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1일(금) 배재정 국회의원, 문화연대, 예술인소셜유니온(준)이 공동 주최한 ‘공연예술인의 노동환경 실태 파악 및 제도개선을 위한 국회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렸다. 공연예술인들에게 척박한 노동환경, 임금 책정 체계 미비, 만성적 임금 체불, 4대 보험 미가입, 현장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표준계약서 양식 등 기본적 안전장치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공연예술계의 관습적 악행과 법 제도의 미비는 ‘권리를 주장해도 소용없는’ 환경을 공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토론회는 예술인들의 어려운 삶을 ‘국회’라는 공적 영역에서 논했다는 점, 그리고 예술인들의 노동 권리 보장을 위해 법제적으로 무슨 법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밑그림을 그려보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토론회였다. [Weekly@예술경영]은 토론회에 참석한 두 발제자의 발제문을 중심으로 예술계 노동환경의 근본적 문제점들과 개선을 위한 법제적 제언들을 살펴본다.

공연예술계 노동실태: 우리에게도 테이블이 필요하다
- 장지연 예술인소셜유니온(준) 운영위원

1970~90년대 20대 시절을 보냈던 연극인 선배들은 그때 극단 생활을 하면 손에 돈은 못 쥐어도 먹고 자는 건 걱정 없었다는 얘기를 자주 하곤 한다. 어쨌든 그 시절에는 “우리가 남이가” 수준의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아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이런 도제식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체 의식’은 붕괴된 극단들이다. 월급 안 주는 건 옛날 방식대로, 밥이나 잠자리를 개인이 해결하는 건 요즘 방식대로 하는 바람에 어린 극단원들을 아사 직전까지 내몰면서 은근한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극단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장지연은 대중들의 문화예술 행사 관람률 증가 추세, 공연예술의 참여 지향적 성격과 문화 정책의 만남을 통해 관객은 ‘예술적 경험의 향유’를 보장받고 있지만, 정작 공연예술인들은 자신의 삶을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력과 무관하게 낮은 보수를 받고 있는 연극인들의 현실, 현저히 낮은 4대 보험 가입률(민간공연단체 28.5%, 공립공연단체 37.9%)을 통해 공연예술인들이 척박한 노동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들을 하나씩 제기했다. 그중에서도 각 분야 공연예술인들의 노동 실태를 인터뷰한 부분은 업계 노동환경 문제를 매우 사실적으로 고발함으로써 토론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먼저 공연예술인들은 계약 주체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계약 주체란 ‘계약 내용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다. 따라서 정부나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계약서에 날인만 하는 것은 계약 주체의 ‘주체적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하면서, 공연예술인들은 문화부와 예술인복지재단에서 제시하는 계약서를 주체적 입장에서 검토하고, 나아가 스스로 본인들이 원하는 계약서를 만들어 내서 불합리한 계약 관행에 대한 감시와 시정을 정부에 요청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로 연출가에서 무대, 조명 디자이너에 이르기까지 공연예술인들은 근로기준법에서 적시하는 근로자성은 물론 저작 권리조차 무시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브로드웨이, 웨스트앤드처럼 무대조명 디자이너가 도면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제작할 수 없도록 하는 체계, 기획 작품 초기 단계에서 다양한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통해 작품 개발에 관여하는 연출가에게 저작 권리 일정 지분을 주는 것, 연출 계약서 내에 연출 장면 사용 권한 규정 조항을 넣는 등의 방법으로 저작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과 제도 마련의 필요를 주장한다.

세 번째로 선후배 착취 잔재가 아직 여전하다고 말한다. 도제 시스템의 필요성과 긍정적 효과를 말하면서도, 오늘날 공동체적-동업자적 정신을 망각한 일부 극단주들 때문에 극단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고발하면서, 전근대적 부패 관습에 찌든 공연예술인들의 척결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네 번째로 불안하고 열악한 산업 구조로 인한 제도적 안전망이 부재함을 피력한다. 다른 예술계에 비해 공연예술계는 유독 임금 체불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근로기준법에 의해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직능군은 보통 근로자와 동등한 권익을 보장받아야 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직능군은 보증보험 의무화 같은 강제적 제도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불안한 고용 환경에 처해있는 공연예술인들에게 건강보험과 실업 급여와 같은 제도적 뒷받침, 공정한 인건비 산출 기준 마련 등 임금 가이드라인을 문화부 차원에서 공시하여 불공정 계약 관습을 해소하고, 공연예술인들의 기본적 삶을 위한 최소 권리 보장 마련이 시급함을 주장했다.

