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3대 여름 축제 : 아비뇽, 에든버러, 그리고 그렉

바르셀로나 그렉 페스티벌(Festival Grec de Barcelona)의 미니그렉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의 펀치 & 주디(Punch & Judy a l’Afganistan)>를 공동으로 기획한 바르셀로나의 라펑추얼(La Puntual) 극장의 극장장이자 인형극 공연자인 유지니오 나바로(Eugenio Navarro)의 말이다. 자부심 가득한 그의 말이 유럽 경제 위기로 예산이 삭감되기 이전이라면 과장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렉 페스티벌은 바르셀로나 거주자보다 관광객이 더 많아지는 7, 8월 여름철에 걸쳐 개최되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몬주익(Monjuic) 산 중턱에 조성된 2,000석 규모의 야외 공연장 그렉시어터(Grec Theater)를 비롯해 바르셀로나 전역에서 공연이 이루어진다.

그렉페스티벌 홍보물 모습

▲ 그렉페스티벌 홍보물 모습

예산 삭감 이전에는 7~8 곳의 공연장과 공동 제작 프로그램을 포함하여 총 130~150여 작품을 2개월 동안 선보였다. 축제의 목표는 훌륭한 카탈루냐 지역의 공연예술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동시에 전 세계의 수준 높은 공연예술 작품을 바르셀로나 시민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축제는 바르셀로나 산하 바르셀로나 문화원(Institut de Cultura de Barcelona)에서 주최한다. 그러나 유럽 경제 위기로 2년 전 바르셀로나 시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어 현재는 7월 한 달간 약 80여 작품을 소개하는 규모이다. 모든 프로그램은 유료로 진행되는데 연간 예산은 약 380만 유로(약 53억 원) 정도이다.

▲ 그렉시어터와 그렉 페스티벌 버스 광고 모습

1976년에 처음 시작된 그렉 페스티벌은 올해 38회째를 맞이하였다. 축제가 끝난 후의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는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개최하여 총 79개 작품이 공연되었고, 총 128,352명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2013년과 비교하면 작품 수가 약간 줄어들었지만, 관람객 수는 더 늘었다고 한다. 2011년, 2012년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 초청한 적 있는 바르셀로나의 대표 공연 단체 라 푸라 델스 바우스(La Fura Dels Baus)의 신작 <엠유알에스(M.U.R.S.)>1)가 축제 개막작으로 몬주익 성에서 선보였으며, 연극 28작품, 무용 10작품, 서커스 4작품, 음악 22작품, 미니그렉 6작품 등의 전막(前幕) 공연과 기타 부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1) 이 작품은 올해 11월 홍콩 서구룡문화지구의 야외 공연 축제인 프리스페이스 페스티벌(Freespace Fest 2014)에 초청되었다. 이 축제의 프로그래머가 지난 여름 그렉 페스티벌의 초연을 관람하고 초청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라 푸라 델바우스의 <M.U.R.S.> 공연모습 ⓒJosep Aznar

▲ 라 푸라 델바우스의 공연모습 ⓒJosep Aznar

공동 협력 프로그램 체계의 장점

공연장 메라캇 데 레스 플로레스 모습

▲ 공연장 메르캇 데 레스 플로레스 모습

그렉 페스티벌은 카탈루냐 지역의 훌륭한 공연예술을 해외에 진출시킨다는 목표와 전 세계의 수준 높은 공연예술을 소개한다는 목표를 동시에 견지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이 유료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중성에 대한 고려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몇몇 프로그램들은 쇼와 예술 사이의 경계에 있는 듯해 보인다. 축제는 모든 프로그래밍을 바르셀로나 문화원에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 전문가와 협업하는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가령 음악 부문 프로그램은 카이샤 포럼(Caixa Forum)과 협력하여 구성하고, 무용은 메르캇 데 레스 플로레스(Mercat de les Flors) 공연장과 함께 프로그래밍하며, 미니그렉(그렉페스티벌 가족·어린이 프로그램)은 가족·어린이극 전문가인 프리랜서 기획자와 함께 하는 식이다.

물론 최종적인 결정은 축제 예술 감독이 하게 되겠지만, 일정 부분 프로그래밍의 권한을 외부에 위임하며 스펙트럼을 넓히고 경직된 행정 시스템에 유연함을 부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공연예술 축제도 일정 부분 대행 또는 외주 협력 시스템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 현장 운영이나 홍보, 또는 기술 운영 부분에 한정되어 있고, 프로그래밍 분야는 축제 주최 측 또는 축제 사무국의 고유 권한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단일 장르의 예술 축제가 아닌 종합예술 축제의 경우에는 그렉 페스티벌과 같은 방식의 공동 협력 프로그래밍 체계가 갖는 장점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렉 페스티벌은 아르헨티나 정부와의 협약을 통하여, 매년 축제 프로그램에 전략적으로 탱고 나이트(Tango Night)를 구성한다. 이 탱고 나이트는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추천하에 여행 경비를 지원받고 있는 탱고 공연 팀을 위한 시간이다. 아르헨티나 정부에서 지원하는 공연 팀의 기량도 상당했지만, 바르셀로나 관객들도 호응이 아주 열광적이었다. 장기간의 협력관계를 통하여 이미 이 프로그램에 대한 현지의 신뢰도가 쌓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양국의 이런 전략적 관계는 한국 공연 팀이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그렉 페스티벌 역시 자신들의 비용을 절감하면서 수준 높은 공연 팀을 지속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러한 협력 관계를 환영하고 있다.

