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4일 공연계 숙원 사업이었던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은 공연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공연 산업의 중장기적 발전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출범했다. 2016년까지 국내 모든 공연장, 예매대행사, 기획·제작사의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 [Weekly@예술경영]은 지금 공연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를 공유하고,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앞날을 전망하고자 한다./특집 문화체육관광부 공연예술 정책 토론회/이슈 공연예술통합전산망 구축 배경과 향후 과제/칼럼 공연예술통합전산망 가동을 바라보며 ①, 공연예술통합전산망 가동을 바라보며 ②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현재

지난 7월 24일 오픈한 공연예술통합전산망 홈페이지 모습 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홈페이지 메인 모습

▲ 8월 13일 현재 공연예술통합전산망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홈페이지 모습 (클릭 시 확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는 7월 24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이하 통합전산망)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통합전산망은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하 영화통전망)처럼 공연장에서 어떤 공연이 얼마나 팔렸는지 집계하는 시스템이다. 공연 정보, 입장권 판매 정보, 입장객의 인구통계학적 특성 정보가 시스템에 주기적으로 또는 실시간으로 입력되어 홈페이지에 공표된다.

사실 공연통전망의 연원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 문예진흥기금의 투명한 조성 ▲ 공연·영화 사업자의 탈세 방지 ▲ 기획·마케팅·투자 활성화를 위하여 문화관광부는 문예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과 ‘입장권 표준 전산망’ 사업을 시작했고, 특혜 논란 등 말도 많았지만 1998년 지구촌 문화정보(티켓링크)가 시범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그 후에도 배급사, 영화관, 영화인 등 이해관계자 사이의 논란과 티켓링크의 독점에 대한 반발로 사업 자체가 표류하다가, 2001년 영화진흥위원회가 본 사업을 인수하여 영화통전망으로 특화한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면서 현재와 같이 공신력이 있는 영화 데이터베이스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일견 통합전산망의 상황은 영화통전망 초기 모습과 비슷하다. 이 사업의 축을 이루고 있는 공연장, 티켓판매대행사, 공연 기획사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6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독점 판매대행사인 인터파크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참여도 저조하고 집계 자체가 부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내놓은 문체부의 활성화 대책도 그때와 비슷하다. 문체부는 참여 기관에 대해 인센티브 부여라는 당근과 통합전산망 가입 의무화라는 채찍을 공연계에 내놓았다. 그렇다면 등록 공연장 826개(2012년 기준) 중 2%에 불과한 16개 공연장이 참여하는 통합전산망은 99%의 참여율을 자랑하는 영화통전망이 갔던 경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어려움: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공급자들

인터파크 홈페이지 메인 모습

▲ 8월 13일 현재 인터파크 홈페이지 모습 (클릭 시 확대)

이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라는 공연통전망의 핵심 성공 요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공연통전망은 본질적으로 ‘통계’이며, 통계는 ‘정확한 데이터의 입력’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그 데이터를 내놓을 기획사, 공연장, 판매대행사 등 이해관계자의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에서는 통합전산망의 성공이 꼭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기획사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사실, 공연통전망의 구축을 줄기차게 주장한 것은 뮤지컬계이다. 반드시 투자를 유치해야만 공연을 올릴 수 있는 뮤지컬 기획사는 입장객 부풀리기가 종종 발생하는 공연 시장에서 투명하고 신뢰할 만한 입장객 통계를 투자사에게 제시하여야 한다. 공연통전망이 활성화된다면 일부 흥행하는 뮤지컬과 대중 예술 ‘대기업 기획사’, 국고로 넉넉한 국립 예술 단체는 고품질의 공연을 개최하고 대규모 광고와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 많은 관객을 유치하여 계속해서 투자를 받겠지만, 90%가 넘는 영세한 기획사와 예술인은 그 혜택을 보지 못한다. 통계가 있어도 마케팅에 활용할 역량이 없다. 오히려 초라한 관객 수가 공개되면서 투자를 유치하기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공연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기업 공연장’은 문제없겠지만, 향유 인구의 수와 지리적 접근성이 열악한 지방 공연장은 투자를 받은 유명 공연을 유치하지 못해 관람객 수가 줄어들어 지방자치단체의 질타를 받으며 지원이 줄어드는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겪게 될 수 있다.

