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PAMS Choice)에 10개의 작품들이 선정됐다. 선정 작들을 통해 한국의 예술가들이 ‘현재 진행형’으로 밀고 있는 생각과 감각을 읽을 수 있고, 한데 모인 작품들이 일구는 맥락을 통해 한국 공연계에 흐르는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팸스초이스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전통예술의 다양한 변이체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라 생각된다. 눈여겨볼 현상 중 하나로 음악 부분에 속할법한 이희문의 오더메이드레퍼토리 ‘雜[잡]’이 다원/기타 부문으로,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햄릿프로젝트’는 연극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음악의 입구가 다원예술의 출구와 닿아있는 미로처럼, 혹은 전통예술의 입이 연극의 꼬리를 무는 우로보로스 같은 매력의 작품들이다.

그 외의 작품들도 찬찬히 살펴보면 기법, 사회성, 감각 등이 얽혀 있는 미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바 ‘미로주의’라고 해야 할까? 그 미로(=작품)를 지나갈 당신을 위해 전체적인 시점으로 조망해본 조망도를 이 글에 담아본다.

연극: 일상성·전통 소재

연극 부문은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알리바이 연대기’, 극단 놀땅의 ‘본다’ 그리고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햄릿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알리바이 연대기’와 ‘본다’는 "연극은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라는 재현론보다는 "연극은 현실을 먹는 위장이다"라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논지로 현실의 여러 영역을 씹어 먹고 있는 작품이다. 두 작품을 아우르는 코드는 일상성, 그리고 그에 대한 이용과 응용이다. ‘알리바이 연대기’는 광복과 한국전쟁, 5·16이라는 역사적 시공간에서 주동자가 아닌 관찰자로 살았던 아비의 인생을 추적하고 83학번과 92학번의 또 다른 인물을 통해 1980~1990년대 학생운동의 단면을 담는다. 즉 개인의 일상을 통해 역사적 무의식으로서의 한국의 근현대사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본다’ 또한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시각이라는 감각을 의식의 장에 올려놓고 거기서 나온 에피소드를 병렬한다. 따라서 두 작품 모두 현실과 일상을 대상화하여 보지 못했던 것(무의식)을 발견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결론은 연극이 일상에 들이대는 현미경과 그 무의식에 꽂는 탐침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유의 도구로서의 연극의 역할을 음미해보면 좋겠다.

알리바이 연대기 본다

▲ 팸스초이스 연극부분 선정작 드림플레이 테제21 <알리바이 연대기>와 극단 놀땅의 <본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 팸스초이스 연극부분 선정작 국악뮤지컬집단 타루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한편 팸스초이스는 연극 부문에 전통예술의 색이 짙은 작품을 선정해오고 있다. 일례로 2012년, 굿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극단 여행자의 ‘햄릿’과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판소리로 재해석한 판소리만들기 자의 ‘억척가’를 선보였다. 이런 분위기에 이어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햄릿프로젝트’가 음악 부문이 아닌 연극 부문에 속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물론 올해가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라는 셰익스피어 특수를 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라는 보편적 물결을 타고 한국 공연 양식으로서의 판소리가 연극의 새로운 기법으로 각국에 소개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내심 가져볼 필요가 있다. 사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발(發) 셰익스피어는 끊임없이 문화적 차이를 생산-재생산했다. 식민자 문화를 모방하고자 하는 문화적 피식민자는 그 차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이 성사되지 않을 때는 콤플렉스와 사대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자세로부터 벗어나는 움직임도 많아졌다. 예를 들어 줄거리를 재구성하여 셰익스피어라는 최소한의 ‘브랜드’와 ‘서사’만 남긴 채 노래와 춤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사례가 한 예일 것이다.

타루가 갖는 의미는 이런 자세에서 더 나아가 셰익스피어를 자국(한국)의 전통문화와 함께 작동시켜 한국의 셰익스피어, 판소리로서의 ‘햄릿전(傳)’을 생산했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셰익스피어 희곡을 잘 발라내고 그에 춤과 음악을 덧붙이던 과거의 작품에서, 이제는 더 나아가 한국적 양식과 연동시켰다는 점에서 타루의 행보와 작품이 갖는 시도를 꼼꼼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무용: 소통·대중 지향성

무용계에는 2013년부터 ‘댄싱9’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특히 예전의 현대무용이란 난해한 예술, 아카데미 내에서만 보호받고, 대중적 소비를 망각한 채 제도적 보호 아래에서 한정적으로 유통되던 산물이었다. 하지만 ‘댄싱9’ 열풍 이후 나이를 불문하고 ‘댄싱9’의 재미를 공유한 ‘댄싱9’ 세대가 생겼고 대중의 뜨거워진 관심으로 인해 (현대)무용종사자들의 인식도 크게 변했다. 순수예술(로서의 현대무용)을 대중화시킬 것인가, 대중을 순수예술로 데려올 것인가에 관한 조용한 논쟁도 일어났다. 결론은 현대무용의 급상승.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이런 상황에 비추어볼 때 올해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인간의 리듬’, 시나브로 가슴에의 ‘휴식’, 그라운드제로 프로젝트의 ‘아가페’ 모두 현대무용이라는 점은 당연지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세 작품은 앞서 말한 대중적 감수성은 물론 익명적 대중과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작품이다. 심오한 사상과 관념의 무게보다는 이제 눈이 한결 높아진 ‘현대무용 대중’을 위한 유희성과 감각적 춤언어를 탑재했다. 아마도 ‘댄싱9’이 밀고 온 습격과 충격은 올해 팸스초이스를 선정한 심사위원이나 심사 대상자에게 무의식적으로 작동했을 터이고, 세 작품을 통해 대중과 현대무용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안무가들의 의지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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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팸스초이스 무용부분 선정작 시나브로 가슴에 <휴식>,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인간의 리듬>, 그라운드제로 프로젝트의 <아가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인간의 리듬’은 쿠바와 브라질, 클래식과 팝 음악을 배경으로 남성무용수 5명이 에너지와 리듬을 표현한다. 몸과 춤의 관계를 정직하게 밀고 나간다. 시나브로 가슴에의 ‘휴식’은 운동하는 공의 이미지와 지속적인 운동으로 인한 에너지의 소진과 피로를 통해 휴식의 절실함과 그 후에 따르는 공허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 중 그라운드제로프로젝트의 ‘아가페’는 현대무용의 대중화 속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기준을 제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음악과 다원/기타: 단일 장르와 거문고의 부상, ‘한국적 다원예술’에 대한 로망

