속적으로 협업해온 그는 이번 프로덕션에 협력연출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앞서 [동아일보]는 타다 준노스케의 수상 소식을 50년 만에 “첫 외국인 본상 수상”이라며 심사위원들의 찬반 논의가 두 시간 넘도록 이어진 결과라고 밝혔다. 반세기 동안 일어나지 않던 일을 가능하게 한 사람이 비단 타다 준노스케만은 아닐 것이다. 이 결실은 2009년부터 그와 국제공동제작을 해온 성기웅, 두 사람의 극단 도쿄데쓰락과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구성원이 함께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 극단의 단원은 아니지만, 자신은 “존재감이 없는 존재여야 한다”고 말하며 묵묵히 모든 여정을 같이해온 사람이 있다. 지난 6년간 이 민간 단체들의 국제공동작업에서 통역가이자 번역가였고, 드라마투르그였던 이홍이다.

운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김지현 <가모메>가 무대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다. 한국 배우 8명과 일본 배우 4명이 출연했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사용했다. 더욱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연극이었다. 협업 중 양국 창작자들의 의견 대립은 없었나?
이홍이 그런 면에서 힘든 작업이었다. 타다 준노스케와 6년을 같이 일했는데, 이번에 서로 생각이 참 다르다는 걸 느꼈다. 특히 한국 근대사에 대해. 그래서 희곡 작업 때부터 토론을 많이 하려고 했다. 작년 1월에는 세종문화재단(THE SAISON FOUNDATION) 지원으로 성기웅과 한 달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타다 준노스케의 최근 작품과 다른 일본 연극들을 돌아봤다. 일본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은 1930년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피는 작업도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막상 대본 나오고 연습을 시작하려니까 서로 시대에 대한 생각이 너무 달라 불안감이 컸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의식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한 건 아니다. 통역자로서 한계를 느낄 정도로 토론을 많이 했는데, 결론은 서로 100%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괜히 아는 척하기보다 우리 생각은 여기까지라는 걸 내보이는 게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성기웅의 대본을 타다 준노스케가 마음껏 무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결말에 대해 관객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들었다. 동화처럼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이가 좋다고 말하는 것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데 양국 관계에 대한 연출의 해답이 그거였던 것 같다.


▲▲2013년 <세 사람 있어!> 한국 공연
(사진제공_바나나문프로젝트)
▲2011년 <재/생> 한국 공연
(사진제공_바나나문프로젝트)

김지현 2008년 아시아연극연출가워크숍 공연 <로미오 줄리엣>을 시작으로 2009년 <로미오와 줄리엣> 재공연, 2010년 〈LOVE ver. 2010〉, 2011년 <재/생(Re/Play)>, 2012년 <세 사람 있어!>, 2013년 <가모메> 공연까지 타다 준노스케의 모든 한국 프로덕션에 참여했다. 그가 한국 땅을 처음 밟던 날부터 꼬박 6년이다. 어떻게 시작된 인연인가?

이홍이 석사과정 중 성기웅 소개로 타다 준노스케를 알게 됐다. 처음 만난 날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다음날 바로 한국 배우 오디션을 했다. 지금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단원인 이윤재 배우와 강정임 배우 그리고 <가모메> 니나 역을 맡았던 김유리 배우를 그때 만났다. 팀워크가 정말 좋았다. 연습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재미있었다. 그게 소문나서 관객이 많았다는 얘기도 있다. 공연 끝나고 전부 엉엉 울면서 꼭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타다 준노스케가 정말 매년 한국에 왔다. 물론 성기웅 덕분일 거다. 국제 교류를 두 사람처럼 열심히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김지현 2008년 <로미오 줄리엣> 공연 후 타다 준노스케가 [한국연극]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공동작업의 형태로 연극이라는 언어를 통해 국경을 초월한 소통에 큰 흥미를 갖고 있다. 이번에 성기웅 연출가를 소개받았는데 언젠가 그의 작품을 도쿄에서 올려보고 싶다. 30대에 이루고 싶은 꿈은 큰 국립극장의 예술감독이 되는 것이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세 가지 꿈을 거의 이룬 것 같다. 국경을 초월한 소통을 매년 시도했고, 성기웅의 작품을 도쿄에서 올려보았으며, 공립극장인 후지미 시민문화회관 ‘키라리☆후지미’의 최연소 예술감독이 됐다.

이홍이 타다 준노스케의 무서운 점이다.(웃음) 그렇게 꿈을 여러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정말 이루어낸다. 사실 그는 일본에서 소수의 마니아 팬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로미오 줄리엣>에 대한 한국의 호평이 일본에 전해졌고, 그것이 일본에서도 연출로서 인정받고 예술감독이 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들었다.

