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아카데미(NEXT ACADEMY) ’아시아 현대미술 지형도 그리기’ 과정 개요

▲ 2월 5일(목)부터 13일(금)까지 진행된 넥스트 아카데미(NEXT ACADEMY) ’아시아 현대미술 지형도 그리기’ 과정 개요(클릭시 사진 확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걸까? 배우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잘하는, 또 해야 하는 질문이다. 내가 늘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마련한 ‘넥스트 아카데미(NEXT ACADEMY)에 ’아시아 현대미술 지형도 그리기’(2월 5일(목)부터 13일(금)까지 진행)라는 주제로 강연과 멘토링을 제안 받았을 때 스스로 의아했다.

안내문을 보면 “국제문화교류 역량강화”를 위한 프로그램인 넥스트는 ‘넥스트 엑스퍼트 트레이닝(Next Expert Training)’의 줄임말이며, “시각예술 기획자들의 아시아 권역의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동시에 본인의 기획을 위한 리서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구성된 과정”이라고 한다. 내게 부여된 강연 과제는 ‘중동아시아, 레바논 현대미술’이다. 아마도 주최 측은 지난해 도합 7개월가량을 비교적 생소한 베이루트에 체류하며 한 미술 기관에서 운영하는 대안적 작가/기획자 교육 프로그램을 들었던 내 경험을 연관 지었을 것이다.

일단 중동에 아시아가 붙어서 아시아 권역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꾸준히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가 못 된다. 이런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의구심은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려는 자세와 의욕이 누구보다도 충만했던 동료 기획자들을 만나고 난 지금 더욱 강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내 인생 배움터이자 친구가 된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라는 동네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소개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면 괜찮겠다는 심정으로 강연에 응했다. 이 프로그램을 정리해 알리는 목적의 원고 청탁에 응한 이유도 비슷하다.

사흘 동안 나를 포함해 일곱 명의 기획자들이 전반적인 아시아 권역에 대한 이해와 국제교류의 전략, 세부적으로 홍콩, 대만, 인도에 관한 강연을 진행했고, 팀 워크숍이 이어졌다. 꽤 충실하고 빡빡한 일정이었다. 다른 강사들의 강연을 들을 만큼 시간을 할애할 수 없어서 아쉬울 뿐이다. 게다가 베이루트에 관해 지나간 전쟁과 여전히 현재적인 불안정한 사회 상황을 강조하면서 이야기한 꼴이 된 탓인지 강연에 이어진 워크숍 과정에 내게 멘토링을 요청한 신청자가 없었다. 이 때문에 반쪽짜리인 원고가 될 테지만 독자들이 고려해서 읽어주시길 감히 부탁한다.

낯선 곳에서 나의 문제의식을 ‘그려낸’ 시간

베이루트에 있는 동안 살 집을 구하며 그 동네 사정도 어느 정도 겪어보고, 괜찮은 작업을 하는 작가와 기획자를 친구로 사귀며 그런 동네에서 바로바로 벌어지는 이들의 미술과 시각문화 활동과 고민도 알게 되었긴 했다. 하지만 경험했다고 해서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경험이 점점 쌓여 새로운 면을 보면 볼수록 혼란이 가중되고 요점이 흐려지기도 한다. 소위 국제교류는 이웃이나 친구까지는 안 바래도 도대체 알 듯 말 듯한 그 동네와 그 사람들과 가까워져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 사이에 긴 대화를 위한 인내심이 미리부터 발현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획을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낯선 동네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과 이해를 하나의 지도와 같이 그려내는 일이다. ‘나는 네 동네에 대해 이렇게 알고 있고, 이런 관심이 가기 때문에 왔다’는 것을 피력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인사 한마디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강연을 위해 준비했던 이 한 문단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정보가 녹아있다. 베이루트-레바논-중동으로 확대되는 한 미술의 계보에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 미술 공간, 팔레스타인해방기구로 인해 연대할 수 있었던 중동과 아시아의 작가들, 그리고 후대에 그 연대의 역사를 다시 기억하려는 젊은 작가와 연구자, 현대미술의 작업적 토양이 된 이민자의 역사와 그것을 기록한 사진 아카이브, 미술관이 없는 이유와 미술관을 가지려는 이들의 노력, 그리고 그런 동네를 가려고 했던 나의 문제의식, 즉, ‘어떻게 이런 곳에서도 역사적이면서 반역사적인 미술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배움의 장을 열어두는가?’ 등. 아마도 기획자가 현지에 가서 맞닥뜨릴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국적 풍경과 사람들 뒤에는 무수한 맥락이 기다리고 있다. 기획자는 그 맥락들의 실타래를 잘 감아내야 하지 않을까?

리서치 발표 – 논리적 기획과 완벽한 기획 사이의 간극

강연과 팀별 워크숍 이후에 각자 발전시켜온 리서치 기획안을 발표하는 마무리 워크숍에는 다행히 참여할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충실히 고민했으면서도 과감한 리서치 계획 발표를 내어 주었다. 강연자들은 이에 솔직하고 진심 어린 조언으로 응답했다. 둘 사이에 오고간 내용을 아래와 같이 옮겨본다.

