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가 작년부터 10년 동안 후원약정을 맺은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4: 이불>전(展)(사진제공_국립현대미술관)

미술계는 예술분야에서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은 곳이다. 미술시장이 국내외에서 기복을 심하게 겪은 최근 10년간은 더 그랬다. 지난 한 해 2014년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비엔날레로 명성을 얻은 광주비엔날레가 20주년을 맞아 특별하게 준비를 시작했지만, 특별전에 걸릴 예정이었던 걸개그림이 현직 대통령을 풍자한 직설적인 내용으로 논란이 되어 전시 유보되면서 다른 작가들도 작품 철회를 하는 등 한바탕 소란이 있었고, 결국 담당 큐레이터에 이어 광주비엔날레 대표가 사퇴를 했다. 서울에선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이 학예사 채용비리로 직위해제되는 일도 있었다. 2009년부터 시작된 미술시장 침체 분위기가 해외에서는 완전히 끝난 듯 되살아났지만, 국내는 여전히 시장 불황이 계속되었다.

기복 심한 미술계 ‘해외진출’로 돌파구

그런 가운데 우리 현대미술작가들의 활발한 해외진출 소식이 2014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작년 6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는 건축가 조민석이 ‘한반도 오감도’라는 전시를 한 한국관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작가 최재은이 작년 6~9월에 체코의 국립프라하미술관 성 아그네스 수도원에서 현대미술작가로는 최초로 개인전을 했고, 비디오 및 설치작가인 김수자는 미국 아리조나주에 있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이 맞닿는 지역인 마리 포사 입국장에 대형 LED 스크린으로 제작한 명상적인 비디오 작품이 한 점 영구 설치되었다.

특히 이제는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국제적인 현대미술작가로 자리 잡은 이우환의 베르사유 궁전 전시(2014년 6월~11월)는 국내 미술계에 가장 힘을 넣어준 소식이었다. 이우환은 이미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며, 미술시장에서도 한국작가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인터넷 미술매체인 아트넷(Artnet.com)이 최근 발표한 ‘생존 작가 톱10’에는 한국 작가로 유일하게 이우환이 들어갔다.

▲ 2014년 여름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린 이우환의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들(사진제공_국제갤러리)

우리 단색화 작가들 해외 소개 활발

이우환을 필두로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단색화 경향을 이끄는 주요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집중조명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예술경영지원센터도 한국의 단색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전시 ‘텅 빈 충만-한국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을 기획해 해외 23개국에 있는 한국문화원에서 순회전을 열고 있다.

작년 9월에는 중국 항저우(杭州)의 삼상 당대미술관에서 한국현대미술작가 12명만 모아서 한 전시 ‘우리가 경탄하는 순간들(The Moment We Awe)’을 열어, 백남준, 이우환, 김아타, 유근택, 이용백, 이세현, 홍경택, 김기라 등 한국현대미술의 중견, 원로 작가들을 소개했다. 뉴욕에서는 강익중이 영어 알파벳을 가지고 만들 새로운 작품이 올해 3월에는 뉴저지 뉴왁 뮤지엄에, 9월에는 뉴욕 퀸스 뮤지엄에 설치된다고 한다.

이미 1990년대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주요 작가 몇몇은 국제무대의 중심에서 인정받고 있었지만 점점 해외파뿐 아니라 ‘국내파’들도 해외 주요 전시에 자주 초청 받고 있는 점을 눈여겨볼만 하다.

▲ 작년 프랑스 뮬랭에 있는 갤러리 콘티뉴아에서 하는 국제그룹전 '스피어스7'에 전시되었던 우리나라 작가 박기원의 전시장(사진제공_313아트프로젝트)

작년에 삼성미술관 리움이 선정한 제1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받은 이완과 201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였던 박기원은 프랑스 뮬랭(Le Moulin)에 있는 ‘갤러리 콘티뉴아/뮬랭’에서 작년말 열렸던 국제그룹전 ‘스피어스7 (SPHÈRES 7)’에 나란히 전시됐다.

