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위치한 반쥴(BANJUL)은 지난 40년간 도심 한 복판에서 나름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온 특별한 장소다. 공간 입구에 간결하게 쓰인 소개문에 나와 있듯이, 이곳은 1974년 오픈 당시 레스토랑으로 시작되어 1998년 티포투(Tea for Two)라는 이름의 카페로 다시 문을 열어 12년간 공정무역차와 유기농차를 중심으로 한 차(茶)문화를 만들어갔으며, 2012년 6월부터는 공연과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문화활동을 본격적으로 이어나가면서 ‘어반 세런디퍼티 반쥴(Urban Serendipity BANJUL)’이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각종 상가들이 즐비하고 형형색색의 간판들이 건물의 외관을 숨 쉴 틈 없이 감싸고 있는 종로 2가의 한 골목에 자리한 반쥴은 검은색 벽돌로 지어진 독특한 외관과 과거의 운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로 더욱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1970-1980년대 반쥴에서 진행된 공연 장면

▲ 1970-1980년대 반쥴에서 진행된 공연 장면

40년간 2대에 걸쳐 써온 공간의 역사

오픈을 기념해 故 흑우(黑雨) 김대환 선생의 공연이 열렸던 2002년 반쥴의 4층 로프트 초기 모습

▲ 오픈을 기념해 故 흑우(黑雨) 김대환 선생의 공연이 열렸던 2002년 반쥴의 4층 로프트 초기 모습

카페와 도서관, 전시장, 공연장의 기능이 한 데 어우러져 이용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공간들이 제법 많아진 요즘에는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단어가 그리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러한 시점에 반쥴의 존재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지난 40년간 2대에 걸쳐 쓰여진 공간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레스토랑으로 문을 연 1970~1980년대 당시에 반쥴은 예술가와 해외 주요 인사들이 서울을 들릴 때마다 빼놓지 않고 방문하던 종로의 관광명소였다. 그들은 식사와 차를 즐기면서 서로의 문화를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문화를 노래와 공연으로 즐겁게 소개할 수 있는 작은 무대가 한편에 늘 마련되어 있었다. 이것은 90년대 말부터 지금의 반쥴을 이끌어 가고 있는 이기화 대표가 차와 함께 하프연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 것으로 이어져, 오늘날 갤러리와 공연장으로 본격적인 문화예술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반쥴에 이르게 된다. 자연스러운 어울림 속에서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예술활동이 반쥴이라는 장소가 지닌 시간의 두께를 덧입어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반쥴은 지상 3, 4층과 옥상층,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3층은 공정무역거래를 통해 소개된 세계 각국의 차와 2대에 걸쳐 수집한 커피그라인더 컬렉션을 만나볼 수 있는 카페로 이뤄져 있으며, 4층 로프트(Loft) 공간에서는 반쥴과 함께 인연을 쌓아간 아티스트들의 즉흥연주와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공연행사를 만나볼 수 있다. 5층에는 현대미술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하는 루프탑(Roof Top) 갤러리와 이용객에게 도심 속 짧은 휴식을 제공하는 옥상정원이 마련되어 있다. 갤러리와 테라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는 이 공간은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문화예술활동들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공동창작공간이자 이벤트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반쥴 3층 카페 공간. 벽면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커피그라인더 컬렉션 250여종이 전시되어 있다.

▲ 반쥴 3층 카페 공간. 벽면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커피그라인더 컬렉션 250여종이 전시되어 있다.


