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마켓의 팸스초이스에 선정되어 2013년 소설가 김태용, 텍스트 기반의 작업을 진행하는 로위에 그리고 필자로 구성된 프로젝트 '에이 타이피스트(A. Typist)'는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비엔나, 슬로베니아의 르블라냐 그리고 스위스의 취리히 투어를 다녀올 수 있었다. 애초에 초청의 주최가 되었던 것은 그라츠의 호에르게레데(HoergeREDE) 페스티벌로서 그해의 주제가 '텍스트와 음악'이었고 '권력(Power)'을 부주제로 진행되는 행사였다. 세 명의 서로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타자기라는 공통적 매체를 이용하여 텍스트와 소리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 이들이 주제와 많은 부분 부합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재독 철학자인 한병철씨와 함께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주최 측의 예산과 일정 등의 문제로 무산되고 에이 타이피스트의 단독 공연으로 진행이 되었다. 동시에 오스트리아에 온다는 소식을 받은 비엔나의 즉흥 연주자들이 비엔나 소재의 실험 음악 공간인 에코라움(Echoraum)과 슬로베니아의 르블랴냐에서 공연을 추진해 주었고 마찬가지로 소식을 들은 스위스의 작곡가 만프레드 베르더(Manfred Werder)가 스위스의 작은 금속 공장에서의 공연을 기획해 주어 르블라냐의 일정을 마치고 스위스로 이동하여 금속 공장에서의 공연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단기 일회 지원이 아닌 추후에도 일년에 일회의 투어 비용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기회가 확대된 측면이 있다. 이 글은 2013년 투어 내용을 바탕으로 씌어지지만 2014년에도 이태리에서의 투어가 진행되었고 2015년에는 노르웨이에서의 투어가 논의되고 있다. 사실 아트마켓이 진행되는 동안에 초청받은 많은 해외의 기획자들이 우리의 쇼케이스를 보고 초청을 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그다지 걱정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유는 이미 네트워크가 확보되어 있어서 갈 수 있다는 소식만 알리면 투어 스케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경을 기점으로 전자즉흥음악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 해 오면서 많은 국제적인 관계가 형성되었고 그 관계를 중심으로 국내의 열악한 활동을 보충하며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정확하게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떻게 관계가 형성되고 어떻게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해외 활동이 가능한가에 대한 기고를 두어 번 한 듯싶다. 지금 이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고 싶다. 이 주제를 또 반복하는 것은(그렇다고 똑같은 내용은 아니다) 네트워크라는 단어 자체가 가져오는 의미와 맥락의 불분명함 때문이고 '도대체 네트워크가 무엇인가?', '그 네트워크의 성질과 형식 그리고 기능은 어떻게 되는가?' 같은 실질적인 질문들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이미 2007~8년경부터 예술계의 주요 이슈로 거론되어 왔음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당시에 논의되던 네트워크와 현재의 네트워크에 대한 이해라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예를 들어 "아시아 문화 네트워크"라고 하면 대충이나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지만 그것이 명백하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럴싸한 미학적인 단어만 허공을 맴돈다. 미학적 담론도 필요하지만 그 담론이 작동하는 실재의 과정과 환경에 대한 이야기들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투어를 다니면서 흥미롭게 증폭되는 질문들 중 하나
네트워크. 즉 관계망이라는 것에 대한 기술적 이해는 이처럼 모두에게 어색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네트워크는 꼭 국제적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구조가 서로 다른 다양다종의 네트워크의 힘 작용에 의해서 작동한다. 그렇다면 네트워크는 모든 영역과 분야에 걸쳐서 서로 다른 기능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목적과 경우에 따라 작동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하나의 기계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네트워크 자체의 섬세한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가? 이것이 필자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의문이고 투어를 다니면서 흥미롭게 증폭되는 질문들 중 하나이다. 이들은 왜 우리를 초청하였고 왜 우리의 공연을 기획하는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공연을 추진하게 만들었는가? 이것을 일종의 비즈니스로서 수익성을 기대하는 것이라면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비즈니스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상호 이익에 관련된 이해관계가 정리하면 어쨌든 일은 성사된다. 거기에서 생성되는 네트워크라는 것과 필자가 말하는 네트워크는 역할과 기능이 다르다고 본다.
필자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는 작품을 통한 수익을 전혀 기대할 수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관계망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필자가 종종 듣게 되는 질문, "어떻게 하면 해외 초청을 받을 수 있나요?"에 대한 대답을 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모든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를 한정된 지면에서 할 수는 없고 그나마 ‘투어 스케줄을 생성하는 네트워크’에 대해서만이라도 간략하게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