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관련된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반갑고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제도와 체계가 인간의 사고를 변화시킨다고 했던가? 오늘날 자립이 불가능한 국악과 국악인은 이제 정책과 맞물려 가동되는 ‘관공예술’이 되어버린 게 사실이다. 어떤 미술평론가가 상업적 컬렉터들이 작가들의 미적 이념을 조장한다는 것을 풍자하여 ‘시장미술’이라고 한 것처럼, 국악도 정책과 지원금이 조장하는 ‘관공예술’이 된 지 오래다. 따라서 응당 예술로서 추구해야 할 창작과 외연의 넓이는 ‘주어지는 지원금’만큼만 만들어진다. 실험과 모험도 예산이 부족한 지점서부터 멈춘다.

또한 공적인 목표하에 실행되는 지원과 정책이 보존 주체와 수혜자들의 사적인 영역과 맞물리면서 혼선을 빚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승과 보존이라는 대의에 담갔던 두 발 중 한 발을 슬쩍 들어 수혜자들의 개인의 이익에 담그며 일어나는 혼선인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수정을 요하는 정책, 즉 ‘메타 정책’이 필요한 시점에 달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반성의 기제 없는 정책을 발표해오고 있다.

올해 3월, 서울특별시(시행 문화예술과 4673)가 발표한 ‘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안)’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방점이 찍혔을 뿐, 새로운 것도 그간 지원 정책이 안고 있는 문제들의 보완된 누빔 점도 보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남산에서 북촌에 이르는 국악발트 계획도 (사진출처_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 자료집)

▲ 남산에서 북촌에 이르는 국악벨트 계획도 (클릭 시 확대)

(사진출처_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 자료집)

국악은 얼마나 많은 정책의 옷을 입어 왔는가

그동안 국악이 얼마나 많은 정책의 궤도에 놓여져 그 역사를 이어 왔는가. 그래서 ‘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을 보기 전, 국악을 둘러싼 정책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이 가라앉은 1960년대부터 국악의 정책은 가속화되었다. ▲ 문화재보호법(1960) ▲ 문화예술진흥법 제정(1972) ▲ 제1차 문예진흥 5개년 계획(1974~1978)이 있었다. 대부분 ‘주체적인 민족문화 창달’이 골자였다.

1980년대에는 ▲ 새문화정책(1981) ▲ 제5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 수정계획의 문화계획(1983) ▲ 문화 발전 장기 정책 구상(1985) ▲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의 문화부문(1986)이 발표되었다. 특히 1980년대는 1970년대 이래로 주안점을 둔 문화의 주체성과 전통·민족문화의 강조가 지속됨과 동시에 문화 발전이 국가 발전의 중요 요소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한편으로는 제10회 서울 아시안게임(1986)과 제24회 서울올림픽(1988)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그래서 국악 관련 시설에 많은 투자와 정책이 뒤따랐다. 이 시기에 국립국악원과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이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전당, 독립기념관, 각 지역의 종합문예회관 등과 함께 지어졌다. 일명 하드웨어 확충기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 문화창달 5개년계획(1993~1997) ▲ 문화비전2000(1997) ▲ 국민의 정부 새문화정책(1998~2002) ▲ 문화비전 2011(2002~2011)이 있었다. 특히 ‘문화비전 2011’은 보존과 계승 중심에서 각도를 틀어 국악을 포함한 전통 예술 전반의 문화관광 상품화와 문화국가 이미지 구현의 도구로 설정하며 차별을 두었다. 특히 이 사업의 하나로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의 김명곤 장관 시절에 발표한 ‘전통예술 활성화 방안’은 당시 붐을 이루던 문화콘텐츠 산업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등재와 함께 맞물렸고, 국악의 정책이 점(點) 단위 보존에서 면(面)·선(線) 단위의 입체적 보존과 활용으로 나아갔던 지점이었다. 한 마디로 ‘원형 보존’에서 ‘활용’으로 나아가는 작업을 꾀하던 시점이었다.

국악의 중심지 서울.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연감’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서울 733건으로 두 번째 양을 차지하고 있는 전남(226건)과 경기·부산(각각 165건)과 큰 격차를 보인다. 따라서 서울은 그만큼 공연장과 종사자, 공연 인구가 제일 많은 시공간이다. 이러한 인프라를 발전적으로 가동시키기 위한 ‘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안)’은 뭔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전통예술 활성화 방안’의 서울편일 뿐 뾰족한 대안이나 현장과의 충분한 교감을 바탕으로 한 계획은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발전과 계획이 보이지 않는 계획

돈화문로 전통문화시설 건립계획도 서울시 종로구 봉익동 국악로 모습

▲ 돈화문로 전통문화시설 건립계획도, 서울시 종로구 봉익동 국악로 전경
(사진출처_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 자료집)

‘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안)’을 보면 국악의 활성화를 통해 도시 경쟁력 제고와 관광 상품의 개발을 목표로 하여, 1단계(2014~2015년/51,175백만 원), 2단계(2016~2019년/81,670백만 원), 3단계(2020~2023년/84,120백만 원)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한다. 계획(안)이 발표되었을 당시에 대부분의 언론은 창덕궁 돈화문에서 종로 3가역 간 770미터에 달하는 국악로와 돈화문 앞쪽에 들어설 돈화문로 국악예술당의 개관(2016년 초)을 헤드라인으로 내세웠다. 이 계획(안)의 골자를 추리면 다음과 같다.

