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8일을 전후로 사흘간 진행되는 거리예술축제인 ‘빛 축제(la Fête des Lumières)'는 프랑스의 제2수도인 ‘리옹(Lyon)’에서 펼쳐진다. 리옹은 프랑스의 동남부인 론알프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인구 오십만 명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이 도시의 곳곳을 수놓는 빛을 쫓아 매년 사백만 명의 관광객이 리옹을 찾아온다. 빛 축제는 유럽의 3대 축제 중 하나로, 리옹은 이 축제로 인해 빛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올해는 12월 5일부터 8일까지 총 75개 작품이 리옹 전역을 환하게 밝혔다. 축제를 살펴보는 사흘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도시가 축제를 담아내는 여러 가지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리옹은 어떻게 빛의 도시가 될 수 있었으며, 축제를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 리옹 빛 축제의 역사

리옹은 크게 론(le Rhône) 강과 손(la Saone) 강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그중 손 강 너머에 자리한 구시가지(Vieux-Lyon)는 푸르비에르 언덕(la Colline de Fourviere)을 중심으로 고대 유적들이 모여 있어 리옹의 대표 관광 명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리옹 어디에서든 이 구시가지의 언덕 높이 위치한 대성당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이번 리옹 빛 축제 기간 동안, 대성당의 탑에는 거대한 미러볼이 설치되어 현란하게 빛을 밝혔고, “Merci Marie(마리아, 감사합니다)”라는 선명한 글자가 그 옆에 함께 놓였다. 리옹 빛 축제의 모태이자 그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축제의 기원이 단순하고 강렬한 방식으로 리옹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19세기 초, 유럽 전역에는 극심한 흑사병이 돌았는데, 이때 리옹 시민들은 흑사병을 이겨내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여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올렸다. 이 덕분인지, 큰 피해 없이 이 시기를 지나갈 수 있었던 리옹 시민들은 감사의 뜻으로 1852년 9월 8일에 푸르비에르 언덕에 성모 마리아상을 세울 것을 계획한다. 하지만, 행사 당일에 큰 홍수가 나면서 애초 계획했던 날짜를 12월 8일로 옮기게 되었고, 이 기간 동안 리옹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창가에 양초를 두고 불을 밝히는 의식을 행했다. 동상을 세운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 의식이 계속 이어지면서 현재까지 리옹 시민들은 매년 12월 8일이면 창가에 초를 밝혀 마리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리옹 빛 축제의 기원이자, 매년 12월 8일을 기준으로 축제가 펼쳐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이 작은 의식만으로 축제가 이만큼 성장한 것은 아니다.

▲ 푸르비에르 대성당에 설치된 미러볼과 오른쪽에 보이는 ‘Merci Marie’

1989년, 당시 리옹의 시장이었던 앙리 샤베르(Henry Chabert)는 도시환경 개선 및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공공디자인 정책을 내세워, 리옹 시 전체 예산의 1.5%를 투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인 ‘도시조명계획’을 시행했다. 구시가지의 고대 건축물과 리옹 시내 주요 건물에 미디어 파사드와 LED조명을 설치해 도시 전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프로젝트의 초기 목표였다. 이를 위해 세계의 조명 전문가들이 리옹에 모여 비디오 아트, LED조명 전시, 미디어 파사드 등 다양한 조명예술로 리옹의 밤을 디자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1999년, 도시조명계획의 일환으로 빛 축제가 처음 시행되었고, 12월 8일에 펼쳐지는 리옹 시민들의 전통적인 의식을 계승하는 것으로 축제에 의미를 부여했다.

올해를 포함해 16년 동안 축제가 진행되면서, 리옹은 점차 ‘빛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리옹을 대표하던 견직물과 인쇄업이 쇠락하면서 도시 발전의 정체를 겪은 리옹이 그 다음 주요 산업으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빛’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축제를 거듭해가면서 빛의 다양성을, 산업으로서의 빛의 가능성과 전문성을 도심에 펼쳐보였다. 축제 기간 내내 푸르비에르 언덕에서 환하게 빛나던 ‘Merci Marie’는 가장 단순하며 원초적인 축제의 정신이자, 리옹이 빛의 도시가 되어야만 했던, 철저한 도시계획을 완성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이야기임에 분명했다.

