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사자상을 들어 보이는 조민석 커미셔너

▲ 황금사자상을 들어 보이는 조민석 커미셔너

올해 14회를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한국관의 황금사자상 수상은 건축계뿐만 아니라 침체된 문화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사건이다. 지난 6월 7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조민석 커미셔너가 총감독 렘 콜하스(Rem Koolhaas)와 함께 황금사자상 트로피를 들어 올린 사진은 한국 건축의 어떤 도약을 위한 신호탄의 의미를 가진 듯 보였다. 렘 콜하스가 운영하는 사무실 OMA에서 실무를 하고,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풍부한 조민석 건축가가 커미셔너를 맡기로 결정되었을 때, 이번 한국관 전시는 세계인들의 많은 주목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대다수가 비엔날레 최고 명예인 황금사자상 수상까지는 점치지 못했다.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도시 사회의 조건들을 건축적으로 이론화하면서, 상상력 넘치는 작업들을 선보여온 조민석 소장은 영민하게 ‘근대성의 흡수: 1914~2014(Absorbing Modernity: 1914-2014)’라는 비엔날레 전체 주제를 건축을 매개로 유일한 분단 국가인 남북한의 역사를 조망하는 것으로 풀었다. 이 작업의 위해 두 명의 건축 이론가가 큐레이터로 함께했다. 근대건축 전문가인 안창모 경기대 교수와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과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등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했던 배형민 서울시립대 교수가 참여했다. 이러한 탄탄한 팀워크와 주제의 명료함이 맞물리면서, 이번 전시는 부침이 많았던 한국관 전시의 위상을 한번에 끌어올리며 한국 건축 역사에서 귀중한 결과를 남겼다.

‘오감도’의 시각

한국관의 전시 ‘한반도 오감도(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는 ‘삶의 재건(Reconstructing Life)’, ‘모뉴먼트(Monumental State)’, ‘경계(Borders)’, ‘유토피안 투어(Utopian Tours)’라는 4가지 소주제로 구성되었다. “한반도만이 갖고 있는 분단의 특수 상황이 남북한의 건축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고자 한다”라고 밝힌 조민석 소장은 북한과의 공동 전시를 추진했으나 성사하진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전시 주제를 관통하는 ‘오감도’라는 키워드는 건축 교육을 받은 시인 이상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보편성과 전체성을 전제로 한 조감도의 시각과 대비되는 오감도의 시각”은 충돌과 확장을 거듭해온 한반도 근대기 역사를 추적하는 실마리다. 한가지로 규정될 수 없는, “일원적인 시각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한반도 도시건축에서 흩어진 파편들을 모아 보여줌으로써 그 연결 고리를 상상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기존 한국관 전시에서 보여준 단일 건축 작업이나, 도시를 매개로 한 건축가들의 비전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좁은 의미의 건축을 넘어선, 정확히는 건축가들만의 작업을 넘어선 문학가, 화가, 사진가, 영화감독, 기획자, 수집가 등 29팀의 다채로운 작업이 전시의 대상이 되었다.

서예례 작가의 DMZ 모형과 영국인 수집가 닉 보너(Nick Bonner)의 북한 작품 콜렉션 《유토피안 투어》(왼쪽부터)

▲ 서예례 작가의 DMZ 모형과 영국인 수집가 닉 보너(Nick Bonner)의 북한 작품 콜렉션 《유토피안 투어》(왼쪽부터)

