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생활 밀착형 문화 시설 확충을 통해 지역 주민 문화 여가 활동 증진, 건강하고 활기찬 지역 문화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생활문화센터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본 사업은 기능을 다하거나 지역 애물단지로 여겨지던 목욕탕, 폐교, 주민센터 등 유휴 시설의 시·공간적 의미를 살려 친근한 생활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사업이다. 지난 6월, 12개 광역 지자체 31개 시설을 선정하였으며, 입지, 규모, 기능에 따라 거점형과 생활권형으로 구분하여 리모델링과 운영 활성화 방안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Weekly@예술경영] 280호는 ‘생활문화센터 조성 사업’ 특집으로, 본 사업의 핵심 현안과 진행상황 및 개선점을 진단하고, 국내외 이상적 사례를 소개하며, 본 사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문화진흥법’의 쟁점을 다룬다. /특집좌담 생활문화센터 조성사업 추진 과정과 기대 효과(이선철, 권순석, 김종대, 윤현옥, 추미경)/이.상.공간 전주시민놀이터/해외동향 일본 가나자와현 시민예술촌/정책제도Q&A 지역문화진흥법 쟁점과 개선점

가나자와(金沢)는 일본의 이시카와(石川) 현에 있는 지역 이름으로, 일본 본토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으며 동해를 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작은 교토’라 불리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兼六園)과 같은 유명한 곳도 있지만, 오래된 찻집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나 전통 공예품들을 볼 수 있는 가게들처럼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장소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전통의 도시’, ‘공예의 도시’ 이외에도 이곳을 수식하는 이름은 많이 있다. 특히 이곳이 ‘문학의 도시’, ‘예술의 도시’로 불리게 된 이유는, 잘 보존된 전통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계속될 창조의 가능성을 믿고 실천한 지역 스스로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의 도시, 가나자와

예를 들어, 가나자와에는 이곳 출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이즈미 교카(泉鏡花)와 소설가 도쿠다 슈세이(德田秋声), 무로 사이세이(室生犀星) 각각의 단독 기념관이 있다. 세 명 모두 일본근대문학을 대표할 만한 작가로, 이들의 자료는 각자의 기념관뿐 아니라 이시카와 시코(四高) 기념 문화교류관 안의 이시카와 근대문학관에도 소장되어 있다. 비록 이곳 명칭이 ‘근대문학관’으로는 되어있지만, 이곳에서 현존 작가들도 소개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근현대 문학 연구자들에게 도서관과 같은 역할을 함과 동시에, 앞으로 이곳에 이름을 올릴 작가들에게 꿈을 주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명소가 된 ‘21세기 미술관’도 가나자와에 있다. ‘참여 및 교류형’을 지향하는 이 미술관에는 가나자와 시 인구의 세 배가 넘는 관람객이 몰리고 있으며, 특히 그중에서 외국인과 젊은 층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처 갤러리 및 뮤지엄 숍까지 번성하게 되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에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미술관 역시, 유망한 작가들을 발굴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전통’과 ‘근대’를 상징하던 작은 지역 도시가 ‘미래’를 향해 앞장서는 문화의 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그런 가나자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소가 있다. 시민들에게 한층 더 가까운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이 바로 그것이다. 이곳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드라마 공방 모습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뮤직 공방 모습

▲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드라마 공방과 뮤직 공방 모습

이곳은 원래 ‘야마토방직(大和紡績)’이라는 민간 기업이 세운 방직공장이 있던 곳이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 이전부터 있던 회사가 1993년에 문을 닫고, 그 토지를 가나자와 시가 사들여 1996년부터 토지와 건물을 어떻게 재사용할 것인지 연구하는 조사팀을 발족시켰다. 재사용의 목적은 ‘지역 활성화’ 및 ‘지역 커뮤니티의 재생’이었다. 시에서는 현장을 시찰한 후, 한때 여공들의 일터로서 많은 기억들을 간직한 방직공장 건물을 그대로 남기기로 결정했고, 연극 관계자 및 각 분야의 조언가들을 불러 창고를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드웨어적인 모델로 나가사키(長崎) 현에 있는 미군 기지를, 그리고 소프트웨어적인 모델로는 가나자와 시의 오노무라(大野町)를 참고로 하였다. 지진을 대비하여 건축적인 면도 보완하고, 드라마 공방과 뮤직 공방에는 방음 처리도 했다. 총 여섯 개의 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들을 하나로 잇는 작업도 필요했다. 건물 안에서 가장 많은 추억이 깃든 대들보로 사람들이 다가갈 수 있도록, 계단식 객석을 만들어 천장에 가까워지게 하는 작업도 했다. 약 97,000 평방미터에 달하는 부지를 새롭게 탈바꿈하는 데에 든 사업 비용은 약 18억 엔으로, 용지비는 약 120억 엔, 광장 정비비는 약 20억 엔이 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은, 2009년에 일본 디자인 진흥회가 주관하는 굿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역사 그대로의 빨간 벽돌 건물들 곳곳을 살펴보면, 총 네 개의 공방과 오픈 스페이스, ‘마을 산의 집’이 모두 나란히 한 줄로 서 있고, 그 앞으로 ‘야마토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광장은 1997년부터 정비를 시작해, 잔디 광장, 휴식 광장, 원형 광장이 마련되어 있다. 동물을 데리고 들어갈 수는 없지만, 시민들이 쉬거나 운동을 하거나 레크레이션 장소로 이용할 수 있다. 그 한편에는 ‘퍼포밍 스퀘어’가 있는데, 대연습실과 소연습실 두 개가 있어, 연극, 음악, 무용 등 개인부터 대규모 그룹 공연 팀까지 연습실로 이용할 수 있도록 그랜드 피아노, 발레 바, 각종 무대 및 음향 장비 등이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예술촌과 함께 ‘가나자와 직인(職人) 대학교’라는 교육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예로부터 가나자와가 자랑하던 전통 공예 9개의 전문 본과를 만들어, 금속공예, 정원 조성, 기와, 다다미, 표구, 창호 공예, 미장이, 목공, 석공예를 가르치는 곳이다. 3년간 연수 기간을 마치면 가나자와 시장으로부터 인증서를 받을 수 있고, 이 자격증을 가지고 복원전공 과정으로 진학하면 3년간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 자격도 부여받을 수 있다. 기존의 장인과 수제자 관계로 명맥을 이어가던 전통 예술을 제도화한 방식으로, 전공자뿐 아니라 어린이 과정도 마련되어 있어, 마을의 장인들이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을 이용하는 방법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멀티 공방 모습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아트 공방 모습