빛이 비추는 곳을 따라가 보면 ― ‘빛’의 다양성과 전문성

이번 빛 축제는 대규모 공연 6개 작품과 미디어 파사드를 포함한 프로젝션 작품 9개, 그리고 전시 작품 34개를 포함하여 총 75개 작품이 축제에 참여했다. 공식적으로 리옹은 9개 구역으로 구획되어 있지만, 빛 축제는 관객 이동 동선의 편의를 고려하여 크게 5개 구역으로 다시 축제 공간을 구분해 지도를 제공했다. 총 사흘간 축제를 즐긴다고 했을 때, 하루에 한 구역 이상을 둘러본다면 충분히 여유롭게 축제 전체를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축제는 보통 해가 진 이후인 저녁 6시에 시작해 최대 새벽 1시까지 계속되었다. 배우들이 등장하는 공연을 제외하고는 상영 및 전시에 큰 제약이 없어 상시로 작품 관람이 가능하고, 각각의 작품은 대규모로 이뤄져 많은 관객을 한 번에 수용하므로 관객 순환이 잘 이뤄진다는 점이 대규모 관광 축제로서의 큰 장점이기도 하다. 또한 도시 곳곳에 작품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굳이 지도를 보며 걷지 않더라도, 빛이 비추는 곳을 연이어 따라가다 보면 거의 모든 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이번 빛 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었던 벨쿠르 광장(Place Bellecour)의 프로젝션 및 공중 퍼포먼스 공연 <Rêves de Nuit(밤의 꿈)>는 생텍쥐페리(Saint-Exu-péry)의 실종 70주년을 기리는 작품이다. 리옹은 생텍쥐페리의 고향이기도 한데, 이 공연이 펼쳐진 벨쿠르 광장 한 곳에는 어린왕자의 동상이 있기도 하다. 대관람차에 스크린을 설치하여 <어린왕자>의 모션 그래픽(Motion Graphic) 영상을 상영함과 동시에 광장 한 곳에서는 공중 묘기가 펼쳐졌다. 테호 광장(Place des Terreaux)에서 상영된 <Lyon, Terre Aux Lumières(리옹, 빛의 땅)>도 리옹의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이 앞선 작품과 비슷했다. 이 작품은 리옹 시청(Hôtel de Ville de Lyon)과 리옹 미술관(Musee des Beaux-Arts de Lyon) 두 건물의 형태와 사이즈에 맞춰 제작된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 공연으로 리옹의 대표적인 예술제인 리옹 비엔날레와 댄스비엔날레를 연상시키는 미술 작품과 현대무용, 음악 등을 정교하게 작품에 녹여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 두 작품은 이번 빛 축제에서 가장 대규모로 이뤄진 미디어 공연이면서, 동시에 공연의 콘텐츠 자체가 리옹의 지역성과 연관되어 있었다. 축제 안의 공연 콘텐츠를 통해 리옹의 또 다른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 벨쿠르 광장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공연 ‘밤의 꿈(Rêves de Nuit)’