동아연극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가 어떤 씨앗을 가져다 잘 키워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통역을 맡다 보면 스태프들을 불러오는 것부터 모든 영역에서 일하게 된다. <가모메>는 일본 스태프들이 한국에 두 달이나 있었으니 그런 면에서도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같이해온 사람들이라 서로 이해하는 게 많지만, 고생스러운 작업이었는데 상을 받으니까 정말 기뻤다.

성기웅과 타다 준노스케의 만남은 故 박광정 연출과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 연출의 소개로 이루어진 걸로 안다. 타다 준노스케는 일본에서 발표한 최신작부터 초기작까지 역순으로 한국에 자신의 작품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에서 어떤 작품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성기웅의 제안으로 <가모메>를 하게 된 걸로 안다. 그간의 공동작업을 통틀어 성기웅이 가장 본격적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하다.

나날이 늘어나는 그녀의 역할


김지현 6년간 도쿄데쓰락과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간 모든 공동제작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역할이 하나씩 더해졌다. 통역가로 시작해 드라마투르그 그리고 번역가까지. 두 극단의 프로덕션 특성상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수순으로 보였다. 협업자들과 어떤 협의가 있었나?

이홍이 2009년 <로미오 줄리엣> 재공연 때 처음 통역과 드라마투르기를 동시에 했다. 2008년 명진숙 선생의 번역본을 준노스케가 편집한 대본이 있었다. 그런데 한 역할을 한 배우가 아니라 여러 배우가 번갈아 연기하는 형태였다. 1년 만에 재공연을 하려는데 배우가 바뀌기도 했고, 기억을 못 하는 배우도 있어 내가 초연 때 움직임과 순서를 적어둔 대본을 사용하게 됐다. 그때 성기웅이 그건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이라고 해서 드라마투르그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거다. 이후 번역도 하게 되었고, 다시 자연스레 드라마투르기를 하게 됐다. 운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웃음)

그리고 2009년 유학을 가면서 타다 준노스케의 일본 활동도 보고 한국 공연이 결정되면 그때마다 같이 와서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 공연과 일본 공연을 다 본 사람이라 협업하기 편했던 것 같다. 타다 준노스케의 추천으로 지방 공연도 늘 같이 갔는데, 그럴 때면 조연출도 없고 무대감독도 없는 형편이라 모든 포지션을 수행해야 했다. 또 일본에서 사람들이 올 때마다 체류에 대한 일부터 다양한 부분에 대해 통역을 해야 한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정말 힘든 일이었다.


김지현 듣고 보니 통역가, 번역가, 드라마투르그 외에도 많은 역할을 해온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그 많은 역할 중 최근 2~3년간 유독 드라마투르그 활동이 부각됐다는 점이다.
이홍이 나도 내 역할들을 나눠서 생각하는 게 어렵다.(웃음) 가끔 대극장 작품이나 뮤지컬에 통역자로 들어가 일하다 보면 정말 분업이 잘 되어있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소극장 연극은 그럴 여건이 안 된다. 양쪽 언어를 아는 사람 혼자 투입되는데, 그러다 보면 모든 스태프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래서 배운 게 참 많다. 문학 전공자로 연극이 좋아 시작한 일이니까 무대 용어라든가 모르는 게 많았다. 그런데 기획부터 연출, 의상, 무대 등 모든 영역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드라마투르그가 된 것 같다.

물론 드라마투르그로서는 타다 준노스케와만 작업했다. 구어체 연기를 중시하는 연출이다. 한국에서는 신체 언어를 많이 쓰는 걸로 유명한데, 일본에서는 대사 중심의 연극도 종종 한다. 그런 면에서 나름대로 도움을 주려 했고, 그 결과가 괜찮은 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타다 준노스케와 상관없는 사람들과 작업하게 됐다. 가능하면 번역이나 드라마투르기는 한사람이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시작할 때는 원작을 그대로 알려줘야 하니까 되도록 직역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의역을 한다. 그때 굉장히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가는데, 연출과 의견을 나누면서 하는 게 좋다.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번역을 할 때 작가의 개성이 드러나는 부분은 웬만하면 살려두려는 입장이다. 번역이나 통역을 하는 사람은 존재감이 없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를 동경해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타다 준노스케가 화났을 때, 배우들의 기분이 상할 만한 말은 되도록 부드럽게 바꿔서 통역해준다.(웃음)

이홍이의 드라마, 2막을 열다

김지현 월간 [한국연극] 일본통신원으로 몇 년간 동시대 일본 연극계 소식을 전달해 왔는데, 최근에는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전문위원으로 ‘현대일본희곡낭독공연’이나 『현대일본희곡집』 발간을 통해 국내에 일본 희곡을 소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을 시작하게 되었나?