1) 국악진흥 기반조성: 돈화문로 국악예술당과 전통문화전시관 건립·운영, 남산국악당 운영 개선, 국악기 박물관, 서울시 국악종합정보센터 설치
2) 국악로 활성화: 국악기 공방 활성화 및 투어 프로그램, 야외공연 상설화, 공연장별 특성공연 육성, 한옥공연 활성
3) 국악창작역량 강화: 시립국악단체 강화, 국악인턴제, 상주단체 지원, 신진국악인 발굴·육성
4) 국악의 대중화 : 초·중·고등학생 교육 강화, 저소득층 영재 교육 강화, 시민 강좌 및 시민 대학 운영, 어린이 국악오케스트라 운영, 고궁 및 민간 기업 등 국악공연 강화, 국악 도보관광(Walking Tour) 코스 개발 운영, 국악 축제 및 체험프로그램 운영

서울을 중심으로 잠재적 관객부터 현장의 국악인까지,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아우른 정책이다. 하지만 72쪽에 달하는 계획(안)에는 서울에 열리는 공연, 국악공연장, 축제, 교육 인프라의 현황 파악만 나와 있을 뿐 ‘발전’과 ‘계획’은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대부분 ‘운영’, ‘육성 강화’, ‘지원’, ‘발굴’, ‘개최’와 여기에 따른 산술적인 금액만 기재되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적지 않은 분량의 계획(안)에는 오늘날 국악이 왜 향유되지 않는지, 왜 소비되지 않는지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없다. 보존과 전승, 전파의 의무와 강령만 있다.

앞서 보았듯이 국악과 정책의 동거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국악은 수십 년 동안, 민족의 문화라는 점에서 ‘특혜’에 가까운 ‘수혜’를 받아온 장르였다. 하지만 그간 국악인들은 돈을 받아 써 버리며 ‘현황’만 축적했지 그에 대한 감시와 분석의 기제로서의 비평이나 토론 문화는 챙기지 못했다. 따라서 본 계획(안)에 필요한 것은 오늘날 서울의 국악 현황이 아니라 그간 쌓아온 ‘실패 사례’와 주밀한 ‘현장 분석’이다.

쳇바퀴만 굴리는 정책을 멈추게 할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계획(안)에는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 간의 끈질긴 혼돈이 담겨 있다. 국악로와 돈화문 국악예술당이라는 전용공간과 하드웨어 구축, 그에 따른 구호가 서울시의 국악 문화와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국악 관련 제도를 격려하고 고취함으로써 그 질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공과 소통, 감상에 이르는 전반적인 국악 장(場)의 양질화가 담보되기 위해선 ‘질적인’ 다른 무엇이 이 과정에 투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920~1950년대 악극 대본DM로 디지털화 작업을 위해 상태 점검, 김태랑 기증자료, 국립예술자료원(왼쪽부터)/악극 무대 스케치, 김태랑 기증자료, 국립예술자료원


▲ 돈화문로 전통문화의 거리 조성사업 예정부지 및 돈화문 국악예술당 조감도 (사진출처_서울시 국악 발전 종합계획 자료집)

중요한 것은 서울시의 국악 문화는 결코 정책의 투자적 맥락으로 사유되거나 양식해낼 수 없는 가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 성장을 담보하는 자양분은 직관, 상상력, 영감 그리고 소통과 공감, 연대감 같은 감정의 소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예산’이 곧 ‘보존’이고 ‘발전’이라는 구시대적인 예인들의 논리는 정책 설정 시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 것=좋은 것’이라는 등식이 깨진지도, ‘=’의 실효성이 희미해진지도 오래 되었다. 그 와중에도 정부와 지자체는 매번 국악 지원 정책을 발표했고 실행했다. 이러한 정책과 지원제도는 허물어진 등식을 감추거나 마지막 믿음을 유지하는 장치로 활용되어 왔던 건지도 모른다.

일단 서울시와 이를 지렛대 삼아 국악의 문화를 발전시킬 계획이 지금 이곳에 놓였다. 반길 일이다. 그러나 나는 서울시의 국악 정책이 잠시 멈추고 숨을 골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만약 그럴 경우 그간 정책의 수혜자들은 그 대가로 지불하게 될지도 모를 손해와 순응했을 때 제공되는 안락함을 극적으로 과장함으로써 상황을 조정하고 통제할 것이다. 하지만 잠시 정책을 멈추는, 즉 정책을 멈추게 하고 사색을 이끌어낼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공의 이름에 걸린 이해타산의 속셈을 들여다보며 좀 더 발전적인 담론과 논의를 이끌어내었으면 한다.

사진_송현민 필자소개
송현민은 음악평론가로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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