물론, 지역성과 별개로 이뤄지는 개별 작품들도 많았다. 생폴 역(Gare Saint-Paul) 건물 한 면이 잭팟 머신이 되어 관객들과 함께한 인터렉티브 미디어 파사드 공연 <Jackpot(잭팟)>이나, 라니아케아 은하를 건물 위에 영상으로 그려내고 동시에 그 불빛을 넓은 잔디 위에 흩뿌려 놓은 영상 및 조명설치 작품 <Laniakea(라니아케아)>도 인상적이었다. 수십 그루의 나무에 흰 튜튜를 입히고 익히 들었을 법한 무용음악을 배경으로 한 <Salle de Bal[let](무도회장)>이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은, 지나가던 관람객들을 거대한 튜튜 아래서 춤추게 만든 관객 참여형 작품이었다. 중세 건축물인 생장 성당(Cathédral Saint-Jean)에서 펼쳐진 미디어 파사드 공연 <Color or Not(컬러 오얼 낫)>은 그 정교함과 화려함에 관객들의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빛과의 협연이 이뤄진 성악 공연, 레이저 쇼, 조명 및 비디오 설치 작품, 빛 퍼포먼스, 불꽃놀이 등 다양한 공연 및 전시가 함께 프로그래밍 되었다.

▲ 미디어 파사드 공연 <잭팟>(왼쪽)과 조명설치 작품 <라니아케아>(오른쪽)


총 사흘 동안 리옹의 전 구역에서 빛 축제의 면면을 살펴보는 동안 새삼 놀라웠던 사실은, 바로 빛의 다양성과 전문성, 그리고 그 가능성을 보게 된 것이다. 미디어 파사드, 프로젝션 맵핑, 모션 그래픽, 비디오 아트, 레이저, LED 조명, 불꽃 등 다양한 범주에서 사용되는 빛이 총 집약되어 공연 및 전시에서 사용되고 있었고 작품의 수준 또한 매우 높았다. 또한 조명 전문가 및 예술가들은 빛 축제를 통해 조명의 혁신 기술을 동시에 선보이기도 했다. 빛을 통해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은 다양했지만, 관광 축제답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대중적이었다. 리옹 빛 축제는 빛과 조명을 산업이자 문화로 대하는 태도를 담아내는 정수이기도 했다.

빛 축제의 조직적인 운영과 그 성과

1) LUCI(Light Urban Community International)는 2002년에 리옹의 주도로 창립된 도시조명국제네트워크 기구로, 리옹의 성공적인 도시조명계획과 빛 축제의 경험 및 노하우를 전수하고 발전시킬 의도로 조직되었다. 현재는 도시 조명에 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서울, 광주 등 4개 도시를 포함해 총 65개의 도시 및 단체가 이 기구에 가입되어 있다.

빛 축제는 리옹 시의 도시조명 담당부서와 LUCI(Light Urban Community International)1)가 함께 주관하고 있다. LUCI에서는 매년 축제 기간 동안 조명 전문 인력을 위한 콘퍼런스나 도시조명을 위한 포럼도 개최하는데, 올해는 각각 “빛 축제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빛 축제에서 음악의 역할”을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다. 또한 콘텐츠 기획 및 개발을 위해 조명연구소(Institut Lumière)와 조명연합(Le Cluster Lumière) 등 전문교육기관 및 연합이 축제와 협력을 맺어 함께 축제를 운영해 나가고 있다. 리옹 빛 축제의 전체 예산은 5백만 유로(약 70억)에 달하는데,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약 2백 6십만 유로(약 36억)는 민간기관에서 지원을 받는다. 재정 지원과 장비 및 기술 지원, 예술 프로젝트 제공 등 직간접적 방법으로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이렇듯, 리옹 시는 빛 축제를 통해 조명 산업을 시의 주력사업이자 관광산업으로 내세워 국제적으로 경제 및 문화 등 여러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었다.

