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 제부(ZEBU) 공연 모습

2014 Danish+ 축제 포스터

▲ 2014 대니쉬플러스 축제 포스터

(재)예술경영지원센터의 <한-덴 커넥션>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덴마크 아동청소년극 리서치에 참여하여 지난 5월 2일부터 10일까지 총 9일간 덴마크를 방문하였다. 단 일주일간의 방문으로 덴마크의 아동청소년극의 동향과 정책에 대하여 조망해낸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음이 사실이나, 부족하나마 필자가 그곳에서 듣고 보고 느낀 것에 대하여 궁금하게 여기는 동료 연극인들이 있을 것이라 여겨져 본고를 통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한다. 필자는 극단 북새통의 연출 남인우, 극단 마실의 연출 겸 배우인 손혜정과 본 리서치를 함께 하였다. 리서치는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는데, 덴마크 아후스 지역의 대니쉬플러스(Danish+) 축제에 참가하여 5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에 걸쳐 덴마크의 다양한 아동청소년극 17편을 관람하는 것이 리서치의 1부로 진행되었고, 아동청소년극 전문 극단 및 기관을 방문하여 미팅을 가지는 것이 2부로 진행되었다.

우선, 이번 리서치를 통해 덴마크의 우수한 아동청소년극을 다수 관람한 것은 매우 유의미한 작업이었다. 필자는 특히 이번 리서치 기간 동안 관람한 덴마크의 아동청소년극의 소재와 주제의 다양성을 보고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동청소년극이라는 용어에서도 이미 알 수 있듯이 아동청소년극은 흔히 성인극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이해되는데, 이에 따라 아동 청소년의 대상이 공연 창작의 일차적인 출발점이 된다. 아동 청소년 관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들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여야 하는가? 왜 이 이야기를 하여야만 하는가? 등이 창작자가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부터 아동청소년극의 딜레마도 함께 시작된다.

아동청소년극이 다 그렇다고 일반화하여서는 곤란하겠지만, 한국의 아동청소년극이 ‘교육’이라는 난제에 얽혀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 사실일 터이다. 아동청소년극의 일차적인 대상은 아동 청소년이지만 그 공연을 관람하도록 선택하는 주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보호자들 즉, 성인이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이 아동 청소년들에게 공연을 보게 하는 이유에는 대부분 교육의 목적이 우선적으로 작용한다. 하다못해, ‘정서 함양’이라는 명목의 교육 의도라도 숨어 있기 마련이다. 연극 공연이 타 대중매체에 비해 “예술적이기 때문에 고로 교육적일 것이다.”라는 일반의 명제는 부정하기도 긍정하기도 어렵다.

예술과 교육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섣불리 명쾌한 대답을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자명한 것은 둘은 서로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둘을 억지로 떼어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성인극과는 달리 아동청소년극에서 유달리 연극 예술의 교육적 효과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아동청소년극의 소재와 주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승자박의 결과를 불러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대니쉬플러스의 오프닝 파티에서 본 축제의 개최자인 극단 38(Teatret Gruppe 38)의 예술 감독 겸 배우인 보딜 알링(Bodil Alling)의 개회사는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덴마크 아동청소년 극단 중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극단 38을 총책임지고 있는 그녀는 세계 각국의 아동청소년극 관계자 및 전문가가 모인 자리에서 이번 축제에서 선보이게 될 공연이 공연을 보는 이들에게 훌륭한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엔터테인먼트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 ‘즐거움을 위한 여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필자는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재미,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동청소년 공연을 만드는 이의 첫 번째 자세여야 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자각이 일었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에서 벗어나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우리의 아이들이 순수한 아름다움과 즐거움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아동청소년 연극이 지녀야 할 일차적인 목표는 아닐까? 공연을 본 아이들이 연극 공연을 통해 뭔가 하나라도 얻어야 한다는 생산 가치의 교육 의지가 아이들의 순수한 원초적 감각을 말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짚어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교육적 메시지를 얻는 것에 비하여 비생산적이라는 생각을 공연을 선택하는 주체인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극을 창작하는 이들이 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점검해 보아야겠다는 뜻이다.

