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무대의 뒷모습이 궁금했다. 공부를 시작하며 무대를 접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새로운 공연을 만날 때마다 백스테이지를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공연을 좋아하고 공연계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이들이 무대 뒤를 접하고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바로 자원 활동이다. 많은 축제가 자원 활동가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성공적인 축제의 요소로 ‘자원 활동가’가 꼽히기도 한다. 탄탄한 자원 활동 프로그램에 비중과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길어도 2주가 넘지 않는 축제의 자원 활동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특히 극장은 언제나 전문가의 영역으로 생각되며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었다. LG아트센터가 ‘주니어보드’라는 이름으로 대학생들에게 1년 동안 공연기획 및 홍보와 마케팅 영역을 가까이서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학생이라는 지원 자격 제한과 함께 활동의 한계점이 아쉬웠다. 보다 극장을 가까이서 경험할 수 있는 자원 활동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중, 교환학생으로 온 네덜란드에서 우연처럼 한 음악 공연장의 자원 활동가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공연장을 만들고, 움직이고, 대표하고 홍보한다

▲ 비벨롯이 위치한 에너지하우스 전경
Ⓒ Bibelot

인구 11만 명 남짓한 소도시 도르드레흐트(Dordrecht)에 위치한 비벨롯(Bibelot)은 도시 내의 유일한 대형문화공간인 에너지하우스(Energiehouse) 안에서 락 음악부터 레게까지, 다양한 음악 공연과 행사를 프로그래밍하고 있는 공연장이다. 1967년 젊은이들이 설립한 작은 클럽으로부터 시작된 비벨롯은, 1981년 비어있던 교회(Bonifatius Church)로 공간을 옮기며 계속 성장해 온,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중음악 공연장이기도 하다. 처음 클럽의 문을 열 때부터 구성원들 모두 자원 활동으로 일을 시작했기에, 비벨롯의 역사에서 자원 활동가들은 언제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들은 부족한 전문 인력의 빈자리를 메꾸고 극장을 운영하며, 2002년에는 전문 공연장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최근 에너지하우스로 공간을 옮기며 각각 800명, 3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무대 두 개를 갖춘 비벨롯은 이제 대도시 못지않은 관객 동원력을 자랑하는 인기 공연장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극장에서 자원 활동가들의 입지는 크다. 티켓 오피스부터 클락룸, 바, 백스테이지에 이르기까지, 현재 비벨롯 내에서 임금 없이 일하는 자원 활동가들의 숫자는 178명에 이른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10명 정도의 운영 인력과 중요한 공연이 있을 때 프리랜서로 일하는 15명 정도의 테크니션을 제외하고는 극장의 거의 모두가 자원 활동가라는 뜻이다. 심지어 매 공연의 백스테이지를 총괄하는 9명의 무대감독 역시 자원 활동가 중의 한 사람이다.

비벨롯이 많은 자원 활동가를 통해 얻고 있는 가장 큰 이익은 바로 예산 절감이다. 전문 인력을 장기적으로 고용할 필요가 없으니 최소한의 비용으로 극장을 운영해 올 수 있었다. 현재 비벨롯에서 측정하는 자원 활동가들의 경제적 가치는 최대 50만 유로에 이른다. 그러나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장 큰 가치는 바로 비벨롯을 대표하는 자원 활동가들 그 자체다. 비벨롯의 한 부분으로, 또 극장의 비전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자원 활동가들은 극장의 ‘대사(Ambassador)’로 소개된다. 도시임에도 굉장히 작은 커뮤니티와 이웃 간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진 도르드레흐트에서 중요한 마케팅 수단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원 활동가들이 동네 친구들과 공유하는 공연 일정과 사진, 코멘트들이다. 많은 자원 활동가가 페이스북에 자신의 직업으로 ‘비벨롯’을 등록하고, 알리고 있기도 하다. 이런 열정적인 자원 활동가들의 존재는 극장이 지원금을 찾을 때 역시 중요하게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다. 또한, 자원 활동가들은 극장의 이미지와 자원 활동 자체를 홍보하고 있기도 하다. 비벨롯에서 자원 활동을 하며 얻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그들의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전달되어 비벨롯이 관객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되고, 그를 통해 또 다른 자원 활동가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 〈옐로우 클러(Yelllow claw)〉공연 모습(사진촬영_마크 드 종(Marc de Jong))과 보나파티우스(Bonifatius) 교회에 있을 때 비벨롯의 공연 모습(사진촬영_프란시스 프롱크(Francis Pronk))(왼쪽부터)


전문적인 자원 활동가?

