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마켓(이하 PAMS)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 그 사이 한국의 공연예술은 PAMS라는 창구를 통해 다양한 해외 진출 기회들을 도모해 왔고, 세계 여러 나라들과 활발한 교류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방식은 섣부른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변했으며, 이는 사회문화적으로 대단히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전 지구적인 공연예술계의 정세 또한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맞춰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번 ‘라운드테이블1’은 그 현장의 목소리를 파악하고 향후 PAMS가 나아갈 길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거래가 아닌 교류와 협업의 장으로

올해 PAMS가 마련한 라운드테이블은 총 다섯 개로, 모두 동시대 공연예술의 변화 양상과 앞으로의 비전을 탐색해보는 것으로 기획의 초점을 맞췄다. 지난 10월 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층 로비에서 시작된 ‘라운드테이블1’은 “공연예술 유통 글로벌 플랫폼의 진화, 다음은?”이라는 주제로, 예술경영지원센터 정재왈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토론자로는 공연예술 국제 네트워크 ISPA 대표 데이비드 베일(David Bail)과 캐나다 공연예술마켓 CINARS 대표 알렝 파레(Alain Paré), 그리고 요코하마 공연예술회의 TPAMiY 감독 히로미 마루오카(Hiromi Maruoka)가 참석했으며, 이 밖에 싱가포르국제예술축제 SIFA(Singapore International Festival of Arts)의 예술감독 옹 켕 센(Ong Keng Sen)이 질의자로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 조직들은 모두 국제 공연예술 네트워크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PAMS보다 앞서 세계 시장을 개척해왔다. 또한 다년간에 걸쳐 PAMS에 참여해 그 발전 과정을 지켜봐온 증인들로서, 10주년을 맞이한 PAMS의 현재를 기꺼이 함께 진단하고 고민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동시대 공연예술 플랫폼이 전통적인 시장의 개념을 탈피해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화해가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과 미션을 명확히 함으로써 환경과 맥락에 따라 그 목표 설정이 다변화될 수 있다는 시사점을 던졌다. 토론자 상호 간의 공통 목표는 서로 유연하게 맞물렸으며, 그들 각자의 차별화 전략은 다르면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플랫폼의 진화, 변화를 읽어내고 대처하는 자세

ISPA(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Performing Art)는 멤버십 조직을 위한 기구로 거래를 위한 마켓이나 전통적인 공연예술 플랫폼과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그 활동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페스티벌, 공연예술 단체, 매니저 및 컨설턴트 등 총 24개국 450여 명 회원으로 구성된 이 기구는 1년에 두 번 총회를 개최해 변화하는 공연예술 생태계를 추적하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ISPA의 대표 데이비드 베일은 동시대 공연예술계의 가장 큰 변화로 교류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꼽았다. 최근, 기획자나 프리젠터는 물론, 예술가와 관객의 소통은 디지털 매체의 발달에 힘입어 가히 경계가 없다 할 정도로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기회들을 창출하고 있다. 더불어 문화와 예술이라는 개념이 천재적 예술가 개인의 창조물에서 공공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면서, 이제 공연예술은 지역 사회와 연계해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한편 CINARS(Commerce international des arts de la scene)는 1984년 캐나다의 국제 아트마켓으로 출발했지만, 최근에는 네트워크의 성격을 보다 강조한다. 그들은 교류와 교환, 협업을 매개하는 장을 조성해 자국의 공연예술가들이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고자 한다. CINARS의 창설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발전과 변화의 궤적을 함께해 온 알랭 파레는 전통적인 방식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창작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실제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은 현장 관계자들이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데 적지 않은 제동을 걸고 있다. 그러니 현재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뿐이다. 또한 그는 우리 모두가 기존의 관습에 얽매인 역할에서 벗어나 변화된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실천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TPAMiY는 1995년 ‘Tokyo Performing Arts Market’으로 출발해 지난 2011년 요코하마로 장소를 이전, 기존의 ‘마켓’이란 이름을 ‘미팅’으로 변경해 공식적으로는 ‘Performing Arts Meeting in Yokohama’를 그 명칭으로 내걸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정보 및 아이디어 교류를 주목적으로 전문가들을 위한 플랫폼을 지향한다. 명칭을 바꾸기까지는 예술가 및 프리젠터들과의 지속적인 대화가 주효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단지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아닌,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배경을 공유함으로써 설사 작품에 거부감을 느꼈더라도 그 모든 것들을 진지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자리였다. TPAMiY의 감독 히로미 마루오카는 그 누구도 무엇이 정답인지 얘기할 수 없으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대화해야 하고, 가능한 패러다임을 다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라운드테이블1에 참석한 ISPA 대표 데이빗 베일, TPAM 감독 히로미 마루오카와 CINARS 대표 알렝 파레