첫 번째 발표는 대만 팀 참여자었다. 작가 활동을 하면서 국제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수강했다는 참여자였다. 단 며칠 안에 리서치 계획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전시 기획까지는 구체화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시작된 발표는 대만 미술계를 읽어낼 수 있는 기존 큐레이터의 비평문을 조사해 언급하고 한국과 대만의 현황을 본인의 작가적 경험에 미루어 비교했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내용을 다양한 층위에서 조사한 것이 장점이었다. 멘토링을 했던 강연자가 대만과 한국의 관계를 일본과의 역사적 관점, 현재 경제적 상황 등에 대입하고 여러 기관을 자세히 다룬 사례 연구의 본을 보인 것이 많은 도움을 준 듯하다. 그러나 많은 정보는 역으로 취약점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대만과 같이 어느 정도 노출이 된 지역은 아무래도 같은 지역을 대상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을 얻어올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등 구체화하여야 한다는 첨언이 이어졌다.

두 번째 발표도 역시 대만 팀 참여자였다. 이 참여자는 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고, 유사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어떤 곳에 마침 갈 일이 생겨 기존 일정을 활용해 리서치를 계획했다. 리서치의 목적이자 결과물로는 그 장소와 연관해서 한, 중, 일 삼국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다학제적 협업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었다. 이미 정해진 조건을 잘 연결한 리서치 계획이었다. 리서치 기회는 종종 이렇게 별도의 계획보다는 상황 여건에 따라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기획은 장기간 투자를 해야 하고 협업의 분야와 인력이 다양하고 많다. 따라서 단계별로 어떤 것들을 목표로 하고 어떤 관계를 성취해야 하는지 계획이 마련된다면 더 좋을, 확장 가능성이 큰 기획이었다.

▲ 넥스트 아카데미(NEXT ACADEMY) 리서치 기획안 발표 워크샵 모습

세 번째 발표는 홍콩 팀 참여자였다. 대규모 국제적 아트 페어 일정에 맞춰 리서치를 계획했는데, 본인이 운영하는 미술 공간의 규모가 아트 페어의 주된 층과는 차이가 있었다. 새로운 미술 시장의 층위와 활동을 모색해봄 직한 기대가 되는 기획이었다. 계획은 페어와 기관에 대한 목록과 요약까지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리서치 대상인 아트 페어 활동 중에 대안공간 등 다른 규모의 미술 공간이나 지역 작가들과 연계한 사례가 있는지,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비교 연구할 수 있는 다른 지역이 있는지에 관해 내용이 보완된다면 좋겠다는 조언이 나왔다. 이들의 협력이 작가, 공간, 지역 미술계 전체에 끼친 영향을 추적해 보면 기획의 주제적인 면이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홍콩과 싱가폴은 지역과 국제라는 두 층위에서 유사한 미술 현황을 겪고 있다. 두 지역을 연계해서 리서치를 구성한다면 앞으로 리서치의 활용도나 지속성이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이 이어지기도 했다.

네 번째 발표는 인도 팀 참여자였다. 베트남을 대상으로 계획을 세웠는데 지역보다는 리서치 방식에 방점을 찍고 리서치를 계획했다. 국제교류 리서치라고 하면 주로 지역에 초점이 맞춰지곤 하는데, 이 교류의 핵심을 사람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연결된다고 파악했고, 이것이 추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와도 합치되는 논리가 돋보였다. 계획안에서 언급한 인물들이 모두 현지에서 바쁜 사람들일 텐데 정해진 기간 내 모두 접촉하는 것이 가능한지, 또 만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얼마나 성사시킬 수 있을지도 관건으로 보였지만,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기획적 재치와 심지가 돋보였다.

각각의 발표가 매우 충실하고 흥미진진했기에 워크숍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모자랄 판이었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서 이번 프로그램 전반에 관한 열띤 대화가 오고 갔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전에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이 강연 위주였다면 이번에 형식을 바꿔 토론과 대화와 만남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본 것이라고 한다. 가고 싶은 지역과 관심사가 겹치는 기획자들이 연결되었고, 공통의 관심사를 리서치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서로 견주며 도와갔다는 측면에서 효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긍정의 힘으로 인해, 참여자들에게는 시작한 리서치 계획을 더 다듬고 마침내 그 지역을 가보는 어떤 목표가 생겼다. 그리고 주죄 측에게는 이 일이 이뤄질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일이 남았다. 이 프로그램을 함께했던 모두가 낯설고 두려워도 가보고 싶고 몰라서 더 알아야 하는 친구 같은 동네와 그곳 사람들을 찾아 길을 나설 수 있길 기대한다.



참고링크

[NEXT ACADEMY] 페스티벌 봄과 함께하는 1110프로젝트

필자소개_김진주 필자소개
김진주는 미술작가. 전시기획자나 연구자로 활동하기도 한다. 레바논 베이루트 소재 비영리 미술기관인 아슈칼 알완(레바논 조형 예술가 협의체)이 운영하는 ‘2013~2014 홈 워크스페이스 프로그램’에서 공부했고, ‘4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안양문화재단, 2013~2014)의 ‘프로젝트 아카이브’와 순회전 ‘리빙 애즈 폼(더 노마딕 버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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