전통 소재를 다루는 음악가들의 응용력은 날이 갈수록 풍부해지고 있다. 그에 대한 실험도 과감하다. 속도와 폭 또한 빨라지고 넓어졌다. 그리고 월드뮤직 시장으로의 합류와 흡수도 빠른 편이다. 팸스초이스의 음악 부문은 이러한 움직임에 오래전부터 ‘지원 사격’을 하고 있다. 올해는 음악 부문에 ‘블랙스트링’과 한승석·정재일의 ‘바리 abandoned’, 박우재의 ‘거문고 더하기’가 선정되었다.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 팸스초이스 음악부분 선정작 한승석·정재일의 <바리 abandoned>

최근 음악극 공해라 할 정도로 정체불명의 양식과 레퍼토리가 많아졌다. 융합과 컬래버레이션을 명목으로 내세웠지만 이 시도가 가속화되자 오히려 깔끔한 플레인 콘서트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작용했다. 이런 때에 등장한 것이 한승석과 정재일 ‘바리 abandoned’이다. 어설픈 연기, 뒤엉킨 동선으로 점철된 초보 단계의 음악극보다 깔끔하게 음악으로 승부를 내는 데에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기악앙상블 블랙스트링과 박우재의 중심 악기는 거문고다. 전통음악에서 상대적으로 외면받는 거문고가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거문고를 이용한 창작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창작의 물꼬를 튼 정대석이 있고, 서양의 현대음악과 어울림을 도모했던 김진희, 현의 수를 늘려 화현금(和絃琴)을 만든 이재화, 음악을 통해 인문적 기획과 접속했던 허윤정이 있고 그 후로는 박우재와 거문고팩토리를 꼽을 수 있다. 블랙스트링의 리더는 앞서 거론한 거문고 주자 허윤정. 재즈와의 컬래버레이션보다는 거문고가 다른 장르의 음악을 어떻게 이끌고 그 매력을 발산하는지에 초점을 두었으면 한다. 박우재의 ‘거문고 더하기’도 오직 거문고 하나로 정공법을 밀어붙이는 젊은 예술가의 땀자국을 읽었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다양한 장르와 악기를 동원하여 거품을 일으켰던 월드뮤직과 달리 올해는 거품을 제거한 담백한 음악가를 선정한 듯하다.

아시아 공연예술 현재와 미래 진단, 포커스세션&#13;&#10;

▲ 팸스초이스 음악부분 선정작 공연예술컨설팅그룹 ‘비온뒤’의 <박우재 거문고 더하기>와 블랙스트링의 <블랙스트링>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

▲ 팸스초이스 다원부분 선정작 이희문컴퍼니의 <오더메이드레퍼토리 ‘雜[잡]’>

다음은 다원/기타. 현대무용과 아방가르드 연극에 태생을 둔 다원 부문이 몇 년간 전통을 소재로 한 작품을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2012년 더 광대의 거리광대극 ‘홀림낚시’를, 2013년 정가를 전공한 가객 박민희의 ‘가곡실격: 나흘 밤’을 그리고 올해는 이희문이 ‘12잡가(雜歌)’를 바탕으로 한 오더 메이드 레퍼토리 ‘雜[잡]’을 선정했다.

잡가 같은 전통 성악을 소재로 한 작품이 지속적으로 선정된 이유에는 소리가 다른 장르와 만나기 편한 장르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소리의 발성과 연출을 직접적으로 운용하는 몸이 춤을 추면 무용과 교섭이 용이하고, 연기를 하면 연극과, 뷰파인더에 들어가면 영상과, 악기들과 만나게 또 하나의 ‘악기’가 된다. 따라서 레퍼토리로서의 ‘雜[잡]’ 외에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며 잡가의 중추선을 잡아가는 이희문이라는 소리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팸스초이스에서 많은 에너지를 실어야 할 부문은 다원이라 생각한다. 다원의 주요 방법론인 타 장르의 과감한 인용과 접속, 컬래버레이션은 전통예술 중에 각광받지 못했던 장르를 곧추세우고 이목을 끄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희문의 ‘雜[잡]’은 판소리와 정가만큼 인기는 물론 전통 소스로 잘 활용되지 못하는 잡가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세운 작품이다. 이른바 다양한 국적의 예술이 한데 모여 그 국적을 지우는 다원의 방법론이 오히려 ‘한국적 다원’이라는 새로운 국적의 예술을 낳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필자사진_송현민 필자소개
송현민은 음악평론가로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 하는 사람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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