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는 브라질 월드컵의 열기로 뜨겁다. 그 열기만큼이나 프랑스는 파업으로 뜨겁게 들끓고 있다. 6월초부터 시작된 이번 파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시작은 프랑스 철도공사(SNCF)이다. 원인은 막대한 부채 때문이다. 정부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 철도의 소유주인 프랑스 철도시설공단(RFF)과 운영을 맡은 철도공사를 통합하려고 했다.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듯한 대책에 노조는 적극적으로 반대를 표하기 위해 6월 10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파리와 수도권(일드프랑스)의 광역철도 등은 40퍼센트 정도, 고속열차(TGV)는 70~80퍼센트 정도 정상 운행되었다. 항공 관제사 노조들도 파업 행렬에 가세했다. 직접적인 이유는 6월 30일에 프랑스가 유럽연합(EU)에 2015~2019년 항공 부분 예산안을 제출하기 때문이다. 관제사들은 유럽연합의 항공 산업 자유화 계획에 반대하면서 이 부문 예산 감축으로 인해 항공운항서비스 제공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통과 항공 같은 공공 서비스 분야의 파업의 영향은 실생활에 즉각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국민들의 안전과 편안한 생활을 보장해야하는 정부가 느끼는 부담은 크다. 여기에 문화예술산업 종사자들도 시위에 나섰다. 세계 최대의 연극 공연 축제인 아비뇽 축제(Festival d’Avignon)마저 올해는 열릴지 불투명하다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로, 그 양상이 심각하다.

프랑스 문화예술계는 지금 파업 중

취소된 2014 몽펠리에 댄스 축제((Montpellier dance festival) 포스터

▲이번 사태로 일부 공연이 취소된 2014 몽펠리에 댄스 축제(Montpellier dance festival) 포스터
(사진출처_축제 홈페이지)

6월 18일 자 프랑스 주요 신문에는 문화예술 분야의 임시직 노동자(앵테르미탕Intermittent)들의 파업과 시위 소식을 일제히 쏟아냈다. 리베라시옹(Liberation)지는 “이 수당이 없어지면, 나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만 합니다.”라는 타이틀의 기사에 200여 명의 앵테르미탕들이 현재 건설 중인 파리 필하모니 극장의 공사 현장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을 담았다. 같은 날 렉스프레(L’Expresse)지는, 프랑스 제2의 도시 마르세유에서는 주요 여름 공연 축제 책임자들을 포함한 앵테르미탕과 한시적 노동자(앵테리메르Intérimaires)들이 골판지로 만든 관을 들고 다니며 시위하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들이 말한 “이 수당”을 지키는 것이 시위와 파업의 이유인데, 올해 초 정부가 발표한 실업보험 수정안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적극적이고 확실한 반대를 표시하기 위해 아비뇽 축제를 비롯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름 축제들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파업까지 고려하고 있다. 이 말은 정부를 단지 겁주려는 허언(虛言)이 아니다. 이미 2003년에 아비뇽 축제와 엑상프로방스 오페라 축제(Aix-en-Provence’s opera festival)가 파업으로 취소됐던 적이 있다. 프랑스 최대 일간지 르몽드(Le monde)지에 따르면, 몽펠리에의 ‘연극인의 봄’ 축제는 이들의 파업으로 15작품의 상연이 취소되면서 결국 파행으로 끝났다. 여기에 프랑스 대형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은 실업보험 수정안은 임시직 노동자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임시직 노동자들에게 7월 4일부터 한 달간 파업을 벌이자고 촉구했다. 사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마뉘엘 발스 총리는 이 부문에 정부 지원을 늘리겠다고 밝혔으나 CGT는 정부 조치가 기대에 못 미친다며 거절했다.

실업 수당은 생명이다

아비뇽 축제 현장

▲ 아비뇽 축제 현장
(사진출처_축제 홈페이지)

