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9월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를 찾은 관객 모습(사진출처: 예술의전당 보도자료 홈페이지)

《Weekly@예술경영》 298호는 ‘오케스트라 경영’ 특집이다. 지휘자 선정, 작품·관객 개발, 전용 공연장 건립과 마케팅 전략 수립 등 국내 오케스트라 단체 운영 효율성 제고를 위한 현안들을 해외 사례와 결부하여 살펴본다./특집:국내 오케스트라 단체의 운영 현황 및 효율성 증대방안

영국 – 비싸지만, 관객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는 마케팅

세계 최정상권 오케스트라가 복수로 포진한 도시는 우선 베를린(베를린 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뮌헨(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뮌헨 필)을 들 수 있겠지만, 비즈니스의 경쟁이 피부로 와 닿는 도시는 단연 런던이다. ‘클래식의 수도’답게 흔히 ‘런던 빅 5’로 분류되는 오케스트라들과 고음악 및 체임버 앙상블(계몽시대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주요 매니지먼트(아스코나스홀트, 해리슨&패럿, IMG 아티스트, 인터무지카, ICA)의 본사가 모두 런던에 있다. 자사 아티스트를 관리하고 유망주의 연주가 어떤지 확인하는 매니저들을 어제도 만나고 오늘도 만난다. 각 악단의 철학을 구현하는 최고경영자(CEO)와 야심찬 비전을 가진 예술감독의 타협물인 다음 시즌 프로그래밍이 매년 3월 초면 발표된다. 오케스트라와 공연장에 흐르는 공기와 질서가 살아있는 예술경영의 교과서이자 클래식 시장의 일선이다.

물가 높기로 소문난 런던에선 아끼는 게 돈을 버는 거다. 일단 런던 템스 강 남쪽에 위치한 사우스뱅크센터 로열페스티벌홀을 본거지로 한 런던 필하모닉(LPO)과 필하모니아, 템스 강 북쪽 바비컨센터를 근거로 하는 런던 심포니(LSO)와 BBC 심포니의 공연을 저렴하게 보는 것을 노리기로 한다.

티켓을 싸게 구하려면 먼저 공연장으로 가야 한다. 박스오피스로 가서 직접 구할 때만 수수료가 면제된다. 예술의전당 SAC티켓처럼 온라인 수수료를 내지 않는 경우는 런던에선 없다. 온라인 부킹에 보통 1매당 1.5파운드가 소요되니 시즌 브로슈어나 메일링 서비스로 받은 정보를 참조하면서 박스오피스에서 여러 공연을 한꺼번에 구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오케스트라들은 계절별로 소책자를 발간해서 공연장에 비치해 놓고 실구매자들이 공연장에 왔을 때 기왕 다음 공연도 살 수 있게 세심한 마케팅을 펼친다. 가령, 3월 15일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공연이 끝나면 홀을 나가자마자 스태프들이 친절한 표정으로 손에 잡히는 크기의 한 장짜리 인쇄물로 다음 공연을 안내한다. 여운이 가시기 전에 다음 구매를 부드럽지만 강력하게 권하는 셈이다.

2014-2015 바비컨센터 공연 일정

▲ 2014-2015 바비컨센터 공연 일정(사진출처: 바비컨센터 홈페이지, 클릭시 사진 확대)

공연을 보기로 하면, 티켓 가격을 확인한다. 왼쪽 그림에서 보듯, 바비컨센터에서 나눠주는 겨울 시즌 브로슈어를 보면서 가격 비교에 들어간다.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와 지휘자 다니엘 하딩의 LSO공연은 인기곡 브람스 작품을 하는데 최고 가격이 38 파운드다. 사카리 오라모가 지휘하는 BBC 심포니는 비인기곡인 닐센 공연을 하는데 최고 가격이 34 파운드다. 12월이라는 계절적 요인을 감안해도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의 ‘메시아’ 공연은 꽤 비싸다. 45 파운드로 높게 가격을 매겨도 수요가 있으니 매진된다는 마케터의 심중이 읽힌다. 언제나 바비컨센터 공연은 최저 가격이 10 파운드. 일찍 구매하는 소비자가 그 자리를 얻을 수 있으니 티켓 오픈이 시작되는 3월에 현금을 충분히 준비하는 게 좋다.