티켓 시장을 60% 이상 점유하는 인터파크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기획사의 영업 정보를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통합전산망에 넘기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일부 뮤지컬 기획사가 공연통전망이 영화관처럼 좌석을 연동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하기 희망하는 상황에서, 공연통전망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여 언제 인터파크를 위협할지 모르는 일이다.

희망: 공연예술통합전산망의 소비자들

이러한 틈바구니에서 공연통전망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또 하나의 핵심 성공 요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소비자의 편익이다.

공연예술 시장을 살펴보자. 영화 티켓 가격 상승률이 공연 티켓 가격 상승률과 비슷하거나 높은데도, 영화 관람객 수가 2005년 대비 세 배 넘게 증가한 데 반해, 공연예술 관람률은 서서히 증가했다. (그것도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인 뮤지컬 덕분이다.) 문제는 상대적 가격, 효용적 관점에서 가격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인터넷, 모바일 등 커뮤니케이션 채널의 다양화로 소비자들은 영화 정보와 관람 평을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영화 관람을 결정하기가 쉬워졌고 실패할 확률도 적어진 것이다. 하지만 공연, 특히 순수 예술 공연은 그렇지 않다.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이 공연이 내가, 내 가족이 볼만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공연 시장으로 신규 고객이 유입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결과, 공연 티켓 시장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일반 판매가 잘 안 되니 기업 후원에 몰린다. 기업은 VIP를 초청하기 위해, 기획사는 후원금을 많이 받기 위해 티켓 단가를 올린다. 이 결과 일반 판매는 더 저조하게 되어 티켓을 소셜커머스에 파격 할인가로 내놓거나 초대권을 뿌린다. 공연장은 텅텅 빈다. 정가에 티켓을 구매한 고객은 허탈해하고 불신하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소비자가 자신에게 맞는 공연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관람객이 공연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대중 예술 공연, 인기 공연부터 관람객이 늘겠지만, 차차 마니아층이 늘면서 여타의 장르까지 관람객이 확대될 것이다. 투자 활성화가 목적이 되면 예술 생태계 특정 종(種)의 편중을 초래하지만 관람객 수요 확대에 초점을 맞추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공연통전망은 공연 정보의 확산에 집중하여야 한다. 오픈API 제작·배포 활성화, 포털과의 공연 정보 연계, 좌석 공유에 기반을 둔 오픈소스 티켓 판매시스템 제공 등, 관람객이 손쉽게 공연 정보를 얻어 합리적인 가격에 원하는 사이트에서 티켓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보다 예술 생태계를…

이러한 의미에서 데이터의 수집에 중심을 두는 근래의 공연통전망 정책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실효성 없고 혜택이 제한적인 ‘인센티브 부여’나 오히려 기획사에게 부담을 주는 ‘등록의무 법제화’는 공연통전망의 지속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예술 생태계를 교란할 뿐이다. 소비자의 편익이 설계되지 않은 시스템이 성공한 사례는 없다. 이 시스템을 이용할 ‘고객’ (기획사, 공연장, 관람객, 투자자)의 입장에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공연통전망 데이터 수집이나 사이트 정식 오픈보다 더 중요하다.

공연통전망이 성공하는 방법을 논의하기보다, 예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공연통전망이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공연통전망은 도구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 시스템을 통해 공연법 제1조에 명시된 것처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하고 건전한 공연 활동을 진흥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논의해야 할 때이다.

필자사진_박거일 필자소개
박거일은 예술의전당 IT기획 담당자. 대학에서 서양 역사를 전공하였다. 아날로그적인 인간 행위를 디지털적인 명령어로 표현하는 데에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이 가장 적절하기에 역사학은 IT 기획에 도움이 되었다. 2009년 예술의전당 매표시스템 도입을 기획한 후부터 국공립 예술기관에서 IT가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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