▲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멀티 공방과 아트 공방 모습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에서 무엇보다도 눈여겨보고 싶은 곳은 공방들이다. 공방은 각각의 용도에 맞게 멀티 공방, 드라마 공방, 뮤직 공방, 아트 공방으로 나뉘는데, 먼저 멀티 공방에서는 연극과 음악 등의 연습이 이루어지거나 미술품도 전시할 수 있다. 드라마 공방은 연극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분장실도 두 개를 갖추고 있다. 2층에는 객석을 놓은 공간도 마련되어 있지만,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없다. 공연의 성격에 맞게 자유롭게 쓸 수 있어, 2층을 무대로 쓸 수도 있다. 뮤직 공방에는, 발표회장으로 이용이 가능한 240평방미터의 중앙 스튜디오와 20~30평방미터 되는 다섯 개의 작은 스튜디오가 있다. 또 아트 공방은 미술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곳으로, 장르나 작가의 연령을 묻지 않고 아마추어도 얼마든지 전시를 할 수 있다. 오픈 스페이스는 말 그대로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며, 옛 농가를 변형시킨 ‘마을 산의 집’은 일본 전통 가옥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공간으로 예술 창작 활동과 전시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각 공방에는 디렉터가 두 명씩 배치되어 있고, 모든 운영은 시민에 의해 이루어진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공간이 연중무휴 24시간 개방된다는 것이다. 이곳을 이용하고 싶으면, 목적에 맞게 가신청서를 작성한 뒤, 심사를 받게 된다. 이 심사에서 사용 여부를 알 수 있는데, 이후 다시 정식 신청서를 제출하고 소정의 이용료를 납부하면 사용 인증서가 발부된다. 필요한 경우에는 직원과 함께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사용 인증서가 있으면 경비실에서 사용 인원수를 파악하고 곧바로 이용할 수 있다. 이때, 소정의 이용료는 보통 공방들의 경우 6시간당 1,080엔이며, 드라마 공방의 경우 분장실 사용 시 540엔씩 추가되지만, 장기 이용 시에는 할인을 받을 수 있다.

퍼포밍 스퀘어, 야마토 광장을 이용하고 싶을 때에도 똑같은 신청 과정을 거친다. 단, 공연을 하기 원할 때에는 신청서와 함께 기획서를 제출하면 되는데, 이와 관련된 모든 양식은 가나자와 시민예술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는 각 공간과 시설, 보유 장비에 대한 정보와 신청 방법 이외에도 예약 상황이 실시간으로 공개되어 있어, 언제 어느 곳을 예약할 수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액션 플랜이라는 페이지를 별도로 만들어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에서 행해지는 활동의 홍보 및 기록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실제로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2014년 10월에 행해지고 있는 행사만 해도 다음과 같다. 26일, 퍼포밍 스퀘어에서 제42회 교카 문학상이 개최되어 무료로 관람객들을 맞이했고, 뮤직 공방에서는 7월부터 10월까지 ‘뮤직공방 자주(自主) 트레이닝 음향강좌 2014’라는 프로그램으로 5000엔의 수강료를 받고 음향에 관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24일부터 26일까지 드라마 공방에서는 제3회 기획공연 <틈새(狭間)>가 공연된다. 입장료는 1500엔~2000엔으로 도쿄의 일반 소극장 공연보다 1000엔 정도가 저렴하다. 이 밖에도 공연과 강연, 전시 등이 쉼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조용한 소도시에서 어떻게 이런 활동들이 가능할까? 물론 이런 가나자와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가나자와 시민들이다. 그러나 ‘시민예술촌’이라는 공간이 없었더라면 누구도 선뜻 이런 작업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은 버블경제 시절, 전국에 문화시설을 짓는 것이 유행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그리고 마을에 덩그러니 들어선 커다란 극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 사례들과 견주어도,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은 원래 있던 부지를 되살려 그 안에 미래를 덧칠해가고 있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가나자와는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을 탄생시킬까? 우리나라라면 어느 곳에서 어떤 일 들이 가능할지, 기대되고 또 응원하고 싶다.

사진출처_가나자와 시민예술촌 홈페이지

필자사진_천재현 필자소개
이홍이는 일본의 오차노미즈 여자대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전공은 비교사회문화학이다. 현재 일본의 현대희곡을 연구하고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용의자X의 헌신>, <배수의 고도>, <난폭과 대기>, <사요나라> 등이 있고, 그 외 통역과 드라마터그로 <가모메>, <세 사람 있어!> 등에 참여했다.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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