반쥴 4층 로프트. 이곳의 벽면에는 현재 반쥴 대표인 이기화씨와 그의 모친이 2대에 걸쳐 수집한 스푼 2000여종과 루프탑 갤러리 참여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 반쥴 4층 로프트. 이곳의 벽면에는 현재 반쥴 대표인 이기화씨와 그의 모친이 2대에 걸쳐 수집한 스푼 2000여종과 루프탑 갤러리 참여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감성의 휴식처

‘도심 속 뜻밖의 즐거움(Urban Serendipity)’이라는 표어처럼, 반쥴은 전혀 예상치 못한 환경 속에서 마주한 감성의 휴식처 같은 곳이다. 1998년부터 시작된 음악공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용, 미술, 문학 등에 이르는 다양한 예술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길 건너편에 인사동과 인접하고 있지만, 상권이 압도적으로 발달해 있는 지역적 특성상 이러한 문화공간은 일대에서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 상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골목에서 해외 각국에서 찾아온 아티스트들의 즉흥연주와 현대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도 반쥴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누에보 탕고 엔삼블레(Nuevo Tango Ensamble, 이탈리아), 핑크 프로이드(Pink Freud, 폴란드), 마르코 카펠리(Marco Cappelli, 이탈리아) 등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열린 반쥴.

▲ 누에보 탕고 엔삼블레(Nuevo Tango Ensamble, 이탈리아), 핑크 프로이드(Pink Freud, 폴란드), 마르코 카펠리(Marco Cappelli, 이탈리아) 등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연이 열린 반쥴.

반쥴 5층에 자리한 루프탑 갤러리와 테라스 반쥴 5층에 자리한 루프탑 갤러리와 테라스

▲ 반쥴 5층에 자리한 루프탑 갤러리와 테라스

2013년 5층 루프탑 갤러리에서는 《드로잉 릴레이 프로젝트: 반쥴-샬레》(기획: 최흥철)전이 3월부터 12월까지 열렸다. 이 전시는 반쥴의 갤러리 공간을 작업실과 전시장 사이의 매개공간으로 활용하여 드로잉 작업을 전시하거나, 설치나 장르간의 협업을 시연해보는 장소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반쥴-샬레’의 기본 개념은 ‘본격적인 개인전을 앞 둔 작가들의 실험공간으로서, 동시대 미술에서 즉시성과 가변성을 실험할 수 있는 샬레(Petri Schale:배양접시)처럼 예술가의 아이디어와 컨셉을 배양하고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최흥철 프로젝트 디렉터의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13년에는 고병성, 한정림, 김진, 이유진, 조이수, 전가영, 정고요나, 이준 등 총 여덟 명의 작가가 매월 릴레이 형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참여작가의 출품작과 인터뷰, 담당 큐레이터의 소개글이 수록된 도록이 별도로 제작되었다. 도록에 수록된 한 인터뷰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갤러리 전시공간에서 정원이 있는 야외 공간으로 이어지는 물리적 특성이 프로젝트 참여 작가들에게 다양한 시도를 가능케 하는 일종의 자극제가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쥴의 루프탑 갤러리는 필연적으로 아래층을 거쳐 올라오면서 만나게 되는 고풍스러운 느낌을 함께 가져올만한데도, 어떤 독립된 느낌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기존의 갤러리 공간과는 많이 달라요. 아담한 사이즈도 그렇고, 조금 답답하다 싶다고 느낄 때 문을 하나 열면 외부로 오픈되는, 반쥴의 숨겨놓은 비밀스런 공간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 비밀스런 공간의 느낌이 작가들로 하여금 자기 이야기를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하지 않나 합니다. 마치 작은 다락방에 소중한 보물들을 하나씩 숨겨 놓듯이요.”

<드로잉 릴레이 프로젝트: 반쥴-샬레>의 2013년 도록, 2014년 1월 노정희 개인전과 3월 이혜인 개인전 전시 장면

▲ <드로잉 릴레이 프로젝트: 반쥴-샬레>의 2013년 도록, 2014년 1월 노정희 개인전과 3월 이혜인 개인전 전시 장면


40년의 세월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전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공간을 내어준 반쥴. 이곳에서 이뤄지는 예술가들의 호흡과 행위가 어떠한 음과 색, 소리와 형태로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질지, 또한 이러한 활동들의 결과가 반쥴의 역사를 어떻게 이어 써내려갈지 기대된다.

사진 제공_반쥴

필자소개_황정인 필자소개
황정인은 사비나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2003-2009)했으며, 현재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온라인 큐레이토리얼 리서치 플랫폼 '미팅룸(meetingroom.co.kr)'의 편집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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