공연예술 노동자의 권리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
- 김상철 문화연대 정책위원

공연예술 노동의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연예술은 당연히 ‘공간 매개적 예술 활동’이다. 따라서 중대형 공연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공립 공연장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 둘째, 같은 공연 단체라 하더라도 실연자 단원과 그 밖의 지원 인력 간 고용 및 활동 측면에서 큰 차이가 보인다. 셋째, 공연예술 분야, 특히 스태프들의 고용 형태는 대부분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 고용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프리랜서라 해봤자 사실상 ‘고용-피고용’ 관계가 되고 마는 한계가 분명하며 따라서 직종 선택을 전혀 프리하게 할 수 없다. 넷째, 공연예술계 진입 경로는 대부분 인맥에 의한 것이다. 이런 예술 생태계에서 ‘당사자 간 대면 방식의 문제 해결’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구조다. 마지막으로 소득 구조의 양극화다. 문화예술계는 이 현상에 또 다른 특수성이 있는데, 5년 차 이상이 되면 소득 격차가 극적으로 드러나지만, 이는 대칭적인 구조가 아니라 소수 고소득과 다수 저소득으로 분해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 경력 수준에서 150만 원 이하가 전체 60~9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구조적으로 저임금 체계를 제도화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김상철은 기본적으로 법 제도 개선 방향이 ‘권한의 분배 및 조정’과 ‘재원의 분배 및 조정’이라는 두 가지 맥락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말한다. 권한 분배에 있어서는 「공연법」,「문화예술진흥법」,「문화산업진흥법」의 개선을, 재원 측면에서는 공공 재원뿐만 아니라 전체 산업 내에서 수익을 순환시킬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총사업자 단체인 기획사 등을 매개로 하는 이익 재분배 방안에 대해 전체 산업 내 사용자-피용자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먼저, 권한 분배 및 조정에서는 공적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모태펀드 혹은 공모 사업에 있어 적정 인건비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적절한 인건비 보장은 펀딩 조건으로 강제할 수 있거나, 표준 인건비를 별도로 지급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동시에 공공 공연장 대관 과정에서 적정 임금 의무를 포함하는 방안 역시 고민할 수 있다. ‘표준대관계약서’를 일괄 개정하여 대관 계약 시 제출하는 공연 계획 및 예산 계획에 임금 우선 지급을 약정하거나, 인건비 지급 약정을 하는 경우 대관료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식을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재원 분배 및 조정에서는 공연예술 분야 사용자단체가 연간 매출액의 일정 부분을 공연예술인을 위해 출자하는 사회 협약을 고려할 수 있다고도 제안하며, 독일의 예술인사회기금(사용자의 출자 60% 차지)과 영미 쪽 예술인 단체 모델을 들어 그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영화 산업 내에서 운영 중인 훈련인센티브제(영화 산업 스태프가 작품과 작품 사이 일시적 실업 기간 동안 실무 교육을 통해 직무 능력 향상 및 고용 안정을 위한 복지 비용을 받는 제도, 금액: 967,000원)를 적극 고려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제도 진입 장벽이 철저하게 스태프의 현실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①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 ②영화 산업 재직 또는 경력증명서, ③근로계약서 사본, ④엔딩크레딧 캡처, ⑤근로확인서, ⑥기존 수료증 중 하나만 충족하면 지원받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법 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기존 법 제도 점검을 통해 이미 산업화 되었지만 법 제도에는 누락된 영역을 추가하는 것과 공연예술 노동자들의 조직 구성에 대한 지원 근거 마련을 고려하면서 표준계약서 및 단가 적용 의무화 논의를 제안한다. 그러면서 ‘음원저작권 합리화TF’처럼 새로운 이해관계자들을 견고하게 결집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견고하게 구축된 기득권 구조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적 저항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먼저 명시한다. 공연예술의 특수성상 집단 형성보다는 개별적 활동으로 나눠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음을 전제한다.

「문화예술진흥법」에서는 문화예술 노동자들의 자기 조직 구성과 이에 대한 지원 항목 포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관행화된 공연예술 산업구조에서 선배 그룹으로 형성된 사용자에 대항하여 스태프들이 자기 이해를 한데 모으는 것이 공공 차원의 지원이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지만, 당장의 제도 변화에 대한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으므로 공연예술의 모법(母法)이라 할 수 있는 「공연법」상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영화 산업 훈련인센티브제를 참조한 ‘무대예술인전문인력지원센터’의 설치, 무대예술전문인 국가 검정 통과 기준을 협회 차원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시행, 자격 검증과 관련된 기관을 법령에 분명히 명시하고, 필요하다면 별도 기관을 설립하는 것을 제안했다.

제대로 된 실태 조사의 필요성

패널토론 순서에서는 김상조 조명디자이너, 최승현 노무법인[삶] 공인노무사, 이정우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과장, 임인자 변방연극제 예술감독,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이 참여했다. 다양한 토론 내용 중, 최승현 노무사는 공연예술인의 노동 실태가 더 세밀하게 조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 실태의 제일 기본인 근로시간 현황과 연중 휴가 일수, 공연예술인들의 임금 실태에 대한 총체적 조사, 통계(임금액, 임금 지금 주기, 기본급, 법정 수당, 성과급에 대한 내용, 임금 체불의 경험 등)의 구체성, 근로계약서 및 표준계약서 사용실태 조사를 통해 ‘계약서를 안 쓰면 무조건 불공정한 것이라는 인식’ 확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구체적 항목으로 어떤 직능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할지 짚어야 한다고 지적하며 공연예술인 노동 실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임금 체불’에 있으므로 논의의 프레임을 여기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석자들 모두는 이런 논의를 국회에서 한다는 것 자체가 진전이라는 부분에 대해 동의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 노동 실태 조사와 시급한 문제들의 우선순위 설정, 법 제도 개선 제안 항목을 면밀하게 구체화하는데 힘을 쏟고 공연예술인 모두가 용기 있는 자세로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지점을 공유하며 토론회는 마무리됐다.

사진제공_예술인소셜유니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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