▲ 세그웨이를 탄 1인 인포메이션

축제 콘텐츠와 전문성을 위한 기관의 운영 이외에도 실질적인 축제 운영을 위해 리옹교통기관(TCL)과 경찰청, 그리고 시민사회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다. 축제 기간 동안 리옹 인구의 8배가 넘는 관광객이 거리에 모여 축제를 즐긴다는 말은 엄청난 교통대란과 복잡한 거리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빛 축제는 대규모 관람객을 수용하는 주요 장소를 중심으로 대중교통 및 전체 이동 동선을 통제하여 안전사고를 대비하고 이동 간 혼선이 없도록 운영하고 있었다. 주요 지하철역과 거점 장소 등에서 입구와 출구를 분리시키고, 관객 흐름이 유기적으로 순환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다. 물론, 이에 따른 관객 불편이 뒤따랐지만, 관객 안전과 축제 전체를 운영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또한 축제 장소 곳곳에는 간이 인포메이션이 설치되어 관객 안내를 도왔고, 구역별로 세그웨이(1인 이용수단)를 타고 관객 사이를 누비며 개별 안내를 돕는 1인 인포메이션도 눈에 띄었다. 장소별 관광객 밀집도가 높고, 야간에 야외에서 이뤄지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큰 사고 없이 축제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축제 운영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 뱅쇼를 파는 시민의 모습

리옹 빛 축제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숙소를 예약해야만 한다. 축제 기간 동안 리옹 내 숙박업소는 극성수기를 겪는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 리옹에 오지 못하는 관광객이 있다는 얘기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리옹 시 보고에 따르면, 2012년에 비해 작년 2013년에는 축제 기간의 호텔 사전 예약률이 12.5%가 증가했고 객실당 수익은 6.1%가 증가했다고 한다. 숙박업과 마찬가지로 요식업도 호황을 겪는다. 식당과 바(Bar) 등에서 평균적으로 10% 이상 이용객이 증가하고, 사흘 동안 한 달 수입의 두 배에 가까운 수익을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축제 기간은 크리스마스 마켓(Marché de Noël)이 시작되는 기간이기도 해서, 이중 관광효과를 누린다. 축제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야시장 및 간이식당도 진풍경을 펼친다.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케밥과 추로스가 인기 메뉴이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뱅쇼(Vin Chaud, 따뜻한 와인)도 거리 곳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리옹 시민들에게 조사한 결과, 리옹 전 시장인 앙리 샤베르의 정책 중 ‘도시조명계획’이 94%의 지지를 받으며 가장 만족스러운 시 주도 사업으로 평가받았을 정도로, 빛 축제는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리옹 빛 축제가 펼쳐지는 사흘 동안, 빛이 맺혀 있거나 번져가는 곳들을 따라 걷다 보면 리옹의 곳곳을, 고대의 유적을, 이 도시의 유의미한 곳들을 향해 자연스레 발길을 옮기게 된다. 리옹은 새로운 도시계획의 중요 사업을 이 도시의 소박하고 오래된 전통적인 이야기를 빌려와 도시의 활력을 되찾고, 더불어 빛 축제를 유럽 최대의 관광 축제로 성장시켰다. 한 도시의 대표적인 관광 축제가 도시의 정치 및 산업에 밀접하게 맞닿아 유기적인 관계를 이뤄내고 있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작은 불씨에서 시작된 리옹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전통적인 축제가 유럽의 3대 축제로 성장하기까지, 온 도시가 필요했다. 현재 리옹은 관광 도시로의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조명산업의 최대 기점지의 역할을 하며 도시조명에 대한 다양한 연구 및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국제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리옹은 오랜 세월 축제를 성장시켜온 만큼 축제를 잘 담아내고 있었고, 동시에 빛 축제는 리옹의 여러 이야기들을 잘 들려주고 있었다. 사흘 동안, 거대한 규모의 조명 예술과 도심에 번지던 화려한 빛을 풍족하게 관람했다. 그리고 축제의 마지막 날, 거리 곳곳의 건물 창가를 빼곡하게 수놓은 형형색색의 흔들리는 작은 촛불들을 바라보며 아이러니하게도 큰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불씨를 키워낸 온 마을이 도시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필자소개 필자소개
박다솔은 대학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다. 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를 맡았고, ‘양손프로젝트’, ‘상상만발극장’ 등 여러 단체의 공연을 기획·제작했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축제사무국 제작팀을 거쳐,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의 기획제작팀에서 재직했다. 제10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젊은비평상’에서 무용평론으로 가작을 수상하고, 현재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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