왜 이들은 아비뇽 축제까지 보이콧할 정도로 정부의 수정안을 강하게 반대할까? 이번 사태는 올해 초 한국의 전경련에 해당하는 프랑스 경영자협회 메데프(Medef)는 현재의 실업 급여 보험 체계를 심도 깊게 개정하자고 제안하면서 촉발되었다. 프랑스 주요 노조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즉각 반대했다. 메데프가 내놓은 개정안의 골자는, 실업률에 따라 실업자의 권리를 탄력적으로 조절하자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현재의 실업보험 체제는 경제 정세와는 상관없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비합리적이다. 현 제도 하에서는 실직 상태의 날짜만큼 노동자들은 보상을 받게 되어 있다.(‘1일 실업 = 1일 실업 보험금’) 하지만 개정안은 실업 등급에 따라 실업자의 보험금 지급 기간과 구직자의 권리를 조절하고 있다. 즉 메데프는 실업률이 12퍼센트 이상일 때는 보상 날짜 하루를 1.2일로 셈하고, 실업률이 9퍼센트 이하일 때는 0.8일로 계산하자고 제안했다. 이 안에 따르면 실업률이 낮아 경기가 좋으면 지금보다 실업보험금이 더 많이, 경기가 좋지 않으면 더 적게 지급된다. 같은 방식으로, 실업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는 최소 노동 기간과 실업보험금 최대 지급 기간(현재 24개월)을 모두 실업률에 맞춰 가변적으로 운영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프랑스 국가통계청 앙세(Insee)는 올해 실업률 전망치를 10.2%로 제시했다. 지난해 실업률은 10.3%로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프랑스 실업보험관리대표(Unedic)에 따르면, 실업률은 내년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따라서 이 안이 시행되면, 기업은 실업 급여 분담금을 차츰 줄여나갈 수 있고, 노동자들의 실업수당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실업보험관리대표협회(Unedic)는 개정안에 서명했고, 7월 1일부터 프랑스의 모든 실업자들이 적용을 받게 된다.

문화예술 노동자는 특수하다

아비뇽 축제 예술감독 올리비에 피 © Christophe Raynaud de Lage

▲ 아비뇽 축제 예술감독 올리비에 피
© Christophe Raynaud de Lage
(사진출처_축제 홈페이지)

문화예술 산업은 특성상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정규직보다 임시 계약직, 비정규직,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따라서 개정안이 시행되면 영화 및 영상∙음반 종사자, 음악가, 배우, 공연 기술자, 각종 스태프 등은 한 달 평균 50~300 유로(7만 원~42만 원 정도)의 실업 급여가 줄어들 전망이다. 지금까지 이들은 분야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예외 조항의 적용을 받았지만, 메데프는 다른 업종의 실직자들과의 형평성을 내세워 이들도 일반 조항을 적용하길 원했다. 현재 앵테르미탕들의 실업수당을 지급하느라 매년 10억 유로(140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으며, 앵테리메르도 거의 그 정도 금액이 지출되고 있어서 전문가들은 반드시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노조 측은 문화예술계는 고용 안정성이 가장 취약하고 가장 불확실한 직업군이기 때문에 일반 회사원이나 공무원과 같은 여타의 직업군과 동일한 원칙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비뇽 축제의 예술감독 올리비에 피(Olivier Py)를 비롯한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이번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의견은 저마다 주장의 근거와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핵심은 문화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관점의 차이다. 문화 강국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이 사태는 문화 융성을 내세우고 있는 한국 정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2년 11월부터 시행된 예술인복지법(‘최고은법’)에는 문화예술인들이 실업 상태에서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용 보험은 아예 빠져 있다. 기준도 비현실적이다. 최근 5년 동안 5편 이상의 작품(비평)을 문예지에 발표하거나 1권 이상의 작품(비평집)을 출판한 사람, 최근 3년 동안 영화 3편 이상 출연, 1편 이상 연출한 사람 등 문학, 영화, 미술, 음악, 국악, 무용, 연극, 연예, 기술 지원 분야에 따라 실적 기준이 정해져 있어서 그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예술인에서 제외되기에 정작 지원이 필요한 예술인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류는 아시아, 유럽, 미주를 넘어 남미와 아프리카에까지 널리 퍼졌다. 하지만 한류를 만들어낸 문화콘텐츠 창작자 및 관련자들은 여전히 안정적인 생계와 사회보장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실정이다. 예술은 가난할 때 나온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자 거짓이다. 세계적인 문화 강국이 되려면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와 기획자 등 사람에 맞춰야 한다.

필자사진_이동섭 필자소개
이동섭은 한양대 광고홍보학과 졸업 후 파리8대학(Université Paris VIII)에서 예술과 공연학으로 석사와 박사(수료)를 마쳤다. 2013 베를린영화제 단편경쟁 초청작 〈연애놀이〉 아트디렉터, 뮤지컬 〈그날들〉 드라마투르크로 활동했으며, 〈레이디〉,〈뱅커〉등의 시나리오를 썼다.『뮤지컬의 이해』,『당신에게 러브레터』,『패션코리아 세계를 움직이다』,『반고흐 인생수업』등 문화 다방면에 걸쳐 책을 썼으며, SBS 컬처클럽에 출연하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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