▲ 라운드테이블1에 참석한 ISPA 대표 데이빗 베일, TPAMiY 감독 히로미 마루오카와 CINARS 대표 알렝 파레

또 하나의 질문, 매개의 반경을 확장하기

객석의 질문에 답변중인 정재왈 대표와 데이빗 베일 대표 모습
객석의 질문에 답변중인 정재왈 대표와 데이빗 베일 대표 모습

▲ 객석의 질문에 답변중인 정재왈 대표와 데이빗 베일 대표 모습

세 명의 토론자가 모두 현장 관계자들을 매개하는 입장에서 토론을 이어나갔다면, 질의자 옹 켕 센은 축제 예술감독으로서 관객과의 소통과 아카이빙의 중요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공연예술이 순간과 시간에 접속된 장르이자, ‘핸드메이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어 ‘관객의 소유권’이라는 주제로 화두를 돌린 옹 켕 센은 공연예술의 장르적 특성이 정량적인 평가 기준만으로 검토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가 소개한 최근 싱가포르의 사례는 평가에 있어 정성적인 척도를 도입해 수치로서의 결과가 아닌, 관객들의 경험 그 자체를 가치로 환산하는 일을 시도하고 있었다. 관객을 위한 공연을 넘어,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연을 지향하고, 단순한 ‘효과’보다는 그것이 미치는 ‘영향’에 더 관심을 두는 새로운 풍경을 그려나간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가 창작자와 수용자를 매개하는 것이라면, 그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매개하는 방법으로서 아카이빙을 제안했다. 우리의 공연예술은 언제나 새로운 시대의 과제를 찾아 앞으로만 질주하고, 뒤를 돌아보거나 현재를 기록하는 일에는 좀처럼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물론 최근에는 비약적인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비교적 손쉽게 과거를 복원하고 또 현재를 보관하고 있지만, 이것의 한계는 자명하다. 이는 매개나 대화를 위한 아카이빙이라기보다 오히려 축적과 전시라는 가시적인 성과로서 기능한다.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치란 공연예술만이 제공할 수 있는 ‘핸드메이드’ 경험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레디메이드’ 자료로 압축된다. 그의 문제 제기는 과거의 사례들을 통해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고, 이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는 언설로 마무리되었다.

이번 라운드테이블의 의의는 이 시대 공연예술이 당면한 과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제언으로 갈음된다. 보다 다양한 청중들의 질문과 토론자 및 질의자간 활성화된 토론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비록 아쉬움으로 남지만, 적어도 우리는 이것을 기점으로 현실을 보다 다양한 층위에서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공연예술 글로벌 유통 플랫폼이란 태생적으로 현장의 요구에 따라 진화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 그 다양한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답이 없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단서일지 모른다. 이제 10주년을 맞은 PAMS의 다음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필자사진_김슬기 필자소개
김슬기는 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퍼포먼스를 포함해 공연예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을 고민한다. 월간 <한국연극> 기자로 근무했고, 현재는 국립극단 학술출판연구원으로 일하며 연극과 관련된 다양한 출판물과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대학원에서 연극 이론을 공부하고 있으며,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와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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