극단 38 <I'm not afraid of anything> 공연 모습

▲ 극단 38 공연 모습

같은 맥락에서 이번 방문 기간 동안 아동 관객과 함께 공연을 본 기억은 특히 매우 특별했다. 어느 곳엘 가나 아이들의 공연에 대한 반응은 비슷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 아동청소년 관객들처럼 공연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들과 함께 공연을 보는 성인 관객들이었다. 성인 관객들이 아동 관객들과 분리되어 지도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여 공연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아동청소년극을 공연하다 보면 (성인극 공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공연을 보러 온 이들을 자주 관찰하게 된다. 공연장에 함께 들어가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부모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데, 공연 내내 아이에게 공연의 의미와 교훈을 설명해 주려고 애쓰는 부모님들이 아직은 많다. 그리고 공연장 앞에서 아이들만 들여보내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공연이 끝나면 아이들을 맞으며 “그래 뭘 배웠니?”라고 물어보는 보호자들도 많다. 공연을 선택하는 아동청소년 관객의 보호자의 태도가 그러하다고 해서 아동청소년극을 창작하는 이들의 태도 또한 그렇게 맞춰야 하는가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극단 MERIDIANO <PAPER MOON> 공연 모습

▲ 극단 메리지아누(MERIDIANO) 공연 모습

여기에서 아동청소년극에 대한 정책의 문제를 언급해야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동청소년극 공연이 (창작을 위해서 다른 공연과 마찬가지로 지원금에 기대고는 있지만) 성인극에 비해 공연 자체의 수익률이 비교적 높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윤 창출을 위한 상품 가치를 우선시하여 아동청소년극을 창작하려는 경향이 아직까지도 여러 곳에서 비춰지고 있다. 아동청소년극이 자본주의의 상품 유통의 시스템에서 독립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덴마크에서는 40여 년 전 아동청소년극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운동이 처음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운동의 영향으로 현재 덴마크에서는 ‘덴마크에 있는 모든 아동 청소년들이 일 년에 최소 한 편 이상 아동청소년 공연을 볼 수 있도록’하는 것을 목표로 정책적으로 창작자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덴마크의 아동청소년극은 대부분 아동 청소년 관객을 직접 찾아가는 순회공연을 전제로 하여 제작되는데, 관계 기관으로부터 퀄리티 스탬프를 획득하게 되면 공연 창작 팀은 이에 따른 창작 지원금을 받게 되고 학교에서 공연을 상연할 경우 학교가 공연을 초청할 수 있도록 해당 학교에도 지자체 등에서 공연료의 반액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덴마크의 가장 큰 아동청소년극 축제인 ‘4월 축제(April Festival)’에 올해 선보인 작품의 편 수만 해도 650편을 상회하는데 이들 공연은 모두 정부로부터 퀄리티 스탬프(quality stamp)를 획득하여 재정 지원을 받은 작품들로서, 아동 청소년 관객이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매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아동 청소년을 최우선으로 놓고 이를 위해 모든 시스템이 구축되고 실행되고 있는 덴마크의 아동청소년 공연계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다시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아동청소년 공연에서 아동 청소년들을 단순히 관객으로만 보아야 할까?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은 공연을 보러온 관객이기 이전에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공연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동청소년극을 만드는 이로서의 소망이라면 너무 개인적인 희망일까? 그저 “내가 너와 함께 이 공연을 통해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웃고 울고 있어서 참 즐겁고 행복하다.”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것을 공연을 창작하는 이로서 먼저 자각하고 이를 기반으로 아동청소년극의 주제와 소재를 발굴한다면 대한민국의 아동청소년극은 더욱 다양화되고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창작자가 이러한 작품을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우리나라 아동청소년극의 미래는 분명 밝을 것이다.

사진출처_대니쉬플러스 축제 홈페이지

필자사진_홍혜련 필자소개
홍혜련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를 수료하고 졸업을 앞두고 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극단 달과 아이의 <고양이가 말했어> 조연출 및 국제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아동청소년 공연계에 입문했다. 이후 2009년 공연창작집단 뛰다에 입단하여 <하륵 이야기> 등에 출연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예술무대 산의 국제 코디네이터 일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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