최저 가격 티켓이 다 팔렸다면 가격 대비 만족비가 좋은 좌석을 찾아보기로 한다. 무대와 멀어질수록 가격이 싸지는 건 우리와 마찬가지. 어쿠스틱이 안 좋으니 싼 게 비지떡이다. 그럼 사우스뱅크센터에서 열리는 LPO 공연을 가격대 만족도가 높은 좌석에서 보도록 하자.

▲ 로열 페스티벌 홀의 좌석별 티켓 금액(사진 출처: 로열 페스티벌 홀 홈페이지)

좌석표에서 볼 수 있듯이 리어 스톨스(REAR STALLS)의 9파운드 석과 불과 여섯 열 차이로 25파운드 석이 위치해 있다. 음향 차이는 거기서 거기다. 같은 프론트 스톨스(FRONT STALLS)이지만 단 한 줄 차이로 40파운드 석보다 9파운드 싸게 살 수 있는 자리가 널려 있다. 런던 주재 오케스트라들은 정책적으로 일부 공연의 특정 좌석을 학생이 5파운드 내외에서 살 수 있도록 협정을 맺어서 어떻게든 프론트 스톨스는 유로로 모두 채워진다.

오케스트라 시즌 티켓을 산 고객들의 특전은 다양하다. 리허설을 구경할 수 있거나 리셉션에 참가해 단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지방 투어 때 단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갖은 일을 나눠 하면서 일체감을 쌓아나간다. 로열 발레단이 시작한 기부자 특별 프로그램이 오케스트라로 번지면서 캐서린 맥도웰(LSO), 데이비드 웰튼(필하모니아), 티모시 워커(LPO), 폴 휴즈(BBC 심포니) 등 각 악단 CEO들은 지금 정기회원 대우에 대한 아이디어 전쟁 중이다.

어제 본 오케스트라 공연이 어땠는지 《인디펜던트》, 《가디언》 등 정론지가 소식을 전하고 지하철역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이브닝 스탠더드’ 역시 하루를 멀다 하고 클래식 리뷰를 실으며 클래식 애호가들과 호흡한다. 주간으로 발행되는 런던 관광정보지 ‘타임아웃’은 애플리케이션 한정으로 40% 할인 티켓을 레이티스트 오퍼(Latest offer)로 발매해서 자주 스마트폰을 확인할수록 이득이다.

일본 – 클래식 애호가들을 지속 탄생시키는 마케팅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가 ‘유럽음악축제 순례기’에서 그랬다. “오늘 짐을 꾸리면 하루 안에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 덕분에 서울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라고. 2002년 《객석》에 입사해서 5년여 동안 매월 마감을 하면서 ‘이것만 끝내면 네 시간 안에 도쿄에 갈 수 있다’는 안도감으로 나도 서울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폴리니의 리사이틀과 파리 오페라의 일본 투어를 볼 수 있는 설렘에 금요일 자정 인천을 출발하는 스카이마크 비행기에 몸을 싣고 새벽 네 시 도쿄 하네다 공항에 내리기를 육십여 차례, 5년 동안 매달 한 번 꼴로 일본을 간 셈이다. ‘객석’을 관두자마자 다음 행선지는 고민할 게 없었다. 도쿄로 향했다. 2007년 나는 도쿄 스미다 구에 위치한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에서 일했다.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은 일본에 산재한 30여 개 프로페셔널 교향악단의 협의체다. 그곳에서 일본 오케스트라의 치열한 경쟁을 목격했다. 그리고 경쟁의 숨 막힘은 2015년 지금도 여전하다.