극장의 문을 열었을 때부터 자원 활동가들과 함께해 온 비벨롯이지만 여전히 운영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임금 없이 일하는 자원 활동가들에게 관객들이 원하는 헌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게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력 역시 일정 프로그램을 통해 관리하고 있긴 하지만, 자원 활동가들이 본인이 정한 일정에 나타나지 않으면 당장 인력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해 페널티를 부과하고, 보다 책임감을 부여하기 위해 자원 활동가 계약서까지 작성하면서도, 막상 적절한 예방책을 찾기가 어렵다. 인기가 없는 공연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 공연은 아무도 자원하지 않기 때문에, 코디네이터는 때에 따라 자원 활동가들에게 직접 부탁해야 하기도 하고, 소정의 임금을 지급하면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전문 인력이 아닌 이들이 백스테이지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우려 역시 존재하지만, 비벨롯은 보다 멀리 내다보고 있다. 경험 부족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전문 인력 역시 그들의 경력을 시작할 때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벨롯의 자원 활동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목표는 모든 자원 활동가를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그들이 자신감과 열정을 가진 전문가처럼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일 년에 두 번 교육 날짜를 정해 피난 훈련을 포함한 안전 교육, 친절 교육, 백스테이지의 시설물 사용에 대한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시스템을 통해 일정을 등록한 자원 활동가들에게 사전에 스테이지 플랜과 테크니컬 라이더를 전달하여, 무대에서 각자의 일을 바로 찾을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매달 무대감독과 자원 활동가가 모여 코디네이터와 함께 피드백을 주고받고, 앞으로의 공연 운영 계획을 의논하는 정기적인 자리 역시 만들고 있다.

관계, 신뢰, 헌신, 그리고 서비스

▲ 자원활동가와 프리랜서들로 이루어진
비벨롯의 축구팀

비벨롯의 수많은 자원 활동가들을 간단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나의 그룹으로는 묶을 수 없는,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술경영이나 무대를 공부하며 경험을 쌓기 위해 온 학생들도 있지만, 비벨롯의 초창기를 기억하는 골수팬이거나, 혹은 프리랜서 일에 지원했다가 코가 꿰여 자원 활동가가 된 중년의 아저씨도 있었다. 평균 연령 33세,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할 열다섯 살부터 은퇴한 예순일곱 살까지, 이 모든 사람들이 비벨롯에서 함께 자원 활동을 하며 연결 고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자원 활동을 하는 이유 역시 다양하다. 유명한 뮤지션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할 수 있어서이기도 하고 무대, 조명 기술을 배우고자 시작한 사람도 있다. 공짜 음료와 티켓도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러나 모두가 입을 모아 답한 가장 중요한 동기는 바로 ‘자원 활동가들’, 오로지 비벨롯의 자원 활동을 통해서만 접점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극장은 자원봉사를 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공간이기에 앞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였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 많게는 매주 두 번씩 극장에 오는 자원 활동가들에게 이 일은 일상의 활력을 주는 중요한 일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비벨롯은 자원 활동가들의 활동 동기들을 최대한 충족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비벨롯의 공연을 보고 싶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일정 관리 시스템을 통해 자신이 일하고 싶은 공연과 시간을 선택해서 일할 수 있어 만족한다. 언제든지 바에서 음료를 즐길 수 있도록 주어지는 충분한 코인과 자원 활동을 한 날엔 일이 끝난 뒤 공짜로 제공되는 맥주 역시 그들이 극장에 더 오래 머무르는 이유이다. 매달 첫 주 일요일에는 극장의 로비 공간에서 먹거리와 함께 다른 자원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기적인 ‘자원 활동가 카페’가 열린다. 자원 활동가들이 원하는 즐거운 만남의 장을 위해 여름에는 2박 3일의 일정으로 근교 숲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일종의 MT와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는 비벨롯이 자원 활동가에게 그동안의 감사를 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한, 코디네이터와의 수평적 관계는 언제나 자원 활동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자원 활동 업무를 바꾸고 싶을 때, 혹은 업무 중 생긴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자원 활동가들이 언제든 코디네이터를 찾아올 수 있도록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신뢰감을 느끼며 업무에 만족할 때에야 비로소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고, 공연장에서 일하며 보이는 열정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 비벨롯의 메인 스테이지와 DJ파티의 관객들 Ⓒ Bibelot

그들은 어떤 홍보 문구보다 강력한 메시지다

비벨롯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프리랜서와 자원 활동가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비벨롯의 자원 활동가들이 보여 주는 열정은 엄청나다. 임금을 받는 스태프와 자원 활동가 사이, 또 자원 활동가 내에서 간극이 생기지 않도록, 극장 내에는 위계 없이 협업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비록 전문 지식과 책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강력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원 활동가들은 임금과는 상관없이 그들 자신을 극장의 일부로, 또 극장을 그들의 것으로 여기고, 황금 같은 주말을 기꺼이 극장에서 일하며 보낸다. 그들이 비벨롯에 가지는 애정과 열정, 신뢰와 자부심은 공연장을 움직이는 동력이자, 비벨롯이 쌓아온 무형의 자산이다. 자원 활동가들의 행복한 얼굴이야말로 비벨롯이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홍보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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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참슬 필자소개
김참슬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에 재학 중이다. [Weekly@예술경영]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였으며 현재는 네덜란드 윌렘 드 쿠닝 아카데미(Willem De Kooning Academy)에서 교환학생 자격으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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