베니스에서 펼쳐진 한국 건축

전시장 외경

▲ 전시장 외경

한국 건축의 위상을 세계에 선보이는 가장 큰 기회인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은 1995년 한국관 개관 이래 많은 건축가들의 자발적인 협력으로 이어올 수 있었다. 일본관과 더불어 유일한 아시아 국가관인 한국관은 역사상 마지막 국가관으로서 중국 등과 치열한 경합을 통해 획득한 공간이다. 1996년 건축전 참여를 시작으로 강석원(1996년), 김석철(2000년), 김종성(2002년), 정기용(2004년), 조성룡(2006년), 승효상(2008년), 권문성(2010년), 김병윤(2012년) 8명의 커미셔너의 손을 거쳐 한국 건축의 오늘이 소개되었다. 충분한 작업을 위한 시간과 예산 문제 등의 어려움은 매번 있었고, 각 전시마다 보여주는 결과의 수준도 차이가 있었다. 건축을 전시라는 매개로 풀어가는 작업에서 전시 전문가의 부재나 소통의 문제도 제기되었다. 한국에서 일어난 특정 건축 작업을 선보이는 평이한 구성에서 출발해, 2000년대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 도시의 현상을 건축적으로 해석하는 전시가 주를 이뤘다. 2012년 전시가 주제에 대한 해석과 전시 연출에서 비판을 받았기 때문인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기존 관례를 깨고 공개모집과 추천을 통해 후보자를 구성하고, 그들이 전시 기획안을 발표하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커미셔너를 선정했다. 김영준, 조민석, 김찬중, 하태석 4명의 후보자 모두 기존 커미셔너보다 젊고 이미 베니스 비엔날레에 작가로 참여한 경험이 있는 데다 세계 건축계의 흐름에 밝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2013년 3월 심사를 통해 조민석 소장이 커미셔너로 선정되면서 15개월에 이르는 전시 준비 기간이 주어졌다.

이전 전시와 비교해, 커미셔너 선정 과정에서 이미 기획안은 검증되었고, 준비 기간에 여유가 있었다는 점에서 ‘한반도 오감도’는 모범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방의 도시’를 주제로 내세워 기획력과 분명한 메시지가 돋보였던 2004년 전시와 더불어 ‘한반도 오감도’는 건축전에서 전시 기획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비교적 협소한 한국관 전시 공간에 많은 자료들을 밀어 넣은 듯한 인상을 준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었다. 이 때문에 작품의 독해가 어려웠다는 평도 있었다. 그리고 렘 콜하스가 각 국가관 커미셔너 들에게 건축가가 두드러지기보다는 역사 그 자체를 리서치하고 이를 전시하도록 주문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우리 건축가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극히 희박한 상황에서 현존하는 한국 건축가들의 활동을 충분히 보여줄 수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 한국관 전시에는 한국 작가 14팀과 외국 작가 15팀 등 총 29팀이 참여해 사진, 그림, 모형 등으로 남북한의 건축을 조망했다.

▲ 이번 한국관 전시에는 한국 작가 14팀과 외국 작가 15팀 등 총 29팀이 참여해 사진, 그림, 모형 등으로 남북한의 건축을 조망했다.

황금사자상 수상의 의미

조민석 소장은 “앞을 내다보기 위해 지난 백년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했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기도 전에 전쟁으로 분열된 한반도의 공간들은 이를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하기 위한 엄청난 속도전을 시행해왔다. 급속한 도시 변화 한가운데 뒤돌아볼 여유 없이 달려오기만 했던 상황 속에서 지난 100년의 건축 역사를 반추하는 작업은 분명 의미 깊은 일일 것이다. 따라서 한국관 개관 20주기를 넘기는 상징적인 해를 거쳐 한국이 10번째로 건축전에 참여하는 다음 전시에는 이번 작업을 토대로 우리 건축의 미래를 전망하는 보다 도전적인 작업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건설 시장 자체가 얼어 붙으면서 대형 프로젝트의 수가 현격히 줄어든 저성장시대의 오늘날 우리 건축가들은 전시, 출판, 컨퍼런스 등 건축을 매개로 실현 가능한 여러 활동을 유연하게 펼치고 있다. 이들은 예술가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 전문가와의 협업에도 이미 친숙해 있다. 이러한 젊은 건축가들이 견인하는 한국 건축의 미래는 우려하는 만큼 빈곤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한국 건축의 세계화라는 오랜 숙원 사업은 이번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으로 그 목마름을 다소 해소했다. 이번 전시가 한국관의 마지막 황금사자상 수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 낼 건축 담론의 씨앗에 풍부한 밑거름이 된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이 즐거운 축제를 진심으로 함께 즐기고 싶다.

사진제공_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필자사진_정다영 필자소개
정다영은 건축과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월간 [공간(SPACE)]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2011년 7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면서 건축 부문 전시 기획과 연구를 맡고 있다. 기획한 전시로는 <아트폴리 큐브릭>(2012), <그림일기: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2014) 전이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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