클래식 비즈니스에서 도쿄 마켓은 런던, 베를린, 파리와는 또 다른 특색을 지닌 최대의 관현악 시장이다. 명실상부 아시아를 대표하는 NHK 교향악단,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로 도쿄 도(道)의 탄탄한 재정 지원이 보장된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한 지붕이었지만 후지텔레비전의 지원 중단에 따라 오자와 세이지의 퇴단과 함께 악단이 둘로 갈려져버린 재팬 필하모닉과 뉴 재팬 필하모닉, 전설적인 해외 지휘자들을 객원 지휘자로 잘 초빙한 요미우리 니혼 심포니, 2000년대 초반 정명훈을 영입하고 신세이 니혼 심포니를 합병하면서 지금도 공룡 크기를 자랑하는 도쿄 필하모닉, 가와사키 시의 구애에 힘입어 최고급 음향공간으로 손꼽히는 뮤자 가와사키에 둥지를 튼 도쿄 심포니. 이상의 7개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가 연주력과 지휘자, 협연자와 레퍼토리로 각축을 벌인다. 이외에도 오페라와 발레 반주에 특장을 보이는 도쿄 시티 필과 도쿄 뉴 시티 필의 정기 연주회도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2015년 3월 기준으로 연맹에 소속된 프로 악단은 33개. 2012/13 시즌 통계를 보면 1년 동안 33개 오케스트라가 3,746회의 공연을 수행했고 총 입장객 수는 약 408만 명이다. 체감이 쉽지 않지만 자국 오케스트라를 보려고 콘서트홀을 누적 방문하는 입장객 수가 연간 400만 명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 수치는 해외 오케스트라의 방일 공연 관객을 포함하지 않았다. 유럽에서 항시 궁금해하는 일본 클래식 시장의 저력은 단연 자국 오케스트라를 사랑하는 관현악 팬들이 핵심이다. NHK 교향악단을 예로 들면 2012/13 시즌 악단의 총수입은 한화로 303억 원 가량으로 NHK 방송국의 지원금 141억 원에 이어 티켓 판매 대금이 129억 원이었다(2014년 5월 환율 기준). 9,000여 명의 정기 회원이 바탕이다.

▲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이 발행하는 계간 홍보물(사진 출처: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 홈페이지)

도쿄 오케스트라가 가장 신경을 쓰는 홍보 수단은 인쇄물이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인 6시경부터 산토리홀, 도쿄 오페라시티, 분카무라 오차드홀, 도쿄 예술극장, 도쿄 문화회관, 스미다 트리포니홀 앞에선 정장 차림에 하얀 장갑을 끼고 공연 전단을 비닐 봉투에 담아 전달하는 홍보 직원을 만날 수 있다. 홀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보고 싶은 공연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전단을 나누면서 시작을 기다린다. 실구매자들이 다음 구매할 공연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충성스럽게 악단의 정기 연주회를 반복적으로 방문하는 관객층이다 보니 정보 욕구가 대단하다. 도쿄의 대다수 오케스트라가 월간지 형태로 프로그램북을 대신하고 있고 편집에 심혈을 기울인다. 프로그램북을 NHK 교향악단처럼 유료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요미우리 심포니나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처럼 무료로 제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내방객들이 양질의 프로그램 노트와 아티스트 인터뷰에 이끌려 다음 공연 티켓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일간지에서 클래식 공연을 리뷰하는 경우가 전무하고 프리뷰도 자사 주최의 공연에 한해서, 오케스트라의 공연 광고는 주로 음악 잡지에 실린다. 도쿄 오케스트라가 자웅을 겨루는 모습은 클래식 잡지 '음악의 벗' 서베이를 통해 실상이 드러난다. 《객석》이 창간 20, 30주년 특집으로 국내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해외 악단을 조사하듯, '음악의 벗' 역시 5년 단위로 일본 내 인기 악단 랭킹을 조사하고 있다. 2011년 조사에선 NHK 교향악단, 뉴 재팬 필하모닉, 도쿄 심포니가 ‘Big 3'를 차지했다. 이 결과는 그대로 악단 마케팅 수사로 인용된다. 공연 정보 월간지 이브라보(ebravo)가 공연장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홈페이지로 서비스된다. 웹으로도 지역-일자별 콘서트 검색이 된다. 매진 공연이라도 박스 오피스 앞에 서 있으면 공연 20여 분 전부터 반환 표 판매가 시작된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3만 엔까지 현금을 준비해야 문제가 없다. 조기 구매의 혜택은 좌석을 먼저 선점하는 것으로 족하고 할인은 없다. 신청자를 추첨해서 조기 구매 권리를 나눠주는 방식도 일본만의 것이다.

한정호 필자소개
한정호는 [월간 객석]에서 무용·클래식 기자를 역임하고 국립무용단 자문위원을 거쳤다. 공연기획사 빈체로에서 홍보, 기획 업무를 담당했고 일본 오케스트라 연맹에서 일했다. 현재 영국에서 [월간 객석], 중앙일보, 중앙SUNDAY 필자, 옴부즈맨으로 활동 중이다. LG글로벌 챌린저 문화 예술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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