이홍이 일본에 재미있는 희곡이 많다. 지면으로 발표된 희곡이 제일 많은 나라가 아닌가 싶다. 연극학과 같은 교육 시스템이 거의 없기 때문인지 희곡 스타일이 굉장히 파격적이다. 소설처럼 쓴 작품도 많은데, 그런 게 매년 여러 희곡상에 노미네이트된다. 그런 게 재미있어서 일본에 가게 됐다. 일본 제작사들은 내가 희곡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한다.

김지현 지난달에는 김한내 연출과 명동예술극장에서 모토야 유키코의 「난폭과 대기」를 낭독공연으로 선보였고, 오는 6월에는 김재엽 연출과 두산아트센터에서 나카츠루 아키히토의 「배수의 고도(背水の孤島)」를 무대에 올린다. 그간 도쿄데쓰락이나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의 단원이 아닐까 착각하게 할 정도로 그들과의 작업에만 열중해오지 않았던가. 이홍이의 드라마가 2막을 연 느낌이다.

1) 요미우리연극대상 우수연출가상과 선고위원 특별상, 키노쿠니야 연극상 개인상, 센다 코레야상 등.

이홍이 <배수의 고도>는 두산아트센터에서 일본 작품을 찾고 있다기에 추천한 작품들 중 하나다. 등장인물, 줄거리, 수상 내역 등을 정리한 공연 정보를 전달하고 번역을 의뢰받았다. 그런데 김재엽 연출이 드라마투르그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역할이 늘어난 거다.(웃음) 3.11 대지진 이후 이야기로, 2011년 초연해 일본 내 주요 연극상1)을 휩쓴 작품이다. 나카츠루 아키히토 이번에 처음 한국에 소개되는 작가다. 1970년대 초반 태어났다. 보통 그 또래 일본 작가들은 개인적인 이야기에 집중하는 편인데, 그는 사회 문제를 직접 취재해서 쓰는 편이다. 지금까지 소개된 일본의 젊은 연극인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다.
작년까지 6년간 타다 준노스케, 성기웅과 일하면서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오면 싫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모메>로 힘은 들었지만 상도 받고 잘 마무리됐으니 이제 내가 아니어도 두 사람은 계속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엄마 같은 마음이다.(웃음) 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통역보다 번역이나 드라마투르기인 것 같아 올해부터는 그 일을 주로 해볼까 한다. 운 좋게도 일본 작가들이 희곡을 많이 줬다. 늘 부탁받은 것만 했는데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번역하고 적합한 연출가에게 전달해 한국에서 공연되는 걸 보고 싶다.

김지현 번역가가 아니라 국제공동제작 프로듀서의 바람 같다. 머지않아 또 다른 역할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미 하고 있는 거 아닌가? 2009년 국내에 개봉되었던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의 원작 희곡을 곧 연극으로 소개할 계획이라고 들었다. 반대로 한국 작품이나 창작자를 일본에 소개할 계획은 없나?

이홍이 <용의자 X의 헌신>은 연출도 정해졌는데, 저작권 조율 중이고 지원금이 결정되지 않아 확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반대 경우는 아쉽게도 아직 정식으로 하진 못했다. 조만간 일본에 고연옥 선생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추리물이나 범죄물을 좋아하는데, 「인류 최초의 키스」가 교도소 이야기이지 않나.

김지현 지금까지 국제공동제작을 해오면서 아쉬웠던 점이나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건 무엇인가?

이홍이 국제공동제작은 다른 작업의 몇 배로 힘든 것 같다. 정말로 하고 싶지 않고서는 못 하는 일이다.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작업을 잘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일본 극단이 한국에 오거나 한국 극단이 일본에 갈 때 통역이나 번역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안 쓰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자막은 만들지만, 오퍼레이터한테 연습 시간을 안 준다. 제일 욕먹기 쉬운 게 자막 오퍼레이터 아닌가? 그런데 테크니컬 리허설 때 잠깐 맞춰보는 게 전부다. 배우들의 호흡을 어떻게 한 번 보고 따라갈 수 있나. 국제적인 페스티벌도 통역은 인건비가 비싸니 자원봉사자나 아르바이트를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분들도 열심히 하시니 불만은 없다. 그런데 연극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거라 스태프진이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진다. 더 대우해달라는 게 아니라 통역, 번역 스태프도 중요하다는 걸 많은 분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이홍이/연세대 심리학/불문학과를 졸업했다. 도쿄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연극 연구를 시작했다. 서울대 공연예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전문위원을 하면서 공연 관련 통번역, 드라마투르그를 하고 있다.

사진촬영_박창현

김지현 필자소개
김지현은 월간 [한국연극] 기자, 웹진 [Weekly@예술경영] 코디네이터로 일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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