올해 그렉 페스티벌은 2 개의 한국 공연 팀을 초청하였다. 안수영댄스컴퍼니사다리움직임연구소이다. 지난해 그렉 페스티벌의 조감독이 팸스(PAMS)에 참가했다가 팸스초이스에 선정된 두 팀의 공연을 보고 초청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이 두 한국 팀이 공연했던 시기와 맞지 않아서 공연이 어땠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그렉 페스티벌 측은 아시아의 새로운 콘텐츠를 소개하는 것에 대해 고무적이긴 했으나 여전히 티켓 판매가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축제 기간 중 만났던 바르셀로나 문화원의 국제관계 담당 디렉터인 카를 살사(Carles Sala)는 잠비나이정가악회와 같은 한국의 훌륭한 음악 팀을 초청하고 싶지만 유료로 진행해야 하는 그렉 페스티벌 특성상 초청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티켓 판매에 부담이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보다 친숙하고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안수영댄스컴퍼니의 <타임트래블 7080>(왼쪽)과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하녀들>(오른쪽) 공연모습

▲ 안수영댄스컴퍼니의 <타임트래블 7080>(왼쪽)과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하녀들>(오른쪽) 공연모습

댄스와 컴앤씨 통합하여 진행된 2014 IPAM 포스터 모습

▲ 댄스와 컴앤씨 통합하여 진행된 2014 IPAM 포스터 모습

그렉 페스티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바로 전문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국제공연예술회의(International Performing Arts Meeting, 이하 IPAM)이다. 이 프로그램은 원래 카탈루냐연극협회(Association of Catalan Theater Companies)에 의해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던 마켓이며, 협회 회원의 작품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던 컴앤씨(Come & See)에서 시작되었다. 2012년부터 이 컴앤씨 프로그램이 그렉 페스티벌과 결합하기 시작하였고, 컴앤씨가 열리지 않았던 2013년에는 그렉 페스티벌 내부적으로도 국제 마켓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별도의 IPAM을 만들어 개최하였다. 그러던 것이 2014년에는 컴앤씨와 IPAM이 시기적으로 겹쳐지면서 IPAM-댄스와 IPAM-컴앤씨로 통합하여 진행하였다.

올해 IPAM-컴앤씨를 실질적으로 운영하였던 에이전시 아포르타다(Aportada)의 마레이아 브라네라(Mireia Branera)는 이전의 컴앤씨는 참가 작품들을 그냥 보여주는 것이었던 데 반해, 축제와 결합된 IPAM-컴앤씨는 소개된 작품들을 축제 간 공동 제작에 대한 가능성을 인지한 상태에서 보기 때문에 다른 축제나 프리젠터들에 비해 접근하기 더 쉬운 게 장점이라고 말한다. 즉, IPAM-컴앤씨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이미 그렉 페스티벌과 협업하기로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축제에서 추가 펀딩으로 연결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바르셀로나 공연예술 단체의 제작 환경에 도움을 주며, 작품 제작을 촉진시킨다는 점에서 축제의 중요한 역할에 대한 실제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라메르세 축제도 놓치지 마라

바르셀로나 문화원은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대형 축제 2가지를 모두 개최하고 있다. 하나가 그렉 페스티벌이며, 또 하나는 바로 라메르세(La Mercé)이다. 라메르세 축제는 바르셀로나의 공휴일인 라메르세 기념일(9월 24일)을 중심으로 4~5일 동안 열리는 축제이다. 축제 동안 도심에서는 카탈루냐 전통문화를 기본으로 하는 대형 인형 퍼레이드나 인간 탑 쌓기와 같은 이벤트가 열리고, 주변부의 공원이나 고성 등에서는 거리극, 무용, 서커스, 음악 등 야외 거리예술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매년 게스트 시티를 선정하여 프로그램에 초청하고 있다. 올해는 스톡홀름이었고, 내년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초청되었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일상적 공간을 활용한 야외 공연예술 축제이며, 거리예술 축제이다. 따라서 바르셀로나 문화원 측은 그렉 페스티벌보다는 라메르세 축제와 하이서울페스티벌이 파트너십을 갖고 교류하길 희망한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이 흔들리지 않고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여겨진다.

올해 한국의 축제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외부적인 돌발 상황에 방향을 잃고 흔들렸으며, 예술가들은 설 곳을 잃고 상처받았다. 내부적인 점검과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묵묵히 길을 모색해가는 바르셀로나 축제의 모습에서 카탈루냐 예술의 잠재력을 느꼈다. 바르셀로나의 문화예술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 그건 바로 그 잠재력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사진출처_그렉 페스티벌 홈페이지, 페이스북

필자사진_이란희 필자소개
이란희는 대학로에 라이브콘서트가 꽃피던 시절 처음 일을 시작하였다. 음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공연기획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전공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경영을 전공하였고 현재는 공연예술 축제인으로 거듭나는 과정 중에 있다. 하이서울페스티벌 축제사무국에서 공연팀장으로 재직하며 국내외의 거리예술 공연 프로그래밍과 국제교류 업무를 맡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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