우리 미술계의 해외진출과 발전을 위해서는 작가, 미술계, 국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미술의 해외에서의 위상을 올려주는 기업의 뒷받침 또한 눈에 띄었다. 현대자동차가 영국 최고의 현대미술관인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중심 전시장인 터바인홀(Turbine Hall) 전시를 10년간 후원하는 파트너십을 맺어 올해부터 10년동안 ‘현대 커미션’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를 시작한다. 현대차는 또 테이트모던이 백남준 작품 9점을 처음으로 구매하도록 후원 했고, 국내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현대차시리즈’라는 이름의 한국작가 개인전을 매년 12억원씩 10년간 후원하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이 2014년에 현대자동차의 후원으로 구입한 백남준 작품 9점 중 일부(사진제공_테이트모던)

미술 국제무대 진출과 홍보가 중요

2015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나라 미술계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이런 해외 마케팅을 포함한 해외 진출이다. 국제무대와 해외 마케팅의 중요성은 미술계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나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대중문화나 다른 분야의 해외 진출능력에 비해 우리나라 현대미술작가들에 대한 해외 마케팅은 아직 부족하다. 그 탓에 우리 아티스트들은 작품성과 역량에 비해 국제무대에서 유명세나 시장성이 아직 부족하다.

특히 우선 우리 현대미술 작품을 해외 현지인들의 예술감상 현장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작가들 작품을 해외에서 전시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한국문화원처럼 우리나라 사람들만 모이는 곳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실제로 외국의 문화수요자들이 ‘보는 곳’에서 보여줘야 한다. 베르사유궁전처럼 대단한 곳이 아니더라도 좋다. 현지인들이 즐겨 다니는 오픈 된 공간을 뚫고 들어가든, 그 나라 현지 미술관과 협업을 하든, 그 나라 사람들이 실제로 보고 즐기는 전시공간에서 우리 작품을 보여줘야 진정으로 우리 현대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게 된다.

국내에서는 침체된 미술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는 실질적인 뒷받침이 있었으면 한다. 작년 가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미술진흥 중장기계획을 내놓았지만, 각종 행사와 제도 신설 같은 거창한 계획은 사실 필요 없다. 품 많이 들고 실제 현장에서 별 효과는 없는 ‘계획’보다는,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사고파는 것을 즐거운 행위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시장 살리고 작가 살리는 데 더 낫다. 아티스트들이 예술가를 직업으로 해서 먹고 살 수 있어야 예술계가 살아나는 건 당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이 구매하는 미술품에 대해 500만원 한도까지 손비처리를 해주고 있지만, 이 한도를 늘리거나, 기업뿐 아니라 개인이 미술품 구매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정액까지 연말소득공제 혜택을 준다든지, 개인이나 기업이 미술관에 기증하는 작품에 대해 작품가격만큼 세금혜택을 주는 등의 제도를 만들면, 젊은 미술작가들의 작품이 시장에서 거래되게 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명품보다는 미술품을 사는 문화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더 많은 아티스트들이 예술을 직업으로 할 수 있는 데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이런 실질적인 제도 보완에, 중장기적으로는 꾸준히 우리 작가들을 해외에 내보이는 마케팅 전략이 보태지면, 우리 미술작가들이 숨을 쉴 수 있고, 우리 미술계가 국내외에서 더욱 활기를 띨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_이규현 필자소개
이규현은 조선일보 미술담당 기자를 거쳐 현재는 전시기획과 전시 홍보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 ‘이앤아트’를 운영하고 있는 ‘아트 마케터’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 <그림쇼핑> <그림쇼핑2> <안녕하세요? 예술가씨!> <미술경매이야기> 등 미술전문책을 여러권 쓴 미술시장 전문가로, 조선일보, 월간조선, 매경월간지인 ‘럭스맨’ 등에 칼럼을 썼다. 연세대 국문과, 중앙대 예술대학원 박물관미술관학과,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대학원 과정을 졸업했고, 뉴욕 포댐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 전공으로 MBA를 받았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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