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와 생활 밀착형 문화 시설 확충을 통해 지역 주민 문화 여가 활동 증진, 건강하고 활기찬 지역 문화 공동체 회복을 위한 ‘생활문화센터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본 사업은 기능을 다하거나 지역 애물단지로 여겨지던 목욕탕, 폐교, 주민센터 등 유휴 시설의 시·공간적 의미를 살려 친근한 생활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사업이다. 지난 6월, 12개 광역 지자체 31개 시설을 선정하였으며, 입지, 규모, 기능에 따라 거점형과 생활권형으로 구분하여 리모델링과 운영 활성화 방안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Weekly@예술경영] 280호는 ‘생활문화센터 조성 사업’ 특집으로, 본 사업의 핵심 현안과 진행상황 및 개선점을 진단하고, 국내외 이상적 사례를 소개하며, 본 사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지역문화진흥법’의 쟁점을 다룬다. /특집좌담 생활문화센터 조성사업 추진 과정과 기대 효과(이선철, 권순석, 김종대, 윤현옥, 추미경)/이.상.공간 전주시민놀이터/해외동향 일본 가나자와현 시민예술촌/정책제도Q&A 지역문화진흥법 쟁점과 개선점

모든 사람에게 하루는 24시간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누구나 이를 원하는 대로 활용하며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은행이나 병원, 관공서를 이용하려면 대체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움직여야 하지 않던가. 물론 은행은 인터넷뱅킹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 병원은 응급실, 관공서는 정부민원포털 민원24를 이용하면 다른 시간에도 제한적으로나마 업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한밤중에 드럼을 치고 싶다면? 스포츠댄스를 즐기고 싶다면? 집 안에 방음 시설을 갖추지 않는 한 아침이 밝을 때까지, 많은 사람이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꾹 참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주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연중무휴, 24시간 문을 여는 전주시민놀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밤이든 낮이든 시민이 원한다면 언제든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현무2길 28(경원동3가 13-3)에 자리한 전주시민놀이터는 말 그대로 전주 시민의, 전주 시민에 의한, 전주 시민을 위한 놀이터다. 자칭 ‘생활예술의 거점 공간’인 이곳은 낮이든 밤이든 시민이 원할 때, 음악이든 미술이든 시민이 원하는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문예술거리추진단(이하 추진단)에서 2013년 3월 30일 문을 열었다. 그리고 개관 1년 만에 141명의 개인, 117개의 단체가 회원으로 가입해 활발한 이용률을 보이면서 21개 자치단체와 문화시설로부터 벤치마킹의 대상이 됐다. 이에 지난 5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추진 중인 ‘생활문화센터 조성 사업’의 컨설팅 워크숍에서 사례 발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전주시민놀이터는 창작지원센터와 함께 추진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동문(東門) 일대를 ‘동문예술거리’로 조성하는 데 거점이 되는 공간이다. 전라북도 ‘문화예술의 거리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전주시민놀이터를 만든 추진단은 전주 시민이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나아가 문화예술 생태계 구축을 주도할 수 있도록 각종 연습과 모임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전주시민놀이터에서 시민들이 아마추어 단계를 넘어서 프로페셔널 혹은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갖출 경우 축제를 통해 동문예술거리에 나와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야기놀이터, 소리놀이터, 창작놀이터

전주시민놀이터는 전수조사를 통해 전주시 내 3,000여 개의 문화예술 동아리를 파악하고 총 면적 995㎡, 지상 3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본래 학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세분화하는 형태로 공간을 구성했다. 먼저, ‘이야기놀이터’라 불리는 1층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시민들이 자유롭게 마주치면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 ‘떠듬공간’을 갖고 있다. 전주시민놀이터에서 가장 큰 공간이기에 다양한 발표회와 행사가 열린다. 또한 ‘배려공간’이라는 이름의 장애인을 위한 연습실도 갖추고 있는데, 이 공간은 가끔 갤러리로 변신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운영사무실과 회의실도 1층에 마련되어 있다.

23층 모듬공간에서 춤 연습중인 모습

▲ 3층 모듬공간에서 춤 연습중인 모습

‘소리놀이터’라 부르는 2층에는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할 수 있는 음악 연습실이 7개나 된다. 전수조사에서 전주시 내 3,000여 개의 동아리 중 60% 이상이 음악에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만약 피아노나 드럼처럼 가지고 다니기 힘든 대형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면, 특정 연습실에 악기를 가져다 놓고 장기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단, 자신이 연습하지 않는 시간에는 다른 시민이 그 악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해야 한다.

끝으로 ‘창작놀이터’라 불리는 3층에는 마루가 깔린 다목적 연습장 ‘모듬공간’과 크고 작은 세미나실 4개가 자리하고 있다. 모듬공간에서는 주로 춤 연습이나 모임이 이루어지며, 세미나실은 사진이나 미술 작가나 동아리에게 인기다.

 1층 떠듬공간(왼쪽)과 배려공간(오른쪽) 모습

▲ 1층 배려공간(왼쪽)과 떠듬공간(오른쪽) 모습

좋은 복지를 원한다면 많은 세금을 내야 하듯이

추진단 회의 모습

▲ 추진단 회의 모습

전주시민놀이터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1월 1일과 설, 추석 당일을 제외한) 연중무휴, 24시간 개방이라는 데 있다. 이에 2014년 10월 현재 월 평균 이용객은 1,800명을 상회한다. 그런데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추진단은 정태현 단장을 포함해 총 4명뿐이다. 게다가 이들은 전주시민놀이터뿐만 아니라 창작지원센터도 운영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거리 활성화를 위한 축제도 개최해야 하며, 시민 네트워크를 위한 각종 사업도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추진단만으로 전주시민놀이터를 운영하는 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에 전주시민놀이터는 참여형 회원제와 시민지원단(시민디렉터)을 운영하고, 24시간 자율 이용 원칙을 가지고 있다. 좋은 복지를 원한다면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것처럼 다양한 혜택에 대한 대가로 시민들이 공간의 주인이 되어 운영에 참여하도록 한다. 상근 직원이 없는 밤 시간대에는 대관 신청자가 직접 문을 열고 닫으며 소등까지 책임진다. 물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전주시민놀이터에는 복도마다 CCTV를 설치되어 있으며, 스마트폰을 통해 직원들이 실시간으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뒀다. 만약 이용자가 문단속이나 소등을 철저히 하지 않았거나 시설물 파손이 있을 경우 삼진아웃제를 통해 향후 이용을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전주시민놀이터 내 15개 공간을 이용하려면 연회비 5,000~10,000원, 3시간 기준 대관료 4,000원~30,000원만 내면 된다. 자칫하면 연습실 독점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추진단은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예약을 1주일에 2일로 제한하고, 예약은 한 달 전에 받는 등 운영 매뉴얼을 세분화해 가고 있다.

욕망을 즐기는 것 역시 생활예술

생활예술의 거점 공간, 전주시민놀이터에서 공간 운영 및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김시종 팀장은 “악기나 도구를 이용해 예술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다든지 기타를 치고 싶다든지 무언가 하고 싶은 욕망을 즐기는 것 역시 생활예술”이라 말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시스템이 있어도 공간을 운영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에 따라 자칫하면 모래성을 쌓는 일이 생긴다”고 덧붙인다. 운영자가 곧 이용자인 전주시민놀이터에서는 모두가 주인 의식을 갖고 이를 공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는 전주시민놀이터가 악기를 가지고 연주만 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생각을 나누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다. 1층에 ‘떠듬공간’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연중무휴, 24시간 개방이 가능한 비결도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사진제공_전주시민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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